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연재 | 나의 현장 상상 6
예술가를 소진하는 재능기부는 현재진행형
김현진_안무가

사람들은 흔히 예술가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쯤으로 여긴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 속에는 보편적인 자신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예술적 재능으로 먹고살며 심지어 그것으로 인해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동경과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질투의 감정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생 자유롭게 살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삶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실제 예술가의 삶은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 어찌 보면 예술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혹독한 대가를 무한대로 치르고 있는 자들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의 예술가를 따라가보면, 과연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예술가를 바라볼 수 있을지…?

자신을 예술가로 정의할 수 있는 근거는 자기만족을 넘어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작행위와 창작물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일 것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을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그로 인해 생업을 이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술가를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예술가는 수련단계 혹은 예비 예술가의 단계에 머무르며, 독립된 예술가이자 한 시민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예술가는 세상을 향해 외롭고 배고픈 외사랑 중이다.





〈기괴한 도시〉(2014) 리허설 중 ©김현진



예술적 재능은 단순히 타고난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대부분 예술가의 재능이 발현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은 영재교육과 장르 별 엘리트예술교육이 지배적인 환경에선,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장벽이 높다. 한 번 전문 예술가가 되기 위해 발을 들이면 그다음부터 들이는 투자는 엄청나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 사람이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명의 재능있는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개인의 재능에 더하여, 오랜 시간 동안 피나는 노력 그리고 끝없는 가족의 뒷바라지와 희생, 높은 학비와 교습비, 여러 사람의 도움과 절차가 요구된다. 게다가 어렵사리 육성된 예술가가 제작한 창작물은 또 어떠한가. 사람들이 감상하는 단 5분의 공연 혹은 작은 소품의 예술작품에는 예술가가 그간 이미 충분히 치른 그 몇 배의 유·무형의 가치와 비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5분간의 공연 출연료, 1호 크기의 작품, 3분 길이의 영상작품비 등 작품의 의미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의 길이와 크기에 대한 소액의 가격이 매겨진다. 그나마도 작품비가 창작자의 손에 쥐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예술가를 이솝우화 속 베짱이로 보는 것일까. 예술은 그저 공기처럼 공짜로 소비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택했으니 그에 대한 어떠한 대가라도 달게 받으라는 소리일까.



〈기괴한 도시〉(2014) ©김현진, 이재훈



필자는 ‘재능기부’라는 용어를 2009년 즈음 지인에게서 처음 듣게 되었다. 당시 한 기획 예술프로젝트에서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재능기부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참여하기를 요청했고, 그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재능기부로 참여한 다수의 예술가도 좋은 취지, 즉 개인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활동의 예술프로젝트에 동참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고 동참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재능기부라는 단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주변을 잘 살펴보면 재능기부는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곳곳에서 작동 중이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내거는 예술 지원사업의 내용을 보면, 공간지원, 기획지원, 홍보와 대관 지원, 신인 작가 전시·공연 지원, 시설 및 악기 지원, 교통비와 식비 지원 등이 바로 또 다른 유형의 재능기부에 해당할 것이다. 각종 ‘지원’의 이름으로 예술가를 현혹하지만, 더 엄밀히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공공기관이 예술가에게 마땅히 지급해야 할 예술가의 재능, 창작물, 그리고 노동에 대한 비용은 쏙 빠져 있다. 마치 예술가에게 예술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예술가의 재능과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술작품과 예술 활동을 의뢰한 주체와 이를 누리는 시민은 있지만, 예술을 제공한 예술가에게 마땅히 지급해야 할 합당한 보상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남는 건, 작품을 발표했다는 기록과 빚 그리고 탈진한 몸이다.



