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구 세계안무축제
축제의 (큰)이름, 고여 있는 춤
권옥희_춤비평가

자신의 창작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하나씩 설명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정교하거나 혹은 허술하거나 아니면 오락가락하는 안무의 조야한 상태들, 전체를 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동작들, 무수히 많은 춤의 선택과 포기들을 우리가 다 볼 수 있다면. 혹은 작가가 자신의 안무과정을 낱낱이 거꾸로 되짚어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장, 박현옥·대구가톨릭대 교수), 올해로 5회째다. 그동안 구축된 축제규모와 내실의 정도,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짚어볼 수 있는 횟수다. 해외초청공연, 세계안무가전, 국내안무가전, 해외레지던스 안무가와 국내청년작가전 등 총 5일에 걸쳐 묶어낸 프로그램(만), 안정적이었다.




Cristian Lozano, Mariano Bernal 〈Acompadrados〉 ⓒ세계안무축제




 개막초청공연인 스페인의 플라멩코 〈Acompadrados〉(6월1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두 명의 남자 무용수의 춤, 가수, 기타 연주자, 네 명이 표현하는 춤과 소리와 감동의 관계, 인상적이었다. 무대에서 그 에너지의 강도를 선택하고 상정하는 이들 태도의 진정성이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Sita Ostheimer 〈Molimo〉




 다음날, ‘세계안무가전’(6월2일,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은 정진우(Jungjinwoo Dance Company)의 〈논쟁〉과 류장현(RYU and Friends)의 〈Mamihlapinatapei 마밀라피나타파이〉. 그리고 독일 안무가 Sita Ostheimer의 〈Molimo 몰리모〉, 세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먼저, 독일 Sita Ostheimer의 〈몰리모〉. 어둠 속을 걷는 곰을 의미하는 단어 ‘몰리모’. 움직임에 대한 안무가의 사유가 의외로 치밀하다. 무용수들이 서로 떨어진 채 한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다. 상관없는 이들처럼. 그 상태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 천천히 일어나는 순간과 그 사이에서 유지되는 긴장감이 오롯이 객석으로 전달된다. 아주 작게 일어나는 움직임의 지속성 유지의 관점에서 고찰해야 할 것은 오직 무용수의 움직임에 국한되지만, 무용수에게서는 몸의 움직임, 감각적 상상력의 밑바탕에 춤으로 말하는 언어가 있다. 그 춤을 정교하게 구축하면서 안무가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정진우 〈논쟁〉




 반면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정진우의 〈논쟁〉은 ‘논쟁’이라고 유추할 복합적 시각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논쟁’은 평면적인 춤 배치와 허술한 구조로 유발되지 않는다.
 류장현의 〈마밀라피나타파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마밀라피나타파이’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의 야간 족의 언어로, 사라져가는 이 ‘번역할 수 없는 언어가 남긴 아름다운 수수께끼’에 대한 춤은 우선 ‘번역할 수 없는’ 낯선 언어에 대한 사유가 보이지 않는다. 말이 낯선 것은 그 말이 지닌 특별한 효과를 이르기도 한다. 관객이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낯선 춤이어야 한다. ‘사라져가는 문화(언어) 유산의 비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무용수들이 내는 (동물의)기괴한 소리와 객석 사이로 몰려와 추는 막춤이 던져주는 가볍고 어색한 환기뿐이었다.




류장현 〈Mamihlapinatapei〉




 해외레지던스 안무가와 국내 안무가들의 무대(봉산문화회관 가온홀, 6월8일~9일).
 프랑스 Manuel Molino의 〈Exploring Us〉, 8명의 국내무용수들과 작업한 작품. 흐느적거리는 한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시작한 춤은 그 숫자를 더해가며 덩어리로 조직된 뒤에 다시 해체되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의미를 춤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치밀한 구조의 반복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형식이다. 10여명의 무용수들과 공간, 시간, 흐느적거리는 몸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춤을 구성, 해체, 다시 통합해내는 안무에 대한 기초가 의외로 단단한 작품이었다. 해외 레지던스 작가와 국내 무용수들의 작업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현실적 장애가 있다. 하지만 춤작업에 있어 안무가의 의도를 최대한 잘 표현하려는 무용수의 열정은 이런 현실을 하나의 장막으로 인식하느냐의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공여부가 갈린다. 안무가와 무용수들 서로에게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되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Manuel Molino 〈Exploring Us〉




