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다섯 오〉
이미지에 비해 명징하지 않은 상생 회복의 메시지
김혜라_춤비평가

국립무용단의 신작 〈다섯 오〉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9월 2~5일)에서 선보였다. 국립무용단손인영 예술감독은 미세먼지 같은 환경문제와 코로나19 감염병까지 자연의 질서가 깨진 작금의 사태를 진단하며 상생과 회복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하였다. 작품 〈다섯 오〉는 오행원리가 담긴 오방처용무를 길잡이 삼아 현실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해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 중심에는 처용이 문제의 해결사이자 이 작품의 주요 메신저가 된다. ‘다섯 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파생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오행 사상에 천착하면서도 오방색의 이미지화에 주력한 춤과 음악 무대연출에 공력을 들였다. 〈다섯 오〉는 손인영 감독 부임(2019년 11월) 후 첫 안무작으로 차후 국립무용단의 창작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국립극장




전체 작품은 3막으로 구성되었다. 1막에서는 출연진들의 어둡고 분주한 동작으로 불안한 현재를 묘사하였고 연이어 다섯 처용이 현실을 해결할 키(key)로 무대에 등장했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2막에서는 오방처용무의 오방색과 사상적 의미를 연계시켜 생성, 변화, 소멸되는 에너지 흐름 표현에 주력하였다. 여기에 승무, 씻김굿, 택견을 접목하여 목화토금수 오행의 의미를 동작으로 시각화하며 음양의 조화를 복구하고자 하였다. 또한 음양오행의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군상들의 춤인 3막은 생명력 넘치는 일상의 부활을 피력하고자 하였다.

전체 작품 전개에서 현재-과거-현재-미래로 극적 시간을 넘나드나 오행의 사상적 의미를 춤의 원리로 풀어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지금 예술감독이 부임하기 이전 몇 년간 발표된 국립무용단의 쇼(show) 성격이 짙은 퍼포먼스 경향과는 달리 전통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되 오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동시대 담론으로 확장하고자 한 방향으로 이해된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국립극장




창작 의도에 부응하는 단원들의 능숙한 춤, 오행 사상이 고려된 섬세한 음악적 해석 그리고 동작과 융화되는 오방 색감의 무대장치는 언뜻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먼저 상체의 유연한 표현력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듯한 초록의 목(木) 이미지가 그려진다. 이어지는 화(火)를 상징하는 장면은 전통승무에 내재한 번뇌의 의미보다는 변화와 성장 에너지로 강렬하게 해석해낸 춤이다. 성장에 이어지는 생명의 소멸과 죽음을 위무(慰舞)하는 씻김굿의 춤은 수(水)의 상징성으로 연결된다. 죽음 후 다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의미로 토(土)는 택견동작 중 특히 상체의 리드미컬한 유연성과 대비되는 발사용법인 품밝기 기술이 땅을 다지고 정비하는 의미로 표현된다. 다시 강인한 인간의 의지를 다지는 금(金)을 상징하는 남성 출연진들의 칼군무가 이어지며 전체적으로 오행사상의 의미를 춤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국립극장




그러나 작품에 들인 품과 의도와는 달리 현장에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피상적이었다. 오행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순환과 상생의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주제가 모호하게 짐작될 뿐이었다. 더구나 흰 탈과 흰 장삼을 입은 다섯 명의 어벤저스 처용은 초반에 이목을 끄는 등장 이후 적극적으로 맥락(내용)을 연결시키는 역할이 미비해져 버렸다. 내용보다는 강렬한 이미지만 가득한 무대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클라이막스 2인무의 격렬한 결합마저도 극적인 아우라가 희석되어졌다. 일상의 회복을 기원하며 전체 단원이 춤추는 마지막 장의 에너지도 과하게 보이며 극장 무대마저 좁아보였다. 또한 세상의 이면을 보이고자 시도한 거울바닥도 의미가 부각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음양오행사상의 상징적 보고(寶庫)인 오방처용무를 접목시키는 서사적 맥락이 명징하지 않아서 작품 내용이 허하게 보이는 것이다. 꽉 찬 무대에 뚫려 있는 서사의 빈틈을 오방처용무의 원리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국립극장




오방처용무는 무대(공간)에서 각각의 처용들이 서로 대응(청황,홍황,백황,흑황)하며 긴장과 화합(상배무相背舞,상대무相對舞)을 반복, 상충되는 요소를 수렴해가며 마침내 원형(좌선회무左旋回舞)으로 하나가 되며 상생의 의미를 획득한다. 여기에 호탕하면서도 남성적인 묵직함이 배인 하체의 걸음 동작과 느리지만 수건을 뿌리치는 상체의 능동적인 동작에서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진경과 평안을 기원하는 태평성대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직선, 사방, 원형, 태극선의 형태감으로 점진되는 처용무의 공간배치도 질서와 조화를 지향하는 의미로서의 서사가 마련된다. 반면 공연작 〈다섯 오〉는 오행의 전개 방식을 평면적으로 나열(분리)하며 각각 다섯 원소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미지화하려 했다. 물론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진 오색·오행의 이미지는 감각적인 미감으로 보이나 전체 흐름이 연결되기보단 각각의 독립적은 장(field)으로서만 제 기능을 했다. 따라서 통합과 공존의 서사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국립극장




처용이라는 소재는 신라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인무에서 5인무 형식으로 변천하며 그 내용도 민간설화에서부터 궁중의례로 이어졌으며 현재도 다양한 장르에서 상상력이 발휘되어 해석되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처용무의 벽사진경(辟邪進慶) 의미는 처용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해 내는 관용과 비범함이 천년의 세월 속에 이어지는 핵심적인 매력요소이다. 작품 〈다섯 오〉에서도 처용무의 벽사진경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과욕을 물리쳐 오행의 이치와 흐름을 회복하고자 희망했다. 그러나 〈다섯 오〉 작품에서는 처용이 피상적 이미지에 머물러 어떤 해결책으로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처용과 오행사상으로 실마리는 잡았으나 명징하게 춤으로써 사상적 접점을 찾아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1. 10.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