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K팝 세계 & 코레오그래피 5
‘챌린지 문화’는 어떻게 케이팝의 필수요건이 되었나?
이아로미_안무가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분위기가 겁나 싸해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인가
 왜들 그리 재미없어?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
 Tell me what I got to do 급한 대로 블루투스 켜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아무렇게나 춤춰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아무 생각 하기 싫어 아무개로 살래 잠시
 I'm sick and tired of my every day, keep it up 한 곡 더“ - 지코, 〈아무 노래〉 중


2020년 국내 최고의 인기곡을 꼽으라면 단연 지코의 〈아무 노래〉를 고를 수밖에 없다. 각종 음원 차트 연간 1위를 차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증명해낸 곡. 일견 가볍게 듣기 좋고 유쾌한 분위기의 이 노래가 K-POP 댄스의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춤을 주력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재밌게 즐기자고 발매한 이 노래가 이후 케이팝 댄스신의 판도를 바꾸버릴 줄은!

2020년 1월 13일 퇴근시간에 맞춰 발매된 〈아무 노래〉는 정통 음원 강자인 지코의 곡답게 등장하자마자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차트 상단에 진입했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그 이후였다. ‘아무 노래 챌린지(challenge)’가 일으킨 현상은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만하기 때문이다.


‘챌린지challenge’?



빌게이츠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을 올린 후 친구 3명을 지목(tag)하는 행위로, 지목된 사람들은 같은 챌린지를 받아들이거나 (루게릭 환자 후원 단체를 비롯하여) 필요한 곳에 100달러를 기부하는 것 중 선택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킹에 기반한 빠른 공유로 기부 문화의 허들을 낮추고자 기획/진행되었다. 


‘마네킹 챌린지’

홀로 혹은 여러 명이 마네킹처럼 멈춰있는 자세를 역동적으로 촬영하는 챌린지로 2016년 선풍적인 유행을 끌었다.


사전적 정의로 ‘도전’이라는 의미의 챌린지는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는 해시태그1)를 통해 공유되는 사용자들의 어떠한 행동 인증의 의미로 통용된다. 국내에는 2014년, 인스타그램을 매개로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공유되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챌린지 문화가 대중적으로 인식되었으며, 2016년 트위터에서 시작된 ‘마네킹 챌린지’는 엄청난 유행을 이끌며 챌린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Rae Sremmurd의 〈Black Beatles〉를 빌보드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지코 〈아무 노래〉 챌린지 모음



챌린지 문화의 파급력을 전략적으로 파악했던 걸까, 지코는 신곡 〈아무 노래〉 마케팅의 일환으로 ‘아무 노래 챌린지’를 제작해 공개했다. ‘아무 노래 챌린지’는 칼군무나 멋진 댄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아닌 누구나 따라하기 쉽고 간단한 동작들로 도입부이자 훅(hook; 후렴구)인 구간의 일종의 율동 퍼포먼스를 제안했다. 아티스트인 지코의 챌린지 발표를 시작으로 지코의 주변 지인 연예인들이 동참하면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며 활발히 공유되어 화제가 되었고, 어느새 너도 나도 누구나 따라하고 싶은 일종의 국민 챌린지로 떠오르게 된다. 신나는 노래에 유쾌한 동작을 따라하는 ‘아무 노래 챌린지’는 단체 활동이나 사회적 교류가 급격히 제한되던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 속에서 다함께 만나 즐겁게 놀던 시절에 대한 향수까지 자극하며 마치 원더걸스의 ‘Tell me’, 소녀시대의 ‘gee’를 방불케 하는 신드롬이 되었다.


‘숏폼 마케팅’의 시작

‘아무 노래 챌린지’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이후 차기 트렌드 매체로 숏-플랫폼인 틱톡(Tiktok)이 자리 잡아가던 시기에 틱톡을 기반으로 한 짧은 챌린지가 곡의 엄청난 성공으로 증명된 첫 사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유튜브에서 틱톡으로 - 전통적인 SNS 매체들이 점차 가벼운 인터페이스와 압축적인 컨텐츠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니즈를 반영하며 변모하는 가운데 틱톡은 15~30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빠르게 공유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틱톡 안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영상과 정보들,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새로운 콘텐츠들은 사용자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고 틱톡은 전례 없는 속도로 급성장했고 각종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틱톡, 즉 숏콘텐츠 플랫폼의 성공 이후 기존 SNS 주자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도 자신들의 플랫폼 내에 각각 ‘쇼츠’(shorts)와 ‘릴스’(reels)라는 섹션을 런칭하며 숏폼 마케팅에 활발히 동참하며 트랜드에 함께하고 있다.

