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마음을 탐구하다
아크람 칸 무용단 <iTMOi (In the mind of Igor)>
정다슬 본지 해외통신원

 



 2013년 전 세계 무용계에서 가장 많이 기념되고 회자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곡에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안무가 입혀진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3년 5월, 이 작품은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이례적이고 야만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봄의 제전>은 현재 20세기의 대작으로 불리며 다양한 안무가들에 의해 재해석 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100주년을 맞이하여 샹제리제 극장을 비롯한 전 세계의 크고 작은 극장들에서 다시금 <봄의 제전>이 새로운 안무로 공연되고 있어 2013년 올해는 스트라빈스키의 해로 불려도 무방할 것 같다. 러시아의 볼쇼이 극장은 4월 한 달 동안 스트라빈스키 주간을 기획하여 모리스 베자르, 마츠 에크, 피나 바우쉬 등 각 버전의 <봄의 제전>을 올리기도 했다. 전 세계의 무용계가 스트라빈스키에게 오마주를 바치기 바쁜 와중 영국 런던의 새들러스 웰즈 극장 역시 아크람 칸에게 <봄의 제전>에 응답하는 작품을 요청하였고, 이에 아크람 칸은 비엔나 임풀스탄츠 페스티벌에서 며칠 간격으로, 한 무대에서는 자신의 뿌리인 방글라데시를 더듬는 작품 <데쉬 (DESH)>를, 다른 날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 <잇모이 (iTMOi, In the mind of Igor)>를(선보였다.(필자 7월 20일 관람)

 대부분의 안무가들이 <봄의 제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음악일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매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충동적이고 강렬한 음악에 안무가들이 매혹되는 것은 당연하며 이런 작품을 세기의 음악이라 부르는 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잇모이>에서 아크람 칸은 과감히 이 대작을 포기하고 있다. 작품 제목이 말해 주듯 그는 단순히 충격적 음악과 안무가 주었던 센세이션이 아닌 러시아 작곡가의 삶과 작품 배경 자체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크람 칸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통해 그의 인생과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조합하였다. 또한 <봄의 제전>이 초연 당시 비난 받았으나 20세기 들어서는 가장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로서 주목받게 되었던 ‘양면성’에 주목하고, 스트라빈스키의 의도 파악을 위해 그의 전기와 비평 문헌을 샅샅이 조사했다고 말한다. 이렇듯 <잇모이>는 <봄의 제전>을 둘러싸고 있는 신화적인 묘사와 인습타파적인 구성에서 보이는 천재 음악가의 상상력과 동기 분석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불이 꺼진 깜깜한 무대 위의 괴성과 함께 시작된다. 무대 위에는 거대한 정사각형의 액자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이 있고 그 가운데 금색 빛을 띠는 구(球)가 매달려있다. 그 구에서 울리는 듯 한 웅장한 종소리가 퍼지고 중국의 치파오 스타일로 디자인 된 다양한 색깔의 의상들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무대 한 가운데에는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그러나 한 쪽 가슴을 훤히 드러낸 의상을 입은 여왕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시선을 이끈다.

 방글라데시의 뿌리를 가지고 인도의 전통무용인 카탁과 현대무용의 접목으로 주목을 받는 아크람의 대부분 작품이 그렇듯 <잇모이>에서도 동양적인 색채가 여러 장면에서 묻어난다. 그림자처럼 춤을 따라 휘날리는 의상은 물론, 러시아의 민속춤과 스페인의 플라멩코 등 다양한 민속 무용을 차용한 안무와 주술 같은 노래들은 아크람 칸의 전형적인 무용언어인 동시에 서양 관객에게는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구성임이 분명해 보인다. 무용수들이 몸 전체를 이용하여 점프를 하고, 달리는 등의 큰 움직임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의도된 듯 딱 다물어진 손가락과 손목을 꺾어 단절된 듯이 보여 지는 팔의 움직임이 그러하고, 우리네의 한국무용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 양 팔을 옆으로 펼친 채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빙글빙글 도는 동작들 역시 흔히 쓰이는 현대무용의 문법이 아니니 말이다.

