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경옥 〈댕기풀이〉
디테일로써 여성의 해방감을 북돋워야
김채현_춤비평가

사전적 의미로서, 댕기풀이는 관례(冠禮)를 지낸 사람이 친구들에게 한턱 베푸는 일, 신부의 댕기를 풀(은) 신랑이 친구들에게 한턱 베푸는 일을 말한다. 그것은 미성년에서 성년으로의 격상은 물론 어느 한 쌍 남녀의 출발을 알리는 통과의례로 통한다. 성년식, 브라이덜 샤워, 결혼 피로연 등속의 새 버전으로 지금도 댕기풀이는 이어진다.  

 2018 창작산실 중 하나로 공연된 이경옥 안무작 〈댕기풀이〉는 댕기머리 청춘 남녀의 시선으로 오늘을 들추어 보인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2. 28~29.). 장화홍련전, 심청전, 바보온달 등 전래의 설화나 동화를 비틀어 (현대) 인간의 왜곡된 심성을 우리 앞에 던져놓는 작업을 꽤 오래 지속해왔던 그답게 이번의 〈댕기풀이〉 또한 이경옥표의 관점을 담았다. 지난 몇 해 사이 무대에 대형 구조물을 설정해온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번의 〈댕기풀이〉는 수직의 하강 장치를 도입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투입하여 사뭇 풍성한 효과를 모색하였다. 소재 내러티브와 시각적 효과, 양면에서 객석의 호응을 유도하였다.
 

 




이경옥 〈댕기풀이〉 ⓒ김채현


 

 6장으로 나눠진 〈댕기풀이〉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댕기머리 아이들이 서로 대거리하며 노는 앞 대목, 그리고 댕기가 풀려가는 중간 대목, 이보다는 짧게 오늘의 남녀가 묘사되는 마지막 대목이 이어진다. 

 암전 속에서 경기민요 〈창부(倡夫)타령〉이 들리는 가운데 밝아오는 무대는 우선 이색적이다. 첫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서, 무대 전면에 드리운 하얀 초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제법 육중해 보이는 커다란 사각 틀의 구조물이 공중에 떠 있다. 구조물 위에서 머리를 객석으로 향하고 누운 일곱 댕기머리 처녀들의 댕기를 댕기동자가 하나씩 매만지며 장난치는 데 이어 사각 틀이 내려오면 댕기동자가 처녀들을 차례로 안아 세우는 것으로 〈댕기풀이〉는 시작한다. 사각 틀이 댕기동자만 태우고 올라가 공중에 머물고 그 아래서 댕기동자 처녀들끼리의 집단적 움직임이 통일감 있게 펼쳐진다. 사각 틀 위에서 그 아래 처녀들의 모습을 이리저리 관찰하는 댕기동자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에서 계곡의 여인네들을 은밀히 엿보는 남자아이들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설정에서 기대되는 다소 코믹한 효과는 공연 중반부의 혼례 대목에서 짙어진다.
 

 





 

 공연작 〈댕기풀이〉는 관례를 지낸 남자애가 한턱 베푸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며 초점은 댕기동자와 댕기머리 처녀가 서로 대응해가면서 댕기를 풀어가는 상황에 맞춰진다. 처녀들만의 집단 어울림이 주도하는 속에서 댕기동자가 합세하고 혼인에 이르는 그 과정들은 미혼과 그에 잇닿은 신혼 시절에 선남선녀라면 좋이 품음직한 달뜬 심성들을 상당히 분방하게 그려낸다. 이 중간 대목에서 주로 꽃과 풀잎 형상으로 디자인된 화려한 이미지들이 스크린에 투사되고, 그 화초 이미지들은 무대 분위기를 돋우어가며 춤 움직임들을 뒷받침한다.
 

