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좌담_ 서울특별시 지원사업 2017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사업
2017 서울청년예술단, 청년을 돌아보다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은 서울특별시에서 추진한 것으로 올해 수혜자는 500여명 정도였다. 7개의 예술장르 중 무용 문학 전통예술부문 대표 멘토로 참여한 위원들의 좌담을 통해 이 사업이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진단해 본다.(편집자 주)

 

 

 

 

이지현: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은 올해 수혜자가 500여명이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사업이 청년예술가를 설레게 한 것은 기본적인 복지로써 이 사업의 확대 가능성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의 청년도 힘들지만 고용보험 등 법제화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청년의 삶은 더 위태롭습니다. 서울시에서 직영으로 올해 3월부터 연말까지 10개월간 진행하는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에 대해서 대표 멘토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기인 선생님과 설동준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 분야, 전통 분야, 무용 분야에 대해 현장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덥고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자 소개해주시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인: 저는 서울청년예술단 문학 대표 멘토 이기인입니다. 시를 쓰고 있습니다.

설동준: 저는 서울청년예술단 전통분야 대표 멘토를 맡고 있는 설동준입니다. 전통음악 단체에서 기획을 맡았었고 지금은 프리랜서 기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지현: 저는 무용분야 대표 멘토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무용 분야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서울청년예술단 안에서 비율이 매우 적은 분야로, 5단체가 선정되었고 멘토 3분이 단체를 나눠 전담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을 좀 둘러보겠습니다. 무용, 문학, 시각, 연극, 음악, 전통, 다원 이렇게 일곱 개 분야에서 104개 단체가 선정이 되었고 3인 이상 구성된 단체로 응모하게 되어있는 규정에 의해 104개 단체의 500여명이 서울청년예술단의 활동가로 선정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자체들의 문화예술사업이 문화재단을 통해서 진행되는 것에 반해, 이 사업은 서울시 내지는 성남, 인천, 경기도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청년수당 정책과 맞물려서 서울시에서 직접 직영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지원사업과 많은 차이를 낳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이 공고됐을 때, ‘청년’을 20세에서 35세까지로 설정한 그 범위가 이슈가 되었지요. 현장에서 35세까지를 과연 청년으로 봐야할 것인가라는 논의도 있었고, 혹은 35세를 넘긴 분들이 사업설명회에 와서 여러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는 호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정된 무용단체들은 원래 함께 활동하던 35세 이상의 동료들을 사업운영비 중 인건비로 고용하는 형식으로 함께 활동하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원 내용은 창작활동비와 사업운영비로 나눠져 있는데, 창작활동비가 개인에게 10개월간 월 70만원이 지급이 되고, 사업운영비는 공연이나 결과로 나올 수 있는 창작물에 대해 사용하는 비용으로 단체별로 1500만원 규모로 지원되어 한 단체에 사실은 5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 지원되고 있습니다. 또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단체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행정적 지원을 맡고 단체들에 대한 예술적 지원을 멘토 위원회로 고려한 것입니다. 멘토 선생님 한 분당 2-3개의 팀이 전담될 수 있도록 구성을 해서 지금 멘토 선생님이 약 30명 정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또, 대표 멘토단 회의와 상하반기 두 번의 단체들이 함께 하는 워크샵 등이 사업의 중요한 절차로 설정되어 있어, 다른 사업이 1년 중 몇 달을 과정으로 갖는 것에 반해 이 사업은 보다 지속적이고 다양한 관계의 지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상반기 워크샵들을 끝내고 대표멘토 회의가 있었지요. 이제 4개월 정도 지나 조금은 안정되고 실행의 윤곽도 드러나 여러 흥미로운 사안들이 얘기가 됐는데요, 오늘 자리를 함께한 두 분 선생님들과 문학, 전통, 그리고 무용 분야 현장에서 과정이 어땠는지, 어떤 이슈들이 등장했는지를 이야기 나눠 보지요.

