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현대무용제 40주년
40주년의 ‘역사성’과 ‘로컬리티’를 지향한 모다페
김혜라_춤비평가

40회를 맞이한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가 “대한민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모든 것”이라는 야심찬 슬로건 아래 개최되었다. 불혹의 나이를 맞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춤축제인 모다페는 1982년 ‘한국현대무용향연’으로 출발하여 1988년 ‘국제현대무용제’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02년 ‘MODAFE’(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로 새롭게 발족하여 현재에 이른다. 그간 ‘모다페’는 때로는 정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국내·외 현대춤의 다양한 양상을 최전선에서 조망해왔다. 올해 모다페는 40년이라는 세월을 이끌어온 무용가들의 헌신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팬데믹으로 국제적 이동이 제한된 환경요인) 국내 안무가들을 조명하는 ‘로컬리티’(locality)에 방점을 두어 5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다양한 섹션으로 개최되었다.
 올해 모다페의 8개 주요 프로그램 구성을 살펴보면, 육완순, 최청자, 이숙재, 박명숙, 박인숙, 양정수, 안신희 전임회장들의 대표작을 상기시킨 ‘레전드 스테이지’,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대구시립무용단 4개 국가단체들의 ‘내셔널 댄스 컴퍼니’, 견고하게 자신들의 안무철학을 다진 전미숙, 안성수, 안은미의 ‘모다페 초이스’, 중견의 묵직함으로 무장한 김영미, 강미희, 황미숙, 장은정의 ‘센터 스테이지 오브 서울’, 개성 있는 안무력을 선보인 아트프로젝트보라, 브레시트댄스컴퍼니, 언플러그드바디즈, 이동하 댄스프로젝트, 시나브로 가슴에, 밀물현대무용단의 ‘모다페 컬렉션’, 젊은 안무가들로 구성된 ‘더 뉴 웨이브’와 ‘스파크 플레이스’ 그리고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역사와 미래의 정체성을 논한 ‘모다페 포럼’으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모다페는 레전드 무대에 선 노장들이 한자리에 처음 모인 축제라는 차별점이 있으며, 장르적 구분을 넘어서 전 세대(무용가)를 아우르는 화합의 장이라는 측면의 구성이 돋보였다. 그리고 ‘레전드 무대’(육완순, 최청자, 이숙재, 박명숙, 박인숙, 양정수, 안신희)와 장년세대인 ‘우먼스 이브닝’(김영미, 강미희, 황미숙, 장은정) 무대는 모다페가 40주년이 되기까지 축제의 시발점과 징검다리 역할을 한 세대들로 축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만한 기획이었다. 처음 축제를 운영하는 이해준 협회 이사장은 현대춤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취지로 서울만이 아니라 모다페의 주요 작품을 선정해 로컬리티 지향 차원에서 대구(4월27~5월1일)와 제주(5월21일)에서도 공연을 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역 공연을 하겠다는 열의를 보였다.



  

육완순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 최청자의 〈해변의 남자〉 ©Hanfilm,MODAFE



  

이숙재 〈훈민정음 보물찾기〉, 박명숙 〈디아스포라의 노래〉 ©Hanfilm,MODAFE



  

박인숙 〈마리아 콤플렉스Ⅲ〉, 양정수 〈비, 걸음2021〉 ©Hanfilm,MODAFE




 모다페에서 정성을 기울인 ‘레전드 스테이지’(5.28.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육완순의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1973), 최청자의 〈해변의 남자〉(1995), 이숙재의 〈훈민정음 보물찾기〉(2009), 박명숙의 〈디아스포라의 노래〉(1999년 ‘유랑’을 재구성), 박인숙의 〈마리아 콤플렉스Ⅲ〉(2015), 양정수의 〈비, 걸음2021〉(2014), 안신희의 〈지열Ⅲ〉(1983)로 1970년대부터 8·90년대 초연되었던 작업을 토대로 지속적인 시리즈로 창작되었거나 안무가의 대표성을 띤 작품의 일부를 발췌해서 시연하였다. 영상으로 보이는 과거의 원작과 실제 무대에서 시연되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연결하려는 편집의도와 비평가들의 첨언으로 박물관에 있던 유물에 호흡을 넣듯 입체적으로 생동감을 자아내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각 작품마다 10분 남짓한 시간에 작품의 알맹이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레전드’라는 찬사에 부합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80년대~90년대 활발했던 당시 대학별 시기별 춤스타일을 회상할 수 있었고, 그 시절 왕성했던 노장들의 창작력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안신희 〈지열Ⅲ〉 ©Hanfilm,MODAFE




