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유경 〈푸너리 1.5〉
장단, 그 속 깊은 가락
권옥희_춤비평가

절대적인 옛 춤도 없고, 절대적인 새로운 춤도 없다. 새로운 춤은 작가가 체험한 새로움으로,체험 속 경계이다. 우수 레퍼토리로 장유경의 〈푸너리 1.5〉(대구오페라하우스, 12월 10~11일)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11일 공연을 보았다.
 7년 전, 쨍한 태평소 소리와 휘몰아치는 장단에 얹힌 춤의 열기에 홀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작품 기운이 바뀌었다. 안무자(장유경)의 말을 가져오면 ‘좀 더 진지해’졌다. ‘푸너리(풀어내는)의 의미를 근간으로 그 상징과 특징, 의미를 무대화 한 작품’은 맞다. 그런데 장단, 그 ‘속 깊은 가락’은?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일정하게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푸른 색 기운이 감도는 무대는 이승의 시간이 아니다. 불두화가 내려앉은 흰색 고깔에, 엉덩이 부분을 부풀린(파딩게일 형태의 드레스) 의상을 입은 무용수. 푸른 바다 속 같은 무대를 부유하듯 걷는 이들은 경계를 실천하는 존재이자 비존재이다. 귀기로 서늘한, 다른 감각의 아름다운 첫 장은 〈푸너리〉의 단단한 핵 같은 장이다.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무대 깊은 곳에서 무용수가 걸어 나오면서 음악이 춤이 엇갈리며 서로를 방해한다. 누군가 길을 닦고, 남자가 여자(김정미)를 목에 태우고, 여자는 머리에 빨강색 긴 봉을 얹었다. 허리께에 꽂았던 부채를 무대 바닥으로 던지면 남자들 여덟 명이 부채 앞에 서 있다가 부채를 집어 들고, 일사분란하게 추는 춤이 매끈하다.
 한명 씩 몸을 던져 마치 신탁을 받듯 부채를 받아 들고 추었던 7년 전 〈푸너리〉 춤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빨강색 봉, 부채의 의미와 상징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몰아치는 춤에, 음악은 저 혼자 웅웅거린다.
 목말을 한 채 아슬아슬 봉으로 만들어내는 상징, 일주문 같은. 문의 경계 밖은 속계요, 안은 천계다. 경계가 무너지고, 신(귀신)을 부르는 방울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장구소리가 따라 붙는다. 여기서부터 음악은 춤처럼 아름답게 풀어지는데, 이번엔 춤이 없다. 그저 무대를 걷고, 달린다.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철재 숲이 내려오고 있는 무대. 김용철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손짓을 한다. 다른 세계로 발을 디딘 듯하다. 바지자락을 잡고 천천히 한 발씩 발을 뗀다. 철제 숲이 그를 가둔다. 걷다 돌아서 고개를 끄덕끄덕. 철제 숲을 돌아다니며 추는 김용철의 솔로, 만화경의 세계다. 멋을 부리지 않고, 세상을 조롱하듯 삐쭉빼쭉 춤을 추다가 순간 진지해지는. 춤을 몸과 음악에 실리는 과정을 잘 보여준 춤이었다.
 장과 장 사이, 그 경계에 선 천기량의 솔로. 팔을 위로, 땅을 단단하게 밟으며 추는 춤에 흥이 실린다. 어느 사이엔가 폭풍 성장하였다.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음악이 풀어지면서 춤도 흥을 싣는다. 품이 넓은 짧은 상의로 비닐의상을 가리고, 돌고 뛰며 자유롭게 풀어내는 춤은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풀어진다. 춤을 출 때마다 조명을 받은 등이 번들거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혹 동해안 별신굿을 풀어낸다 하여 물고기의 비늘을 상징하려한 의도였다면, 오류다.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열두 명 무용수가 마지막 관객을 등지고 한 팔을 위로 들고 호흡은 툭 내려놓고, 마음을 다해 풀어내는 굿 춤. 필자는 이 춤을 들어 ‘허공에 들어 올린 손은 일상의 현실을 놓아 보내면서 사후의 빛나는 세계를 잠시 영접했다 배웅하는 손’이라 했다. 〈푸너리 1.5〉의 의미와 상징을 가장 잘 보여준 ‘손’춤은 같은 춤이자 또 다른 춤이었다. 일상의 열망과 작은 근심 같은 것을 놓아 보내면서 무대 깊은 곳으로 사라질 때까지 무용수들은 돌아보지 않고 춤을 춘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며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뒤돌아보자, 다시 어둠속으로 끌려 들어간 에우리디케를 보게 되는
그 마음이었을까. 춤으로 건네는 위로가 행여 허사가 될까, 온 마음을 다해 돌아보지 않고 툭, 흔들, 춤을 추며 사라지는 무용수들, 아름다웠다.    




장유경 〈푸너리 1.5〉 ⓒ옥상훈




 춤만 따로 보면 〈푸너리 1.5〉는 7년 전 〈푸너리〉보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 미적 상징이 세련(진지)되고, 무용수도 더 단단해졌다. 달라진 것은 춤에 새로 입힌 음악(작곡 박승원)이다. 음악도 음악만 따로 보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춤이 시작되면서 음악과 춤음 엇박자가 나기 시작하면서, 중반이 넘어가고서야 춤에 제대로 붙었다. 춤에 있어 음악은 소리를 넘어선 춤의 또 하나의 중요한 형식이다. 그 형식 속에 어제의 〈푸너리〉와 오늘의 〈푸너리 1.5〉, 내일의 〈푸너리 0?〉가 들어간다.
 춤과 음악의 관계, 그리고 춤과 감동의 관계를 조정해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안무자 장유경이 〈푸너리〉로 자신의 춤 언어를 다르게 깨뜨려보고, 실험하려 한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다시 〈푸너리 0?〉를 만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 시간의 깊이가 다시 장유경이 들고 올 체험 속 경계, 〈푸너리 0?〉의 깊이일 것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1. 1.
사진제공_옥상훈, 장유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