기획ㆍ특집

춤 전공 청소년을 위한…

〈춤웹진〉은 내일의 춤 현장에서 창의적 무용인으로 활동하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기부터 춤을 전공한 젊은 무용인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청소년기가 예술의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시작하고 준비하는 시기이다시피, 청소년기에 접할 자극과 조언, 학습은 장래 활동에 바탕을 이룬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바로 윗세대로서 젊은 무용인들이 자신의 청소년기 체험과 갈등과 추억을 토대로 소망하는 바가 오늘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작지만 꾸준한 실천,
작은 습관의 힘

 

춤추고 수업하고 사업하는
프로열정러 20대

 

나는 현재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 전공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다가 정말 중요한 두 가지를 얘기해주고 싶어 글을 시작한다.
 작년 콩쿠르를 준비하다 지쳐 있을 때 혼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춤은 즐거울 때 추는 건데… 왜 고통스러워하며 춤추고 있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거 아니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건데?
 나는 이 생각을 통해 다시 한 번 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며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작용을 했다.
 모든 열심히 해보는 프로열정러, 지금의 성실한 나를 만들어준 고등학교 시절 입시준비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실력이 부족했었다. 내 몸은 다른 친구들보다 뻣뻣하고 무용을 하기엔 좋지 않은 신체 구조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연습했고,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굉장히 노력파로 이겨낸 스타일이다. 승부욕도 있어 더 열심히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입시 때는 부족한 부분에 힘을 쌓기 위해, 근육을 만들기 위해 자기 전에 푸쉬업, 발등 늘이기 등 작은 습관을 만들어 노력했었고 불과 작년 시니어 부문으로 콩쿠르를 나갈 때도 매일 레슨과 공연연습으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자정을 넘어 집에 와서 꼭 근력운동을 했었다. 매일 매일 작은 몇 개씩이라도 나중이 되니 인내로 쌓여진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춤 그리고 입시. 이 둘의 합은 육체적, 정신적 힘듦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건 실력의 차이를 떠나 몸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는 입시 시절 무용을 하면서 변해 가는 내 몸을 보며 가능성을 봤었고 안 되던 동작도 죽어라 연습하면 할 수 있게 된 거울 속 내 모습들을 보고 성취감이 생겼다. 또, 무용으로 인해 성격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참을성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는데 춤을 추며 인내심과 끈기가 생겼고 지금의 ’나‘ 라는 존재가 무용 입시 때 좋은 영향을 받아 잘 성장한 것 같다.
 나의 멘토이자 입시 시절부터 쭉 함께해 온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무용가가 되고 싶다면 이거 아니면 안 될 정도로 미친 거 같이 무용을 해봐라, 그래서 네 청춘에 한 획을 그어라, 정말 열정으로 불태워야 나중에 먹고 살 수 있다.” 이 말이 어릴 적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말이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선생님께서 꾸준함과 계획을 실천하는 것을 늘 말씀하셨는데, 춤 전공자라면 꾸준함과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책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도 추천해주고 싶다. 내용 중 “엄청난 꿈을 가졌으면서도 대충 사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꿈은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책을 읽으면 잠자던 열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무대 위에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계획을 만들어 매일매일 습관처럼 해보길 바란다. 작은 꾸준함이 나중에 큰 힘이 되어 반드시 돌아온다. 오늘부터라도 매일 매일 꾸준히! 모든 열심히 열정적으로, 긍정적으로 화이팅!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나'
자유롭게 표현하는 '나'

 

일상을 되찾고자 소망하는
꿈꾸는 20대

 

