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현희 〈이윽고〉
겹의 춤, 춤의 켜
권옥희_춤비평가

춤은 보이지 않는 어떤 틀 속에 들어있는 춤(생각) 조각들을 조합한다. 조합에 있어 그 경우의 수는 무한한 것이지만 춤 사회와 문화적 역량은 조합의 한계를 벌써 지시하며, 안무자가 사용하는 춤의 조합 또한 대부분 그 사고의 범위에 제한되어 있다. 이 조건의 제한을 넘어서는 춤을 (있다면), 보고 싶다. 말하자면 사고의 자유를 꿈꾸며 탈주에 성공한 사고가 춤 조각을 조합하고,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꾸고 있는 춤(삶)의 진실을 묻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하는 춤 말이다.
 장현희의 〈이윽고〉(대구오페라하우스, 12월 27일)는 안무자 자신이 처해진 춤적 실천의 암담한 조건들, 내적 갈등을 개인의 기억의 깊이를 따라가며 모노톤으로 건조하고, 단정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단정함 뒤에는 억압된 심정도 있다.








장현희 〈이윽고〉




 파편적으로 풀어놓는 춤, 얼핏 맥락 없어 보이는 이런 형식적 특징 때문에 오히려 안무자의 속내가 더 잘 드러났다. 춤으로 자신을 들여다보았던 자리가 또 하나의 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리가 되는, 감각적인 춤의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정사각형의 액자무대와 어둑한 조명, 무대 안쪽 깊숙한 곳의 어둠, 어둠에서 생성(나오는) 된 춤이 다시 어둠으로 사라지는, 춤이 춤을 붙잡고 춤과 춤이 겹쳐지며 장이 전환된다. 첫 무대 ‘호사다마’, 소리 내지 않고 지르는 비명 같다. 나쁜 꿈에서 깬 듯, 무용수들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이어지는 듀오, ‘겹의 시간’. 한삼과 현대춤의 융합, 조화와 모색 과정이 읽히지 않는다. 검정색 의상에 흰색 승무고깔을 쓴 두 남자가 춘 ‘하얀섬’. 두 남자는 서로의 겹이다. 흰색 망사치마를 입은 남자(김현태)가 춤을 춘다. 그(춤)를 지켜보며 또 다른 남자(권준철)는 액자무대(조명)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두 남자의 춤(삶)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춤을 지켜보는 또 다른 (자신일 수도)남자는 차갑게 식어 움직이지 않는 감정이고, 어떤 방법으로도 탈출할 수 없는 (춤)삶일지도. 탈출은 (액자무대)경계를 넘고서야 가능해진다. 무대를 벗어난 (춤)삶. 겹이 사라지고 오롯이 혼자인 존재. 어쩔 것인가, 이제. ‘하얀섬’은 춤(삶)에 대한 선승의 게송이나 화두 같은 춤이었다.








장현희 〈이윽고〉




 느닷없는, 품바타령에 이어 ‘(나는)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어, 죽으면 누가 내 무덤을 덮어줄 것인가’ 천진하게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얹은 춤, 노래 가사로 인해 가늠하기 어려운 (춤)삶이 그 깊이의 심리적 동기를 얻는다. 죽은 듯 엎드려 있는 한 남자(김현태), 그 옆에서 남자(권준철)가 추는 춤, 희망이 겹쳐지자마자 곧 지워지는 순간의 고립을 거듭 확인하는 듯한 춤이다. 이어 깊고 어둑한 곳에서 추는 이정진의 솔로. 춤인 듯, 춤이 아닌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검은 실루엣의 춤은 춤이 일어나기 전의 무(無)의 상태, 혹은 고립을 확인하고 내쉬는 깊은 한숨 같다. 그리고 가야금 선율에 탈춤의 몸짓을 얹은 듀오(권준철, 박정아). 중첩된 춤의 조각들로 안무자의 들끓는 내면을 어두운 색조로 차분하게 풀어낸 춤이었다. 마지막, 위로와 신명을 담아 툭 던져놓은 강강술래에 얹은 현대춤은 춤(삶)의 힘겨운 고비를 넘는, 극복을 춤추는 몸의 신명과 공감으로 친절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달라진 부분이다.






장현희 〈이윽고〉




 드물지만 춤추는 이들은 춤으로 입은 상처를 춤을 딛고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유형의 상처든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회복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과정이다. 노력하면 평안과 성장을 얻을 수 있다고(확신할 수 없지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재난의 시기를 함께 지나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약속 또한 여기에 있다고.
 춤에서 춤의 보편적 의미와 형식을 배제할 때 춤의 언어를 사용하여야 하는 이로서의 안무가 또한 당연히 배제된다. 삶과 존재를 영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춤. 행동방식을 고민하게 하며, 춤의 서사를 위트나 형식의 놀라움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춤이었으면, 더 좋았을까.
 춤적 실천의 불리한 상황을 뛰어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춤을 무대에 올리며 존재의 이유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춤이 주는 힘이라는 것을 확인한 무대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1. 2.
사진제공_장현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