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던테이블 〈햄베스〉
인류의 고전으로 뻗어간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_춤비평가

햄릿과 맥베스는 운명이 달랐어도 비극적 죽음의 주역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춤단체 모던테이블은 두 주역의 운명과 죽음이 합쳐진 캐릭터를 햄베스라 이름짓고 같은 제목의 공연을 올렸다(서강대메리홀 대극장, 3월 11~12일). 두 주역 각각의 운명만 해도 엄청난데, 두 가지 운명이 합쳐지는 기이한 운명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안무자 김재덕은 두 운명체의 비극적 삶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고 풀이한다.








모던테이블 〈햄베스〉 ⓒ김채현




 〈햄베스〉는 안무자가 2006년 시작한 〈다크니스 품바〉 시리즈의 새 버전이되 공연의 줄기는 〈다크니스 품바〉들과 대동소이하다.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 공연된 〈다크니스 품바〉를 여러 번 관람한 사람도 드물지 않을 테지만, 반복된 관람에도 물리지 않을 만큼 〈다크니스 품바〉는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면서 이번처럼 색다른 내러티브를 추가함으로써 대체로 선도를 유지하였다. 이런 중에서도 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안무자는 항상 자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던테이블의 김재덕은 안무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세상에 드문 그 특유의 이러한 역량은 주목거리였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안무자, 싱어, 라이터, 그리고 댄서 역할들을 겸하는 사람에게서 그 어느 한 쪽은 뒤처지리라 지레 짐작하기가 예사일 터인데, 안무자는 그 역할들 사이에서 꾸준히 균형을 유지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에 대한 춤계의 인식에서 단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안무자 역할이 아닌가 한다. 이에 따라 그의 공연을 접할 때마다 움직임과 그 구성부터 주시하기 마련이며, 그럴 적마다 대개 〈다크니스 품바〉를 주도하되 일반적인 명칭을 벗어나는 움직임들을 어떻게 소개하고 무엇이라 지칭해야 할지 다소 난감해진다. 일반적인 움직임과는 거의 대조적인 그 움직임들은 무대에 퍼부어지는 기총소사(機銃掃射) 또는 융단폭격(絨緞爆擊)을 연상시키며,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모던테이블 〈햄베스〉 ⓒ김채현




 공연 초입부터 양팔의 휘저음과 상체 또는 하체의 굴신과 회전을 동시에 진행하되 그 속도가 기막히게 빠른 움직임들이 대뜸 독무로 시작하여 크고 작은 집단무로 변주되며 지속된다. 흔히 일컫는 발광(發狂)의 상태보다 훨씬 발광스럽고 마치 가속 페달이 걸린 기세로 이어지고 이어져서 이 광란의 순간이 언제쯤에나 진정될지 사실상 예측을 불허하였다.
 〈햄베스〉에서 햄베스는 두 가지 운명의 복합체이므로 햄릿과 맥베스가 제각각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두 운명체의 죽음은 사실상 상반된 것이어서 햄릿의 죽음은 인간의 존엄과 결부되고 맥베스의 죽음은 빗나간 욕망의 결말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 죽음은 비극적이며, 오늘의 상황을 되새기도록 하는 효과를 발한 것으로 보인다. 수시로 출몰하는 그들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모두 이 세상의 햄베스들일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이 시사하려는 것은 오늘날의 극히 비정상적인 세상살이와 인간상이겠지만, 발광하는 움직임과 몸짓과 춤에서 원초적 생명력을 감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퍽 자연스런 아이러니로 믿어진다.










모던테이블 〈햄베스〉 ⓒ김채현




 〈다크니스 품바〉는, 평자가 알기로는, 해외 무대에서 국내에서보다 많게 수십 차례 초빙 공연되었다. 이 사실에서 〈다크니스 품바〉의 현대적 호소력은 반증(反證)될 것이다. 또한 〈다크니스 품바〉에서 노래도 분위기를 조절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판소리 창(唱)과 락의 스타일들이 어우러져 춤으로 가시화되는 노래들은 노래 이상의 노래이자 일테면 절규하는 가스펠로서 객석의 폐부를 찌르는 감이 있다. 노래 가사의 상당 부분은 알아듣지 못하게 얼버무려지고 되풀이되는 어절의 넋두리(〈햄베스〉에서 예컨대 ‘연천여버져 비여 연천연버이요’ ‘주주유오 훈도’), 반복되는 어절(〈햄베스〉에서 예컨대 ‘살아죽어 가져말어 살아죽어 가져말어’), 구음으로 뒤범벅되어 일단 지구상의 어느 특정 언어에 얽매이기보다는 언어의 원초적 음소를 동원하고 감각적 정서에 기대는 특성을 많이 갖는다. 여기에다 〈햄베스〉는 인류의 고전을 소재로 하는 특이점 때문에 해외에서 호응이 뒤따를 가능성이 없지 않겠다. 다만, 노래 가사를 인지하기 어려운 객석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름의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모던테이블 〈햄베스〉 ⓒ김채현




 〈다크니스 품바〉에서나 〈햄베스〉에서나 춤, 노래, 소리가 모여 원초적 생명력을 발산하는 신기(神氣)는 모종의 그리고 한국풍이 물씬한 신명을 구현해내었다. 가령 극점을 향해 질주하는 신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같은 정동의 이면에서 오늘도 햄베스가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실상을 〈햄베스〉는 부르짖듯이 환기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 〈햄베스〉는 햄베스들을 위한 보살핌이자 진혼의 굿(巫)으로 다가온다. 융단폭격 그리고 절규 끝에 잦아드는 무대 바깥의 객석에서 보컬 이중창(김재덕+윤석기)은 흐느끼는 듯한 음색과 만가(挽歌)나 마치 자장가 같은 위안의 선율로 끝을 맺는데, 그 가사 일부를 들여다본다. “레드선(Redsun) 햄베스... 무너 무너 무너 무너 뜨려. 녹여 녹여 녹여 녹여 내려. 날려 날려 날려 날려 날려. 너의 날래로 훨~ 훨~ 훨~ 훨~.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2021. 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