 







  

 이러는 와중에 혼례 대목은 국악 동요 풍의 〈꼭두각시〉에 맞춰 아이들의 결혼 소꿉놀이처럼 코믹하게 처리되는데, 전통사회 조혼(早婚) 풍속에서 신랑 신부가 거개는 어렸다는 사실이 새삼 환기된다. 이 부분에서 몽당바지에다 트레머리를 해서 차림새가 우스꽝스런 여성들이 좌우로 질주하거나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가한다. 혼례에 이어 등장하는 연회(宴會) 장면들은 여성들만의 집단무로 전개되고, 혼례를 치른 여성들의 꿈 내지는 기대감으로 풀이될 법한 정서들이 활달하게 표현된다. 이 장면은 환상의 세계로 해석되기에 족한 한편으로, 〈댕기풀이〉가 제시하려는 가치로서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맨 앞 대목의 공연 도입부에서 ‘~ 잡힐 듯하다가 놓쳤으니~ 사랑 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나 혼자만이 눈물나는 게 이것이 사랑의 근본이냐~’는 〈창부타령〉의 사설이 고즈넉하니 애처롭게 흐르다가 메들리 곡조로 이어지고 피아노 난타와 왁자지껄한 혼성의 중창이 섞여들면서 음향은 어느덧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조의 질퍽한 다성부로 고조된다. 다소 흐드러진 듯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피아노와 여러 음색의 배경 음악들이 움직임을 재촉하며, 이제 앞 대목과 중간 대목에서 화사한 색조의 가벼운 의상을 흩날리며 분위기를 달구어가는 경쾌한 움직임들은 놀이하는 즐거움을 동반하면서 어떤 해방감을 환기한다.
 

 







 

 그러나 이 같은 환상과 해방감의 세계는 갑자기 중지되면서 사실상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청색 바지와 티를 걸친 여성 7명이 바닥에 누운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앉거나 선 상태에서 그들은 그 무엇에 짓눌리거나 경계하며 상념에 잠기는 움직임을 느리게 반복한다. 한 마디로 앞부분에 비해 매우 위축된 그들 뒤의 스크린에 남성(앞서의 댕기동자)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데서는 뭔가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다 곧 막판에 남녀 모두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이어가긴 하지만 이 마지막 대목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의 난타음이 그런 것처럼 혼란스러운 양상이 연속될 뿐이다.

 〈댕기풀이〉의 주제 의식은 이 마지막 대목에서 찾아진다. 앞서의 환상과 해방감의 세계가 사라진 오늘날 남녀 (인간) 관계를 일테면 억압이나 폭력이 주도한다는 것을 〈댕기풀이〉는 암시한다. 환상과 해방감의 세계가 사라진 마지막 대목이 공연 전체에서 갖는 의의는 절대적이고 또한 그 앞의 대목들과 연결시키면 마지막 대목의 의미를 알아차릴 법하다. 그러나 그 직전의 중간 대목에서 마지막 대목으로 별 다른 장치 없이 성큼 건너뜀으로 인해 객석에서 일말의 혼돈은 없었겠는지 반문해봄직하다.
 

 





 

 〈댕기풀이〉의 전반적 기조는 일종의 해방감을 고취시키되 그에 상반되는 오늘날의 남녀 (인간) 관계나 어떤 고통, 폭력성 같은 것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정리될 것이다. 〈댕기풀이〉는 놀이와 코믹의 요소를 활용하고 대형 스크린에 화초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놀이와 코믹 요소의 활용은 한국무용 계열의 창작춤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으며 〈댕기풀이〉는 이 점에서도 차별성을 갖는다.

 이 작품에서는 전체 구성 면에서 회전과 팔 휘돌리기를 축으로 한 유사한 움직임들에서 다양성이 높여질 필요가 있어 보였고, 아니면 여성 독무나 소수의 군무를 추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특히 각 대목마다 내러티브가 평면적으로 흐른다는 인상도 움직임의 측면에서 입체성을 높이는 쪽으로 해서 개선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댕기가 유물로 남았어도 댕기풀이의 상징성은 지금도 여전하며, 그러고 보면 댕기풀이는 오늘의 춤 소재로서도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다. 전통 관례를 주목하되 그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시선으로 비틀어보는 〈댕기풀이〉의 발상은 참신하다. 남녀의 앙상블 같은 조화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호소가 빗발치는 오늘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9. 0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