 김홍영의(U.K. Dance Project Group) 〈colour〉. 남자가 긴 대나무 통의 가운데를 잡고 명상하듯 위 아래로 기울이자 통 속에 든 알갱이가 흐르며 내는 소리, 소리를 따라 몸을 기울이는 흰색의상의 무용수들. 남자가 여자무용수를 안고 나와 무대에 내려놓은 뒤 혼자 추는 작품을 내용에 필요한 춤이라기보다 알고 있는(콩쿨 용이라 일컫는) 동작의 연결이다. 여자무용수들도 이런 의미 없는 동작을 나열한다. 젊은 작가들이 저지르는 고질적 병폐다.
 춤동작이 화려해도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동작의 나열은 헛짓이다. 아무 의미도 생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의도한 작품의 흐름을 끊는다. 그리고 음악에 섞인 영어 대사. 낯선 언어가 주는 특별함은 작품에 음악처럼 스미거나 혹은 안무가의 의도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고자 할 때 필요하다. 오래되고 낡은, 허세다. ‘서로의 다름이 만나 같이 공전하며 순환한다’는 안무의도, 춤과의 거리가 멀다.




김홍영 〈colour〉




 마지막 남도욱(댄스시어터 경희)의 〈중독〉. 마그리트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영상아래 폭넓은 원피스 의상을 입은 남자 무용수(김민찬)의 춤과 연기가 슬픈 정서를 일으킨다. 발뒤꿈치를 든채 걸어 나오다가 그대로 영상아래에서 오랫동안 정지, 다시 천천히 걷는 연기가 〈중독〉 작품에 큰 의미로 입혀진다. 물이 세차게 빨려 들어가는 하수구 영상, 곧 바다가 되고 김민찬이 마치 물속을 걷듯 원피스 앞자락을 잡고 걷는다. 가방을 든 남자가 영상에 뜨고 그 남자도 물 위를 걷는다. 해석의 여지는 여기까지다. 이어 ‘봄날은 간다’(한영애 노래)를 추는 여자무용수(김정은)와 그녀를 등 뒤에 두고 남자(박재현)가 무대 앞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있다. 노래가사를 그대로 해석하면서 추는 것, 의미를 담아 깊이를 주지 못하면 신파가 될 위험이 있다. 남도욱의 〈중독〉은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놓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앞서 본 (대구)춤 스타일의 다름에서 오는 집중도가 있다. 작가마다 다른 개성이 내는 효과이다.




남도욱 〈중독〉




 마지막 날, 청년작가전 무대에 오른 네 작품. 전체적으로 안무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작품이었다. 그 가운데 도지원과 현상아(Do sock’s)의 〈망자〉 작품에서 이들의 발전가능성을 본다. 나머지 이인우(댄스시어터 경희) 안무의 〈빨간수염 산타클로스〉, 김가현(ANP무용단) 안무의 〈하얀 숲〉, 정지윤(루스발레컴퍼니) 안무의 〈마음의 소리〉, 지리멸렬했다. 이 무대가 지역 모든 청년작가들의 수준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이들 젊은 작가들이 안무가로 자신의 이름을 내민 현상과 현실이 곧 우리 춤(지역춤)의 현실임을 부정하지도 못하겠다.
 올해 지켜본 ‘대구 세계안무축제’는 지역을 비롯한 해외안무가와 무용수들에게 중요한 무대인 듯하다. 중견은 중견대로 청년작가들은 또 그들대로. 그만큼 앞으로 내실이 다져져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춤이 우주적 상상력과 감수성,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잠깐 빛나는 직관이나, 읽기 힘든 암호 같은 시놉시스, 남의 작품을 도용한 것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 따위의 헛된 요행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 안무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끝없는 훈련과 예술적 상상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과의 투쟁뿐이다. 이것이 예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예술가로, 안무가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한국 창작춤, 특히 지역 창작춤의 면모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무대를 보면서, 혹 조직위가 이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미쳤다. 더 세심하게 작품을 고르고 골라 무대에 올려야 한다. 물론 지난해에 비해 지원금이 줄었다는 어려운 현실을 안다. 하지만 현실이 벽일 때 그것을 벌써 표현하고 있는 말들도 그 벽 앞에 세워진 또 하나의 벽일 뿐이기에 춤을 보면서 거듭 배반당하는 희망을 주제로 삼기로 하자(한다). ‘대구 세계안무축제’의 발전을 응원한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9. 07.
사진제공_세계안무축제 조직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