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
창작 실험에 도전하는 기대되는 안무가들
김혜라_춤비평가

안무의 시작점을 다시 생각하려는 흐름이 세계 공연현장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는 실천적인 사유가 요청되며 행위의 의도를 탐색하려는 ‘과정중심’의 활동으로도 연결된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 매체와 융합접점을 찾기도 하고, 자신의 창작행위를 점검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방향성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2.20~22.문화비축기지)은 반갑고 앞으로도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창작실험활동지원’ 프로그램은 작품의 결과물보다는 창작 단계에 집중하여 그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올 해 총 23개 연극, 춤, 음악, 전통, 다원예술 단체가 작업의 성격에 맞게 리서치, 쇼케이스, 피칭, 전시, 워크숍 과정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객과의 대화는 진행되지 못하였으나 기대 이상으로 이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다각도로 구성되었다. 이 과정이 지속된다면 창작자들의 아이디어가 구체화 될 것이며, 우리 정서에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명쾌하게 전하는 훈련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관객들도 창작자들의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공연을 둘러싼 환경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감상위주의 공연이 아닌 또 다른 미적 체험을 관객들은 과정 속에 참여하며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흘 동안 장르 간 교류와 협업으로 제작된 가능성이 많은 결과물에 비춰보면 문예위 타 지원 프로그램과 ‘창작실험활동지원’ 프로그램은 차별점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창작산실’과 ‘차세대 열전’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으나 전반적으로 성숙도와 참신성에서 기대이하의 성과를 보여 주었다. 문예위의 적극적인 개선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창작실험활동지원’은 비교적 짧은 3년의 기간에도 그 진행방식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작업이 흥미로웠는데, 그 중 기술적인 융합으로 새로운 실험을 한 이정인과 자신만의 몸 경험을 토대로 독창적인 움직임을 연구한 조아라, 라바노테이션 에포트의 효용성을 리서치한 정세영 그리고 문화비축기지 탱크 공간덕에 세련된 공연으로 탈바꿈된 길서형의 쇼케이스가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생태적인 시각으로 시공간을 탐색한 장혜진의 접근 방식도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고, 현대 음악 단체인 팀프앙상블과 최소형 안무가의 협업은 기획자의 의도와 안무적 해석의 접점이 불명확하지만 두 창작가들에게는 건설적인 과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정인 〈DARV_Abandoned Land〉 ⓒ이정인




 먼저 이정인 안무가의 〈DARV_Abandoned Land〉(2,22. 탱크6)는 증강현실(AR)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AR 어플리케이션으로 가상공간과 현재의 시공간 경험을 매개한 실험이었다. 관객들은 화가 장경애의 폐허 건물 그림 위에서 춤추는 댄서(이정인)를 보게 된다. 이어서 실제 댄서들(김현우, 김명선, 신동윤, 안세렬)의 움직임이 모션 픽쳐로 잡혀 실시간 무대 벽에 투사되는 현장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수잔랭거가 말한 동작과 동작간의 보이지 않는 가상의 힘(virtual power)이 디지털로 기록되는 것 같았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린 움직임 흐름의 궤적들이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테크놀로지에 무지한 필자에게는 비주얼 아티스트(Mihaela Kavdanska)와 AR 소프트웨어 아트스트(Florian Weinrich)와의 협업작업이 신기했다. 이정인의 발상, “그림 속 건물에서 춤을 춰 보자”는 패기어린 시도를 테크놀러지로 실현시킨 점은 신선하다. 그러나 기술적 협업으로 표현성을 확장시켰다는 의미 이상의 것을 찾는 것이 이 작업의 숙제일 것이다. 이정인은 “이러한 실험이 문예위 지원금을 받았기에 가능했고, 테크니션들과 협업으로 자신의 표현영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관객은 폐허가 된 가상공간을 관람하는 동시에 과거 폐허로 남겨져 재탄생한 문화비축기지 현장에서 상호 연결된 공감감적 체험을 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정인의 인터렉트브 비쥬얼 아트(Interaction Visual Art)에 가까운 작업이 9월 린츠에서도 재공연한다니 창작산실의 취지인 실험과 유통이라는 경로를 잘 실천할 수 있는 작업이되리라 기대한다.




조아라 〈판소리움직임 탐구1〉 ⓒ강경호




 조아라의 작업 〈판소리움직임 탐구1〉(2,22.탱크 2)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움직임으로 환원시키고자 한 작업이다. 어린 시절부터 10년 동안 판소리를 섭렵하고 한예종에서 연기와 창작춤을 전공하며 깨달은 자신의 몸 역사와 몸 경험을 학자적인 자세로 탐구한 흔적이 보인 쇼케이스였다. 공연을 요약해 보면, 무대 바닥에는 사방을 의미하는 정사각형 선과 자연 순환을 의미하는 원형이 겹쳐진 선이 그려져 있다. 조아라는 주역의 괘 같기도 한 도면을 밟아가며 사랑가 한 대목의 소리를 분절적으로 해체시킨 후 각각의 에너지를 점차적으로 몸짓으로 수용한다. 중중모리 장단에 따라 움직임의 범위와 질감은 확장과 수렴이 교차되며 단순한 동작에서 전체 공간을 채우는 긴장감으로 생성된다. 에너지, 기운의 흐름이랄까? 조아라는 하늘·땅·사람의 원형적 순환 고리를 염두하며 발을 디딘다고 말하며 동작을 지속한다. 물의 흐름, 음양의 조화, 자연의 변화에 따른 기운생동을 마음에 담고 정수리에서 요추까지 연결된 뼈마디를 움직여 다시 동작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안무가의 시도는 소리 에너지의 흐름이 신체의 적절한 부위로 파고 들어가 총체적인 동작으로 환원되기를 희망하는 탐구의 산물이었다. 공연장은 숨과 소리를 동작으로 해석하려는 그녀만의 치열한 고민이 전달되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구성진 소리와 명확한 발음으로 “판소리를 토대로 움직임을 탐구 해 보겠다”는 다부진 의욕이 실제 구현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 독창적인 조아라만의 움직임 언어가 탄생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세영 〈움직임의 집합〉 워크숍 ⓒ정세영




