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연재_ 뜰을 거닐면서(1)
당신은 어느 성의 성주인가
이순열_본 협회 공동대표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처박혀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을게다.
-오스카 와일드

 

 시골에 묻혀 살고 있는 내게 심심하거나 적적하지 않느냐고 걱정해주는 분들이 더러 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홀로 쭈글 트리고 앉아 있는 일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내공을 쌓아온 터라, 이 구석에서도 무료함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밤이면 아득한 허공에서 별들의 춤이 생동하는 우주의 무대를 향해 마당 한 귀퉁이에 내 전용객석이 마련되어 있으니, 적적할 리가 없다. 시골 살기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잊어버린 채(아니면,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별 보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나는 이따금 나를 찾는 벗들을 이곳 객석으로 초대한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않는가.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논어는 그렇게 시작된다. 비록 배우고 익히는 일(學而時習)에는 미치지 못해도 멀리서 찾아온 벗들은 언제나 반갑다. 베를길리우스, 띠띠루스, 아힘 볼린스키, 올가 스뻬찌브쩨바, 바슐라르, 페르디낭 숙발, 노발리스, 그리고 바가바드 기와를 선물해준 크리슈나 등이 가끔 내 별무대의 객석에 동석하는 벗과 스승들이다. 궁색한 뜰을 거닐면서 생각난 일들, 모두가 잠들고 난 다음, 별을 마시려고 적요(寂寥)의 이 후미진 뜰을 찾아준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몇 회에 걸처 늘어놓아 볼까 한다.

 

입실론 에리다니의 성주

 별들이 깡그리 사라져 자취를 감춰버린 것은 아닌데도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가 그리도 어렵다. 하기야 꿈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도시인들이 영화 속의 미래여행에서 어쩌다 별을 그려본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폐허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거늘, 애써 별을 바라본들 무슨 소용이랴.
 지금 우리 지구에는 치명적인 자연결핍증(NDD, Nature Deficit Disorder)환자들로 득실거리고 있다. 자연의 생태계에서 어느 어종이나 조류가 멸종의 위기에 휘몰리고 그것이 곧 인류종말의 조짐으로 다가오는데도 인간은 태연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소나 돼지, 닭과 오리 등 가축이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에 걸려 퍽퍽 쓰러지고 집단폐사가 속출하면, 그제서야 정신을 못차리고 좌왕우왕 비틀거린다. 인간은 희희낙락거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밀물이 코 앞에 바짝 들이닥치지 않고서는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동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천문학자나 우주탐험가를 제처놓고는 아무도 별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별들은 이미 집단폐사의 무덤 속으로 매몰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별들의 집단폐사가 어찌 가축의 집단폐사만큼 절박하지 않으랴. 그런데도 누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지워저버린 별들의 죽음을 애도 하면서 만종을 울렸는가.
 낮의 조명이 흐려지고 밤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면, 후미진 에떼로또삐(heterotopia)의 내 객석을 향해 별 무대의 막은 오른다.
 별들은 저 넘어 아득한 곳에서 엔스타시스(enstasis)와 사마디(samadhi)의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다. 그러나 허나 그 눈부신 빛을 향해 치솟아 오를 때만 춤은 열락의 불길로 타오른다는 것을 내게 알려준 것은 랭보였다. 그런데도 도시에 묻혀 있었을 때, 나는 별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늘 위의 에리다우스 강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옛적에 어느 고리타분한 언론사에 있었을 때 New York Times의 주말 판을 구독한 적이 있었다. 여행, 문화 등등...각 분야로 나뉘어 그 하나 하나가 웬만한 잡지 분량이어서 꼼꼼히 읽고 있을 겨를 없었다. Metropolitan이라는 섹션에서도 그저 냄새만 맡으면서 이리 저리 뒤적이고 있는데 까닭도 모르게 어느 한 곳에 내 눈이 박혀버렸다.
 《레드맨 마침내 붙잡혀》(Redman Arrested at Last)라는 표제의 그 기사에는 으리으리한 나무 위에 한 청년이 매미처럼 매달려있는 사진이 곁들여 있었다. 왜 끌렸는지도 모르게 빨려들어 그 기사 글 읽고 있는 동안 나는 넋을 잃은 듯이 황홀경에 젖어들었다.
 데뻬이제(depayse)의 무리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들끓는 도시, 꿈이 말라버린 그 불모의 땅에 카우보이의 말 밥굽 소리가 전자음향으로 변해 요동치고 있는 황량한 폐허가 뉴욕이거니 생각해 왔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참으로 놀라운 성주(城主)한 분이 살고 계셨을 줄이야!
 그의 이름은 레드맨, 나이는 스물둘. 그이 성은 센트럴 파크의 후미진 곳에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너도밤나무 위에 축조되어 있었다. 지상에서 밤하늘의 별이 가장 아름답게 비취는 곳이 그의 성이라고 그는 우긴다. 그렇다면 그 성이 어찌 루드비히 2세가 축조한 노이슈반슈와인만 못하랴.
 그런데 단풍으로 한껏 치장하다가 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나무가 헐벗어갈 때 그의 성은 허물어져 버렸다. 환하게 내리 쪼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 수상성곽(樹上城郭)에서 아직도 단잠에 젖어 있을 때 별안간 공원관리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와. 이제 네 장난은 끝났어.”

