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에세이_ 제5회 제주국제즉흥춤축제
무엇이 그들에게 ‘다른’ 예술적 영감을 주었나
장광열_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7월 4일 토요일 오후 제주돌문화공원.
새벽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아침에는 간간이 햇빛이 보이는 날씨로 변했다. 정오를 넘으면서 드문드문 구름이 몰려오더니,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3시쯤에는 다시 조금씩 비를 뿌렸다.
 오후 3시 30분. ’제주의 자연과 함께 하는 즉흥공연‘은 Tamura Ryo와 이미리, 일본의 즉흥 연주자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즉흥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막을 올렸다. 타무라가 준비한 악기 편성을 고려한 듯 두 아티스트는 오백장군갤러리 입구 콘크리트 벽과 사각형과 원형으로 조성된 돌의 형상들이 멀리서 오버랩되는 공간을 택했다.
 악기의 음량을 고려한 이들의 선택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라이브 사운드만으로도 귀가 즐거웠다. 타 장르 예술가들과의 다양한 즉흥 공연으로 10년 넘게 내공을 쌓은 이미리의 춤과 공간과 움직임 사이를 헤집는 타무리의 음악은 기막힌 조합을 이루었다.
 4월 제20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 하려 했던 두 아티스트의 협업 작업은 두 달 뒤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구현되었다. 고수들이 만들어내는 예기치 않은 우연성의 합(合)은, 그 내공이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끝까지 다잡았다.











 현대무용가 박일규의 즉흥은 제주의 신화와 맞닿아 있었다. 어머니의 방 주변. 설문대할망과 그의 자식들인 오백 장군을 오랜 잠속에서 깨우는 박일규의 움직임은 살아있는(living) 제의적 퍼포먼스였다. 조형물의 형상에 순간적으로 몸을 대비시키는, 그 안에서 새로운 공간을 해석하는 아티스트의 남다른 감각… 육십을 훨씬 넘은 나이에 온몸으로 창조해내는 예술적 감흥은 그 잔향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제주국제즉흥춤축제의 초청 아티스트들은 스스로 자신이 공연할 장소를 정한다. 제주에 거주하는 무용가 한정수, 곽고은과 전지예, 강세운과 김한결은 전설의 통로와 그 옆 큰 느티나무 아래, 숲과 돌,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는 확 트인 공간, 그리고 설문대할망제단 옆 세 개의 커다란 돌무덤이 도열한 잔디 공간을 택했다.
 30미터 남짓 좌우로 늘어선 돌 사이 사이를 한정수는 붉디붉은 붉은 의상과 노란 꽃을 곁들인 움직임으로 채색했다.
 곽고은과 전지예의 2인무는 두 아티스트의 즉흥적인 움직임의 동선이 바뀔 때마다 접촉과 떨어짐이 반복될 때마다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몸의 조합을 포함해 눈에 들어오는 풍광의 변화무쌍함까지, 자연과 함께 하는 즉흥 공연의 묘미를 한껏 살려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에코댄스의 무용수 강세운과 김한결의 즉흥 2인무는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세 개의 높은 돌무덤과 대지의 기운을 마치 온몸으로 소통시키는 느림과 부드러움, 낮은 눈높이의 움직임이 묘하게 자연과 어울렸다.













 재불 안무가 이선아와 소리꾼 은숙, 더블베이시스트 박수현의 국제 협업즉흥은 춤과 소리,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설문대할망의 오랜 잠을 깨우기라도 하듯 그 氣(기)가 범상치 않았다. 설문대할망제단 곳곳을 넓게 활용한 이선아의 동선과 독특한 질감의 춤은 제단 주변의 돌과 나무와 어우러지면서, 이 공간이 갖는 특별한 제의적 분위기까지 감싸 안을 정도로 그 미감(美感)이 특별했다.









 박수영과 이지은이 선정한, 각기 다른 안면 형상의 12개 돌과 고목이 어우러진 공간은 마치 시공을 초월한 성지(城地) 같았다. 흰색 천을 즉흥적인 움직임을 곁들여 12개의 형상에 감싸는 장면은, 제주돌문화공원을 지키는 수 천개 돌들의 영혼을 감싸고 어루만지는 헌무(獻舞)였다.







 김재덕은 신체를 활용한 즉흥적인 움직임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를 손수 몸으로 보여주었다. 작은 정원 사이로 난 길 위를 돌면서 고저 완급을 조절하는 속도감 있는 춤과 시간이 지날수록 땀으로 젖어드는 그의 지체를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무용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 즉흥적인 움직임의 매력은 타무라의 자유로운 음악에 실려 독특한 자연 공간 안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캘리그라피 퍼포머인 김효은과 무용가 박연술 협업은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너무나 확연한 차별성으로 프로그래밍을 다양화시켰다. 동일한 공간 안에 채워지는 이들의 차별한 된 공연만으로도 관객들은 환경예술의 무한한 확장성을 경험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는 가장 탁 트인 공간을 선택했다. 서 있는 돌이 아닌 평평한 돌이 여러 개 놓인 그곳은 그 돌 자체가 댄서들의 온몸을 지탱하는 대지가 되었다. 무용수들 사이로 들어오는 멀고 넓은 시야, 그리고 풍광은 그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롭기까지 했다. 7명 댄서들의 지체는 각기 다른 움직임의 질과 양태로, 신체를 매개로 하는 춤 예술의 특성을 한껏 발산시켰다. 돌과 함께 춤추는 것을 넘어 자연과 함께 춤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순서였다.









