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로나19 이후 장소 특정형 춤 공연
확연한 차별성과 완성도 배가, 환경예술로서의 경쟁력이 과제
장광열_춤비평가

코로나19로 인한 요인이 아니더라도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 춤계에서는 무대와 객석을 기저로 한 정형화된 공간, 곧 전문 공연장을 벗어난 장소 특정형 춤 공연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공연들은 특정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나 안무가, 춤 단체들의 기획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나 춤 예술과 다른 예술장르와의 협업이나 공공 기관에 의한 행사성 사업과 연계된 것들도 더러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나 언택트 공연이 증가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야외를 무대로 한 장소 특정 형 춤 공연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공연들이 코로나19의 대안을 뛰어넘고, 단순히 새로운 시도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독창적이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다면, 참가한 퍼포머들의 성취감은 물론이고 작품과 조우한 관객들 또한 새로운 감흥을 더 진하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이즈발레단 영주 부석사 공연 〈선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올 때마다 사시사철 변하는 은행나무 터널이 아름다웠던, 무량수전을 포함한 대웅전을 둘러싼 기묘한 공간 배열 등 방문할 때마다 평자의 탄성을 자아냈던 소백산 부석사가 춤과 만나더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석사는 국보급 문화재와 보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건물이 불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배치되어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사찰과는 그 차별성이 도드라진다.




와이즈발레단 〈선묘〉 ⓒ와이즈발레단




 8월 22일 토요일 초저녁 5시. 부석사 입구 일주문 옆 공간에서 시작된 와이즈발레단의 〈선묘〉 공연은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 3백 미터 정도를 이동하면서 아름다운 목조건물인 무량수전까지 모두 10개의 장소에서 내용을 달리해 각기 다른 춤의 유형을 선보였다.
 〈선묘〉의 제작진들(안무_김길용 홍성욱 유선식, 대본_이단비)은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을 관객과 함께 오르면서 총 10개의 작품을 옴니버스로 하나씩 공연하면서,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에서 융합의 춤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10개의 공연을 관통하는 큰 틀은 “인간의 수행과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일체다즉일, 하나는 모두이며 모두는 하나이고, 우주의 모든 사물은 서로 인연이 있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서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하나로 융합되기도 한다”는 화엄사상이다.






와이즈발레단 〈선묘〉 ⓒ와이즈발레단




 10개의 공간에서 5분 내외의 춤을 보는 내내 평자의 눈에는 춤 개개의 내용과 형식보다 그 춤이 추어지는 주변 풍광의 조합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선묘〉의 구성은 장소 특정 형 공연이 갖는 차별성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었다.
 회전문을 배경으로 한 이수아와 빌구데 아리옹볼드의 2인무에서는 굽어진 길과 나무, 이끼 긴 오랜 돌들과 사찰의 지붕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범종루에서 펼쳐진 살라마트 베크무라토의 솔로춤에서는 녹색의 잔디와 크지 않는 누각 사이 그 아래로 펼쳐지는 수많은 산자락과 하늘과 구름의 조합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질녘 소백산 부석사에서 춤추는 동체 사이로 내려다보는 산하는 장관이었다.
 부석(浮石), 떠 있는 돌과 대웅전 주변에서 여덟 명 무용수들의 느린 움직임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화엄사상이 배어든 고즈넉함이 가파르게 형성된 지형 속 나무와 바위의 조화로움을 보는 것 못지않게 그 잔상이 오래 동안 머물렀다.










와이즈발레단 〈선묘〉 ⓒ와이즈발레단




 가무극 〈선묘〉 공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에서 펼쳐지는 ‘2020 세계유산축전’ 중 경북 지역(안동과 영주 경주)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으로 8월 1일부터 시작, 8월 23일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모두 여섯 차례 공연되었다.
 김길용 단장의 해설을 곁들인 10개의 옴니버스 작품에는 발레뿐 아니라 현대무용, 비보잉, 팝핀, 탭댄스와 타악 연주도 등장했다. 클래식 발레 스타일의 춤 구성에 큰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있는 반면에, 팝핀이나 탭댄스 등 역동적인 움직임에, 코믹한 요소를 곁들인 놀이적인 구성, 피날레 무대 20여 명 댄서들의 군무에 환호하는 등 관객들도 선호도도 제각각이었다.
 〈선묘〉 공연을 보기위해 일부러 부석사를 찾은 관객들도 있었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유명 사찰에 들른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도 뻘뻘 땀을 흘리며 다양한 공연들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와이즈발레단 〈선묘〉 ⓒ와이즈발레단