 다원예술로 구분된 정세영 작가의 〈움직임의 집합〉(2,20.탱크6)은 움직임 안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를 에포트(effort)로 분석하여 발표한 설명회(Pitching)이었다. 일반적으로 피칭은 작가들이 바이어들에게 자신의 기획 프로젝트를 설명하여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첫 그의 피칭은 당스 엘라지(Danse Ḗlargie) 서울에서 발표했던 자신의 작품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을 소재로 에포트의 시간, 공간, 흐름, 무게라는 개념을 적용해서 관객들에게 설명하였다. 이후 관객들에게 여러 이미지가 담긴 사진을 제시하며 미리 나눠준 종이에 에프트 기호로 표기해 보길 요청하였다. 이어 자신의 리서치 배우들과 여러 사진의 의미를 에포트로 기록하고 그 결과를 비교하며 원작이미지와 대조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동작에만 적용했던 에포트의 개념을 확장하여 무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인 조명, 소품, 음악, 관객 등으로 적용하여 공연의 설계를 세밀하게 분석하고자 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정세영 작가의 의도는 언어적 관점으로 볼 때 춤의 불명확한 동작들의 기본적인 요소를 에포트로 기호화 하면 타인에게 움직임의 의미 전달이 명쾌해질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피칭방식을 차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가 춤을 잘 모르는 어느 누구에게도 객관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콘텐츠임을 이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물론 자신의 작품 컷은 당연히 단일 시점의 단순 동작이기에 에포트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어서 그가 제시한 여러 감정과 맥락이 담긴 사진들은 다시점이 요구되며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된 이미지라 다의적인 해석을 필요로 했다. 복합적인 콘텍스트와 함께 해석해야 할 이미지를 단순한 에포트 기호로 추출시켜 분석하는 그의 연구가 어떤 효용성이 있을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실험하고 적용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라바노테이션에 대한 이해가 초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필자가 이해하는 라바노테이션은 기본적으로 춤을 움직임만의 구성물로만 보는 서구적인 시각이다. 때론 문화적 산물로 때론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오늘날의 예측하기 어려운 공연요소에 적용시키겠다는 작가의 호기심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고 우려스럽다.




길서영 〈틀〉 ⓒ임정은




 마지막으로 길서영의 〈틀〉(2,22.탱크 4)은 제목 그대로 ‘틀’을 모티브로 안무한 작업이다. 안무가가 문화비축기지 탱크 공간을 생각하고 작품을 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일반 소극장에서 시연 되었다면 그냥 평범한 작품으로 보였을 것이다. 꽉 조인 양쪽 운동화에 연결되어 몸을 쪼이는 테이프는 몸과 움직임을 제한하는 1차적인 오브제이다. 골조가 드러난 탱크 내부의 큰 원형 공간, 차가운 시멘트 바닥은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로 외딴 우주 공간에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 거울(?) 판으로 구성된 미니멀 한 설치물과 댄서들(김희은, 이소희)에게 시시각각 스캔되는 레이저 빛은 2차적인 오브제로 외부의 시선이자 어떤 틀을 암시하고 있다. 댄서들의 과장된 스트레칭 동작이 체적· 변형될수록 춤으로 확보할 수 있는 움직임의 틀이 견고해진다. 무엇보다 돔의 높은 공간 깊이를 에워싸는 사운드의 공명이 댄서들의 에너지와 결합되어 피부에 침투되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이로써 일반적인 극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분위기를 확보하여 보이지 않는 가치체계의 틀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틀’이라는 어쩌면 식상하기도 하고 모호한 주제를 사실적인 오브제와 춤으로 명확하게 틀을 규정하고 동시에 오묘한 사운드의 진동과 증폭으로 무대 분위기를 에둘러 연출한 길서영의 세련된 감각과 재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비축기지 ⓒ홈페이지(http://parks.seoul.go.kr/template/sub/culturetank.do)




 사실 필자는 문화비축기지를 처음 가보았는데 이 공간의 매력에 푹 빠졌다. 40여년의 흔적이 누적된 석유탱크 외관과 공연과 전시에 적합한 크기와 성격으로 재구성한 내부 공간들 그리고 탱크로 이동할 때 마다 느껴지는 시크한 녹슨 철판 벽 통로와 계단. 여기에 덤으로 주어진 매봉산의 시원한 바람과 정기는 예술가들이 이곳에 가만히만 있어도 영감이 떠오를 것만 같다. 해외 어디에 내놓아도 멋진 이곳 문화비축기지가 예술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창작의 현장이 되었으면 한다. 내년에도 발랄한 생각과 실천으로 타장르와 실험하고 교류하는 창작자들의 도전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2020. 3.
사진제공_이정인, 강경호, 정세영, 임정은, 문화비축기지 홈페이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