〈기괴한 도시〉(2014) 중 김태진 작 ©김태진, 양승우



예술가들은 늘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작품 발표 기회는 모든 예술가에게 소중하다. 더군다나 그간 작품발표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필자와 같은 ‘중견 신인’과 이제 막 예술 활동을 시작한 신인들에게는 작품을 보여 줄 기회는 언제나 절실할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어떠한 창작의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자신에게 아무 경제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심지어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임하게 될 것이다. 필자도 ‘지원’의 성격을 갖춘 무대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작품을 올려왔다. 예술가의 창작비를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이라면,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단 작품을 해보자 싶었다. 그것만이 이 땅에서 예술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여긴 탓이다. 그래서 무대에 설 기회 자체를 지원이라 여겨 보수를 받지 않고 출연하거나 작품에 참여해왔다. 그러다 간혹 공연을 의뢰한 측에서 임의대로 정한 소액의 작품비를 주기라도 한다면 그건 큰 덤이라 여겼다. 매년 물가상승에 비례하여 자신들의 가치와 인건비를 올리는 보편적인 노동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현실이다.



영상작가와의 협업 ©김현진, 김세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의 문화예술기관은 그 공간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시민들을 이용하도록 할 역할과 책임이 마땅히 있다. 그래서 최대한 그 공간을 홍보하고 활성화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공공의 문화예술기관은 그 기관의 목적에 맞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예술가와 손을 잡고 그곳을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향유의 지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운영자, 예술 콘텐츠를 누리는 시민 그리고 예술 콘텐츠를 창작·제공하는 예술가 사이에서 누구도 손해를 입어서는 안 되지만, 예술가에게만 그 원칙이 예외가 된다. 예술가는 공공 예술기관을 위해 무료로 봉사하는 하청업자가 아니다. 자신들의 필요한 사업을 위해선 그에 합당한 예산을 확보하고 참여한 예술가의 재능과 노동에 합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매년 부족한 예산을 탓하며 그 책임은 배고픈 예술가에게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은 일은 공공 벽화 프로젝트, 지역 재생, 커뮤니티 활성화 등의 가치를 내세운 사업에 예술인들이 동원되는 현장에서도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의 손길로 마을은 아름다워지고 커뮤니티는 예술로 풍요로워지고, 또 공공 문화예술기관은 또 하나의 업적을 축적하겠지만, 예술가는 또 한 번 자신의 재능을 공공의 이름으로 편취 당하게 된다. 많은 예술가가 이미 예술현장에서 자신의 재능에 대한 가치가 부정당하는 현실에 매일같이 투쟁하듯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어떤 공연예술가는 자신의 공연에 대한 대가로 식비나 교통비지원 대신 최소한 공연을 준비하면서 들인 경비만큼이라도 보상받고 싶다고 울먹인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오르지 않는, 현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출연료와 작품비는 예술가들의 사기를 꺾고 예술가로의 삶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재능기부는 명성이 있든 없든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기꺼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재능기부를 강제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더군다나 예술가들의 권익에 앞장서도 모자랄 공공 문화예술기관이 계속해서 예술은 공짜(?)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퍼뜨려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예술가의 재능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는 곧 예술가를 ‘시민’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겠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은 자신들의 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세금을 들여 화려한 플래카드로 도시 곳곳을 점유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 문구 속에 한 시민인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2023년, 부디 예술가도 예술로 밥을 먹고 살 수 있기를~!

김현진

‘김현진의 춤공방’ 대표. 서울예고와 이화여자대학교 학부 그리고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영국 The University of Surrey에서 ‘무용문화와 역사 그리고 실제’ 분야의 석사를 마쳤다. 컨템퍼러리무용단 ‘탐’에서 무용수 활동을 거쳐, 독립 안무가로 지내며 〈나의 이야기〉(2022), 〈몸으로 자연으로〉(2016), 〈몸의 부호들〉(2015), 〈기괴한 도시〉(2014), 〈Nothing There〉(2004), 〈Discothéque〉(2003), 〈벗겨진...〉(2001) 등을 발표했다. 월간 「춤」에서 춤기행문과 「댄스포럼」에서 춤에세이를 연재기고한 바 있다. ​​​​​

2023. 2.
사진제공_김현진, 이재훈, 김태진, 양승우, 김세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