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출연 생활이 빡빡합니다
벨기에 피핑탐무용단 단원 김설진


 

 




"같은 작품을 100번 넘게 공연해도
그때마다 생생한 것을 펼쳐야 하므로 떨리고 긴장된다."

김채현
6월에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에서 주최한 ‘솔로이스트’ 행사에 참가하여 오늘 작품 <아빠>를 발표하였다. 6월 5일 귀국하여 7일에 리허설 하고 8일부터 오늘까지 이틀 공연하여 사실 스케줄이 바쁜 것 같다. 이런 터에 하는 즉석 인터뷰라 먼저 양해부터 구한다. 먼저 이번 <아빠> 작품 제작 경위부터 말해보자.
김설진 2011년 연말에 한팩으로부터 솔로이스트 공연 참가를 의뢰받았고, 지난 3월 작품 기본을 마무리하였다. 안무자인 가브리엘라 카리조는 제가 소속한 피핑탐(Peeping Tom)무용단의 예술감독이다. 이 무용단에는 프랑크 샤르티에라는 다른 예술감독도 있다. 카리조와는 작품 개념을 정하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나누는 방식으로 작품을 진행하였다. 움직임 개발에서도 많은 조언을 얻었다.

거의 공동 협력작이랄 수 있겠다.
작품 전체 구도가 마련되었을 때 카리조가 제목이 너무 차갑다고 하면서 <아빠>라는 제목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작품 제목은 원래 ‘Surface’였다. 껍질, 표면 같은 뜻인데, 제안을 받아들여 제목을 바꾸었다. 이 작품을 공연하기 전에 쇼잉 과정에서 우리 아이가 등장하였다. 쇼잉(showing)에서 사람들에게 작품 시안을 보여주는 도중에 내가 아이를 안은 적이 있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아이를 등장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작품 구성도 보강하고 제목도 그렇게 수정하였다. 또 아빠라는 발음을 ‘apa’라 표기하면 ‘아파, 아프다’라는 어감도 곁들여진다.

말을 듣고 보니, 한국에서는 단체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매우 드문 것이 쇼잉이다.
무용가나 일반 관객에 해당하는 지인들을 대상으로 작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이 쇼잉이다. 쇼잉은 무용단 나름대로 정해서 한다. <아빠> 작품은 두 번 쇼잉을 가졌지만, 2009년 피핑탐무용단의 공연작 <반덴브란덴 32번가>는 쇼잉이 매우 길었다. 8개월간 제작 기간 가운데 기본 틀을 마련하는데 석 달 걸렸고, 나머지 5개월 동안 거의 매주 쇼잉을 가졌다. 그러므로 쇼잉은 작품에 따라 심지어 수십 차례 이루어지는데, 작품 시안 전체를 반복 쇼잉하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드라마투르그나 음악 전문가, 작품에 직간접으로 관계하는 사람들, 일반 지인들에게 작품의 일부나 세부를 보여주며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안무자 스스로 창작품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입는다. 프레스 리허설 같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지난 한 주 동안 진행한 것을 다시 정리해볼까’하는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적응하니까 매우 창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쇼잉 과정은 벨기에의 다른 무용단에서도 하는 일반적인 과정인가?
어떤 무용단은 쇼잉을 공개적으로는 절대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무용단마다 유사한 쇼잉이 진행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상당히 많은 무용단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쇼잉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무용원 창작과를 졸업하고 2007년까지 안성수픽업그룹에서 활동하였다. 그 사이에 안무작도 약간 발표하였다. 2008년에 비엔나에서 피핑탐무용단 오디션을 거쳐 그해 11월에 무용단에 입단하고 그 다음해 3월에 벨기에로 이주하였다. 그때 정훈목씨와 함께 입단해서 지금도 같이 있다. 2004년과 2006년에 피핑탐무용단이 한국을 방문하여 공연했을 때 보고 제가 생각하던 경향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이후 피핑탐무용단 소속 단원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이번에 잠시 출연한 어린 딸, 아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단원 생활은 월급제인가?
월급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정훈목씨와 나는 월급제로 소속하고, 다른 벨기에 사람들은 수당제로 소속한다. 일반적으로들 생각하기에는 외국인들에게 수당제, 내국인에게는 월급제로 하거나, 아니면 모두 월급제로 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다. 그래서 피핑탐무용단에서 내국인은 수당제, 외국인은 월급제인 것이 처음 듣기에는 좀 이상해 보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임금 체계가 나눠져 있는데, 외국인들이 월급제로 소속하는 것은 외국인 취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벨기에에서는 고정급을 받지 않는 외국인은 취업이 불가능하고 취업 비자도 발급받지 못한다. 월급제나 수당제나 결과적으로 특별한 차이는 없어 보인다. 공연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일정치 않은 것도 내국인들에게 수당제를 적용하는 한 가지 이유라 생각된다. 1년에 100회 이상 공연하는데, 수당제 단원의 수입이 우러급제 단원에 비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공연은 3명의 스탭진과 한 사람의 투어 매니저를 포함해서 적으면 10명으로 진행되고 그 이상 인원이 참여하기도 한다. 현지인들은 연간 일정 기간 이상 작업하면 그 다음해에 그 전년도 임금의 85% 정도를 받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더라.

