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춤으로 살아난 리얼리즘의 미학
장광열_춤비평가

 발레 〈스파르타쿠스〉(안무_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특성은 남성무용수들의 춤 비중이 높고, 극의 중심인물인 노예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프리기아, 로마장군 크랏수스와 애첩 예기나의 선명한 캐릭터와 춤, 그리고 리얼리즘의 미학이 살아있는 안무로 요약된다. 적지 않은 남성무용수들의 앙상블이 요구되는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8월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평자 26일 관람)는 전체적으로 이 같은 작품의 묘미를 비교적 무난하게 표출했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남겼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주된 내용인 만큼 양 진영의 기 싸움에서부터 실제 전투장면까지 로마병사들과 노예반란군으로 나누어진 남성무용수들은 일정 기량을 갖추어야 하고 극의 흐름을 살려내는 사실적인 연기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더한 앙상블까지 구축해야 한다.
 국립발레단은 2001년 초연 당시에는 일정한 기량을 갖춘 남성무용수들이 턱없이 부족했고, 2007년 재공연 때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과 합동으로 공연을 치러냈던 아쉬움을 이번 공연에서는 비록 8명의 객원무용수들이 합류하긴 했지만, 오롯이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들이 주축이 되어 살려낸 점은 진일보된 성과로 보인다.
 향상된 남성무용수들의 기량은 군무에서 분출하는 에너지를 공유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나 점프의 높이나 방패, 칼의 위치에서의 통일성이나 투혼을 불사르는 비장한 표정연기에서의 앙상블 등에서는 더 세밀한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남성군무진들은 1막에서 크랏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행진, 3막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창에 찔려 죽는 장면과 그의 시신을 들어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실적인 묘사에 극적인 분위기까지도 지체에 담아내야 한다. 그런가 하면 2막에서는 두 손에 방패와 칼을 들고 추었던 1막과 다르게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한 안무가의 차별화된 움직임을 표출해내야 한다.


 



 역사적인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만큼 〈스파르타쿠스〉는 등장인물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항이 크다. 대본작가인 니콜라이 볼코프(Nickolai Volkov)는 고대 로마실화에는 존재하지 않는 '예기나'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설정했고,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4명 주인공(스파르타쿠스, 프리기아, 크랏수스, 예기나)의 역할을 거의 동등하게 안배해 극적 구조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 4명의 무용수들은 각각 상반된 자신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내야 드라마의 긴장감이 유지된다. 단순히 춤 기량만으로는 작품의 예술성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고,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첫날 공연에서 대결 구도를 끌어가는 노예 스파르타쿠스 역 이재우와 크랏수스 역 변성완은 우선 체격적인 면에서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리얼리티를 살려냈고, 큰 키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 안정된 기량은 작품의 중심을 잡는데 일조했다.
 초반에는 두 무용수 모두 다소 무거운 몸과 스피드의 부족이 느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움직임이 살아났다. 크랏수스 역으로 전격 캐스팅된 신예 변성완의 성장은 표현력만 보완된다면 전막발레작품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재우는 1막 검투사와의 대결에서 자신의 동료를 죽였다는 사실에 비통해하는 장면에서, 변성완은 2막에서 스파르타쿠스에 패하고도 그의 배려로 살아날 수 있었던 크랏수스의 굴욕감을 더욱 현실감 있게 표출했어야 했다.
 프리기아 역을 맡은 김지영은 그녀가 왜 프로페셔널한 무용수인지 확연하게 입증했다. 스파르타쿠스, 크랏수스, 예기나 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고 손끝과 발끝에까지도 감정을 담아내는 노련함을 보여준 그녀의 춤은 안정된 기량이 밑바탕 된 절절한 연기와 이재우와의 2인무에서 보여준 능숙한 파트너쉽이 더해지면서 드라마틱한 전개에 큰 힘을 보탰다.
 예기나 역 박슬기의 팜프파탈적인 연기는 극적인 전개와 크랏수스와의 감정선을 변화시키는 접점에서 빛을 발했다. 크랏수스와의 2인무에서는 부도덕성과 교활함이 강조되는, 드라마의 구조상 가장 선이 굵은 연기와 춤을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스파르타쿠스〉는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혁명과 함께 순수한 사랑이 공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구도 안에 노예들의 반란과 로마 군사들과의 전투장면 등을 통한 남성무용수의 역동적인 힘과 이국적인 정서의 춤, 그리고 4명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한 각기 다른 느낌의 2인무 등이 기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곧 안무자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것에서부터 서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들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솔리스트 개인의 춤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내포하는 구조,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 속에 배치된 고전적인 춤들 모두를 중요시 하는 안무가의 특성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성무용수들 못지않게 여성무용수들의 춤과 스토리 라인을 살려내는 연기적인 요소가 잘 버무려져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국립발레단은 2001년 6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쇼이발레단의 간판 레퍼토리인 〈스파르타쿠스〉를 국내 초연했다. 안무자인 유리 그리가로비치를 초빙해 제작한 이 작품은 당시 아시아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자체제작공연을 한데다 고전주의 작품에 치우쳐 있는 국내 발레계에, 리얼리즘 미학이 살아있는 대형작품으로 레퍼토리를 확장시킨데 그 의미가 있었다.
 2007년 4월 박인자 예술감독이 부임한 후 국립발레단은 정기공연 작품으로 다시 〈스파르타쿠스〉를 무대에 올렸고,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과의 합동공연을 통해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했다.
 강수진 예술감독이 다시 무대에 올린 이번 〈스파르타쿠스〉 공연은 4명 주역 무용수들 사이의 균형감, 캐릭터의 해석 면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인 프리기아와 예기나, 남성 무용수들의 기량과 군무의 앙상블 등에서 업그레이드 되었다.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하차투리안의 빼어난 음악도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장면의 분위기 묘사에다 개개 인물들 간의 2인무 등을 주도하는, 음악과 춤의 조합을 음미하는데 있어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무대와 객석 구조는 드라마틱한 흐름을 살려내는데 방해가 되었고,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 대신 사용한 녹음 음악의 부실은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수진 예술감독이 부임한 이후 국립발레단은 새로운 레퍼토리의 확충 외에도 공연의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무용수 개개인의 작품에 대한 해석력과 집중력, 그리고 적절한 캐스팅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개정 안무를 통해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명작의 반열에 올린 안무자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내한해 무용수들을 지도한 것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다른 색깔의 공연을 통해 단원들의 성장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메이저 발레단으로 도약하려는 국립발레단에게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2016. 09.
사진제공_국립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