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무국제공연예술제 Khai Ngoc Vu 〈Non〉
전통과 현대, 베트남 컨템포러리댄스의 한 단면
이만주_춤비평가
 삼각으로 보이는 원추형의 전통모자인 농(Non)을 베트남인들은 즐겨 쓴다. 날씨가 덥고 비가 많이 오는 베트남에서 야자의 일종인 농라(Non-la) 잎으로 만들어진 농은 해를 가리는 양산이 되기도 하고 비가 올 땐 우산이 된다. 또 더위를 식히는 부채로도 사용된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 받는 호지명(호치민)도 농을 즐겨 썼었다.
 제23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8월 29일-9월 3일)에서 외국 초청작품의 하나로 공연된 카이 응곡 부(Khai Ngoc Vu)의 창작춤 〈Non〉은 그 색다름으로 우선 주목을 끌었다. 베트남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통모자 〈Non〉을 제목으로 내걸고 또한 베트남 여성들이 즐겨 입는 전통의상인 아오자이(Ao Dai)를 무대의상으로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작품에서는 베트남의 정서가 물씬 풍겼다. 베트남의 춤, 나아가 베트남의 문화적 전통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한편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져가는 자기네 전통을 잃지 않으려는 자각과 고민도 읽혔다.

 

 

 현대춤으로 불러야 할지, 베트남 창작춤으로 불러야 할지를 망설이게 하는 작품 〈Non〉은 한국창작춤이 현대춤(Contemporary Dance)의 한 양상으로 정리되어 가는 상황에서 ‘베트남 컨템포러리 댄스’라 일컬어야 할 것 같다. 현재 베트남에는 컨템포러리댄스의 경향을 보이는 안무가, 무용수가 통틀어 20명가량이라고 한다. 작품 〈Non〉과 현 베트남 무용계의 상황은 한국 창작춤 태동기 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20명 안에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단원 12명의 ‘아라베스크무용단(Arabesque Dance Company)’이라는 존재도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대 중앙에 크게 매달아 놓은 오브제이자 무대미술로서의 농 아래에서 베트남 음악가 1명이 자기네 전통음악을 생음악으로 연주하는 가운데 안무가 자신이 1인 무용수로 출연해 춤을 췄다. 카이는 농을 쓰고 또한 농을 들고 이용하여 춤을 췄다. 마지막엔 무대미술인 농을 천정으로 올리면서 그 안에서 나온 뮤지션에게 농을 쓰게 해 함께 춤을 췄다.

 

 

 카이는 2004년 베트남 무용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발레무용수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전통에 입각한 창작춤을 자각하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 컨템포러리댄스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유럽에서의 여러 무용단 경험으로 현대 창작춤의 실험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기하학적인 구성과 함께 작은 공간에 계속 변화를 주는 안무와 연출을 시도했고 동양적인 여백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했다.
 발레에서 출발해서인지 근육질의 온몸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눈동자 굴리기, 입 벌리기 등과 같은 얼굴표정 연기, 또 우리의 발림(Mime)에 해당하는 동작, 웃통을 벗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팝핀(Poppin) 같은 동작도 보여주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 등 벼농사문화에서 유래하는 섬세한 손가락 구사의 전통도 춤에 담았다.

 

 

 이번 공연의 음악 담당이자 직접 생음악을 연주한 응고 홍 쾅(Ngo Hong Quang)은 11살에 베트남 전통 악기인 단니(Dan-nhi)를 연주하기 시작해 베트남 국립국악원에서 공부하고 베트남의 산간지역에서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전통악기를 연구했고, 현재는 네덜란드 덴 헤이그(Den Haag) 국립음악컨서바토리에서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하며 베트남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미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베트남의 전통 현악기와 타악을 연주하면서 카이의 춤을 한껏 살려내는 것은 한국 창작춤이 국악과 어우러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베트남은 파란만장한 역사, 질곡과 영광의 역사를 모두 갖고 있다. 기후가 우리보다 덥다는 차이일 뿐, 문화와 풍습은 우리와 거의 유사하다. 불교가 주를 이루면서도 샤머니즘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종교적 전통도 비슷하다.
 〈Non〉은 작은 춤작품에 그런 베트남의 모든 것을 담으려는 의욕이 지나쳐 전체적으로 산만한 감이 있었다. 예술이란 백화점식으로 모두를 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가다듬어 주제의식이 좀 더 잘 부각되고 창작춤 작품으로서의 임팩트가 느껴지는 더욱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만주
공연예술 사진작가. 현 서울문화재단 무용 전문평가위원.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2015년,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을 출간했다.
2017. 10.
사진제공_창무국제공연예술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