보험이나 복지는 어떠한가?
아동 수당이 나오고 의료 보험도 잘 되어 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어려서 월 90유로 정도 아동수당을 받고 있다. 의료 수가를 먼저 납부하면 나중에 통장으로 환불해주는 식으로 의료 보험이 운영된다.

전반적으로 그곳 생활을 평가하면 어떤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월급 받으며 하니까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축복받은 편이다. 이 기회에 한 가지 소개할 점은 벨기에 국가 지원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테레사 케어스마커가 운영하는 로사스무용단은 연간 1천만 유로를 지원받는다. 그 말을 듣고 금방 납득이 가지 않아 한참 계산해봤을 정도였다. 우리 돈으로 150억원이 넘는 지원금 아닌가. 피핑탐무용단도 연간 300만 유로를 지원받는다. 그렇게 거액을 지원받는 무용단이 세들라베, 울티마베즈, 아르코 렌츠 등 7단체이다.

벨기에 정부 지원금이 짐작보다 훨씬 큰 거액으로 보이는데, 지원금 액수를 다음에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한 10년 전에 비엔나에서 피핑탐무용단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단원 가운데 나이가 많은 남성 단원이 눈에 띄었고 한국에도 온 적이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시몽 베르스날인 것 같은데, 올해 65세이다. 가수이자 배우로서 많은 배역을 맡았다. 올해 65세가 되어 연금을 받게 되었다고 좋아 하더라. 83세 먹은 원로 단원이 있었는데, 2009년에 피핑탐무용단이 ‘32번가’ 작품을 초연하기 열흘 전에 세상을 떴다. 그 충격이 매우 컸었다. 그리고 70대 중반인 레오 드 뵐이라는 단원도 있다.

그러면 김설진씨는 이 무용단에서 애송이나 막내일 듯한데...
아니다. 단원 수는 적어도 저는 연령상 중간 정도에 속한다.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한국 사람이나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호기심도 많다. 동양에 대한 신비감이나 환타지도 작용하는 것 같다. 동양권 사람의 테크닉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동양 출신자에게 동양의 것을 해보라고 시키고선 그것을 그대로 아무 가공도 없이 무대에 올렸다는데, 한 마디로 도용한 것이다. 피핑탐무용단은 동양에 대한 시각보다는 휴머니스트적 시각이 기본인 것을 느낀다.



 "2년치 공연 기본 스케쥴이 미리 제공되는데,
시일이 지날수록 스케쥴 표에서 빈칸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단체에서 작품 출연 활동은 어떻게 하는가?
단원들에게 동일하거나 정형화된 테크닉을 요구하지 않고 단원 각자의 느낌에 바탕을 둔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출연 활동이 사실은 쉽지 않다. 같은 작품을 100번 넘게 공연해도 할 때마다 떨린다. 기능적으로 완벽한 동작을 요구하면 기준에 따라 집중하면 되는데, 이 무용단에서는 정신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을 동시에 조화시킬 것을 요구하므로 말처럼 쉽지 않다. 공연할 때마다 생생한 것을 펼쳐야 하므로 매번 긴장이 된다. <32번가>를 80회 정도 할 때까지도 완벽하지 않다는 의문이 들었고 100회가 넘어섰어도 그런 의문이 풀리지 않아 안무자에게 고민을 상의했더니 지금 현재 있는 상태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하더라. 


 



김설진, <32번가>

 
공연 활동은 어느 정도 하는가?
제가 한국에 오기 직전에 파리에서 공연하고 왔을 정도로 공연을 많이 한다. 한 달에 16회 이상 공연하기가 예사이다. 순회 다니면 한 달에 귀가하는 회수가 5일 정도밖에 안 된다. 사실 빡빡한 생활이다. 길면 1주일 정도 쉴 때가 있다.


