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장수미&이옥경 즉흥 프로젝트 〈아이의 아이〉
다섯 시간의 즉흥, 다섯 감각의 충돌

 무용가 장수미와 첼리스트 이옥경의 즉흥 프로젝트 <아이의 아이>(I of eye)가 6월 14-15일 양일간 LIG아트홀·강남에서 펼쳐졌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이 불가능한 즉흥을 테마로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쉼 없이 진행되는 이색적인 공연.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이 ‘다섯 시간의 즉흥’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관람에 대비해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었다.
 공연에서는 움직임과 소리뿐만 아니라, 의상 피팅, 관객과의 인터뷰 등 다섯 가지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극장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무대, 객석, 로비, 1-2층 사이의 계단에서 저마다 특색을 가진 퍼포먼스가 진행될 동안 관객은 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점프수트와 스니커즈 차림의 무용가 장수미는 다양한 표정으로 느리게 어슬렁거리기, 활보와 뛰어다니기를 반복하면서 춤 테크닉을 배제한 기묘하고도 낯선 움직임으로 즉흥 세션을 채워나갔다. 어지러이 놓인 의자 배열하기, 관객에게 빠르게 여러 가지 질문하기, 선풍기의 소리와 입으로 내는 바람소리를 대치하기, 3단 철 구조물에 탄탄하게 매달리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면의 퍼포먼스가 그만의 방식으로 극장 여기저기에서 펼쳐졌다.
 공연의 또다른 주축인 첼리스트 이옥경은 일정한 멜로디나 리듬을 읽을 수 없는 첼로 연주를 시작으로 첼로를 두드리거나 현 비틀기, 유리구슬을 바닥에 흩뿌리기 등 다양한 즉흥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독특한 음색의 소리와 노이즈에 가까운 잡음이 이리저리 뒤섞여 청각을 자극했다. 스마트폰으로 유투브에 있는 우리 민요를 찾아낸 뒤 두 개의 마이크를 이용해 입체음향처럼 효과를 주는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극장 로비에서는 요리사 조나단 데일(Jonathan Dale)이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어 관객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했다. 베이커리가 완성되면 객석까지 퍼지는 달콤한 냄새에 모두들 로비로 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의상 디자이너 임선열은 2층 무대에 걸려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의상들을 리폼하고, 의자․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등 옷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여러 소재의 의상을 공연장 복도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피팅시키는 작업도 이뤄졌다. 임선열 디자이너는 “오늘의 공연이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움직임-시각, 소리와 언어-청각, 요리-미각과 후각)에 대한 즉흥 작업인데, 나는 의상이라는 물질(material)과 촉각이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울(wool)로 된 자켓을 소재만 바꿔 비닐로 제작한 뒤 피팅함으로써 관객들이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 촉각의 차이, 다른 감각을 인지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어로 참여한 예술학자 손옥주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주로 즉흥에 대한 관점이나 경험, 오늘의 퍼포먼스 요소와 감상에 대한 것이었는데, 직접 질문하거나 쪽지에 이것저것 자유롭게 끄적이도록 해서 관객의 참여와 소통을 유도했다.

 



 LIG아트홀 블로그에 게재된 장수미 무용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작품의 목적은 소리와 움직임 같은 즉흥의 요소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각 요소들의 반경을 넓히고 시간에 의해 어떤 변화를 가질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것이다. 내 몸의 범위는 내 몸뚱이 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재들과 만나지는 몸으로서 상당히 넓다. 요리, 의상, 인터뷰, 사운드, 움직임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또 몸으로서 공존할 수 있는지, 관객들은 또 얼마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즉 내가 보고 싶은 걸 찾아서 볼 수 있는지, 이런 즉흥공연이 관객의 감상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작품이 무엇을 준다’라고 생각하고 보기 보단,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된다’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공연 한 시간까지 관객은 보통 공연장에서 있음직한 규칙이나 규정에 따라 객석을 지키고 관람의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관객은 극장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그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퍼포머와 관객,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트러지고 관객은 퍼포먼스의 관람자인 동시에 참여자로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공연장을 찾은 최태순(패션 디자이너)씨는 “공연장, 퍼포머의 경계가 없어 덜 부담스러웠다. 일정 시간동안 객석에 앉아 몰입을 강요받는 기존 공연과 달리, 스스로 선택해서 몰입하고 싶은 순간에 몰입하고 관심이 가는 것에 관심을 둘 수 있어 즐기기 편하다”고 말했다.

 



 꼼짝없이 객석에 앉아 버티는 것 대신, 극장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긴 시간 이어진 공연의 노고를 얼마간 달래주었다. 그러나 다섯 시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노정에서 유랑의 자유로움도, 참여의 능동성도, 오감을 자극받는 경험도 언제부터인가 활력을 잃어갔다.
 퍼포머들 간의 규칙과 약속을 최대한으로 배제한 이날의 즉흥 공연은 돌발적인 우연의 순간을 만나는 묘미가 있다. 한편으로 즉흥은 각 요소의 유기적인 조화보다 무질서한 나열로 흐르기 쉽다는 이면을 가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움직임, 소리, 의상, 요리, 언어 요소들 사이에 충돌의 순간이 점차 누적되어 갔고, 다섯 가지 감각 역시 범람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무엇인가를 감지하기 위해 예민하게 열려있던 감각들은 후반부 들어 집중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혼란스러워하는 관객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객은 “중반부 즈음, 이 공연이 전시(展示)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퍼포머가 의도한 바와 상관없이 관객들이 공간을 이동하며 보는 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전시처럼 이 공연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이 제각각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강하게 부딪힌다. 아티스트들 간의 어울림, 조화를 포착하는 일이 쉽지 않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관람이나 참여에 한계를 느낀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다섯 시간의 즉흥 퍼포먼스는 국내 춤 공연의 또다른 가능성을 열어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공연장의 경계, 참여자의 구분을 허물기 위해 시간의 지속성을 과감히 따랐고, 즉흥의 의미와 반경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감각이 충돌하는 과정을 두려움 없이 시도했다. 한편으로 LIG아트홀은 다소 파격적인 러닝타임의 공연일지라도 협력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와 작품세계를 존중하고 그가 원하는 작업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기획은 국내 공연계에서 뚝심있는 행보로 각별하게 수용되어야할 것이다.

2014. 07.
사진제공_LIG아트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