 〈선묘〉는 일종의 로드(Road) 댄스였다. 676년 부석사 건립 당시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를 테마로 한 공연으로 실제 부석사에서 공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와 공간을 접목한 장소 특정형 공연, 그리고 관객들이 제작진들이 정한 곳을 이동하며 보는 구성을 통해 춤 그 자체가 아닌 공간과 그 공간을 둘러싼 자연까지 음미하도록 한 시도는 평가할 만하다. 또한 유명 사찰 건립과 연계된 스토리와  보유하고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토대로  공연으로 연계한 와이즈발레단의 기획력과 추진력도 춤 예술의 영역을 확대하고 관객들과의 새로운 소통 모델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선묘〉는 가무극을 표방했지만, 그러나 가무극적인 요소는 미미했다. 몇몇 장소의 춤 구성은 공연이 표방하는 것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일반인들을 의식한 다양한 춤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제작진들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와이즈발레단 자체의 단독 기획이 아닌 공공 행사로 치러지다 보니 불가피하게 연계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 이곳에서 재공연이 이루어진다면 가무극 형식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자연과 연계한 보다 세밀한 유무형의 조합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나이 Drive in 공연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코로나19는 공연의 형태도 변화시켰다. 올 들어 언택트 공연과 댄스필름 형태, 장소 특정형 공연이 많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나이무브먼트콜렉티브(Na-ye Kim Movement Collective)가 공연한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7월 10-12일, 17-18일,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야외 주차장, 평자 17일 관람)은 관객들이 자동차 안에서 공연을 보도록 기획된 드라이브 인 공연이었다.




김나이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장호




 사전에 예약된 관객들은 공연 장소를 중심으로 앞뒤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공연을 보았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주최측에서 안내해 준 주파수로 차 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공연 현장을 실내가 아닌, 객석이 아닌 자동차 안에서 보고 듣는, 드라이브 인 무비가 아닌 드라이브 인 무용은 확실히 새로운 체험이었다.








김나이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장호




 안무가 김나이는 50분 동안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 13인의 무용수들로 다양한 움직임을 조합해 냈다. “이상의 ‘오감도:시제1호’를 바탕으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나타난 공포와 절망 속의 삶을 현대화 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불안의 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골목길 속 ‘아해들’을 통해 그려본다.” 안무가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시종 댄서들의 움직임만으로 밀어붙였다.
 안무가는 댄서들의 숫자와 완급을 조절하고 차별화된 조형적 조합으로 다양한 구성을 동반했다. 13명의 댄서들은 마스크를 쓴 채로 서로 팔과 몸통을 잡거나 한두 명의 무용수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거나 아스팔트 지면에 몸을 밀착시키는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춤의 조합에 능숙하게 대응했다.








김나이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장호




 13명 댄서들의 열연은 춤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영상이 아닌 실제 댄서들의 춤추는 몸을 본다는 것, 공연 현장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기기를 거쳐 송출된 영상으로 보는 공연과는 분명 달랐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어둠의 정도가 주는 생생한 현장감도 실제 공연을 보는 흥미를 배가시켰다.
 그러나 좁은 춤추는 공간과 제한적인 조명기기는 50분 동안 집중력 있게 관람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30대 정도로 차량을 제한시켰지만, 공연장소가 원형이 아닌 사각형의 공간이다 보니 차 안에서 공연을 보는 과정에서 시야가 가려지는 것이 가장 난제였다. 옆에 있는 자동차의 크기와 자체의 높이에 따라 가려지는 공간은 더 넓어지기도 했다.
 공연장소가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면 정차한 차량에서도 댄서들의 동선 전체를 볼 수 있었고 그 감흥 또한 배가되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제한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은 작품의 길이를 조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나이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장호