 무엇보다 안신희의 〈지열Ⅲ〉는 안신희라는 한 예술가의 세월의 궤적을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상으로 송출된 1983년작 〈지열〉이 젊고 패기어린 테크닉으로 무대를 사로잡았다면, 〈지열Ⅲ〉에서 안신희는 육체적인 고통의 강을 건너온 성숙한 몸짓으로 땅을 딛듯 무대에 선 모습이다. 붉은 드레스의 실루엣에 몸과 마음을 실은 안신희의 춤은 있는 그대로의 나(몸)를 수용하고 있으나 춤을 향한 의지는 ‘지열(地熱)’이상으로 뜨거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니체의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삶이 결국 죽어가는 것, 고통 받는 것, 노쇠한 것에 대한 경건함을 알지 못한 것”이라 할 것이다. 안신희는 춤으로 경건한 예술가의 삶의 의지를 보였으며, 그로 인해 젊었을 때의 영상 속 그녀보다 현재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고 컨템퍼러리 춤의 산실을 보여줬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Hanfilm,MODAFE




 국립 단체와 대구시립무용단의 현대적인 작품들을 선보인 ‘내셔널 댄스 컴퍼니’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국립무용단 이재화의 〈가무악칠채〉(5.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었다. 이 작품은 2016년 국립무용단 자체 기획인 ‘넥스트스텝’에서 초연되었고, 2018년에 시간과 출연진 규모를 확장시켜 재창작되어 그의 참신한 안무 능력을 선보인 바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칠채’는 경기도 농악의 칠채 가락 중 쇠가락으로 3분박과 2분박으로 구성된 8분의 36박자의 현란한 장단이다. 작품의 주요 형식적 체계를 이루는 토대인 칠채 장단은 춤과 노래와 연주로 상응하며 역동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안무자는 3,2,2/3,2,3/..... 장단의 박을 분석하고 해체하여 조합하는 일련의 패턴을 무대 공간에서 춤꾼들의 춤으로 반응하고 집단적 형태로 무대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점유해 간다. 여기에 고영열의 맛깔 나는 소리와 전자음과 전통음의 유기적인 교합은 오늘의 감성으로 해석된 현대판 가무악의 세련된 퍼포먼스로 만들어 내었다.
 좀 더 〈가무악칠채〉 작품을 들여다보면, 무대의 시각적 구현도 전체적으로 젊은 감성이 묻어나는데 미니멀 한 오브제 활용이나 음악의 시간차를 대입한 군무는 프로시니엄 무대에 적절한 현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에 도발적인 붉은 색감의 조명이나 레이저와 프로젝션을 활용한 장면은 칠채 가락이 디지털 영상 악보에서 춤을 추는 인상으로 끝까지 칠채 장단의 변주라는 중심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있다. 말끔한 수트를 입은 댄서들의 춤도 한국춤의 스텝과 호흡을 무분별하게 내어 주지 않고 있으며 즉흥적인 몸놀림으로 칠채 가락을 경쾌하게 수렴하며 무대에서 놀이를 하듯 편안하게 상호작용한다. 송설, 이재화, 이요음, 황태인, 조승열, 박소영, 최호종, 이태웅 춤꾼들의 노련하고 여유 있는 춤도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감상하게 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악사들의 신명나는 두드림에 춤이 가속화 되어갈수록 관객은 일상의 복잡함을 잊고 쇼를 보듯 집중력이 고조되어 속이 시원할 정도로 악가무의 흥겨운 향연을 즐기게 된다. 칠채 장단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현대적 미감으로 시청각화 한 〈가무악칠채〉는 동시대 감성을 자극하는 한국춤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통 소재의 발랄한 형식적 변용, 대중성에 부응하는 스텍타클 한 공연 요소의 융합으로 한국춤 세대교체의 긍정적인 청신호를 확인하게 하였다.




