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일본의 발레단
장지영

 지난 7월 중순 막을 내린 제3회 대한민국 발레 축제에는 국내 15개 발레단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프로젝트성 그룹이 아니라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단체는 몇 개 되지 않는다. 한국과 비교해 발레가 이른 시기부터 도입됐으며 지금도 전 세계 유수의 발레단 공연이 끊이지 않는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 발레단과 발레스튜디오의 현황

 일본발레협회에 따르면 7월 현재 일본의 발레단은 37개다. 프로젝트성 단체는 빼고 꾸준히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발레단으로 한정한 것이다. 국립발레단에 해당하는 신국립극장발레단을 뺀 36개는 모두 민간 발레단이며, 전체의 약 ⅓인 13개가 수도인 도쿄에 있다.
 1997년 신국립극장 개관과 함께 신국립극장발레단이 설립되긴 했지만 일본 발레는 공공이 아닌 민간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민간 발레단이 무용수를 양성하는 등 발레 교육을 담당해 왔으며 지금도 그런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대학 무용과가 55개나 되지만 일본은 1970년 무용과가 처음으로 생긴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을 비롯해 일본대학, 츠쿠바대학, 일본여자체육대학 등 다섯 손가락을 헤아린다. 게다가 이들 대학 역시 실기보다는 이론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용스튜디오에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민간 발레단은 대부분 미래의 단원이 될 프로 무용수를 키워내는 발레학교를 가지고 있다. 다만 학력이 인정되는 구미의 주요 발레단 부속학교와 달리 전문 학원에 가까운 편이다. 메소드에 따라 파리오페라발레(프랑스) 메소드, 바가노바 메소드(러시아), RAD 메소드(영국)의 3가지로 크게 나뉜다.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발레스튜디오 또는 발레교실이 약 5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가 가장 호황을 누렸던 1980년대에는 1만개에 육박했다고 하지만, 2011년 쇼와음악대학 부설 발레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4630개로 파악됐다. 이들 발레스튜디오는 민간 발레단 산하의 발레학교도 있지만 대부분 취미로 배우는 발레교실이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발레가 요리, 꽃꽂이, 다도, 서예 등과 함께 젊은 여성이 익혀야 할 교양으로 간주됐기 때문에 성인 발레반이 꽤 많다.
 참고로 일본에서 발레가 여성들에게 교양으로 자리잡은 것과 달리 남성들에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처럼 발레리노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덕분에 최근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씨어터 출신의 한국 발레리노들이 일본에서 발레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프리랜서로 현지 발레단 공연에 참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본 발레단들의 역사

