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열혈청년예술단 〈Equilibrium〉
평형의 속성을 조명한 다매체의 복합 구성
김채현_춤비평가

지구 온실가스가 인류 생존을 좌우한다는 경고가 무척 잦다. 지구 생태계 균형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주범이 그 온실가스이고,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온실가스 방출 비중에서 운송 수단이 13.5%인 데 비해 의외로 목축 산업은 14% 이상이다. 이런 탓으로, 목축 산업의 온실가스 방출을 감축하려면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에 의해 최근 더욱 여론화된) 채식주의를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드세다. 이에 대해 생물 다양성의 존속, 곡류와 풀의 소비 재활용, 건강 유지 등에 역행하는 채식주의의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거두절미하고, 섭리에 순응할 ‘균형’을 채식주의로 회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인가.
 인체 평형감각은 균형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권력 관계, 인간 관계, 가족 관계 등등 세속에서 크고 작은 균형은 나름의 인위적 조치로 조성된다. 이제 생태계 균형마저 각고의 긴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날로 악화될 전망이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균형일지라도 그 배후에서는 실은 긴장의 드라마가 흐른다. 열혈청년예술단의 〈Equilibrium: 팽팽한 두 몸〉(플랫폼엘, 1월 10~12일)은 이 점을 참신하게 환기한다.






열혈청년예술단 〈Equilibrium: 팽팽한 두 몸〉 ⓒ 2020 김채현




 〈Equilibrium〉 공연 전부터 관객은 무대 바닥을 거의 채우듯이 이리저리 널브러진 합판과 각목들 사이를 조심스레 헤집고 입장 착석해야 한다. 무대 정면에 가설된 스탠드 진열장에는 와인잔 등속의 투명한 그릇들이 수없이 놓여 있다. 천장으로부터 줄에 매달린 투명한 수반들은 바닥 가까이 위치해 있다. 공연의 전체 흐름은 관객 입장부터 몇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맨 앞 부분은 바닥의 합판들을 세워 양쪽 벽에 기대어 세우고 빈 그릇들에다 조용히 물을 채우며 각목들을 두어 개씩 모아 바닥에 배열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무미건조한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두 출연자(노화연, 이선시)와 두 조력자는 세우고 채우고 배열하는 따위의 일에 몰두한다. 의당 진지한 그 행위들이 일견 긴장되어 보이는 한편, 나름들 놀이에 전념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공간에서 관람하는 대상물을 대상물 자체로 대하도록 했던 미니멀리즘의 분위기를 저변에 깔면서 두 출연자는 도미노 게임을 준비하듯이 퍼포먼스 놀이를 펼친다. 설치미술과 퍼포먼스가 중첩된 이 부분은 도입부에 해당하며 전체 공연 시간의 1/4 정도 소요되었다.




열혈청년예술단 〈Equilibrium: 팽팽한 두 몸〉 ⓒ 2020 김채현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먼저 노화연과 이선시가 숲이나 들판에서 숨바꼭질 하듯이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들이 한동안 영상으로 비쳐지며, 이를 배경으로 걷기와 정지, 앉기, 모로 기대거나 눕기, 바닥에 의지한 상태에서의 여러 동작으로 무수한 양태(shape)의 균형을 묵묵히 전시해 보인다. 두 사람은 이들 동작을 각자 홀로 수행하면서도 서로 마주 보며 응시하거나 서로 유사한 모습의 동작을 같은 순간에 진행한다.








열혈청년예술단 〈Equilibrium: 팽팽한 두 몸〉 ⓒ 2020 김채현




 바닥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각목들 사이사이에서 제 홀로의 균형, 상대방을 주시하며 의식하는 균형이 뒤섞여 전개될 동안 동작들은 절제되었고 매우 유려한 미감을 자극한다. 일테면 스튜디오나 자연 속에서 몸 균형을 수련할 때 자극받을 그런 류의 미감이 연상된다. 낮은 소리의 규칙적 리듬의 타악이 반복되는 속에서 각목들의 배열을 흩뜨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유의하며 균형을 추구하는 그들의 움직임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그 다음에 두 출연자는 각목들을 쌓아 조그만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선 노화연이 줄에 연결된 조그만 수반을 들면 이선시가 물을 따른다. 물이 찬 수반을 공중에 가볍게 휘둘러도 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어서, 앉은 노화연이 사지(다리, 팔)를 내밀면 이선시가 3개의 수반을 더 걸치고선 물을 따른다. 물이 떨어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려고 홀로 애쓰는 노화연의 모습은 나름 치열하다. 이 부분이 암전되면 물에 잠긴 발, 얼굴, 몸, 다리 부위가 미세한 파동의 물결과 함께 클로즈업된 모습이 잔잔한 배경음을 타고 화면에 비친다.
 조금 밝아진 공간에서 두 출연자는 느린 접촉즉흥을 여유롭게 행한다. 몸의 포개기, 겹치기, 엉키기… 등속의 동작이 두 사람의 함께 하는 몸에서 고난도로 뿜어질 동안 상대에게 맞추려는 배려가 뚜렷해지고 균형을 찾아가는 어떤 분투 같은 것이 그려진다. 웬만한 접촉즉흥을 능가하며 두 몸의 균형을 끈질기게 탐색해가는 그들의 욕구는 어느덧 객석의 공감을 부른다.






