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은미 〈오렌지 무빙 씽〉
소매틱 춤 무대로 터치한 몽환의 세계
김채현_춤비평가

평소 국은미의 춤에서는 어떤 자력(磁力) 같은 게 감지되곤 한다. 관객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듯하는 춤꾼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춤을 마음 편히 대하는 관객은 어느새 그들의 호흡을 따라가는 자신을 느끼지 싶다.
 국은미는 자신의 춤을 소매틱(somatic) 접근에 바탕을 둔 것으로 소개한다. 소매틱을 신체의, 육체의 식으로 풀이하면 참 맥빠질 일이다. 내면에서 감지되는 몸, 즉 소마(soma)에 바탕을 두는 발상을 소매틱이라 지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소매틱은 심신이원론이 아니라 심신일원론의 세계관을 지향하며, 특히 춤에서 심신일원론은 존중되어야 한다. 소매틱 접근에서는 춤꾼의 내적 감각이 우선시되므로 무대 위 춤꾼의 자각이 춤을 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로선 국내에서 국은미의 소매틱한 경향이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목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로도 이런 경향의 춤은 국은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 경향의 춤을 소매틱 기법의 춤이라 부를 수 있겠는지는 별도의 판단을 요하는 점이고, 근래 국은미는 자신의 춤을 소매틱 기법의 춤으로 정리하고 있다. 아무튼 문화역 서울 284, 서강대 메리홀 등 그동안 무대가 달라지더라도 몸의 자각에 초점을 두고 춤을 풀어나가는 모습은 지난 10여 년 세월 동안 한결 같았다. 이번에 발표한 〈오렌지 무빙 씽〉(콘텐츠문화광장, 5. 25~26.)은 그간의 경향을 지속하면서 몇 가지 다른 모습을 추가하였다.






국은미 〈오렌지 무빙 씽〉 ⓒ김채현




 〈오렌지 무빙 씽〉은 관객과 함께 몽환(夢幻)의 세계를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도입부에서 천장의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는 영상이 무대 전면에 비치는 가운데 어느 남성이 내레이션 음성으로 우리가 모두 어제 저녁을 먹은 레스토랑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알린다. 그곳에 세 사람이 등장하는 가상의 상황에서 남성의 내레이션은 우리가 음식을 먹으며 감지했을 여러 감각들을 환기한다. 저녁을 먹은 사실은 비일상적인 과거의 무의식을 환기하는 단초로 작용할 뿐 작품 내용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티셔츠와 오렌지색 바지를 착용한 세 사람은 반복되는 음들에 취해 움직임들을 반복하며 일종의 최면 상태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곁들여지는 눈을 감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오렌지색 물체가 다가온다 등의 말들은 최면 상태의 다소 구체적인 양상을 전달하면서 관객이 동감하는 정도를 높여나갔다.








 




 세 사람이 제 각각 전신을 벽에 붙여서 사지의 위치를 다르게 옮길 동안 무대 전면 벽에는 거대한 이미지가 투사된다. 레고 블록 같은 것들과 조약돌, 미니어쳐 병사들의 모습이 어우러졌다가 먹물 같은 것으로 뒤덮이는 시간이 꽤 오래 전개된다. 춤꾼들은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해서 느릿한 침잠을 이어간다. 누군가의 내면을 지배하는 형상들이 동화처럼, 때로는 우화(알레고리)처럼 등장하다 사라지는 이 부분은 굳이 무엇이라 단정되기를 거부하는 기억들이 명멸하는 순간들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엉킴과 섞임을 주조로 움직임들이 빠르게 전개된다. 사뭇 격한 부분이 곁들여지는 가운데 세 사람의 관계는 다양한 결합의 양상을 보였다. 지난 몇 해 국은미가 다듬어온 형식을 주조로 해서 이 부분은 점차 크레센도를 향해 치닫는 감을 주었다. 춤꾼들이 간혹 내뱉는 짤막한 고함소리는 가슴 속 내면의 소리처럼 들렸고, 동시에 그들이 몽환의 세계를 경유하면서 정체불명의 족쇄에서 풀려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잇달아서 무대 전면에 비춰지는 만개한 꽃의 형상, 춤꾼들의 모자이크 이미지들과 함께 그들은 해방된 움직임을 다이내믹하게 풀어보인다.








 




 이번에 〈오렌지 무빙 씽〉은 소매틱 기법에 더하여 대형의 디지털 이미지를 투사하고 내레이션 음성을 곁들였다. 소매틱 기법만의 춤이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측면을 보완한 장치들로 보인다. 소매틱 기법의 무대가 흔치 않은 사정과는 대조적으로, 소매틱 기법의 지향점은 돋보인다. 〈오렌지 무빙 씽〉은 스스로 몽환의 경지를 터치해가면서 그것을 관객과 나누는 미덕을 보였다. 이처럼 소매틱 기법처럼 춤꾼의 내면에서 먼저 꽃피우는 움직임이 관객의 동화(同化)를 일구는 데 보다 강력할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19. 07.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