 일본에서 발레는 1922년 불세출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8개 도시 순회공연을 계기로 일반의 관심을 끌게 됐다. 그리고 1927년 제정 러시아 시절 발레리나로 활동하다 소비에트 혁명을 피해 일본에 피난왔던 엘리아나 파블로바와 나데지타 파블로바 자매가 일본 최초의 발레학교(사실상 발레교습소)를 세우면서 발레가 정착됐다. 아즈마 유사쿠(東勇作), 타치바나 아키코(橘秋子), 카이타니 야오코(貝谷八百子), 시마다 히로시(島田廣) 등 일본 발레의 1세대는 모두 이 발레학교 출신이다.
 이들 1세대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레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1934년 타치바나 아키코 발레단을 시작으로 1939년 카이타니 야오코 발레단, 1941년 하토리 치에코와 시마다 히로시 부부가 만든 하토리-시마다 발레단 및 아즈마 유사쿠 발레단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발레학교에서 출발한 이들 발레단의 공연은 전막 발레를 공연하는 요즘 발레단과 달리 졸업생들의 발표회 수준에 그쳤다.
 이후 2차대전이 끝나면서 일본 발레계에도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제정 러시아의 영향이 강했던 하얼빈 발레학교 출신으로 상하이 발레 뤼스에서 춤을 췄던 코마키 마사히데(小牧正英)가 귀국하면서 <백조의 호수> 악보를 가져온 뒤 1946년 이 공연을 위해 당시 민간 발레단들이 도쿄발레단이란 이름 아래 손을 잡은 것이다. 당시 도쿄발레단은 지금의 도쿄발레단과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백조의 호수> 공연 직후 바로 해체됐다. 참고로 <백조의 호수> 일본 초연 당시 지그프리트 왕자 역을 맡은 시마다 히로시는 원래 한국 출신(한국명 백성규)으로 2차대전 이후 일본에 귀화했고, 이후 일본발레협회장을 거쳐 신국립극장발레단 초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백조의 호수> 공연은 발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발레 1세대에게 배운 무용수들의 잇단 발레단 창단으로 이어졌다. 1946년 코마키 발레단을 시작으로 1948년 마츠야마 미키코 발레단, 1949년 타니 모모코 발레단, 1952년 마츠오 아케미 발레단 등이 설립됐다. 1956년엔 타치바나 아키코의 딸인 마키 아사미가 어머니와 함께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이름도 마키 아사미 발레단으로 바꿨다. 그리고 1960년 도쿄 발레학교가 만들어진 뒤 1964년 그 모체인 도쿄발레단이 문을 여는 등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여러 발레단이 설립됐다. 아즈마 유사쿠 발레단, 마츠오 아케미 발레단, 하토리-시마다 발레단은 1960년대 전반 문을 닫았지만 나머지 발레단들은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들 발레단은 앞다퉈 전막 발레를 올리는 한편 구 소련 발레 교사를 일본에 초청하거나 일본 무용수들을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 유학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세르주 리파,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마고 폰테인 등 세계적인 무용수들과 볼쇼이 발레단, 뉴욕시티발레단 등 발레단들이 이미 50년대부터 일본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발레계의 열정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에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 발레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1969년 제1회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에 이어 후카가와 히데오가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74년 모리시타 요코가 바르나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면서 일본인도 서구인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특히 모리시타 요코는 세계 주요 발레단의 게스트 프린시펄로 활동하는 등 일본의 발레 붐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모리시타 요코를 동경해 발레에 입문하는 소녀들이 헤아릴 수 없었고, 이들은 이후 발레리나의 길은 포기했지만 든든한 발레 팬으로 남았다.

 

 

 

 1970년대 들어 일본 발레계에서는 서구처럼 국립 또는 왕립 발레단과 부속 발레학교의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발레계의 숙원은 1997년 도쿄에 신국립극장이 설립되고 그 전속단체로 신국립극장발레단이 생기면서 겨우 이뤄졌다. 게다가 이것도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신국립극장발레단 산하 2년 과정의 발레연수소는 서구의 발레학교와 일본 민간 발레단의 발레학교를 반쯤 섞어놓은 시스템이다. 매년 5명 안팎의 연수생을 배출하며 대부분 신국립극장발레단 단원으로 채용된다. 
  1980~90년대에도 꾸준히 민간 발레단이 만들어졌지만 1999년 ‘일본의 강수진’ 쿠마카와 테츠야(雄川哲也)가 설립한 K-발레단은 주목해야 한다. 동양 무용수로는 처음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된 쿠마카와는 일본에서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그가 예술감독 겸 수석무용수로 있는 K-발레단은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발레단을 제치고 도쿄 발레단, 마키 아사미 발레단과 함께 3대 민간 발레단으로 꼽힌다.

 

 




일본 발레단들의 운영
 

 일본의 발레단 가운데 유일한 국립(공공) 단체인 신국립극장발레단은 국고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엄밀히 말하면 신국립극장의 전속 단체이기 때문에 국고 지원을 받는 신국립극장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는다.

 

 



