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리을무용단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레퀴엠/ 살(煞)2012〉
진혼굿의 길목에서
김혜라

 


리을무용단의 <살(煞)2012>이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사후 지원작으로 지정되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012년 4월 1일 6시에 공연되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왜곡된 사회 현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름없는 영혼들을 위한 위로의 몸짓이 관객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였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특징은 사회적 약자의 시각에서 그려내는 선명한 주제 의식이라 할것이며, 총 3장으로 구성된 각 장의 상황묘사와 김수현, 홍은주, 김광석 등 세 출연자의 관계설정을 통하여 동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생존 경쟁 구도의 상황을 상기시키고 있다. 제 1장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방기(放棄)한 차가운 현실을 주로 표현하였으며, 제 2장에서는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심적 갈등을 삼자 구도로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 3장에서는 죽은자들의 울부짖음을 받아내 이를 위로하여 살을 풀어주고 있다. 아울러 각각의 씬(scene)마다 질주, 함정, 자살과 같은 사실적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적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의 적


작품의 도입부분에서, 고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안에 숨어있는 듯한 한 여인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영상이 펼쳐지면서 <살2012>가 펼쳐질 무대의 어긋난 현실적 상황을 예고하고 있었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든 군상들의 모양새는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서성이는 현대인의 불안정한 심리와 욕망을 묘사하고 있었다. 제 1장에서 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의 치열한 모습들을 군무 중심으로 무대 면과 방향을 달리하며 뜀박질 같은 반복적이며 사실적인 동작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명으로 묘사된 대각선, 직선의 길에서 질주하듯 따라잡고 잡히는 관계는 치열한 삶의 여정으로 보이고, 시종일관 힘 있는 동작들의 조합은 투쟁적인 인간관계에서 살고자 하는 자기의지로 묘사되었다.
 

 

 


 제 1장과 2장에서 펼쳐지는 군무는 현실적 상황, 이를테면 가쉽(gossip), 왕따 같은 실태를 묘사하는 장면으로 생각되고 군무진이 약자를 가운데로 몰고 가는 동작선은 위협과 압박감의 정서를 유발시키는 형태감을 공감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이것과 유사한 상황묘사가 8회 정도로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관객은 가벼운 폭력이 집단화 되어 공격적일 때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는 사회적 현실을 무대에서 접하게 된다. 주인공인 홍은주의 정적인 춤이나 군무 주변을 서성이는 동작들은 다수에 합류하지 못하는 낙오자의 정신적 절망감의 깊이를 각 장면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출연자, 김광석과 김수현의 경쟁적 관계나 전체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서성이는 자인 홍은주의 모습은 두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낙오된 삶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를 짐작케 한다. 각 장의 플롯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가는 극적 장치는 마지막 3장에서 펼쳐지는 추락과 회한의 몸짓인 <살 2012>의 존재적 의미를 강조하며 전체적인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각장의 진행은 비극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회 구조에 대한 질책의 몸부림과 소리 없이 희생된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묘사하였고 이것이 관객의 마음으로 전달되어 먹먹함을 느끼게 하였다.

 

 