나는 초등학생때부터 한국무용 전공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학교에 특기적성부 무용반이 있었는데 선생님께 권유를 받고 관심이 생겨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무용 춤을 출 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것이 어색하고, 무언가 답답했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전공을 현대무용으로 바꿔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이후로 현대무용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슈즈도 없고, 연습복도 매우 가벼웠다. 그동안의 답답한 기분이 해소되는 듯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스승님께서 나의 성격과 성향을 파악하시고 전공을 바꾸자는 제안을 해주신 덕분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춤을 추었다. 이후 예고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 지도를 받으며 각종 콩쿠르에 나가 무대 경험을 쌓으며 예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예고에서도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콩쿠르 준비를 하며 무대 경험을 쌓고 개인 지도를 받았다. 대학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훌륭하신 스승님을 만나 잘 이겨내고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외국여행도 자주 가고 오디션도 보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들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처음 춤추기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 끝없이 배우고 느끼는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해 나아갔다. 더 중요한건 참된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을 잘 만나야 한다. 제2의 부모와 다름없을 만큼 학창시절에 스승님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남과 경쟁하려 들지 않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또 힘든 것도 감내하고 즐기면서 하고자하는 의지, 춤에 있어서 진지한 자세를 갖추고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춤은 내가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으며 자유로운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단련시키면서 나는 지금도 모든 것에서 배우며 성장해 나아가고 있다.



잊지 않아야 할 한 글자

아직도 잘 모르겠는 20대


‘소리 없는 아우성, 밝게 빛나는 어둠’같은 모순 어법을 아시나요? 여기서 모순 어법이란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예술교육’이야 말로 모순어법처럼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의미의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확장되는 영역이고, 교육은 지식이라는 영역을 가르쳐주는 매개체인데, 예술을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생겨난 것 같습니다.
 물론 알맹이 눈 뭉침 없이 어떻게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 1의 알맹이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이겠지요. 하지만 눈사람이 어떻게 생겼을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나름일 수 있는데, 예시로 보여준 눈사람의 모양에 학생들은 그것이 정답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즘 무용전공하는 학생들을 보면 무용하는 방식을 배웠으나 창작에는 매우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이것은 무용교육 특성상 교과서가 없어 스승에게 의존해야하는 도제식 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여기다 보니 자신이 배운 것 이외의 것들은 아직 안 배웠으니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저 또한 마찬가지로 겪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늘 잘 한다는 소리를 듣다가 대학에 진학해 마주한 첫 창작 발표회는 제 자신을 부끄럽게 느끼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창작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다고 느꼈던 것은, 저는 이제껏 시켜야만 반응하는 무용 기계였으며 ‘그건 맞지, 그건 아니지’ 하는 정답과 오답을 듣지 못해 자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 해서 무용 교육환경을 전면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1의 알맹이를 위해 동작의 다양한 사용을 위한 근육 훈련 및 몸의 인지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 배울 수 있는 무용교육이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 제 안에 독을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무용교육을 받는 이들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무용인들은 어떻게 창의성이라는 무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저와 같은 기계에 불과한 무용인들만 양산되지 않도록 고민 하였고 그 해답을 찾게 되어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해답은 엄청나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무용교육을 받으며 마음 속 단 한 글자를 계속해서 잊지 않으면 되는 데요. 그것은 바로 ‘왜’입니다. 동작을 배우면서 이 동작을 내가 왜 배우는지, 이 동작은 왜 이렇게 사용이 되는 건지부터 나는 왜 춤을 추고 싶은지, 나는 왜 이러한 얘기를 밖에 꺼내놓고 싶은지 등 ‘왜’는 여러 형태로 질문을 만들고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지속적으로 왜에 대한 대답을 하나 둘씩 풀어 가면, 개인이 가진 개성도 알게 되고, 자신이 마음에 담은 목표도 알게 되고,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방법 또한 알 수 있게 될 거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물론 저도 아직 잘 몰라서 요즘 매일같이 ‘왜’라는 부메랑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이 또 왜를 낳았거든요(웃음). 무한한 창작의 세계에서 ‘왜’라는 무기를 지니세요. 그리고 어느 방향이든 좋으니 나아가세요, 여러분!

2021. 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