 

 

설동준: 시작을 놓고 보면 어려움이 많았던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이 다른 사업에 비해 지원 조건이 좋은 편에 속하다 보니 초기 사업 설계 단계에서 사각지대 예술가라는 존재를 어떤 기준으로 선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뛰어난 사람도 지원을 할 텐데 어떤 기준으로 걸러낼 것인지, 기존 단체를 놔두고 신규 단체를 설립해서 행정 요건만 맞춰서 지원하면 어떻게 변별해 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 사업 설계를 검토하고 심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예술 지원 사업이 수월성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고, 중간 역량 정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업이 그런 공백을 매우기 위해 대규모로 예산을 투입하는 본격적인 사업이다 보니 선발단계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논의가 많았습니다.

이지현: 저희도 사실 비율상으로는 단체는 매우 적게 선정되었고, 응모율도 다른 분야에 비해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었지만 사실 선정 과정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지금 말씀해 주신대로, 잘하는 단체들도 이 정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청년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지원이 좀 낯설게 다가온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사업의 취지에 맞게 선정하려고 심사위원들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저희 무용 쪽은 활동을 많이 하는 단체들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사각지대 무용단 보다는 수월성에 있어서는 굉장히 잘하는 단체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다크 써클즈, 예술집단 꾸니, Ninety9 아트 프로젝트, 댑 댄스 프로젝트, 젬 댄스 컴퍼니 등 5개 단체가 선정되었습니다.

 

 

이기인: 저 역시 멘토로서 이번 사업의 성공과 우려를 동시에 살폈습니다. 사실 저는 단체를 구성해야만 본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는 부분이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단체 등록과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은 예술인들은 일찌감치 본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보통의 문학 활동은 개인적인 작업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3인 이상의 단체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잡지 출간과 시낭송과 같은 유형으로 그 영역이 비좁다고 느꼈습니다. 또 단체 활동은 어쩌면 개인의 활동을 잠시 유보하는 일입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던 이들은 분명 단체 활동에 익숙치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오랜 시간 공공의 예술 활동을 펼친다면 어느 정도의 후유증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개인 창작물에 대한 몰입도가 한순간에 떨어질 수 있음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시, 소설은 철저하게 혼자서 일구는 작업입니다.

이지현: 문학분야는 세 단체로 가장 적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이기인: 네. 말씀하신대로 문학 분야는 모두 세 팀입니다. 이들은 높은 경쟁률을 통과한 팀으로 이서구, 시간, 삐삐라는 예술단체입니다. 이들은 현재 문학의 새로운 실험장에 있으며 아주 흥미로운 예술 활동으로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초 제가 우려했던 문학 활동의 영역을 이들은 과감하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여러 장르의 멘토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 느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이라는 장르가 타 장르에 비해서 보다 ‘덜 얽혀있구나’ 하는 느낌을 언뜻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공연’은 처음부터 개인이 아닌 ‘모두’를 고려하여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그런 무대를 꿈꿉니다. 이 지난한 이야기를 저는 멘토 선생님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혼자의 마음에 익숙한 저로서는 여러 겹의 마음을 동시에 헤아려야 하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현: 분야별 특성이 워낙 다르고, 이 사업이 체감되는 것도 분야별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통 분야도 상반기 워크숍까지 다 치루셨는데 진행하시면서 어떠신가요?

설동준: 저 개인적으로는 멘토링을 할 때 단체의 생존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편입니다. 아마 멘토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이 ‘착시효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단체에게 연말까지 나오는 예산은 확정되어 있고, 작품제작계획 역시 확정되어있으니, 사실상 올해는 계획을 ‘실현’하는 일만 남은 셈이죠.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을 한다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장르 워크숍에서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도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이지현: 오히려 더 경계심을 주려고 하시는군요.

설동준: 네. 그래서 6월부터는 멘토링을 할 때 2018년도 계획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단체들 입장에서는 올해 사업을 위해 선발된 멘토가 대뜸 내년 사업을 물으니 처음에는 좀 당혹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사업이 착시였는지 아닌지는 내년을 통해 증명될 것이기에 내년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올해 사업만 하고 예술 활동을 끝낼 것이 아니라면, 이번에 얻은 좋은 조건 속에서 만드는 작품을 내년의 어떤 맥락에 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해봐야한다는 거죠. 대부분의 단체들이 그 부분에 있어서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많은 국악인들은 음악적 차원에서의 테크니션으로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기획이나 경영이나 전략을 공부하고 익히는 과정이 없다시피 합니다. 게다가 예술가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파트너의 역할을 맡는 기획자도 많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결성 초기에는 단체 내부에서 그런 고민을 끌어안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실제로 국악분야 워크숍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의 나눔과 지원에 대한 목마름을 많이 느꼈습니다. 단체들도 그런 고민과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걸 실제로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경험이 없는 거죠.