춤에서 설명적 표현의 문제


춤 주제는 전체 춤 형식 배열의 잘 짜여진 구조와 극적 표현이 전제될 때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솔로, 이인무 및 군무의 조합이 움직임과 공간 관계에서 시간차를 둔 적절한 배치를 나타내었을 때, 형태적(Gestalt)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며 여기에 음악, 무대 셋트의 연출 효과는 심리적인 만족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러한 구조적 짜임새와 더불어 쉽게 포착될 수 있는 내용의 전개는 관객에게 주제적 의미를 다시 짚어볼 수 있는 감상의 여유를 주게 된다. 이러한 잘 짜여진 연출과 쉬운 의미 전개는 특히 <살 2012>와 같이 사회성이 짙은 주제에 설득력 있는 안정된 구조를 부여하여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인상적인 장면 구성은 작품의 표현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게 된다. <살 2012>는 질서 정연한 극적 전개와 춤 구성상의 다각적인 공간 구도 및 역동적인 움직임의 조합으로 약자의 시각에서 그려내는 현실성 있는 주제에 집요하게 접근함으로써 효과적 성과를 내게 된다. 예를들면 자살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2인무의 갈등구조는 강한 임펙트로 기억된다. 또한 흰 천조각들이 무대 가운데로 모여지는 시각적 효과와 급박한 비트의 음악이 더해 지는 가운데 경사진 무대의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긴장감을 고조한다. 특히 덩그러니 매달린 올가미 줄에 시선이 집중시키면서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영상의 강한 이미지가 상기되면서 <살2012>가 의도한 냉혹한 현실 고발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다. 제 3장에서 울부짖는 자들의 넋을 즈려 밟는듯한 걸음걸이와 반짝이는 은박지 꽃잎이 막이 내리기까지 계속 떨어지면서 주는 촉촉히 젖어드는 숙연함 등은 이 작품의 존재적인 의미를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출렁이는 공감적 표현의 성과와는 대조적으로 <살 2012>에서는 의욕에 찬 주제적 표현이 친절하게 읽히는 설명적 묘사가 문제점으로 부각되었지 않나 싶다. 다시말해 이런 지나치게 안정된 구조의 조건이 오히려 관객들의 호기심이나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질문하고 싶다.
 이런문제는 <살2012>처럼 사회적 현상과 이슈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춤언어의 특질상 거대 담론을 다룰때 추상적 의미(배신, 모함, 추악, 생존 등)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춤이 그 자체를 표현적 의미로 활용되기 보다는 표현하려는 큰 의미 자체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종속적인 수단으로 제한되는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살 2012>에서도 여지없이 이런 춤의 주된 기능이 사라진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춤 정서가 거대한 의미에 눌려 춤으로 보고 춤으로 풀어내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적 아픔에 춤이 그저 설명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살 2012>에서 관찰되는 표현 구조의 구체적인 문제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내용과 안무 배치로는 변화를 주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작품 변화를 크게 감지하기 어렵게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각각의 장면에 대한 상황 설정이 먼저 읽히는 것과 각 신의 유사한 질적 표현의 문제로 생각된다. 1장과 2장 움직임의 쓰임새와 강도 그리고 공간적 사용이 사실적 상황을 보여주기에 급급한데 이런 진행의 반복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는 시간대에서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전반적으로도 춤꾼들의 능숙하며 역동적인 움직임이 시종일관 강력한 메시지 전달만을 위해 너무 많은 동일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 관찰되는데 실례를 들면 군무를 이끌고 다니는 김광석의 거친 동작들과 군무진의 하체에 중심점을 두며 외향적·적극적으로 몰아가는 춤사위들의 적절한 조합이 춤꾼들의 노력보다 강력함이 덜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지나친 역동적 움직임의 반복으로 인하여 전통기법(발디딤)에 현대적 춤사위가 만나 품어내는 에너지의 섬세한 특질들이 부각되기가 쉽지 않은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었고, 오히려 3장의 씻김과 풀이의 정서적 경험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부분은 배회하는 영혼을 상징하는 군무진의 느린 걸음걸이에서 그리고 정 중앙에서 울부짖는 몸짓에서 더 시각적·정서적 의미로 다가왔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두 번째는 실제적 갈등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세 사람의 관계설정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수 있는데, 생존을 위해 몰아가는 함정 또는 음모의 최전방에 서있는 김광석과 김수현의 관계 그리고 김수현과 흥수현의 관계는 낙오된 자의 양면성을 띤 동일 인물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소리 없이 꺼져버린 영혼들의 실체라는 설정이었다는 것이 마지막 3장에 이르러서야 이해가 된다. 명확한 상황 설정과는 대조적으로 약간의 혼선을 주는 이들 출연자들 상호간의 관계이해의 이유는 특히 해악성을 띤 3인무와 빨간 드레스를 입고 가방을 중심으로 유혹과 욕망을 상징하는 김수현 춤의 배치가 모호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생산적 은유


