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1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신선한 작업으로 한 단계 도약한 즉흥춤
김혜라_춤비평가

제21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5월17~23)는 ‘공간과 즉흥’이라는 주제 아래 탄탄한 라인업 구성으로 꾸려졌다. 동숭동 야외 광장과 골목을 탐색하고 국제 협업 및 릴레이, 고수 맞수, 컨텍트 즉흥 그리고 테크놀러지를 활용한 디지털 공연으로 구성되었다. 올해는 그동안 댄서와 댄서, 연주자와 댄서가 현장에서 교감하는 접촉 즉흥과는 다른 결을 갖고 시도된 몇몇 작업의 신선한 조합이 주목된다. 특히 조명디자이너 Benjamin Schalike와 김형민의 작업(5월20,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피아니스트 박창수와 김재덕의 작업(5월21,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그리고 모므로움직임연구소 작업(5월20,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이 흥미로운 즉흥무대를 선보였다.
 현재 ‘즉흥 장르’의 활용은 댄서 측면에서는 즉흥적 몸짓을 통해 본성적인 자기 발견으로 이끌리기도 하고, 사회 공동체에서 즉흥은 관계의 소통과 치유의 도구로 활용되는 중이다. 따라서 즉흥은 행위자 스스로 내면에 집중하는 수행 과정에서, 대상과의 접촉으로 생성되는 에너지의 교감 측면에서 더욱 유용한 면이 있다. 이 장르는 완성된 공연의 형태보다는 결과물을 생성해 가는 과정에서 그 역할이 중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여러 차례 관람했던 즉흥공연에서는 관객들의 춤세포를 자극하여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면, 올해 축제에서는 온전한 공연물로서의 즉흥춤을 보게 되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_ 김형민 & Benjamin Schalike ⓒ장재수/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먼저 벤야민과 김형민의 즉흥공연으로 이 작업에서는 조명의 바리에이션과 댄서와의 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무대에서 조명이라는 매체는 연출적 요소를 극대화 하는 보조적인 역할이라면, 벤자민과 김형민의 무대에서 조명은 마치 공간에서 무브먼트를 주도하는 인상을 주었다. 다시 말해 공간을 구성하는 조력자가 아닌 표현의 주인공으로 ‘조명’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세부적으로, 김형민은 다채롭게 조합된 조명의 배열과 색감, 형태적 교신을 수렴하여 다소 건조할 수 있는 빈 무대를 움직임의 온기로 채운다. 그녀는 조명의 시그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차분하게 객석 근처로 와서 무대를 지켜보며 벤자민과 대화하듯 교신을 주고받는다. 또한 빛의 각도에 따라 면적에 따라 부각된 공간에서 몸통을 평편하게 수렴하는 움직임이 자주 발견된다. 벤야민의 조명 조율과 김형민의 접속으로 채워지는 무대는 리드미컬한 활동이 생성되며 익숙한 듯하지만 무언가 다른 무대공간으로 인지하게 된다. 한마디로, 조명 기술과 댄서의 바리에이션으로 구성된 작업이 신선하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_ 김재덕 & 박창수 ⓒ장재수/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즉흥에서 음악과 연주는 공연의 흐름을 완전히 주도하기도 하고 댄서와 예상치 못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중요한 매체이다. 김재덕의 음악적 자양분과 재능은 그의 안무적 역량에 독보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박창수와 만나서 절정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었다. 흐름을 보면, 소극장 중앙에 자리한 그랜드 피아노를 다루는 박창수의 연주는 서정적인 빗소리 배경과는 대조적인 실험성이 짙은 곡으로 조화로운 리듬과 이질적인 질감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전에 전혀 의도를 나눈 바 없이 공연 시간에 만나 순도 백프로의 즉흥적 몸짓과 실험적인 연주의 치열함으로 현장의 집중력을 고조시킨다. 초반에는 다소 일방적인 연주에 맞춰 반응하는 김재덕의 고립된 몸짓은 점차 피아노 연주 선율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마치 질서 정연한 건반의 리듬과 금속 재질 부딪힘의 예민한 소리의 변주가 김재덕의 몸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그의 무언가를 불러내는 듯한 인상이다. 관객은 60여분 동안 김재덕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의 구체적인 실존의 현장을 마주하면서, 즉흥 몸짓 리얼리티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무대였다. 강조하면, 역시 춤은 순전한 움직임으로 무장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아름다움을 준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_ 모므로움직임연구소 ⓒ장재수/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다음으로 모므로움직임연구소의 공연은 사전에 어느 정도 의도된 설정인지 순간적인 즉흥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공연을 살펴보면, 그들의 외형은 정착하지 못하고 이주하는 난민 같은 모양새로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도구들을 갖고 등장한다. 이런저런 도구를 펼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능동적인 움직임 흐름이 묘하게 삶의 현장을 반영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안겸, 이가영, 이보라미, 최원석 네 명 구성원이 역할이 있는 듯 없는 듯 뒤섞인 움직임에서 차츰 만들어지는 무대는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가족의 형태를 띤 이야기로 구성되는 인상이다. 가족 간 삶의 서사로 해석될 만한 연대감으로 관객에게 전달된 공연이 만약 그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나름 경쾌한 흐름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몸짓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불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띤 구성원들의 무심한 몸짓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즉흥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순간적으로 촉발하는 기운과 속도감도 아니고 무형식을 지향하지도 않은 듯 하지만, 일상의 호흡과 속도로 움직이며 정서적 유대감을 전달한 오묘한 작업이었다.

 전체 공연을 돌이켜 보면, 사람 간의 접촉이 차단된 요즈음이서 더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창조적인 활동의 원동력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예술가는 즉흥 작업을 통해 형식과 의도에서 자유로워진 내적 환희를 경험할 것이며, 관객은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이들의 몸짓을 보며 생명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21년을 꾸려온 장광열 예술감독의 수고와 그간 참여한 예술가들의 열정이 쌓여 올해 축제에서는 한 단계 도약한 기억할 만한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벤야민과 김형민의 빛의 무브먼트로 무대공간을 재인식하게 한 점, 박창수와 김재덕의 내적 열정이 샘솟는 야성적인 협업의 현장 그리고 모므로움직임연구소의 서사적 가능성을 생성해 내는 네트워크형 즉흥이 그것이다. 그간 단선적이었던 즉흥춤 방법론의 스팩트럼을 확장시키며 즉흥도 공연물로서 온전하게 충족될 수 있은 것으로 생각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2021. 6.
사진제공_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장재수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