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춤의 뉴 웨이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송준호_공연 전문 기자

이제 미술관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되고 있다. 정적인 공간 속 동적인 에너지는 기존 미술 관객과 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경계를 해체하는 혼종예술의 에너지는 탄생 80주년(7월 20일)을 맞아 마련된 다양한 백남준 전시회에서도 발견된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아방가르드한 협업, 특히 영상매체와의 접목은 이 시대의 관객과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오늘날의 예술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잇는 넷아트, 웹아트, 모바일아트 등은 최근 이를 아우르는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용어로 재탄생했다. 미국 학자 진 영블러드가 60~70년대 주창했던 확장영화(Expanded Cinema, 문학, 영화, 연극, 무용의 경계가 무너지고 복합화된 상태)는 이제 국내 영화제에서도 종종 시도되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계에서 파생된 트위터 시사회는 연극무대에서도 이제 낯설지 않은 실험이 됐다.

현대예술의 특징 중 하나는 이처럼 테크놀로지와의 적극적인 결합이다. 흔히 '디지털아트'로 대변되는 이 현상의 최대 공헌자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예술가는 프로그램을 다운받거나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됐다. 대중 역시 예술가의 홈페이지나 사이버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손쉽게 예술을 향유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춤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변화에서 뒤처진 인상이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 안무나 인터액티브 댄스 등의 시도는 간혹 있었다. 해외에서는 비디오댄스의 시도를 통해 기존 춤의 '중력 언어' 대신 '전자 언어'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공연실황을 그대로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것도 전 공연을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처음부터 인터넷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기획, 제작한 공연은 더 드물다.

춤이라는 콘텐츠를 디지털 기술로 화려하게 재창조하는 작업은 영화가 앞서고 있다. 여름을 맞이해 개봉한 춤 영화들은 화려한 춤의 향연과 주인공 남녀의 로맨스라는 양대 축을 공식처럼 따르고 있다. 게으른 제작진의 차별화 전략은 오로지 3D기술뿐이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효과적이다. 편광 안경을 쓰고 감상하는 댄서들의 몸동작은 육안으로 보는 몸짓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을 자아낸다. 관객들은 환호하고 감탄하며 춤의 향기에 젖는다. 개봉을 앞둔 피나 바우쉬의 새로운 영화도 최초의 실사 100% 3D 촬영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런 디지털 춤 영화의 인기는 곧 기존 춤 공연의 위기와 연결된다. 아날로그 춤의 매력은 분명히 있겠지만, 문제는 그 매력을 알아주는 관객의 수가 굉장히 적고 더 이상 늘어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 춤의 위기는 형식과 내용적 면에서 모두 시대정신과 연관돼 있다. 동시대 관객들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키지도, 선도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춤계도 이에 대한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급속도로 진행되는 타 장르에 비추어 춤계의 변화는 지나치게 더디게 느껴진다.

다행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싶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하나둘씩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에 최적화된 공연을 기획해 최근 활성화된 SNS로 이를 교류하고 공유한다. 더 이상 극장에 오지 않는 관객들을 찾아나선 의미 있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같은 온라인상의 춤 작품은 디지털 문화의 파급력을 통해 기존 춤의 유통과 수용 구조까지 변화시킬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춤의 새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춤 영상 콘텐츠의 개발과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춤 영상은 대개 전문 무용단이 편집한 홍보 영상이거나 무용가 자신이 습득한 기술로 촬영한 결과물이다. 어느 쪽이든 완성도 있는 콘텐츠로서는 부족한 편이다. 춤 장르만의 특성을 반영해 촬영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가나 장비도 손에 꼽을 정도다. 첨단 CG기술을 활용한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세대의 취향에 이런 콘텐츠는 구태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춤 관객의 확장, 특히 잠재관객의 개발을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춤 콘텐츠의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춤 공연의 전문적 촬영기술은 물론, 편집 운용과 홍보 방안까지 연구하는 인력 구축은 기본이다. 춤 전문 UCC사이트나 디지털 아카이브의 활성화와 홍보도 중요하다. 케이블 TV나 IPTV에서의 콘텐츠 수급도 갈수록 중요해지는 만큼 미리 대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춤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제작이 시급하다. 앞으로도 스마트폰의 발달은 가속화되고 이에 따른 애플리케이션도 이어지고 있는 지금, 관객과의 접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양질의 춤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결국 이런 모든 과정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새로운 춤의 시도에 관한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실험은 대부분 미술이나 영상 분야가 주축이 돼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서로의 장르에 대한 몰이해와 충분한 소통의 부재로 각자 자신들이 의도한 수준의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전에도 DIDance나 페스티벌 봄 등을 통해 이런 자리가 종종 마련되었지만, 앞으로는 춤계가 주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대화와 연구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대 위 '실재하는 몸'과 함께 오랫동안 아날로그 예술의 선두를 지켜왔던 춤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변화의 위기 앞에 서 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의 도입과 활용이 반드시 새로운 춤의 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춤계는 너무 오랫동안 정체에 빠져 있다. 무용과 폐지 등 춤 저변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지금, 시대 감각에 맞는 발상의 가능성이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공간을 가리키고 있다.

2012.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