이지현: 워크샵 프로그램 역시 ‘스타트업 단체의 생존기’를 하셨네요. 이러한 논의들을 갖고 조별토론의 방식으로 진행하신 것인가요?

설동준: 그 특강은 일종의 자극용으로 던진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예술은 다른 벤처 영역처럼 순수 민간 생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100% 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업 영역과 동일한 시장 생존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거죠. 다만 전통 분야는 장르 규모에 비해 지원금 규모가 큰 편에 속합니다. 전통분야 생태계가 그 구조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극을 주고 싶었습니다. 단체들도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 같았는데, 또 다른 문제는 그러한 고민을 나누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전통 분야에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체의 개별적인 과제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장르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지현: 문학에서는 워크샵이 어떤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나요?

이기인: 무용 팀의 분위기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팀이 많지 않아서 보다 세밀히 그들의 예술활동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서는 서로 다른 팀의 예술활동을 넌지시 알 수 있었습니다. 문학하는 이들은 가끔 모든 일을 멈추고 골방에서 뛰쳐나올 때가 있는데, 그 몰골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참으로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우리도 힘들지만 너도 힘들구나’ 하는 눈빛들의 교환이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격려하는 표정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날 모인 젊은 예술가들은 하반기 계획도 ‘모두 잘하자’ 하는 묵시적인 약속을 했습니다.

이지현: ‘한줄 작성’이라는 프로그램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청년예술단을 키워드로 던졌을 때 어떤 것들이 나왔나요? 궁금합니다.

