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유경 〈전통에 대한 경의〉
전통의 깊이, 창작의 자유의지
권옥희_춤비평가

흔히들 전통춤을 무겁고 둔탁하고, 어떤 춤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여주지 않기에 고양된 감정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영원히 고정된 춤, 전통춤이란 없다. 현재 추어지는 춤이 변할 때, 과거춤도 따라 움직인다. 현재춤이 그 성격을 바꿀 때, 과거춤도 따라서 변한다. 현재춤은 현재인 그 순간 항상 과거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천과정을 가지고 있는 이매방 선생의 승무도 그렇고, 춤과 관계없이 화려하게 변하는 전통춤 의상이 그 증거다.
 창작춤 작업을 주로 해오던 작가가 ‘전통’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경의’를 춤으로 무대에 올렸을 때는 단순히 전통춤에 대한 모색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통에 대한 숙고와 그것을 풀어내는 확고한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전통춤을 무대에 올려야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유경(계명대교수)의 〈전통에 대한 경의〉(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12월18일) 무대. 1, 2부로 나뉜 공연은 이매방류의 〈승무〉와 〈장고춤〉 김백봉류의 〈부채춤〉에 이어 장유경의 〈선살풀이〉로 엮은 전통춤과, 2부는 창작춤 〈시인의 강〉과 바흐의 음악에 얹은 ‘바흐_부채춤’, 그리고 처용무를 재해석한 〈신.가〉로 엮었다. 〈승무〉는 〈시인의 강〉으로 〈부채춤〉은 ‘바흐-부채춤’으로 그리고 〈처용무〉는 〈신.가〉로 재해석, 창작된 그 맥락을 분명하게 정리해 보여준 작업이었다.






장유경 〈전통에 대한 경의〉_ 이매방류 〈승무〉 ⓒ옥상훈/장유경무용단




 첫 무대, 한 명씩 걸어 나온 무용수 18명이 모두 무대 중앙을 향해 엎드린 뒤 시작되는 이매방류의 〈승무〉는 검정색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흰빛의 향연이었다. 악사들을 오케스트라박스에 배치한 뒤 승무고깔과 붉은 색 가사를 벗고, 치마저고리 대신 목이 높은 흰색 티셔츠와 폭넓은 바지를 입었다. 비녀 색조차 검게 머리색에 맞춰 깨끗하게 쪽진 데서 장유경의 미감을 확인한다.
 굿거리에서 당악으로 넘어가면서 백경우가 떨어져 나오고, 군무진이 무대 뒤 깊은 곳에 모여선 채 북놀음으로 나아가는 백경우의 연풍대를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이들을 가리는 검정색의 중간막이 내려오고 무대 가운데서 북이 올라온다. 세련된 연출이었다. 전통을 미감으로 풀어낸 파격적인 ‘승무’였다.




  

(왼쪽) 김백봉류 〈부채춤〉, (오른쪽) 백경우의 이매방류 〈장고춤〉 ⓒ옥상훈/장유경무용단




 다섯 명(김순주, 심현주, 편봉화, 임차영, 이영재)이 춘 김백봉류의 〈부채춤〉은 평이했다. 이어진 백경우가 춘 이매방류의 〈장고춤〉. 노랑저고리에 흰색바지, 머릿수건을 하고 추는 춤은 장구춤이 가진 흥취보다 예쁜 짓이 앞서 나온 춤이었다.




장유경 〈선(扇)살풀이〉 ⓒ옥상훈/장유경무용단




 이어진 장유경의 〈선(扇)살풀이〉 (2003년도에 초연, 2019년에 재구성한 작품). 흰색부채를 펼쳐들고 빠른 걸음으로 무대를 휘 한 바퀴 돈 뒤 돌아서 있다. 장유경을 비추는 조명, 흰빛이 뿜어내는 서늘하고 상서로운 기운으로 일순간 무대는 정적에 휩싸인다. 흰색 치마저고리에 가볍게 날리는 흰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는 흰색 두건을 매듭지어 뒤로 길게 늘어트리고 모자 위에는 흰색 깃털을 높게 꽂았다. 태평소 소리에 돌아선 뒤 부채에 달린 살풀이 천과 부채를 양손에 나눠 잡고 툭 내려앉는 호흡으로 시작된 춤은 부채를 어깨위에 턱 얹고 자박자박 걷는가 하면 양팔을 뒤로 한 채 우쭐거리는가 하면 앉은 사위에서는 수건을 부채 위에 접어 얹고는 이리저리 뒤집는다.
 전체적으로 장단을 툭툭 짚어내는데 과장이 없는, 담백한 춤이었다. 다만 부채에 살풀이 천을 감아서 돌리고, 풀어내는 춤사위(그것이 ‘살’이든 ‘한’이든 ‘정’이든)는 채 정제되지 않아 투박해 보이나, 품격과 아름다움을 갖춘 춤이었다.
 살풀이춤은 춤추는 사람의 심경(정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춤이다. 우리 춤의 정신과 원리를 바탕으로 장유경은 자신만의 살품이춤을 만들어낸 듯하다. 그만큼 춤(삶)의 연륜이 쌓인 것이다.