김설진씨가 출연한 레퍼토리는 몇 개인가?
한번 만들면 장기 공연을 하기 때문에 피핑탐무용단의 레퍼토리는 많지 않다. 카리조는 프랑크 샤리티에와 함께 2002년 이래 다섯 작품만 만들었을 뿐이다. 제가 입단하고 나서는 <32번가>와 <아 루에> 두 작품만 만들었다. 이 단체 홈페이지에도 그 다섯 작품만 소개되어 있다. 한 작품에 집중해서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는 전략을 택하는 것 같다.

그러면 출연자 입장에서는 지겹거나 정체(停滯)된다는 걱정을 하게 될 법한데...
1년에 여러 작품을 발표하는 무용단도 있다. 피핑탐무용단에서 제가 정체될 것 같은 우려도 없지 않다. 그래서 며칠 간 이상 쉴 적에는 소품을 만들어 발표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즉흥을 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워크숍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다른 단원들은 자기 취미나 특기를 살리는 쪽으로 그런 시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현지에서, 다른 무용단으로 옮기는 관행은 어떠한가?
사람마다 일률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저의 경우 다른 무용단을 위해 한 달 동안 안무를 해준 적도 있다. 이번에는 저와 연령대가 비슷하고 친분이 있는 라슬로박무용단으로부터 안무 제안을 받고 저에게 신선한 계기가 될 것 같았고 또 3년 정도 같은 작품에 계속 출연하다 보니 물이 고이는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안무자와 상의하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그래서 피핑탐무용단, 라슬로박무용단 두 안무자가 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직접 협의하고 일정을 조정해서 라슬로박무용단 안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무용단은 상당히 가족적인 분위기이다.

연간 휴일은 어느 정도인가?
정식 휴가는 여름 1개월, 겨울 3주간이고, 공연이 있는 달에는 휴일이 불규칙하다.

지리적으로도 유럽 투어가 많을 텐데...
공연 스케줄 표를 항상 갖고 다닌다. 2년치 공연 기본 스케줄이 미리 짜여 제공되는데, 점차 시일이 지날수록 스케줄이 채워져서 빈칸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번에는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공연하였다. 이전에 이 극장의 소극장에서 공연하였는데, 이번에는 대극장에서 공연했고, 우리 무용단도 기대를 많이 하고 다른 때보다 훨씬 긴장하는 편이었다. 파리의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것으로 안다. 르 몽드를 비롯하여 여러 신문에서도 제가 언급되기도 하여 조금은 놀랬다. 더 부담스런 일은 어느 언론에서 ‘김설진이 찰리 채플린과 마르셀 마르소를 뛰어넘었다’고 언급한 일인데, 안무자가 그 기사를 보여주더라. 기분은 좋았지만 과도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이번 국내 초청 공연의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였는가?
한팩에서 받은 경비로 카리조의 안무료, 창작을 위한 현지 스튜디오 사용료 등을 조달하고 저의 항공 및 체재비까지 해결할 만큼 충분했던 편이다.

작품 <아빠>에서 얼굴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국내 경험에 비추어 아주 드문 연기라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무용원 창작과 실험무용제에서 그런 연기를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든가 숨을 코로만 쉰다든가 하는 식으로 시도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도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서 얼굴 모습과 호흡을 실험해본 작품이었다. 이번에 얼굴 표정이나 인체 근육 움직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화가들 그림에서 자극을 받았다. 뭉크라든가 에공 쉴레, 클림트, 고흐 같은 사람들의 자화상을 보고 나는 춤과 몸으로 그렇게 그려보는 시도를 이전에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아빠>에서는 그런 경험을 좀 다르게 적용해보았다. 평소에도 신체 변형을 부담 갖지 않고 놀이 삼아 자주 시도하는 편이었는데, 피핑탐무용단에서 안무자들이 그림을 가져다 주면서 화가들 자화상을 소재로 그렇게 표현해보도록 조언해서 돌파구가 열렸었다.

해외 현지에서 더 정진할 것을 기대하며 좋은 성과를 갖고 오기를 바란다. 자세한 인터뷰에 감사드린다.


 



<아 루에>

 
(인터뷰 후에 피핑탐무용단 웹사이트 http://www.peepingtom.be/en/info를 검색하였다. 2인의 예술감독과 8명의 단원이 소개되어 있고, 13명의 스탭진 명단이 게재되어 있다. 공연 일정으로는 예컨대 6월 14일부터 3일간 뒤셀도르프에서 <32번가>를, 6월 21일부터 3일간 취리히에서, 6월 29일부터 2일간 마르세이유에서 <아 루에>를 공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7월과 8월에도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연 일정이 잡혀 있다. <아 루에>는 2013년 여름 일정까지 게재되어 있다.)

 

2012.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