이기인: 이번처럼 청년예술단원으로서의 활동과 지원은 흔치 않은 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알바 하나를 줄이고, 그 역량을 자신의 예술세계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된 일은 매우 큰 사건입니다. 시낭송 음원을 작곡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중견예술가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일들은 문학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변화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쁨과 감회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런 정서를 한 줄로 묘사한 것들입니다. 사실 한 줄 묘사라고는 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진 얘기들이 좀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진 만큼 이들의 예술 활동을 각자의 삶에 작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이지현: 저희는 7개 분야 중에 유일하게 상반기 워크샵을 조금 늦게 8월 20일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2-3단체가 해외 레지던스 작업 스케줄이 있어 7월 중에 하기가 어려워 대표들이 준비 모임만 하고 있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준비된 공연을 시연하고 그것을 놓고 대화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저희만 있을 땐 비교가 되지 않아 몰랐는데, 멘토단 회의를 가니 다 약간의 네트워킹과 서로 소개, 이 사업을 같이 하는 친구들로써의 자리를 가졌는데 우리는 너무 과업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표 멘토 회의가 끝난 후 단체대표들을 만나 그러한 피드백을 해주었어요. 참여단체들은 이 사업이 주는 혜택에 전반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 있는 분위기라서 결과에도 매우 성실하게 임하려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자제시켜야 하는 상황이죠 (웃음).
이 사업이 너무 낯설기 때문에 부연 설명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기본 생활비 개념이다, 너희들이 받아도 되는 혜택이다, 이 혜택을 받았다고 해서 결과에 쫒기기보다는 10개월이 좋은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 되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근데 오히려 반응은 제 말을 못 믿겠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적으로 너무 낯선 얘기인거죠. 학교 다닐 때도, 사회에 나가서도 다 경쟁하고 잘해야 선택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가 저의 이러한 얘기가 너무 뜬금없게 다가오나 봅니다. 예술계 모든 지원금이 수월성 중심으로 경쟁 구조를 만들다 보니까 서울시가 본래에 가지고 있었던 아주 좋은 의미, 청년들에게 약간의 여유, 약간의 경제적인 제공을 통해서 청년들이 자신들의 꿈이나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주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동준: 저는 요즘 단체들을 만나면서 예술가의 생존과 역할에 대해 선배 세대들이 제시하는 방법론과 조언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마치 정치를 볼 때 386세대가 주류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예술계 안에서도 그런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386세대는 고도 성장기에 스스로 시대의 주역이면서 권력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민주주의 때문에 독재정권과 싸우기도 했고 억압당하기도 했지만 또한 스스로 시대를 열 수 있는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최전선에서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한 세대와 이미 다 정리된 허허벌판에 서 있는 세대는 다릅니다. 그런데 지금 청년 세대, 혹은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이렇게 잘 정리된 시대에 왜 그렇게 해매냐?”라는 질문이 던져집니다. 이건 좀 폭력적인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지금의 청년들은 방향을 잡기 어렵거든요. 옛날 세대는 방향이 있었죠. 싸움의 대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나서 보니, 사회적 자본이 쌓였습니다. 국악계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국악계 같은 경우는 민간단체들이 결성되던 시기에 약간의 신기성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해외에서. 서양에서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도 어느 정도 있었고, 정책의 지원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서 해외에서 투어하고 국내에서 공모사업을 선점하기 용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술의 사회적 자본을 쌓은 사람들이 지금 예술감독도 하고 교수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굉장히 한정된 자원이고, 특수한 시대적 자원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소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세대인 지금의 청년 예술가들은 속된 말로 야지에 던져진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정책적 접근으로 이들을 육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 청년예술가들에게 너무 쉽게 창의성, 도전 정신을 요구합니다. 이게 과연 정당한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전통 분야 민간 영역에서 예술가의 생애주기모델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졸업하고 5년차이면 어느 정도, 20년차이면 어느 정도, 원로이면 어느 정도,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한 모델 같은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공모사업에 20대, 40대, 원로 예술가가 모두 지원을 하고 있죠.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선생님이 물러나주셔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원로 예술가들에게도 마땅한 출구전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모사업 등의 경쟁적 창작 상황에서 명예롭게 물러나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부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마치 세대 싸움처럼 보여 지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본질은 한 장르에 대해, 한 분야에서 인생을 바쳐온 원로에 대해 사회가 어떤 격과 예우를 보여주는지, 그것을 보면서 후배 세대는 어떤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기인: 저는 좌담에 앞서 ‘청년’이라는 푸른빛을 품은 이 용어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청년이라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이후 맞이하는 중년의 시간이 있다면 혹시 그 먼 시간의 시선으로 불러보는 청년은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행정에서 ‘청년예술’이라는 용어를 의심치 않고 사용하는데, 혹여 청년예술가에 대한 관념적 시선은 없는지. 저는 ‘청년’을 너무도 쉽게 대상화한 이들에 대해 생각해 고민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참 성하거나 무르익은 시기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로 비유해 보자면, 청년시절 청춘의 사랑은 중년의 사랑보다도 더 성하거나 무르익은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일테면 더 무섭고, 더 불안한 일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위대해 보입니다. 