 레드맨이 나무 위에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8년 전, 그의 나이 열네 살 때부터였다. 안식처가 아니라 차를 수용소로 화해하는 비정한 도시의 빈민가에서 그는 아무에게도 침해받지 않은 은밀한 공간을 구축하려했다.
 모두가 잠들고 난 끝은 밤이면, 목공소에 널린 짜투리 나무 투막을 모아 센트럴 파크 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무 위의 축선은 시작되는 것이다. 공원의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그는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그 성은 어찌나 튼튼하게 지어졌던지 8톤 트럭으로 깔아뭉개려 해도 버틸 만큼 견고했다고 그 기사는 허풍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잎이 무성했을 때는 아무도 찾지 못했던 그 운둔의 성도 겨울이 되어 잎이 모두 지고 나면 헐벗은 나무 위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그 모습은 드러내고 만다. 공원 관리인들이 허겁지겁 그 성을 허물어버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 이듬해 겨울이 되면 광활한 공원의 다른 한 쪽 큰 나무 위에 영락없이 또 다른 성곽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다.
 이렇게 헐리고 다시 짓기를 8년, 레드맨이 축조한 성은 모두 12개에 이르렀다. 공원당국의 필사적인 추적 끝에 강산도 변할 만큼 긴 세월 공원의 밀림 속에서 신출귀몰했던 전설의 성주도 마침내 붙잡히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꿈의 성주 레드맨은 침략자들 앞으로 끌려나왔던 쟌느 다르끄처럼 공원 당국자의 심문을 받는다.
  -왜 공원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공원의 나무 위에 무허가 바라크를 지었는가?
  -질서를 어지럽히지도 않았고 나무도 훼손하지 않았다. 숲속의 나무 위에 성을 쌓았던 것은 인간을 파괴하려고
   소음의 중무기로 우리를 침공해오는 도시의 공해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그 공해는 우리들로부터 별들
   을 약탈해 갔다. 이 성에서 나는 별들을 다시 찾고 싶었다.
  -찾고 싶은 것은 찾았는가!
  -에리다누스 별자리의 입실론.(Epsilon Eridanus)내 성에서 보는 그 별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 그 별을 바라보려는 일념으로 8년 동안 12개의 성을 홀로 구축하다니!
바라노니,
바람결에 실려오는 성스러운 노래를 꿈속에서 들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목가를 짓기 위해, 천문학자처럼 하늘 가까운 종루(鐘樓)곁에 누으리라.

사라져버린 꿈을 되살리기 위해 드높은 교회의 첨탑, 그 종루에 올라 보들레르는 목가를 지으려 한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이면 종탑의 문을 모두 닫고 환상의 궁전을 축조한다. 그것은 레드맨 성전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주변에서 성주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옛 성주들이 지어 놓은 성곽은 여기 저기서 허물어져 간다.
 뉴욕에 다녀오신 분들게 나는 종종 입실론 에리다니의 성주께서는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묻는다. 허나 그의 소식을 전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성과 함께 별들이 사라져 버린 폐허의 도시 뉴욕, ‘혹성탈출’의 잔재만 나뒹굴고 있는 그 황량한 거리에 레드맨의 꿈은 처절하게 구겨진 채 어느 휴지통속에 처박혀 버렸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지구의 어느 곳엔가는 아직도 별을 바라보고 있고 사람이 잊을 것임에 틀림없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면 에리다누스의 별들은 성주가 실종한 슬픔에 젖어 그 모습이 차츰 흐려져 간다. 이제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백주에 램프를 들고 찾을 것이다. 성주는 어디 있는가, 성주는 어디 숨어 있을까.
 성 하나 짓지 않고 깃발만 요란하게 흔들어대면서 성주로 둔갑해버린 마녀가 아니라, 별을 향해 날아오르는 성주, 보다 더 아름다운 화음으로 그리고 열락에 넘치는 춤으로 날아오르는 파에톤을, 이카루스를, 랭보를 나는 찾을 것이다.

-막 내림
그리고 객석의 조명 밝아짐

 


다음 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Ecodance : Enstasis 춤과 Ecstasis 춤

2012.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