    

김영미 〈허상화〉, 황미숙 〈구두〉, 강미희 〈바람의 말〉 ©Hanfilm,MODAFE




 무용계 중견안무가인 김영미, 강미희, 황미숙, 장은정 네 명의 ‘우먼스 이브닝’(6.6.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안무가이자 댄서인 자신들의 자전적인 무대를 보였다. 춤계 발전에 중추적인 다리 역할을 한 중견들로 춤이라는 운명의 끈을 잡고 춤으로 나를 이야기 한 것이다. 김영미는 〈허상화〉에서 자기 비판적 시각으로 욕망하는 자신을 질책하지만 다시 욕망의 파라다이스를 놓을 수 없는 나를 들여다본다. 한 평 남짓한 인조 잔디에 놓인 높은 의자에서 독백하는 그녀는 자신을 성토하듯 소리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결코 사회적인 욕망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더 높이 의자위로 올라가는 자신을 마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품을 통해 안무자만이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욕망의 허상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황미숙의 〈구두〉에서 빨간 구두는 보기에 매력적인 날렵한 매무새로 우리가 살아가며 선택하는 물질 혹은 이상을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황미숙은 한쪽 발에는 구두를 신고 다른쪽 발은 맨발로 무대를 서성인다. 끊임없이 요구되는 선택과 갈등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온 안무자의 서성거림, 회한과 상념으로 가득한 황미숙의 춤이다. 한편, 강미희는 〈바람의 말〉에서 어디인지 불확실한 공간에 떨어져 있는 나를 추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무의식의 공간인지 상상속의 공간인지 무대에 서있는 강미희는 바람이 인도하는 미지의 곳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스산하기도 하고 초연하기도 한 중년 여성의 정서가 가득한 무대였다.




장은정 〈정확한 침묵〉 ©Hanfilm,MODAFE




 마지막으로 장은정의 〈정확한 침묵〉은 그녀가 2·3·40대를 건너온 춤 시간(세월)이 집약된 무대였다. 좁은 조명에 비추인 네모 공간에서 사유하는 장은정의 치열한 몸짓이 읽힌다. 구획된 네모난 좁은 공간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며 그녀의 생각은 정리되고 움직임은 정제되어 침묵의 경로로 이동한다. 그 여정에서 몸부림은 떨쳐내어지고 그 자리에 내적인 힘이 축적된다. 나이듬이 쓸쓸하지 않은 이유이다. 세 칸의 무대바닥 공간은 연결되어 있지만 마지막 칸은 한 발작 떨어져 있다. 이 사이공간에서 온몸을 숙인 채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는 장은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직은 누군가를 떠나보내지 못한다.(이 춤은 고김기인 선생을 추모하며 2020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마침내 그 강(사이 공간)을 건너 다다른 곳에서 장은정은 바닥으로 몸을 낮추며 이별의식을 한다. 슬픔의 정서가 오롯이 전달되는 장은정의 ‘고요한 침묵’이다. 네 명의 안무가들의 공연은 세련된 시각적 자극도 없었고 날렵한 몸놀림이나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심오한 철학을 내세우지도 않았지만 묵직한 중년의 나를 진솔하게 보여준 공감의 시간이었다. 공연 중간 아르코 소극장(6.6.)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완결시킨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전미숙 〈결혼, 그에게 말하다〉 ©Hanfilm,MODAFE