SNS 사용자층의 숏폼으로의 이동은 전반적인 마케팅 트랜드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특히 케이팝 영역에서는 챌린지 문화를 마케팅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변화가 정말 도드라지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노래〉 전곡이 익숙하다기 보다는 챌린지 구간인 하이라이트 후렴구만이 친숙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더욱) 느끼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케이팝의 ‘포인트 안무’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아예 챌린지를 통해 곡을 접하고 챌린지의 파급력과 네트워킹을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이러한 관심이 곡의 소비로 이어져 성공적인 마케팅의 모델이 되는 도식.

강한 파급력을 몸소 증명한 ‘아무 노래 챌린지’의 여파로 이후 모든 케이팝 곡들은 하이라이트 챌린지라는 컨텐츠를 필수적으로 생각하고 안무가들 역시 챌린지를 염두에 두고 제작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 노래〉의 주인공인 지코는 우스개 소리로 ‘네가 만든 챌린지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고 있다’는 동료들의 푸념을 들을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명실상부 케이팝의 명확한, 새로운 풍조의 등장이다. ‘아무 노래 챌린지’ 외에도 마케팅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숱한 챌린지들이 있고, 심지어는 이 챌린지가 큰 화제 없이 지나갔던 예전 곡이나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 곡들의 ‘역주행’을 이끌기도 한다. 대중들은 챌린지 문화가 케이팝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체감하고 또 목격하고 있다. 숏폼마케팅의 시대인 것이다.


챌린지 문화가 일으킨 또 다른 변화 –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

챌린지 문화의 기반인 숏폼의 또 하나의 새로운 조건은 바로 9:16의 세로 화면 비율에 있다. 스마트폰의 완전한 보급 이후 전통적인 영상의 가로 화면(16:9)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로 화면이 대체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세로 화면 – 숏폼 기반인 챌린지 안무들은 좌우 이동이 많거나 화면을 벗어날 위험이 있는 큰 동작보다는 좁은 화면 안에 모두 담을 수 있는 소위 ‘1평 댄스’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이 강해지면서 최근에는 아예 상체 위주, 팔과 손 동작에 초점을 둔 제스처 위주의 포인트 안무들이 눈에 띄게 각광 받고 있는 추세이다. 〈K팝 댄스〉(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의 저자 오주연 교수는 이와 같은 형태를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gestural point choreography)'라고 명명하며 “한 평 짜리 공간에서 추는 춤은 짧아지고, 빨라졌다. (…) 다리를 안 써도 되는 춤인 반면 상체의 동작이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해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2)
 

 

나연 POP! 챌린지 영상
챌린지에 초점을 맞춘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의 최근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챌린지를 통해 ‘따라하기’와 ‘함께하기’

챌린지형 포인트 안무들이 짧고 간단해지는 만큼, 챌린지 문화는 케이팝의 중요한 성격인 따라하기와 함께하기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며 더욱 더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방송에서 만난 동료들과 서로 안무 챌린지를 나누는데, 내 춤을 알려주고 너의 춤을 배워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는, 일종의 품앗이로 서로 윈-윈한다. 케이팝 팬들은 어떤 아티스트들이 함께 챌린지를 나눌지,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함께 챌린지에 참여하는 타 아티스트는 누구인지 기대하고 주목한다.

더 나아가 팬으로서 스스로 챌린지에 참여함으로써 아티스트와 또 다른 팬들과 함께 공유한다. 꼭 긴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의상을 갖춰 입고 대형을 맞춰가며 커버 영상을 촬영하는 게 아니더라도 더욱 가볍고 빠르게 또 직접적으로 케이팝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케이팝을 전파하는 또 한 가지 새로운 방식의 출현인 것.

이렇듯 큰 변화들은 때때로 이렇게 우연한(것처럼 보이는) 계기로 시작된다. 작은 시도였던 ‘아무 노래 챌린지’가 불러온 나비효과처럼, 이제 이 챌린지 문화의 변주는 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챌린지 이후의 또 다른 트렌드는 무엇일지, 새로운 트렌드가 불러올 케이팝 댄스의 변화는 또 어떤 모습일지! 시시각각 변모하는 케이팝의 전략이 궁금하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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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정 핵심어 앞에 ‘#’ 기호를 붙여 써서 식별을 용이하게 하는 메타데이터 태그의 한 형태. 이 태그가 붙은 단어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2) 헤럴드 경제, “정밀한 테크닉, 오차 없는 K팝 춤…BTS는 현대무용가”

이아로미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 및 무용원 이론과 전문사를 졸업 후 코레오그래퍼/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2023.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