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상재 〈지구인 파티〉
지구와 더불어 행복한 공존
권옥희_춤비평가

우리는 안녕한가. 진화생물학자 롭 윌러스는 “신들이 우리에게 내려준 질병들은 이해할 수 없어 더 좌절스럽다”고 말한다. 맞다. 우주에서 바이러스까지,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알지 못하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납작하게 기다린다. 단절된 시간 속에서 발전과 변화를 기약할 어떤 지속된 시간이 다시 흐르기를.

 자본과 과학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삶을 지배하는 평면적이고 직선적 사고의 삶의 어떤 한 부분을 춤으로 도려낸다. 서상재의 춤 〈지구인 파티〉(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7월 25일)는 바이러스의 폭력에 상처 입었던 도시 대구에서 우주로 점핑,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유를 춤으로 확장시켰다. 사유는 여러 겹으로 작동했을 터. 그 하나는 삶에 보편적인 가치를 두고 춤으로 지향해야 할 춤의 직업적 윤리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삶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에 대한 사유 또한 있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건 폭력 속에 삶(춤)이 노출된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폭력은 바이러스뿐이었을까. 춤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춤사회의 폭력은 보편적 형식이다. 이들의 삶을 노리고 있는 폭력들이란 춤을 추는 기술 수준으로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한 춤판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외압의 전체인 것이다. 오직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 자신의 발전을 꾀할 때만이 폭력, 그 시간과 단절할 수 있다(없을 수도).




서상재 〈지구인 파티〉




 철 구조물이 공중에 매달려있다. 시간과 기억의 외피에 상처를 입은 것처럼, 웅크린 채 번뜩인다. 마치 도시의 분망한 감옥처럼. 이 도시적 환상같은 구조물은 내부에 도시의 이력을, 흔적을 축적한 집합체로 보인다. 누워있는 주검들. 팔을 가슴에 모아 붙이고 이리저리 허깨비같이 굴러다닌다. 폭력에 모든 것을 잃은 혼돈의 세계, 죽음의 공간이다.
 첼로와 무음이(소리가 있다면) 반복된다. 군무에 이어 춤을 추던 여자무용수(신민진)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그대로 서 있다. 춤을 멈춘 것이다. 어두운 숲(무대)을 지나다 잠이든 것처럼.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잠 든 오로라공주는 왕자가 깨웠다. 신민진의 춤은 누가 깨울 건(것인)가. 흥미로웠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 춤은 객석을 긴장시켰다. 다시 춤(멈춤)에서 깨어난다. 춤을 멈춘 그 시간은 춤이 사라지는 지점이자 동시에 춤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춤이 존재하는 것은 춤이 멈춘 시간, 이 지점으로부터이다.
 위험하고, 무모하였다. 하지만 배짱 있게 툭 던진 안무는 감각적이었다.




서상재 〈지구인 파티〉




 어두운 무대. 무대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상재(안무가)의 춤이 시작된다. 빈 공간의 침묵을 뚫고 존재가 생겨난 것처럼. 형상도 소리도, 빛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초, 진동하는 혼돈처럼 춤이 시작된다. 빈 시공간에 씨앗처럼 무대에 툭 떨어진 춤. 춤에 얹힌 창부가.
 발로 무대 바닥을 느리고 집요하게 밀어내며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더듬듯 춤을 추며 나온다. 간결한 움직임에 시간과 공간, 힘과 운동, 음악적인 규칙과 춤의 조화가 압축되어 있다. 희미했던 앞 장의 춤을 일시에 가로지르며 작품의 중심을 잡는다.




서상재 〈지구인 파티〉




 어둠을 향해 자맥질해 들어가는 듯 춤을 추는 남자(최재호, 천기랑, 오동훈)와 서상재의 군무. 용기 있게 내지른 춤의 탈바꿈만이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에서 구할 것이라는 듯, 훈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춤이었다. 앞 장과의 연결고리가 흐린 점, 아쉬웠다.
 마지막, 공중에 걸려있던 금속 설치물이 조각조각 해체되어 내려온다. 파편화된 인간들의 삶을 형상화한 듯. 마치 고통도 슬픔도 멎은 어두운 숲 같다.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춤은 인간들의 ‘지구 사용법’처럼 소모적이다. 춤을 멈춘다. 안무자의 안무 의도가 읽히는 지점이다. 잠시 멈추자고, 멈추면 상황이 바뀌고, 세상은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파티를 멈추는 것뿐이라고.
 한 남자가 춤을 추던 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줄 지어 누워있는 사람들, 죽음. 죽음은 빈 것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은 오직 삶의 깊고 강렬한 감각들뿐이다. 남자가 그들을 보며 걷는다.






서상재 〈지구인 파티〉




 〈지구인 파티〉는 바이러스의 폭력 사태를 추락이 아니라 추락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삶을 지켜낸 자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 우리 모두의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인으로 지구와 더불어 행복한 공존을 위해서 말이다.
 안무자 서상재는 진정한 춤의 담론은 항상 미래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긴 호흡으로 미래의 춤에 길을 엶으로써 미래의 자신을 보호하겠노라고, 〈지구인 파티〉로 그 실험을 보고한다.

 춤작가(예술가)는 자신(인간으로서)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그림자와 대면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고결한 품성을 잃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상황 그 한가운데서 온전히 주인이기를 포기하지 하지 않는 인간,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만 온전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용기 말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20. 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