 ‘모다페 초이스’의 전미숙과 안성수의 작품은 그들의 안무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전미숙의 〈결혼, 그에게 말하다〉(6.9.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2012년 초연되었고 여러 번 수정되어 재연된 작품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전미숙은 주체적인 자아로 살 수 없게 작동하는 사회 제도에 메스를 들어 그 안에 담긴 실체를 해부한다. 한마디로 소모적인 전투에서 탈탈 털린 오늘의 결혼이라는 의식, 이 제도를 둘러싼 갈등과 이상이 얽힌 개개인의 속내가 도마 위에서 저울질 하며 날뛰는 모습을 무대에서 보게 된다. 탄츠테아터 형태의 이 퍼포먼스는 결혼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토로하는 댄서들의 말과 연기로 작품의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첫 장면에 아기를 안고 객석으로 등장한 김형민의 노래(하울링)는 구슬픈 감정을 일으켜 오늘 공연이 환상이 아니라 ‘리얼’임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결혼의 결정체이자 기쁨의 소산인 아기를 보는 따스한 몸짓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개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요구, 갈등과 번민이 결혼의 실체임을 댄서들은 상황마다 사실적으로 춤과 말로 묘사한다. 이정도 되면 스타빈스키의 선율이 장송곡으로 들리며 스트라빈스키가 살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결혼은 순수함이 상실된 관계로 얽힌 사회적인 계약으로 점철되어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것이다. 안무자의 질문이 공허하지 않은 이유는 전미숙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며, 이 질문이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이성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항상 수려한 댄서들(차진엽, 김성훈, 박근태, 김형민, 이용우, 정태민, 최수진, 조지영, 임종경, 신호영, 한나지아)이 있어 그녀만의 시니컬하며 예리한 작가적 시선을 완성시킨다.








안성수 〈Short Dances〉 ©Hanfilm,MODAFE




 안성수의 〈Short Dances〉(6.11.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온전한 공연의 성격 이라기보다는 렉처(강의) 퍼포먼스 아니면 안무법 데몬스트레이션(설명)에 가까웠다. 안성수는 작품 막간 사이마다 무대로 올라와 안무 메소드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음악 선율을 동작으로 분석하여 프레이즈를 구성한 후 영화 편집 방식으로 조합한다는 것이다. 〈Short Dances〉 작품도 과거에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 중 주요 동작을 추출했고, 과거 작품에서 입었던 의상을 리사이클링(재활용)하였다고 말한다. 연이어 안성수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자신과 함께한 댄서들(이주희, 이은경, 김민지, 서보권, 조하영)과 자기 작품의 근간을 이룬 작곡가들의 음악에 경의를 표한다. 친절한 설명으로 관객들은 바흐, 모차르트, 브람스의 선율과 터키쉬 타악에 맞춰 동작을 언어적으로 구분하고 문법화시켜 대입해 가는 안성수의 안무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안무 스타일은 신고전주의 모던 발레 경향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움직임과 음악을 대등한 관계로 상정해 놓고 특정한 스토리나 플롯이나 역할도 없이 음악을 분석하여 시각화 하는 방식이다. 다시 한번 모더니즘의 형식적 탐미주의 스타일을 추앙하는 무용가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공연이 대극장 무대에 적합한 공연방식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아트프로젝트 보라 〈실리콘 밸리〉 ©Hanfilm,MODAFE