장유경 〈시인의 강〉 ⓒ옥상훈/장유경무용단




 2부, ‘시인의 강’ 앞부분,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서로 관객, 무대에 예를 다하는 절로 시작되는 승무를 재해석한 춤과 의상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더할 수 없이 감각적이었다. 승무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의상은 흐르는 강의 물빛을 형상화한 춤으로, 물빛이 몸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는 춤은 물길따라 물빛이 다른 것처럼 극장무대에 따라 아름다움의 색과 깊이가 변한다. 염두에 둘 일이다.
 그리고 ‘바흐에 얹은 부채춤’ 흰 의상에 푸른 색 부채를 들고 추는 절제된 움직임이 춤 구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첼로(구회령)와 김현태, 서상재, 김정미가 서로 연주와 부채로 소통하는 춤은 장유경류의 창작춤 언어다.






〈신.가(神.歌)〉 ⓒ옥상훈/장유경무용단




 마지막 〈신.가(神.歌)〉, ‘처용가’를 바탕으로 처용과 처용아내, 역신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인간의 욕망과 애증, 관용과 체념을 투영’하여 풀어낸 작품 내용은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다만 한국춤을 추는 이가 흔히 춤적 장치라는 것을 외면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처용가’를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작품이었다. 인간의 욕망을 도발적으로 솟구쳐 나오게 만든 춤을 예전작품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도.
 음악은 가야금과 정가(正歌)를 썼다. 불규칙하게 구부린 철제 설치물이 무대에 숲처럼 늘어서 있고, 여자(편봉화)와 남자 둘(김용철, 서상재), 일상복을 입었다. 여자가 남자들을 양옆에 세우고 객석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다. 여자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자 남자들도 따라서 앉는다. 남자가 여자에게 머리를 기대자 다른 남자도 여자에게 머리를 기댄다. 여자가 두 팔로 남자들의 머리를 잡는다. 둘을 동시에 껴안았다가 마치 시소놀이처럼 남자들의 머리를 번갈아 아래로 눌렀다가 올리기를 반복한다. 여자의 욕망에 속수무책 머리를 내어 맡기고 있는 남자들. 정가(正歌)가 흐르고, 한 남자(서상재)가 여자에게 업히라는 것처럼 등을 내밀자 다른 남자(김용철)는 떨어져 혼자 춤을 춘다. 춤을 추는 마음의 깊이와 여자를 업고 싶은 육체적 실천에 뒤따를 비극감의 깊이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이 춤을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짓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용서하는 자와 절치부심하는 자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더 이상 처용은 용서하는 자의 위치에 있지도 절치부심하는 이도 아니다. 여자의 선택에 따라야 할 뿐. 여자가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편봉화)가 남자(서상재)에게 업힌다. 또 다른 남자(김용철)는 그들 앞에 놓인 철제물을 하나씩 밀어 멀리 치운다. 마치 장애물을 치워주듯.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장유경의 전통춤은 다른 이들이 추는 형식, 그러니까 ‘~류’에 따라 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에 대한 위반이었다. 맹목적으로 ‘~류’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이 위반은 경악할 일이다.
 하지만 장유경의 이 위반이 ‘~류’를 오래 공부한 뒤, 자신의 춤(삶)을 걸고 해석해낸 결과라는 데 주목해야한다. 분별에 따른 위반이라는 뜻이다. 즉 전통춤이 가진 한계와 과도한 양식의 넘쳐남에 대한 숙고의 결과를 춤으로 무대에 풀어놓은 것이다. 온갖 질서에 대한 매혹적인 이의제기 말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 ​ ​ ​ 

2020. 1.
사진제공_옥상훈/장유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