이들의 사랑은 가끔 너무 슬프지만 우리의 삶에 아름답게 부딪칩니다. 그들의 사랑은 빛나는 물질을 제 일의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랑이 아닌 것들을 불순물로 여기며 그것을 사랑의 외연에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물질과 드높은 이름을 사랑의 한가운데에 놓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 청춘남여의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충일합니다. 반면에 중년 이상의 열차에 탑승한 사랑은 어느덧 그 사랑의 충일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오히려 청춘남녀의 사랑을 잘못된 사랑이라며 뜯어말립니다. 이처럼 우리의 시선이 ‘청년예술’을 노심초사, 불안하고 미숙하게 이해하고 있는 일은 아닌지 불안합니다. 특히나 ‘청년예술’은 내가 잘 알어. 그래서 그런거야 라고 프레임화 하는 것은 없는지 고민됩니다.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너희들은 미숙해서 잘몰라’ 멘토단이 잘 이끌어줄게 하는 일도 역설로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건강하고, 더 무르익은 저 너머의 경지로 즐겁게 뛰어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날개에는 큰 기개도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미 그들은 “한참 성하거나 무르익은” 존재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이 밝히는 아름다움과 따뜻함의 곁불을 째야 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습니다. 멘토들은 아쉽게도 이미 그러한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아름답고 경이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그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내면적으로 잘 압니다. 저는 청년예술과 관련해서는 이처럼 자주 언급되는 ‘청년’이라는 이 엄청난 빛깔의 용기와 아름다움을 먼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얘기의 연장선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청년예술가들의 삶은 그 누구로부터 확실히 보장받은 삶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은 오직 안정을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비즈니스 혹은 전략적 모델로써의 문화예술사업은 오늘이 아닌 다른 주제로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논외로 말하자면 이들 청년예술가들은 자신의 역량인 예술적 에너지를 맘껏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알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열매가 나무에도 매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그런 사건을 희망해 봅니다. 아쉽게도 이들의 예술활동은 올 한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마저도 모든 나무에서 열매가 열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희망의 언사로 포장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들 청년예술단의 환경입니다. 차라리 그들에게 예고되어 있는 실패조차도 이미 내장된 청년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지현: 청년기를 지난 어른들은 다른 것은 가지게 됐으나 청년성을 잃게 마련인데, 그 기성세대가 규정한 청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예술에서 있어서 ‘청년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예술이 생기가 사라져 가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 생기란 말씀하신 것처럼, 봉우리가 터질 때 불안정하기도 하고 격렬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 감동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감각을 잃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멘토링을 하면서도 청년들의 지금을 존중하기 보다는 너희들은 성장해야 한다, 지금은 미숙해도 잘할 수 있다는 등 판에 박힌 소리들을 저도 모르게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기인: 이번의 청년예술단사업은 서울시에서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예술가로의 성장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징검다리와 플랫폼의 역할을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제가 더 놀란 것은 서울시의 입장에서도 이 사업의 취지를 소박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과장된 문맥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습니다. 사업의 취지에는 “활동경력이 적어서 아직 전문예술인으로 자립하지 못한 전문 예술인들의 예술 창작 및 공공활동을 지원하고자 시행한다고” 했습니다. 활동경력이 적은 이들을 살피겠다는 소박함이 사실은 한 사람의 예술가를 희망하다는 ‘묵직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활동경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경력이거든요. 이는 큰 성과를 내놓으라는 강압적인 포즈가 아닙니다. 그래서 좀 다른 사업이구나 싶었습니다. 특히나 활동경력이 필요한 이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개별 팀들이 예상외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서서 이정표를 만들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이정표를 만들고, 그 길로 나아가는 어떤 활동들이 보입니다. 저는 그 과정을 청년예술가들의 성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설동준: 얘기를 들으면서 이기인 선생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내일에 대한 계산에 갇히지 않는 불꽃같은 태도와 생존을 위한 뱀 같은 영리함 모두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술가는 분명히 안정을 추구하는 삶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죠. 다만 그런 이미지가 일종의 사회적 역사적 산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술가에게 그 사람의 개인적 성격이니까,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살았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르게 비유를 해보면 전문직과 전문가의 구분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보통 전문직이라고 하면 그 직업에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 그리고 대우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해당 직업에 대한 경계선의 정비가 끝난 영역이 전문직인 것이고, 전문가는 개별적인 역량에 대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는 전문가일까 전문직일까 생각해보면 전문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우가 너무 없거든요. 그리고 전문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전문직은 경계가 명확한 영역 안에서 요청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인데, 예술가는 그 경계 자체를 계속 확장하고 깨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운명, 역할을 감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불꽃같은 예술가의 삶과 이미지를 소비만 하고 책임은 나몰라라 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꽃 같은 삶과 뱀 같은 삶의 양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보 같이 소비되지만 말자는 거죠.

