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오월 바람〉 & 〈Homo Faber〉
극명하게 대비된 제작 시스템의 명암
장광열_춤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지원사업 중 창작산실은 공연예술 부문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유일하게 ’무용‘이란 독립된 카테고리로 심의된다.
 창작산실은 단일 창작 작업에 비교적 많은 지원금이 주어진다는 것도 있지만, 공연장 대관, 홍보 등을 문예위에서 직접 해주고 우수 작품에 한해 재공연을 통한 연속 지원과 유통 기회가 더해진다는 점에서 안무가들이나 춤 단체가 가장 선호하는 지원사업이다. 문예위는 창작산실을 통해 신작 인큐베이팅과 우수 작품의 레퍼토리화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창작산실 2019 올해의 신작으로 무대에 오른 두 편의 작품은 60분 길이의 장편이란 것 외에도 2020년을 여는 1월에 나란히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는 점에서도 주목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편의 작품은 예술적인 완성도나 제작 시스템에서 극명하게 대조를 보였다. 또한 창작산실이 추구하는 인큐베이팅과 레퍼토리화가 소기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작품의 선정에서부터 공연까지 그 운용의 틀을 다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과제도 남겼다.


M발레단 문병남 안무 〈오월 바람〉

M발레단의 〈오월 바람〉(1월 11-12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평자 12일 관람)을 보면서 평자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창작 발레란 점에 주목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현실 참여적인 소재의 창작 작업이 많지 않은 춤계의 흐름과 함께 광주항쟁은 꽤 오래전 현대무용가 이정희가 살풀이 연작 시리즈 중 하나로, 김화숙이 〈편애의 땅〉을 통해 자유소극장의 공간을 활용한 특별한 작업으로 만만치 않았던 잔향을 남겼던 터라 창작발레를 통한 안무가의 사회적인 메시지가 어떤 형태로 표출될 것인지 기대가 컸다.
 문병남이 안무한 〈오월 바람〉은 그러나 평자의 기대에 못 미쳤다. 무엇보다 광주항쟁을 해석하는 시선이 미약했다. 광주항쟁에 대한 안무가의 역사 인식은 그저 계엄군에 의한 여성 유린이란 것 이외에는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모호한 콘셉트, 선명하지 못한 주제의식,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의 평이함, 이미 눈에 익숙한 춤과 장면구성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60분 길이의 작품을 위한 제작진들의 프로덕션 시스템 역시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M발레단 문병남 안무 〈오월 바람〉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안무가는 결코 짧지 않은 작품을 풀어내는 데 있어 주요 무용수 두 명에만 의존했다. 어린이와 엄마, 계엄군 장교, 광대 역할이 스토리 라인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였다면, 권력녀와 주인공 민우와 혜연은 춤 기량을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장치로 보였으나 그들의 역할은 그저 등장인물에 불과했다. 인물들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스토리를 이어가고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결국 작품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주요 무용수들의 움직임 구성 역시 여타 작품에서 이미 낯이 익었던 것들이라 그들의 춤 기량을 지켜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실루엣을 이용한 검은 그림자, 나이트클럽, 연습실의 발레 클래스 등 몇 개의 장면 설정 역시 군무를 위한 의도된 장치로 보였으나 극의 흐름에 유연하게 녹아들지 못하고 독립된 개별 장면처럼 보여진 것도 아쉬웠다.
 창작음악인지 기존 작품의 편곡인지 모호한 음악과 무대미술 역시 ’드라마틱한 발레를 통해 역사적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인류의 화합에 대한 희망을 그려낸다‘는 제작진들의 의도를 실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M발레단 문병남 안무 〈오월 바람〉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혜연 역 박예은과 민우 역 윤전일의 분전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한층 더 실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의 흐름은 그들의 춤 기량과 연기력만으로는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무가는 미리 간파했어야 했다.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창작발레 공연에 오는 관객들은 적어도 무용수들의 테크닉만을 보러 오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주요 무용수들은 자신이 발레 갈라 공연에 출연한 것이 아닌 만큼 극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작가로서 안무가로서 광주항쟁을 바라보는 역사적인 시각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술하게 준비된 제작 시스템으로는 음악과 춤의 조합, 독창적인 캐릭터의 창출을 통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컨템포러리 발레의 흐름을,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
 〈오월 바람〉의 빈약한 예술적 완성도는 이 단체와 작품을 선정한 심사위원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김경신 안무 〈Homo Faber〉

김경신이 안무한 Unplugged Bodies의 〈Homo Faber〉(1월 11-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12일 관람)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명한 콘셉트와 이동하는 무대미술을 활용한 공간의 변화,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 등 작품 곳곳에서 제작진들이 공들인 흔적이 엿보였다.
 〈Homo Faber, 도구의 인간〉에서 안무가는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도구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그린다. 인간 본연의 본성을 춤과 연계해 풀어내기 위해 제작진들은 극장의 좌우 사이드 막을 모두 걷어 올리고 최대한 무대를 넓게 사용했다. 여기에 무대미술을 고정하지 않고 움직이도록 제작, 댄서들의 춤과 조합시키면서 넓이뿐 아니라 극장의 높이까지도 춤추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 같은 시도는 9명 댄서들이 박스, 널빤지, 테이블 등을 오브제로 사용하면서 군무를 중심으로 조합, 꽤 풍성한 시각적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여러 개의 테이블을 활용해 컨베이어벨트의 이미지를 표출하는 장면을 통해 대량생산의 산업화를 유추토록 한 것 등이 그런 예이다.
 작품 전편을 통틀어 구현된 실물 크기의 환풍기, 메트로놈, 커다란 지구본과 분리된 마네킹의 몸,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탱크 등 적지 않은 오브제와 강한 비트의 음악과 무용수들의 변화무쌍한 춤이 매칭되면서 생성된 시각적 이미지는 예술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런 장면은 적지 않게 목격되었다. 널뛰기의 역동적인 운동성이 춤의 확장으로 증폭되는 장면 또한 압권이었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김경신 안무 〈Homo Faber〉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간이 만들어낸 무수한 도구에 의해 지구가 병들고 있다는 메시지 전달은 그러나 볼거리의 남발로 오히려 희석되고 말았다. 많은 오브제, 지나치게 풍성한 장면, 장시간 무대를 점유한 복잡한 구도는 안무가가 직접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조차도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안무가는 넘치는 장치를 통해 너무 많은 것들을 생성했고, 이는 맛있는 음식을 과하게 먹어 급기야 소화제가 필요한 상태로 만들었다. 아쉬움은 더 있다. 독창적인 움직임의 창출과 지구본 주위에서 추는 군무 등이 더 압축적으로 구성되고, 긴 호흡의 느린 춤이 더해졌더라면, 이 작품은 행간들 사이로 메시지의 농축을 음미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김경신 안무 〈Homo Faber〉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안무가 김경신이 그간 보여준 일련의 안무 작업들은 그가 영국에서 활동한 이력이 더해지면서 호페쉬 섹터와 노이드 뉴먼의 작품에서 보이는 강한 사운드의 음악과 선명한 비주얼의 버무림, 역동적인 군무의 조합이 두드러졌었다. 이번 작업에서도 김경신은 이 같은 자신의 안무 특성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김경신의 〈Homo Faber〉는 적절한 편집, 곧 넘치는 것을 덜어내는 과정을 거친다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2020. 2.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