 이번 무대는 안무가를 포함한 제작진들이 언택트 공연으로 인한 문제점을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소통을 전제로 드라이브인 공연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연을 주최한 김나이무브먼트콜렉티브는 무용수를 비롯 각각의 프로젝트에 맞게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추구하는 만큼 다음 드라이브인 공연은 공간과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더 확장된 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츠 캠프, 살롱 무용 등 향후 더욱 진화될
자연친화적, ​장소 특정형 춤 작업 


정형화된 전문 극장을 벗어난 특정형 춤 공연은 앞으로도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7월 제주에서 열린 아츠캠프 형태의 프로젝트와 8월 서울 성수동 카페에서의 새로운 춤 기획 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었다.

 지난 7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서 2박 3일간 열린 아트 캠프 ‘춤추는 섬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에서는 30대에서 60대까지 자영업자, 교사, 회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참여자 15명이 오름과 바다와 숲을 오가며 각 분야 예술가들의 가이드로 스스로 안무가가 되어 춤을 추고, 유리 조각으로 썬캐쳐를 만들어 작은 전시회를 갖고, 신나는 타악 공연과 그와 상반되는 요가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 
 무용 부문의 가이드로 참여한 안무가 장은정과 김혜숙은  참가자들과 함께 제주 오름과 아름다운 바닷가 그리고 특성화 된 갤러리를 오가며 춤을 곁들인 다양한 움직임과의 만남을 주도했다. 장소 특정형 공연이 아닌, 아츠 캠프 형태의 프로젝트였지만,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중견 안무가들을 연계한 춤과의 만남은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새로운 인지와 예술적 감수성을 돋우는 기회가 되었다.






열린 아트 캠프 ‘춤추는 섬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제주문화예술재단




 이 프로젝트는 2020년 제주문화예술재단 청년문화매개 특성화 사업 ‘청년문화기획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VR영상제작사인 〈인스피어〉, 커뮤니티 댄스 그룹 ‘Project Group 춤추는 여자들’의 장은정, 김혜숙, ‘마음몸 스튜디오’의 오은정, 안성찬, 전통예술단체 ‘(사)마로’와 다국적 밴드 ‘오마르와 동방전력’ 등의 아티스트들이 참여자들을 이끌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VR(가상현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9월 온라인 상(insphere.kr)에서 공유되며 비대면 체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철인 〈원초적 본능〉 ⓒ모므로살롱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모므로살롱’에서 8월 1일과 8일에 열린 정철인 안무의 〈원초적 본능〉은 특별한 콘셉트의 기획이 돋보였다.
 모므로살롱은 7월 28일부터 8월 16일까지 3주간을 정철인주간으로 설정했다. 그의 작품 공연 뿐만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취향을 수집해서 함께 전시, 소개한 것이다.
 ‘정철인주간’ 동안 아티스트가 셀렉한 음악이 모므로살롱의 BGM으로 흘러나오고 그가 영감을 받았던 영상들과 안무작들이 계속 상영되었다. 정철인 주간에 공연한 〈원초적 본능〉에서 사용된 소품 또한 정철인 주간 동안 설치물로 전시되어졌다. ‘정철인주간’ 동안 모므로살롱에 방문하는 고객에게는 아티스트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아티스트 키트가 함께 제공되어 안무가를 모르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같은 기획은 모므로살롱에 카페로 방문하는 고객에게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더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가 이 공간을 더 이해하고 새로운 작업 방식, 자기를 드러내는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향후 대한민국에서 전문 공연장을 벗어난 자연 친화적 환경을 이용한 작업과 장소 특정형 공연은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운용 면에서도 일회성 공연도 있겠지만, ‘춤추는 섬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와 '모므로 살롱- 정철인 주간'처럼 프로젝트형으로 기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환경예술의 영역과 연계 기획단계에서부터 보다 세밀하고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장소가 특별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공간이 갖는 환경적인 요소들까지 아우르는 작업으로 준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한 콘셉트와 콘텐츠의 차별성,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의 질(質),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관건이 될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2020. 9.
사진제공_와이즈발레단, 장호, 제주문화예술재단, 모므로살롱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