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
다양성과 예술성은 별개의 것
김혜라_춤비평가

올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스텝업’(7. 7~9.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온라인중계)은 이전 공모방식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추천을 1차적으로 반영하여 선별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최종 선정된 세 명의 예술가들 작품 성향이 다른 점이 오히려 일반 관객들에게 다양한 현대춤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우선 황수현의 작품은 안무개념을 확장시키는 컨템퍼러리 수행성 작업에 가깝고, 임샛별은 인간의 가치를 점검하며 사회의 모순을 되묻는 작업이었고 마지막으로 김찬우는 미시적이지만 타 장르의 형식적인 시도 면면이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다.
 이번 기획은 다각적인 접근법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함으로써 현대춤 표현방식의 스팩트럼을 넓히고자 시도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다만 안무 표현성 측면에서는 넓이를 넓혔으나 이 세 작품이 원작보다 심화되어 온전한 예술성을 확보할 정도로 ‘스텝 업’되었는지는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황수현 〈검정감각 360〉 ⓒAiden Hwang




 세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첫 작품인 황수현의 〈검정감각 360〉은 퍼포머 내면의 소리를 탐구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감각을 공동체의 감각으로 확장시킨 방식이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소리의 공진이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퍼포머들과 전체 극장 공간에 확장되는 점진적인 연출로 마치 음악에서 크레센도에서 포르티시모로 이끌어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효과는 클라이막스에서 공동체의 분노, 허탈, 허망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절규로 표출된다. 이 감정선은 추상적이지만 무엇인가(관객의 해석에 달려있음)로 결합되어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발산해 내었다.
 다시 말해, 지극히 개인적인 소리가 어느새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상태의 소리로 응집되어 전달된 것이다.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 서라운드 스피커의 효과로 퍼포머들의 소리가 360도 회전하는 듯한 전방위적 울림과 공진을 경험하게 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추상적인 감정의 경계선을 만끽하며 우주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자신의 깊숙한 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태로 인도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퍼포머와 같이 눈을 감고 그들의 순수한 감각적 결합에 부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온라인으로 감상한 관객들은 이 전달이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며 작품이 단순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작년 전작에 비해 퍼포머들의 소리가 고르게 다듬어졌고 서라운드 시스템이 갖춰져 공진의 공감각적 효과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전작에서 수행한 퍼포머들의 거친 소리가 더 인간적인 개인 정체성과 공동체의 외침으로 들린 면도 있다. 이 작품을 앞으로 더 발전시킨다면 재고해 볼 부분으로 사료된다. 기존의 춤현장에서 익숙했던 춤추는 몸과 움직임 중심의 판이 아닌 소리 감각을 중심으로 안무를 재설정하여 접근한 점이 이 작품의 특별한 부분이다. 이 작품은 의미를 생성하려는 의도를 지닌 재현의 춤을 거부하고 현존하는 퍼포머 신체 자체에 집중하여 안무에서 몸과 움직이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다시 말해 컨템퍼러리 안무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 컨템포러리 수행성 작업에 근접한 보기 드문 개성 있는 작품이다.




임샛별 〈안녕하신가요〉 ⓒAiden Hwang




 두 번째로 임샛별의 〈안녕하신가요〉는 사회적으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감정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주제로 내세웠다. 사회적 약자의 감정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호소한 작품은 듀엣의 숙련되고 절제된 움직임이 주재료로 주제전달과 의미 표현 형상화에 주력했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 시킬 정도로 의식과 연결된 섬세한 몸짓 표현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임샛별 〈안녕하신가요〉 ⓒAiden Hwang




 구체적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는 태도부터 무시, 억울함 같은 참담한 감정선의 변화가 섬세하게 춤으로 구사되고 있다. 위압적인 구도소리와 시계소리 같은 효과음이 강압적인 환경에 내던져져 대응하는 소외되고 위축된 노동자의 몸짓을 긴박하고 처연하게 보이게 하였다. 실제 노동자들의 인터뷰 내용이 첨부되어 작품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실의 출구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의 고백과 댄서들의 위축된 몸짓이 잘 묘사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우리는 실제 불공정한 현실 세계를 반추하게 된다.
 주제 전달력과 내용의 짜임이 안무가의 의도만큼 잘 표현되었고 이미 여러 번 공연하며 다듬어서인지 매끄러운 안무에는 빈틈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노동자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일도 무용 분야에서는 드문 일로 고무적이고 의미가 있지만, 안무가만의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더욱 공격적으로 보여진다면 훨씬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김찬우·최윤석 〈하드디스크〉 ⓒAiden Hwang




 마지막으로 김찬우·최윤석의 〈하드디스크〉는 타장르의 표현방식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로 특히 연출과 기획이 특이한 측면이 있다. 허리디스크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김찬우에게 그가 이전에 전시했던 작품들을 재편집하여 극장 무대화 시켜보려는 최윤석의 제안과 연출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어쩌면 건강한 신체만이 아니라 아픈 상태의 몸도 오늘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기에 자연스러운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점은 신선한 면이 있다.
 첫 장면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야외공간에서 본인이 영상을 찍고 이를 연결하여 무대로 연결시키는 기법으로 공간과 시간을 한자리 무대로 연결시켜 시공간적으로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었던 전 작업을 무대로 실현시켜 오늘의 환경에 처하는 나의 몸과 낯설게 만나게 모두 꺼내어 놓는다. 유머러스하게 아픔을 희화화 하는 무거움을 가볍게 터치하는 표현이 한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했다. 장난스러운 유머 속에 사적으로 겪은 아픔의 시간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한 몸짓이 보였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무모할 정도로 비이성적인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는 그의 호기심과 어려움을 자초하며 겪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방식은 발상 그 자체로는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김찬우·최윤석 〈하드디스크〉 ⓒAiden Hwang




 반면, 지속되는 무모함과 허탈함의 연속은 관객들에게 작가의 시각을 반문하게 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이는 작품 안에 녹아있는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이거나 비범하지도 않아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가며 남의 일로 생각되는 측면도 있었다. 한마디로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이게 전시장과 정해진 시간에 집중력을 요구하는 무대와의 차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자신만의 생각을 실행시키는 김찬우의 과정중심의 퍼포먼스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다만 가치 있는 공통감의 의미를 예술에서 제시하기를 바라는 관객들에게는 ‘쓸모없는 시도’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국립현대무용단이 타 장르의 표현적 방법들을 수용해 안무의 영역으로 흡수했을 때 기대한 것만큼 전문무용인들에게 또는 대중에게 호기심과 공감을 주었을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3회째를 맞은 ‘스텝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안무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새로운 레파토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기획 측면에서는 확인되었으나, 경제적 지원과 멘토링으로 지원하는 것에 부응하는 국립만의 예술적 지향점 내지는 철학도 ‘스텝 업’되었는지 더욱 고민해 주길 기대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2020. 8.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Aiden Hwang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