브레시트댄스컴퍼니 〈인(人)_조화와 불균형〉 ©Hanfilm,MODAFE




 마지막으로 ‘모다페 컬렉션’(6.2. 6.6.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최근 왕성하게 활동하는 개인무용단의 다양한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트프로젝트 보라의 〈실리콘 밸리〉는 이스라엘 안무가 샤하르 빈야미니의 안무작으로 그간 모다페에서 단골손님처럼 방문했던 이스라엘 가가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샤론에얄이나 오하린 나하드, 키부츠 무용단에서 선보였던 춤 분위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극도로 긴장된 신체와 피지컬 한 움직임으로만 승부수를 띠우는 안무 방식은 신선함이 떨어져서 오히려 세련된 시각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김보라의 작품을 선보이는 편이 좋지 않았나 싶다. 브레시트댄스컴퍼니의 〈인(人)_조화와 불균형〉은 박순호만이 할 수 있는 특화된 안무방식으로서 춤과 소리가 일체감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댄서의 신체가 연주 소리에 반응하는데 마치 관절 마디를 분절시켜 음을 해석해 내는 듯한 리드미컬 한 몸쓰임의 끝판을 보는 것 같았다. 박순호의 안무 방법론은 해부학적 토대 위에 가능한 신체 부위의 효용성을 탐색하는 스타일로 성실한 신체 훈련과 집중력이 요구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로 인해 생성되는 에너지는 몸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안무 방식으로 춤의 조형성을 구축하기에 적정선 이상의 기대치를 항상 채워준다.




언플러그드바디즈 〈Empty Project_After Light〉 ©Hanfilm,MODAFE



이동하 댄스프로젝트 〈이미지의 배반〉 ©Hanfilm,MODAFE



밀물현대무용단 〈Reboot:출발점 위에 서다 2.0〉 ©Hanfilm,MODAFE




 언플러그드바디즈의 김경신은 〈Empty Project_After Light〉에서 전체 군무진이 어떤 고지에 다다르려는 행동으로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막연한 욕망의 무엇?을 표현한다. 긴 전작의 주요 부분을 짧게 편집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긴박한 장면들의 동기를 알 수가 없어 합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이동하 댄스프로젝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나 밀물현대무용단의 〈Reboot:출발점 위에 서다 2.0〉도 적절한 무대 연출과 공간을 점유해가는 드라마틱한 형태감으로 구성된 무대로 보기에는 말끔하지만, 반복적인 격렬함과 분란함의 이유가 무엇이고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를 작품에서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이 구조적 틀의 완성만으로 춤이 되는 것이 아니듯, 이유를 알아차릴 수 없는 에너지의 과열 속에 담기지 못하는 내용(주제)은 ‘일방적인 외침’일 뿐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반면, 시나브로가슴에 권혁의 〈ENERGY〉는 몸의 에너지가 잉태되어 증폭되는 힘의 원리를 집중력 있게 보인다. 댄서들(권혁, 김소연, 김혜진, 문수주, 변혜림, 양진영, 임회종)의 원무를 보고 있으면 ‘원시적인 생명의 일렁임’ 같은 힘의 생성 내지는 소생 과정을 보게 된다. 여기에 신전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조명 아래 댄서들의 에너지는 증폭되어 유한한 공간을 뚫고 나가는 듯한 인상이다. 권혁은 몸으로 출발하여 의식으로 전이되고 나아가 무한한 형상을 구축해 가는 순전한 춤의 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번 권혁의 작업은 ‘모다페 컬렉션’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시나브로가슴에 〈ENERGY〉 ©Hanfilm,MODAFE




 미래를 짊어질 젊은 무용가들의 ‘더 뉴 웨이브’와 ‘스파크 플레이스’는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다. 작년부터 이어진 팬데믹 상황이지만 이렇듯 큰 규모의 축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위험하고 고단한 시기임을 감안하면 신작이 많지 않은 이유도 이해되고 전 세대를 아우르며 기존의 국내작품을 발굴하여 선보이려 했던 주최즉의 노력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증명할 역사적인 작품이 많지 않으며, ‘대한민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에 찬 슬로건에 대응할 만한 센세이셔널한 간판 작품을 꼽을 수 없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의 근거가 외형적인 프로그램상 구색을 갖춘 것으로만은 증명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예술가들의 수고와 헌신은 존경받을 만하나, 컨템퍼러리 정신과는 스스로 자가격리된 작품들이 앞으로 얼마나 살아남아 기억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내년 모다페는 올해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그간의 역사를 잘 되짚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이고 컨템퍼러리 정신이 생동하는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2021. 7.
사진제공_Hanfilm, MODAFE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