이지현: 그것을 잘 할 수 있으면 청년일까요?

이기인: 그 말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입니다.

설동준: 그 부분은 쉽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현실을 살아봐야 하고 제도의 경험이 있어야하는 것이죠.

이기인: 선생님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존중합니다. 예술가의 삶은 항상 이슬만 먹을 수 없습니다. 또한 높은 이상만을 추구하다 어느덧 현실이라는 냉혹한 지상에 떨어지는 사건이 있습니다. 현실을 외면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죠. 저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의 사업은 청년예술가들에게 뭉텅뭉텅 나눠주는 빵이 아닙니다. 청년예술가 또한 그 빵만 받아먹는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빵과 더불어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청년예술가의 활동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식사와 배부른 식사는 다른 차원일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예술을 사육하듯이 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저 배만 채우는 듯한 예술 활동은 향기가 없습니다.

설동준: 제가 볼 때 그 측면에서는 선배들, 중견이나 원로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완성은 쉽게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아까 이기인 선생님이 쓰신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활동경력이 적기 때문에 아직 전문예술인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그럼 전문예술인은 누구인지, 활동경력이 많으면 전문예술인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그것은 사실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축적된 시간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술 말고 삶이라는 영역 자체에서는요. 사회적 경험과 사회적 시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사실 그 자산은 나누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게 제가 볼 때 선배들이 제공해줄 수 있는 부분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기인: 예술가의 삶을 지속하신 분께 우리는 과연 어떤 대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우선 저는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잘 견딘 것만으로도 그저 위대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예술인에 대한 ‘우대’의 문제를 놓고 그 무엇을 성급히 요청하는 일들은 조금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특히 젊은 청년예술가들의 입장에서는 뜨악한 일입니다. 중견, 원로의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한 일입니다. 제 경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름다운 사이를 ‘물끄러미’의 감정으로 이해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우려와 무관심이 아닌 그저 물끄러미 봐줄 수 있는 경지도 나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 물끄러미의 순간에 저편 상대의 세계가 더 크게 보입니다. 좋아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일방적으로 간섭받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강요받는 일들이 성가실 때가 있습니다. 앞선 세대로부터 크나큰 부채의식이 없는 이들은 그래서 ‘물끄러미’ 우리 세계를 관찰해도 아직은 서운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된 예술적, 사회적 경험의 가치 있는 당신의 세계를 적극 만나야하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인간관계의 기본은 상호존중과 상호적이어야 하고요. 어리다고 혹은 어른이라고 일방적이어도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지현: 초기에 최소한의 멘토링, 적절한 거리감이 오히려 멘토링의 핵심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멘토를 설정한 서울시의 입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하느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운영 측면에서는 미숙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예술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멘토가 어떻게 관계 맺을지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입니다.

