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문제
‘드러난 몸’의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송준호_주간한국 기자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문제가 또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 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방통위 심의에서 음란물로 판정받고 삭제된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삭제한 데 이어,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올려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논쟁의 확산은 ‘벗은 몸’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방통위의 애매한 음란물 기준과 일방적인 삭제 집행을 성토하며 박 교수에게 지지의 의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사회적 정서’를 이유로 노골적인 성기 사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는 맥락(context)의 고려 여부와 연관돼 있다. 어떤 이들은 벗은 몸을 예술적 창작이나 영감의 대상으로 이해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순간 단지 ‘음란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나타난 이 시각차는 지난 세기부터 이어진 예술과 외설 논란의 사례들 이후로 조금도 좁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성을 띠었던 1990년대에 소설가 마광수 씨와 장정일 씨가 소설에서 성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음란문서 제조, 배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김인규 씨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부부의 알몸 사진을 올려 ‘보통 사람의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치면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일부 유죄를 선고받았다. 무대에서 이런 시각차는 더 크다. 1994년에는 연극 <미란다>가 ‘공연음란죄’라는 죄명을 알린(?) 이후로 최근까지 많은 작품들이 알몸 연기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작품성과는 상관없는 일부 저질연극들의 성행 때문에 무대에서의 노출은 일반적으로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제작사도 처음부터 상업적인 목적을 두고 노출 자체를 홍보 전략으로 내세워 무대 위 벗은 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
 물론 몸을 드러내는 시도 자체가 관객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논란과 수준 높은 예술작품의 경험을 거친 사람들은 작품의 맥락상 정당성 있는 노출에 대해서는 호평을 안겨주기도 한다. 연극 <졸업>이나 <페르귄트> 등이 그런 예다.
 특히 드러난 몸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춤 무대는 대중이 노출을 통한 예술적 표현의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고 있다.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봄의 제전>이나 얀 파브르의 <눈물의 역사>는 그 파격적인 전라(全裸)의 활용이 아직도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회자된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이런 공연들은 점차 표현방식이나 주제를 넓혀가며 문화적 의미를 재발견하는 존재로서의 몸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신(裸身)의 활용에 있어 가장 진보적이라는 춤계조차도 무대 밖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씨는 한 패션지에 상반신 노출 사진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서 감봉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내규를 들어 징계를 내린 발레단의 결정은 몸을 통해 예술을 표현하는 무용가마저도 몸에 대한 사회의 보수적인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몸은 결국 인간의 뿌리이자 핵심이다. 오늘날 분야를 막론하고 몸이 화두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몸은 이제 개인의 영역에서 나와 사회와 교류하는 공공 문화의 표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나 표현의 자유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촌스러운 현실이다. 이미 방송에서 <올랭피아>나 <세상의 기원>을 두고 즐거운 잡담을 벌이는 세상이다. 해묵은 논쟁으로 소모적인 대립을 하기보다 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여 더 진일보한 담론을 만드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