열혈청년예술단 〈Equilibrium: 팽팽한 두 몸〉 ⓒ 2020 김채현




 이어진 밝은 공간에서 노화연이 각목들을 세워서 맞추려 하나 여의치 않은 동시에 이선시가 공간을 휘청대듯 배회하는 이 지점에 이르러, 두 사람은 균형을 포기한 것 같은 기미를 드러내고 균형 속의 긴장도도 떨어진다. 급기야 두 사람이 각목들을 이리저리 흩뜨려 무대를 조용히 교란시킨다. 곧 좌우 벽면에 세워진 합판들이 엎어지듯 쓰러뜨려지며 혼돈에 접어든 무대에선 조도(照度)가 매우 낮춰지고 천장에 매달린 투명한 수반들도 내려온다. 바닥에 욕조 같은 얕은 휴대용 수영장이 놓이고 수반 속의 물과 추가로 운반한 물을 조력자들이 그 수영장에 부어넣는다. 가로 2미터 X 세로 0.7미터 정도의 그 좁디좁은 수영장 속에서 두 출연자는 앞서 본 접촉즉흥을 거듭하며 마치 균형을 보전하려는 기세로 다시 서로 대거리하고 엉키며 버둥댄다. 그럴 동안 무대 정면의 스탠드 진열장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투명한 그릇들(플라스틱제)이 쏟아졌다. 균형의 해체?
 균형이나 평형이 능사(能事)는 아니다. 새 질서는 옛 균형이 교란되고 새 균형으로 대체될 때 가능하다. 〈Equilibrium〉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균형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려면 그만한 대가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끊임없는 유동성이 균형의 본성이라는 것을 도외시할 때 돌발적 교란은 혁명처럼 나타날 것이다.
 열혈청년단은 〈Equilibrium〉을 서사극적으로 구성하였다. 균형을 호도하지도 어떤 하모니처럼 묘사하지도 않는 방안으로서 〈Equilibrium〉은 객석이 환상과는 거리를 두고 두 출연자의 균형을 향한 분투를 냉철하게 관찰하도록 한다. 자칫 평형 상태의 단순 묘사로 흘러가기 쉬운 소재를 열혈청년단은 팽팽한 두 몸과 여러 매체를 복합적으로 동원해서 균형과 평형의 내밀한 속성을 새 감각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 안무자 유재미와 연출자 윤서비가 쌓은 내공이 빛을 발하는 바가 있다.








열혈청년단 〈움직임이 움직임을 움직이는 움직임〉 ⓒ 2019 김채현




 지난 10월 파라다이스 아트랩 이벤트의 일환으로 열혈청년단은 〈움직임이 움직임을 움직이는 움직임〉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 장충동의 어느 3층 주택을 통째로 활용하여 유재미와 윤서비는 그곳의 거실, 침실, 부엌, 욕실을 무대 공간으로 개조하되 각 공간들의 원래 용도에 맞춘 소재들을 연결하여 작품화하였다. 주택 안의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관객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되 모습은 전혀 다른 장면들이 옴니버스 스타일의 콜라주로 연속되는 것을 맞닥뜨리면서 근 3시간 동안 환상의 세계에 놓였었다.
 〈Equilibrium〉에서 인체 부위가 물에 잠긴 영상들이 말하려는 바는 애매해 보였다. 그리고 두 출연자가 어느 열대 지방 해변가에서 마주 보며 천칭에다 두 개의 브랜디잔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무게 평형을 이룬 끝에 잔속의 주스를 마시는 마지막 화면은 화면 아래의 수영장에서 기진맥진해서 멈춘 두 사람의 모습과 연관하여 대조적이며 일종의 반어법으로 설정된 듯하다. 그렇더라도 이 부분은 편안한 느낌은 줄 수 있은 반면, 좀 상투적이었다.
 〈Equilibrium〉에는 설치미술, 퍼포먼스 형식과 미니멀리즘, 접촉즉흥 등 다양한 요소가 등장한다. 이런 요소들의 공연을 그간 다원예술로 칭해왔으나 이제 그것은 다소 식상하며 해묵은 지칭이 되는 중이다. 그만큼 춤공연에서 이들 요소가 뿌리를 내리며 일반화하고 있다. 이로써 춤 미학이 확장되는지, 혹은 변동하는지 다시 판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Equilibrium〉은 이런 점을 다매체의 복합적 구성과 팽팽한 두 몸을 통해 조리 있게 제기하였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0. 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