 하늘 연못에서의 춤은 물속과 스카이라인 사이로 보이는 숲과 하늘의 매칭이 언제 보아도 기막히다. 여기에 댄서들의 몸이 이동하고 움직일 때마다 자연은 더욱 변화무쌍한 합을 창출해 낸다. 소리(은숙), 더블베이스 연주(김수현) 타무라 료의 즉흥 음악이 자연과 몸을 함께 춤추게 했다.









 제5회 제주국제즉흥춤축제 메인 공연인 ’자연과 함께 하는 즉흥공연‘ 10개의 프로그램 외에 같은 장소에서 행해진 커뮤니티 즉흥 공연에는 제주 애월읍 상가리 인근 마을 주민들(아우라), 서귀포시 청소년들(무용다방), 그리고 제주시 어린이들(꿈다락문화학교 밤과별이야기)의 즉흥공연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밤 10시부터는 조천읍 조이빌삶의예술마을 스튜디오에서는 네크워킹 파티와 함께 즉석에서 즉흥 연주와 춤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올해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7월 2일에는 커뮤니티즉흥 워크숍(강사 이미리, 스튜디오 제주마루)과 재불 안무가 이선아의 즉흥 워크숍(제주시 탱고올레 스튜디오)이, 7월 3일에는 전문 무용수들을 위한 imprography 워크숍(강사 이미리, 에코댄스 스튜디오)가 진행되었다.











 코로나19로 제주에서도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지난 4년 동안 매월 5월에 개최되던 제주국제즉흥춤축제도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리는 설문대할망축제가 취소되면서 공연장소를 잃어버렸다. 관객 무료입장, 시설 무료사용, 육지에서 오는 참가자들의 1일 숙박 지원, 음향 스태프 지원의 혜택도 사라졌다. 내한하기로 했던 해외 아티스트들의 방한도 어려운 상황, 예술감독이자 제작자인 나로서는 어떻게든 단안을 내려야 했다. 결국 7월초로 옮겨 같은 장소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제주돌문화공원관리소와 기획추진단의 관계자들이 힘이 되어주었다.
 지난 4년 동안 축제를 진행하면서 비가 온 것은 처음이었다. 폭우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관객들은 우산을 쓰고 주최측이 준비한 우의를 입고 공연을 지켜보았다. 준비한 100개의 우의는 금새 동이 났다. 공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관객들은 그 숫자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냥 바라만 보았던 돌의 형상들이 아티스트들의 즉흥춤과 만나면서 새롭게 조망되었다. 관객들 중 한 분이 던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에서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은 단숨에 보상받았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은 대한민국 제주도가 세계 인류를 위해 선사한 자연 문화유산이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제주도의 다양한 돌들이 전시되고 있다.
 1999년 탐라목석원 원장이었던 백운철(76) 기획단장이 평생 수집한 돌 관련 유물 수 만점을 기증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돌문화공원은 자연휴양림을 포함한 100만 평 규모의, 제주도의 모든 것을 담은 생태공원으로 지금도 조성되고 있다. 박물관과 휴양림, 민속마을인 도란마을, 오백장군갤러리 등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설문대할망전시관은 지난해 9월 건축물이 완공된 상태이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아티스트들이 즉흥춤을 출 때, 그건 무용수의 춤이 아니다. 돌이 춤추고, 자연이 춤추고, 제주신화의 중심인 설문대할망이 살아 함께  춤춘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도의 민속이나 역사 신화를 집대성해 놓은 곳이다. 백운철 단장이 수십 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유물을 기증하면서 요구한 것은 명예도 돈도 아니었다.
 단지 40여 년 전부터 ’상상하고 기획‘해 왔던, 제주의 독특한 신화, 역사와 민속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공간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공원의 명칭을 ’설문대할망 신화공원‘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공원의 완성을 위해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올해로 20년 협약 기간이 끝남에 따라 그의 이 꿈은 어쩌면 그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희대의 문화유산을 더 많은 지구인들이 공유할 수는 없을까?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그런 생각으로 5년 전 시작되었다.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사장 박인자)가 제주도에 춤을 통한 글로벌 문화공유를 표방한, ’제주댄스빌리지 조성 프로젝트‘를 시행 중인 것이나 제주돌문화공원에 즉흥이란 예술 콘텐츠를 결합시키는 작업은 냉동고에 보관된 문화유산을 해동시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하게 이를 공유하려는 노력들이다. 대한민국 예술계의 시선이 자연 문화유산의 재창조 작업에도 머물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2020. 8.
사진제공_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정미숙, 아트프로젝트보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