이기인: 저는 오히려 여러 멘토 선생님들의 활동을 보면서 문학 활동의 경계를 어디까지 뻗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했습니다.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던 문학 활동을 다른 장르로 잇는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어떤 경계를 넘지 않으려고 하기 보단, 다른 장르와의 교감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청년예술단의 성과 중에는 실험적인 도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적 영향을 고려한 것이 멘토링의 초기 분위기였다면 점차로 문학을 넘어서는 기타의 논의도 얘기하는 분위기입니다. 일테면 포스터에 사용된 서체와 디자인에 관한 부분, 혹은 시낭송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악기 등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저는 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 게 아니라, 우리들이 찾아낸 질문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설동준: 국악 분야는 조금 다른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하나의 장르로 놓고 본다면 - 요즘에는 조금 벗어난 것 같긴 한데 - 예전에는 장르 전체가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재미없어 한다에서부터, 똑같은 음악인데 외국의 클래식 음악보다 밀린다, 연극처럼 거점도 없다 등등 장르가 가진 공유된 정신 모델 자체가 열등감과 위축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언제 느껴지냐면, 단체나 예술가들의 지원서에 꼭 쓰는 단어 중에 하나가 ‘대중적’이라는 표현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참 이상합니다. 어디까지가 대중적인 것일까? 몇 명 정도가 공연에 오고 이 장르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얼마나 되어야 대중적인 것이지? 목표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이돌만큼 되고 싶은 것인가라고 보면 불가능이죠. 클래식만큼 되고 싶은 건가라고 했을 때도 국악이 클래식만큼 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악에 대해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국악이 서있는 지형에서 충분히 이정도면 잘했다라고 하는 목표치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지 않고 엄청 멀리 있는 도달이 불가능해 보이는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사 때도 이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대중적 음악은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예술을 해보고 싶다가 아니라 남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한 50여개의 지원서 중에 나는 어떤 예술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팀이 10%도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장르 대부분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장르 생태계 안에서 훈련된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국악계에 요구되었던 퓨전 국악에 대해서 몰이기 같은 방식이 예시입니다. 하지만 대중성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살아온 지난 삶의 서사를 끊어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를 끊어놓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적이기를 바라는 무대뿐인데, 그것은 자기의 무대가 아닌 남의 무대입니다. 저는 그래서 특정 작품 지원사업이 아닌 청년예술단 사업이나 이러한 예술가 육성사업에서 시민을 위한, 대중적, 혹은 시장생존 이런 것은 성과의 기준에서 제외시켜야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행정에서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화되어서 예술가가 스스로 복종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요구해야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이 사업에서는 그것 외에 다른 식으로 평가 받을 수 있구나, 나의 활동과 나의 존재가 다른 방식으로 수용될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학습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기인: 저는 청년예술가들의 예술적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방전되거나 소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이 자행된다면 그것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테면 공공예술로만 이들을 앞장세우거나 또는 오직 대중문화의 첨병으로 그 누구를 몰아붙여서는 안됩니다. 그 누가 ‘청년예술’을 아낀다면 이러한 부분들까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위해서 혹시라도 백화점식으로 나열되는 프로그램을 권장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예술 활동은 놀이처럼 즐겁고 행복해야 지속됩니다. 무대를 향해서 보내는 박수는 자발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특히나 환호의 박수는 객석의 공감과 교감을 증명합니다. 이런 박수는 약속된 상황이 아닙니다. 문학 팀에는 성우를 열망했던 단원, 작곡을 공부한 음악인 등 다양한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 문학을 콘텐츠로 교감하는 일이 재밌게 보입니다. 이 팀들은 현재 문학의 몸통을 음악과 목소리로 관통하는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이지현: 본인들이 제안서에 써냈던 최소한의 활동 목표들을 그대로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동의합니다. 현실에서 구성원들과 활동하다 보니 이것보다 다른 게 더 적합한 것이 나타났다든지, 이 현실에서는 우리가 이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든지, 변화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요.

설동준: 어려운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제도랑 정책은 사회화를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그 제도와 정책에서 탈사회화를 추구하는 것인데, 실패에 대한 자유의 터를 만든다는 것, 제도의 본질과 어긋하는 탈주를 독려하는 예술지원 제도를 구상한다는 것은 간단치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작품이라는 결과, 사례로써 싸우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축적하고, 그것이 사고가 아닌 예술의 성과라는 인식을 만드는 방식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기인: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예술지원제도가 탈주를 만드는 시스템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제도화된 사회 혹은 관습화된 사회가 안정화를 꾀했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보다 입체적,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체감하도록 해줍니다. 알다시피 강력한 교통법규가 있다고 하여 우리사회가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믿고 싶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사회제도와 관습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다고 이념화시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불안한 삶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단 한번도 입체적으로 느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술은 탈사회를 획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삶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감추었던 그 내밀한 것들을 꺼내줍니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출렁이며 또 들끓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탈사회는 꿈꾸는 예술을 관념이라고도 봅니다. 이는 온당치 않습니다. 예술가는 다만 입체적인 그 사회를 순간순간 휘저을 뿐입니다.

이지현: 덧붙여 청년들에게 생존이 너무 화두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청년예술가의 생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생존담론으로만 몰아가면 많은 것을 못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 생활비가 주는 여유를 강조하고 생존을 넘어선 얘기를 멘토가 해줄 때 이 사업 설계가 가진 장점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기인: 팀의 구성원 중 한 명이 회계처리가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업을 이끄는 담당자들은 곧 익숙해 질거라고 했지만, 이들은 사업초기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현재 500명 정도의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 한 사람의 회계 전문가를 마련하는 일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동준: 초기에 그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행정지원단이 필요하지 않나 라는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술활동에 집중하는 구조가 아니라 소위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돼서 1인 기업 또는 벤처기업처럼 되라고 하는 그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아쉬운 것이기도 하고 내년에 바뀌었으면 합니다.