  신국립극장의 최근 예산을 보면 2008년 76억7000만엔, 2009년 79억8000만엔, 2010년 73억 2000만엔, 2011년 69억6000만엔이었다. 2010년과 2011년 예산이 계속 준 것은 정부의 ‘시와케(예산 재분배)’ 때문이다. 신국립극장의 연간 예산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국비로 전체의 약 50~55%를 받는다. 그리고 다음이 공연 티켓 판매 수입이 30% 안팎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기업 협찬 등의 기타 수입이다. 신국립극장 발레단의 전체 예산은 연간 25억엔 정도다.
 신국립극장은 오페라, 발레, 연극으로 세 부문으로 된 일본 유일의 제작극장이다. 연극은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단원이 아예 없으며, 오페라와 발레는 장르 특성상 단원이 있지만 시즌별로 계약해야 한다. 신국립극장발레단은 대체로 65~70명 정도의 계약직 단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연 레퍼토리에 따라 늘어나기도 한다. 주역은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연간 10편 정도의 작품을 공연하는데, 2013-2014시즌을 보면 발레 7편과 컨템포러리 4편으로 되어 있다. 한국 국립발레단의 경우 연간 정기 공연이 6편 정도다. 다만 국립발레단은 지방 공연이 매우 많은데 비해 신국립극장발레단은 지방 공연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공연 횟수가 적은 만큼 수당도 적어서 신국립극장발레단 단원들의 생활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신국립극장발레단을 제외한 나머지 민간발레단의 운영 예산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민간 단체인만큼 예산을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공익재단법인인 몇몇 발레단만 자본금 등 약간의 정보가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전반적으로 이들 발레단의 운영은 발레학교 운영과 공연티켓 수입 그리고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공연의 경우엔 일본 문화청과 도쿄도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과거 일본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기업 후원도 많아서 해외 유명 안무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경우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일본에서 최대 규모의 민간발레단인 도쿄발레단은 공익재단법인 NBS(일본무대예술진흥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 ‘일본의 디아길레프’로 불리는 사사키 타다츠구가 만든 NBS는 세계 주요 발레단과 오페라극장을 일본에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NBS의 공연을 보면 단원 70여명이 소속된 도쿄발레단이 6개의 전막 발레를 올리고, 영국 로열발레단 등 해외 발레단 3개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마뉴엘 레그리, 블라다미르 말라코프, 디아나 비쉬노바, 실비 기엠의 이름을 각각 내건 4개의 갈라공연이 마련됐다. 해외 발레단 외에 오페라극장의 공연도 연간 여러 편 소개하고 있는 NBS는 도쿄도 산하기관인 도쿄문화회관을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NBS는 단순한 공연기획사가 아니라 순수예술인 오페라와 무용의 보급 및 국제교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1981년 재단법인으로 설립됐으며 2005년 공익재단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실제로 NBS는 도쿄발레단의 해외 공연을 통해 일본 발레를 세계에 알려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신국립극장발레단이 있지만 사실상 도쿄발레단이 ‘국립’의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마카와의 K-발레단은 일본의 발레단 가운데 유일하게 대형 방송국으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고 있다. 창단 직후부터 민영방송사인 TBS와 연간 신작 2편, 최소 40회 공연을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5년마다 갱신해오고 있다. 연수단원 20여평을 포함해 80명 안팎의 단원을 가진 K-발레단은 연간 5편 정도의 전막 발레를 올리고 있다. 그동안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을 사용해 왔는데, 지난해 쿠마카와가 이곳의 예술감독이 되면서 더욱 돈독한 협력관계를 가지게 됐다.
 마키 아사미 발레단은 일본 발레단 중에서도 유서깊은 발레단으로 손꼽힌다. 운영모체는 재단법인인 타치바나 아키코 기념재단이다. 마키 아사미 발레단은 1960~90년대 일본에서 도쿄발레단과 함께 양대 발레단으로 꼽히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쿠사가리 타미요 등 수많은 스타 무용수들이 이곳 출신이다. 하지만 마키 아사미가 1999년부터 12년간 신국립극장발레단 예술감독으로 근무하는 동안 막상 자신의 발레단은 급격히 쇠퇴했다. 이 때문에 우에노 미즈카 등 주역 무용수들이 이곳을 떠나 도쿄발레단으로 옮기기도 했다. 최근엔 연간 4편 정도의 전막발레를 공연하는 한편 해외 발레 교사를 초빙해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모리시타 요코와 시미즈 테츠타로 부부가 이끄는 마츠야마 발레단,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자리잡은 NBA 발레단, 도쿄 고토구(江東區)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도쿄시티발레단 등 이름이 제법 알려진 발레단은 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세 단체의 경우 각각 공익재단법인, NPO(특정비영리활동)법인, 재단법인 형태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외의 발레단은 일반 예술단체 또는 학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도쿄발레단, K-발레단, 마키 아사미 발레단 등 대형 발레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정과 무용수 수급의 어려움 때문에 전막발레 공연은 연간 2편 안팎에 그치고, 아틀리에에서 갈라나 발레학교 발표회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2013.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