아드르노는 역사적인 것(파시즘)의 예술적 재현이 불가능한 징후를 보인다고 진단하였는데, <살2012>와 같이 사회적 주제를 강조하는 작품은 춤만의 응축된 정서(감성)와 개념(지성)의 성숙한 병존을 녹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때 유념해야 할 점은 포괄적인 주제 의식을 무대에서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춤 자체보다 개념에 춤이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기 쉽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관객은 삶을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 울어주고 춤춰주길 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노련한 은유적 표현이 천재의 특징임을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예술적 대상의 표현은 관용적인 설명보다 은유를 통해서 지각과 사유의 창조적 관계를 설정할 때 좀 더 생산적인 것이 된다. 계몽주의 미학에서의 빈번한 은유적 표현이나 사유를 위한 사유로 미끄러지는 동시대의 은유적 표현방식은 춤의 정서적 공감을 방해하는 요인일 수는 있으나 춤이 친절한 설명보다는 주제적 개념에 대한 춤 특유의 생산적인 은유방식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안무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길 희망한다.
 리을 무용단의 <살 2012>는 일상에서 그저 흘러 듣던 자살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사회적 무관심과 공포감을 춤과 몸으로 사회 비판적 기능을 충족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사회적 피해자의 마음을 토닥토닥 달래주려는 안무가의 마음이 귀하게 다가온다. 다만 제 1 및 2장이 좀 더 짧게 편집되고 3장에서 춤으로 살을 푸는 진혼굿의 춤이 강조되었다면 오히려 춤이 날것 그대로의 몸짓의 울분과 울림을 통해 사회를 진단하고 엉킨 살을 풀어 해원의 통로로 제 역할을 좀더 강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토해 본다. 결언적으로 <살 2012> 작품은 주제적 내용을 넘어 살을 풀어헤쳐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구하는 길목에 서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추천의 말



채희완_본회 공동대표, 부산대교수



1. 이 글에서는 춤작품을 받아들이는 넉넉하고도 따뜻한 품성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더해 예리한 분석력과 생산적 비판력, 그리고 춤구성에 대한 감식안이 돋보인다.

2. 그런데 뜻은 명쾌하나 문장 서술이 복잡한 대목이 더러 있다. 특히 복문구조일 때 그러하고, 주어와 서술어 관계가 어수선하고 맞지않은 문장마저 있다. 그리고 ‘치열한’, ‘표현구조’, ‘주제적 성격’, ‘관계설정’ 등 다소 불투명하거나 적잖게 지리한 용어가 자주 나와 읽기에 좀 불편하다. 정확하고도 신선한 문장구사와 용어선택을 요망한다.

3. 한편 그러나 춤의 주제가 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특히 거대담론일 경우 관용적 설명이기보다는 춤표현 특유의 정감적 생산적 은유이길 원한다는 논급은 이 작품에 대한 비평규준으로서 참 알맞다고 본다. 그리고 ‘공공의 적’, ‘춤에서 설명적 표현구조의 문제’, ‘생산적 은유’ 등 중간 중간 배치한 작은 제목들이 글 내용을 규모있게 잘 이끌어내면서 맺고 풂의 그물코 노릇을 잘 해낸다. 그래서 글내용이 구성지다.

4. 작품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은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다만 그것이 자칫 작품의 단순해설에 머무르고 만다면 비평글로선 밋밋하기 그지없을 터이다. 작품비평이란 작품이해를 통해 작가와 청관중 사이를 매개해 주는 소통의 몫을 다한다. 나아가 작품비평이란 작품의 수용자가 이 작품을 계기로 또다른 작품을 생산해내는 또하나의 창작 과정이라고 보는 나로서는 이 비평글이 작품해설을 넘어 작품사실을 토대로 한 강력한 생산적 은유의 글이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앞당겨 충족시킬 비평가적 덕목이 잘 갖춰있다고 보기에 이 글을 신인 평론문으로 선뜻 추천한다. 

5. “진혼굿의 길목에서”라는 글 제목이 한참 느슨한 듯하여 “치열한 현실주제와 생산적 은유”로 바꾸고 싶다.

김혜라
숙명여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 박사과정에서 예술학을 전공(학위 논문 「현대춤 공간에 대한 형태지각적 분석과 해석의 지평」)하였다.
2012.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