이기인: 이번 사업은 사각지대의 예술인을 발굴하고 그들을 전문예술가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이미 검증받은 이들의 활동도 지켜보게 된 상황입니다. 이 두 개 단체의 성향에 대해서 멘토 선생님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저는 개인적 역량이 다소 뛰어난 이들의 활동에서도 많은 장점들을 봤습니다. 특히 창의적이고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는 향후 사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동준: 저는 장르의 아이콘이 될 만한 예술가를 선발해서 지원하는 수월성 기반 사업과 장르 생태계 전체의 필요를 채우는 플랫폼 지원으로 나눠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예술 분야가 살아남으려면 사회적 상징이나 커뮤니케이션의 코드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아이콘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은 전략적으로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르 전체로 봤을 때는 문턱이 낮은 무대 공간이 더 많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모사업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공식적인 공연장 수준이 아니라, 마치 홍대 인디 씬의 무대처럼 예술가들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증명할 수 있는 자리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거죠.

이지현: 처음에 자문회의에서 예술인복지재단 등록할 요건도 안 되고, 문화재단의 최초 예술지원에도 응모할 수 없는 그러한 의미의 사각지대를 서울시에서 커버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상당히 중요한 분석이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무관들이 복지재단을 등록하는 자격 요건 및 분석자료를 다 가져왔더라고요.

설동준: 저는 진짜 사각지대는 제도가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사각지대가 양지로 드러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안 보이는 영역이 보여 지게 하려면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아마 그게 플랫폼의 요건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사업이 사각지대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전 장르를 다 커버하면서 500명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냥 수월성 기준 지원이라고 봐야하는 거죠. 이미 사업은 시작되었고, 잘 돌아가야 하니까 다양한 상황들을 조율하고 있는데, 멘토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이게 정말로 처음의 사업의 의도와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기인: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서울시에서 이 사업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사업을 어떤 일정한 틀로 묶어놓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고뇌가 자연스럽게 돌출되는 것이 이번 사업의 희망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런 고민들이 단순하게 뒤덮이지 않는 상황이 그야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현: 모순과 갈등으로 에너지가 생길 때 사실 창조적이게 되지요. 너무 매끈하거나 잘 정돈되어있는 것보다는 모순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고, 장르간의 다양성이 섞이면 다른 생각들이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오늘 좌담이 다른 분야로 확산되어 릴레이로 이어갈 수 있다면 재미있겠지요. 현장의 청년예술가들이 멘토의 고민을 듣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비쳐줄 수 도 있겠지요. 그런 식으로 확산 되어 가면 청년예술단만의 많은 얘기가 생성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인: 저는 단체 활동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예술인의 입장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개개인의 예술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일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함께 공연하고 협연하는 공동의 작업도 소중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청년예술가로서 자기 성장을 주도해야 합니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홀로서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어떠한 형태로든 개인의 발전이 있길 희망합니다. 단체로써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하나하나의 주체로써의 예술적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현: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을 현실에서 보완하는 방법으로 활동 보고서를 쓸 때 개인 각자가 보고서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원할 때도 개인 활동계획서가 있었으니 과정에 대한 기록도 각 개인들이 쓰면 변화를 스스로 더 많이 느끼고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 장르는 협업이 창작의 자연스런 여건인데, 여유가 없거나 경험이 미숙하면 무용수들이 모여 작업하는 기회를 자발적으로 못 만듭니다. 재원이 있어야 연습실도 구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단체를 구성하는 문제는 분야마다 다르게 고려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이기인: 저는 이번 사업이 그 누군가의 삶과 예술에서 보다 큰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예술 활동을 펼치는 그 과정이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미담으로 기억되길 희망합니다. 저는 지금의 지원사업에서 보다 큰 것을 찾는 기회였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오늘처럼 소중 얘기들을 앞서 나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지현: 앞으로 이 과정이 마무리가 되려면 5개월이 남았는데요, 더 많은 흥미로운 변화들이 기대되고 이 사업 전체를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지면에 담기지 못한 내용이 많아 아쉬움을 남기지만 이어질 자리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