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발레시어터 ‘현존’ ‘호두까기 인형’
대중성과 작품성에 더한 커뮤니티 감각
김채현_춤비평가

서울발레시어터가 1995년 창단할 때 올린 작품은 제임스 전 안무의 ‘현존(Being) 1’이었다. 1998년 ‘현존(Being)’은 3부작으로 완성되어 2002년까지 국내에서 수시로 올려졌다. 일반적으로 ‘현존’은 고전발레 일변도의 국내 발레를 한 꺼풀 벗기면서 진일보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1년 하반기에 개관한 강동아트센터는 개관 기념작으로 ‘현존(Being)’을 초청하였다(9월 1~4일). 공립 단체 이외에 민간단체 춤 작품이 대형 아트센터 개관 기념 공연으로 초청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현존(Being)’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공인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게다가 민간단체 춤 작품이 그렇게 초청받음으로써 춤계의 위상도 그만큼 진작되었다.

그리고 서울발레시어터는 2011년 연말에 고양어울림누리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올렸다(12월 29~31일). 이 공연은 고양문화재단 초청으로 이뤄졌다. 서울발레시어터 나름의 안무를 삽입한 ‘호두까기 인형’은 공연 전부터 화제를 끌었다. 홈리스(노숙인) 남성들이 1막에서 단원들과 짝을 지어 귀족으로 출연하였다. 이 남성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서울발레시어터는 근 7개월간 발레 기본을 가르쳤다. 발레 경험이 전무한 일반 성인들이 발레 군무진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고 쉽지 않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을 가르쳐 출연시킨 사실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 두 사례가 서울발레시어터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앞서 거론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이 단체는 일반 사람들 속에 발레(춤)를 뿌리내리려는 작업까지 모색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 9월 ‘현존(Being)’은 ‘Being Again’으로 개작 공연되었다. 3부작이 각각 ‘존재의 의미’ ‘혼란 속의 삶’ ‘구원의 여정’을 소제목으로 하듯이, 청춘의 방황, 사랑, 열정, 혼돈, 불확실을 묻고 자유와 구원을 소망하는 내용은 이전과 동일하다. 이번에 덧붙인 어게인은 ‘현존(Being)’의 새 버전임을 나타낸다. 길게는 16년, 짧게는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출연진도 다수 바뀌었고 음악도 마이클 잭슨과 퀸의 음악이 더해졌으며, 힙합 댄서들도 가세하였다. 공연 당시의 현존 그리고 춤 조류에 초점을 맞추어 ‘현존(Being)’은 계속 새 버전으로 변신할지 모른다.
 

 

 

 


‘현존(Being)’에서는 약 30곡의 음악이 작품의 저본(底本)으로 쓰인다. 록이 대부분인 음악과 호흡을 맞추고 또 그 정서를 구현하는 발레 춤사위를 근거로 이 작품을 록발레라 분류하는 것은 적절할 것이다. 게다가 록이 갖는 젊음의 특성들은 젊음의 현존을 펼쳐내는 춤과 잘 어울릴 것이다.

우선 ‘현존’은 매우 에너제틱하고 열정적이다. 이것으로도 ‘현존’(그리고 ‘현존 어게인’)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이를 축으로 청춘의 가능성과 좌절처럼 다양한 면모를 풀어냄으로써 작품은 마치 젊음의 진솔한 고백록 같은 공감을 얻게 된다. 20세기 후반 뉴욕의 건물 옥상을 연상시키는 배경, 난무하는 듯한 클럽 모습, 젊음이 환상의 세계는 현존의 조건들이다.
 

 

 

 


‘현존’은 청각적인 동시에 매우 시각적이다. 이 작품의 시각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물론 역동성을 발휘하는 군무이다. 이에 더하여 찢어진 청바지, 인라인 스피드 그리고 플라잉의 공중 비상은 현존의 조건들을 시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플라잉의 공중 비상은 환상적이기 때문에 구원을 더욱 강조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존’에서는 뮤지컬에 못지않고 심지어 뮤지컬을 능가하는 매력이 느껴진다.

근 1백분 동안 30여 춤꾼이 쉴새 없이 출연하는 ‘현존’은 대작(大作)이다. 음악곡의 내용이 작품의 줄거리를 구성하므로, 그 내용에 익숙치 않으면 줄거리를 내 것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현존’에서 음악곡은 과다하게 많아 보였고, 내러티브가 음악곡에 준해 구성되는 방식에 더하여 1부와 2부에서 얼마간의 휴지부(休止部)를 필요로 하였으며, 춤꾼들 간의 교감이 더러는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었다.
 

 

 

 


군무 사이사이에 ‘현존’은 독무, 2인무, 소집단무를 펼쳐낸다. 이 부분들은 작품의 내러티브를 어느 개인들의 고백처럼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달하며 존재를 보다 실존적으로 부각시킨다. 김은정, 장운규, 정운식, 이원철, 정혜령, 김성훈, 강석원 등 적지 않은 춤꾼들이 연기한 이 부분들에서 젊은 관객은 자신의 대리인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일상적 젊음의 실존을 시청각 장치를 기반으로 정서로 재현해내는 데 있어 춤꾼의 정서 표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에서 집단 군무의 세찬 에너지와 열정을 제어하면서 관객의 공감을 유지할 수 있은 것은 독무나 2인무 같은 부분들 때문이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호두까기 인형’은 2007년에 초연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어두운 거실, 사탕나라,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구도는 여느 단체의 공연과 유사하다. 홈리스 남성들의 출연으로 먼저 주목받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삽입된 한국의 정서 역시 잠시 소개될 만하다. 왕비의 붉은 옷을 엄청 크게 입은 진저 마더의 치마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한복 모양새와 색감의 뛰뛰를 걸쳤고 잠시 소고춤을 선보인다. 그들과 함께 노는 두 남녀의 춤은 각각 장고춤과 상모돌리기를 캐릭터화한 것이다. 지난 몇 해 계속해서 인천시립무용단은 ‘호두까기 인형’을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롭게 각색하였다. 고전발레의 재해석 작업에 해당하는 이들 작업은 발레뿐만 아니라 한국의 춤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2011년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한 홈리스 남성들은 빅이슈(Big Issue) 코리아 소속이다. 빅이슈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단체로서 국제적 조직이 있다. 이번 ‘호두까기 인형’이 갖는 의의는 다면적이다. 앞으로 이런 작업이 지속되는 것이 물론 바람직스럽겠는데, 이번 공연만으로도 의의는 크다 하겠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커뮤니티 댄스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그것은 공연이 참여자의 정체성을 고려해서 진행되고 또 춤 공연의 결과 이외의 효과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2012.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