 반면 움직임 위주로 구성되었던 아크람의 전작에 비해 <잇모이>는 분명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순결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매우 여성적이면서도 유혹적인 움직임을 진행하는 작은 체구의 여자 무용수와 로프로 온몸을 휘감고 여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양이 되길 자처하는 남자. 이 둘은 스트라빈스키가 표현하고자 했던 종교적 믿음과 어두운 희생(러시아 이교도의 대지와 태양신에 대한 찬미)을 아크람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를 위협하고 제물로 바치려는 군무와 거기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여성의 독무에 쉼표는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현란하고 에너제틱한 군무는 작은 원의 대형 안에서 무용수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 진행되어 공간감과 역동성을 더하고, 밀집된 대형이 무대 한쪽 끝에서 반대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작품 스토리의 긴박감을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길고 곧게 뻗은 체격의 한국인 무용수 김성훈은 여성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군무 대형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역할에 걸맞은 완숙된 표현력으로 관객의 눈길을 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전도사 역할의 무용수가 귀에 거슬리는 하이 톤의 목소리로 빠르게 아브라함의 권고를 전한다. 이제 더 이상 대사나 노래 등은 무용 공연에서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있고 그것이 작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잇모이>에서 표현된 주술과도 같은 노래는 날카로운 비트와 거대한 볼륨으로, 내용은 불분명하게 전달되나 매 구절이 아브라함이라는 상징적 인물의 이름으로 끝맺어 짐으로서 희생양인 여자와 남자를 위협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관객석까지 강렬하게 다가간다. 제의를 주도하는 여왕과 주술에 도취된 듯한 무용수들은 발작에 가까운 경련적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침내 제물로 선택 된 여자가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 추는 의식무용을 통하여 절정에 이르렀을 때 움츠러든 캘리반이 무대 위로 서서히 등장하고 고뇌 끝에 가죽을 벗어내며 제물이 되길 자처한다.

 

 



 직설적인 내용의 전개와 표현은 무대 장치와 음악에서도 나타난다. 무대 위에 떠 있던 프레임과 금색 구(球)는 주술과 의식무용이 절정에 이를 때나 역할 사이의 갈등이 고조 될 때 마다 불안하게 기울어지거나 앞뒤로 흔들리며 작품 안에서 무용수들이 춤으로 표현해내는 고조된 감정을 관객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니틴 사우니, 조클린 푹, 벤 프로스트에 의해 작곡된 음악은 잔혹하게 들리는 불협화음과 잔잔하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함께 배치되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작품 전체에 걸쳐 전개된다. <봄의 제전> 원곡은 과도하리 만큼 조용하게 - 마치 속삭임처럼- 약 30초가량만이 작품에 삽입되는데, 그 의도는 정확히 전달되기 불충분하다. 작품의 막바지에 짧게 삽입함으로서 극도로 달아오른 무대를 가라앉히고 분산된 관객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무가가 스트라빈스키와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삽입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잇모이>는 <봄의 제전>에서 기본적인 의식의 형태만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탄생과 죽음의 순환, 사랑과 의식의 폭력성, 그리고 그것의 힘과 복잡한 구조를 창조적 형태로 탐구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면서도 농축되는 구조를 만듦과 동시에 파열되는 형태를 보여주며 거기에서 보이는 의식의 전통과 혁신, 믿음과 실험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으나 그 삶 안에서 발생하는 혼돈 속의 질서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무용기자이자 평론가인 주디스 마크렐은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아크람 칸은 <봄의 제전> 원작이 그러하였듯 논리 정연한 은유와 비유를 통해 도전적이고 거친 이미지와 음악의 불협화음을 표현하였다. 그는 우리를 예술이 탄생되는 창조의 소용돌이 안으로 끌고 들어가 충격적인 상상속의 혼돈을 보여주었다”고 평하였다. 

정다슬
본지 독일 통신원, 독일 부퍼탈 저주, 부퍼탈탄츠테아터 소속

2013.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