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4
최고를 지향해서 최고를 겨냥하다
남영호_재불무용가

내가 수잔 버지(Susan Buirge)를 만난 것은 1998년이다. 자키타파넬무용단을 그만두고, 이제 어찌해야 하나 미래를 고민하며 여러가지를 찾다가, 파리 근교 큰 수도원 루아요몽수도원을 예술센터로 변형해서 운영하는 3주간 레지던트 안무 구성 워크숍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미국 현대무용을 보급한 원로 안무가 수잔 버지의 무용단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Abbaye de Royaumont 즉흥안무 워크숍, 수잔과 음악가 Pascal conte와 함께




수잔버지무용단은 루아요몽수도원 부속 무용단으로 매년 한번 정기적으로 젊은 안무가들을 위해 안무 구성 워크숍(3주간), 즉흥 워크숍(2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문프로 무용가들만 신청할 수 있는 워크숍이었고, 워크숍비와 체류비가 상당했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 프로 무용가였기에 정식으로 모든 세금을 납부하고 있어서, 신청만 하면 그 안에서 모든 게 지급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워크숍비, 체류비는 따로 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키 타파넬을 떠나 하는 워크숍이었다.

12명의 무용가들이 선발되어 3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온종일 합숙하면서 안무 구성과 몸 연구, 그리고 토론을 하는... 각자의 방이 있고 하루 3끼를 셰프의 요리로 먹을 수 있는, 지금 생각해도 프랑스 최고 조건의 워크숍이었다. 새 무용가들과의 만남, 프랑스 최고의 무용단에서 활동하고 무용단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젊은 안무가들,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어쩔 땐 불편하기까지 했다.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시작한 워크숍이라 워크숍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수잔 버지가 실기수업을 주었다. 수잔 버지는 타파넬과는 달리 아주 절제된 움직임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타파넬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끄집어내길 좋아했다면, 수잔 버지는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하는 움직임을 가르쳐 주었다. 안무 구성의 한 사례를 제시하고, 같이 시범해 보고, 마지막 주에는 무용가들 각자의 안무 방식을 만들어 안무보를 만드는 거였다. 하루에 실기수업, 안무 구성 시범 아틀리에, 무용 평론가들의 특강들, 무용비디오 감상 등... 온통 춤 작업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난 다시 이 새로운 접근방식에 매료되어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는 3주 동안 그 수도원 안에서만 합숙하며 생활했다. 마치 궁궐에 갇혀 연구하는 무용가들? 일요일은 휴식이어서 수도원 바깥을 나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가지 않고, 수도원 구석구석을 세세히 보고 또 보고 관찰하고, 나를 느꼈다. 이 얼마나 좋은, 안무가를 키우기 위해 배려하는 조건들인가?

모든 게 부러웠다. 이게 프랑스였다. 왜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 하는가?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탁월한 예술성을 가져서가 아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조건들과 기회를 체계와 조직들로써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난, 수잔 버지가 젊은 안무가들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에 존경심을 가졌다. 나도 나이 들면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에게 이런 식의 워크숍을 제공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워크숍 내내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참여했다.

레지던트 첫날 수잔은 말했다. “나는 여러분과 3주간 작업하면서 내가 해 온 방식들만 가지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나와 이 방식을 해 보면서 후에 여러분도 여러분의 방식을 만들기를 바란다.” 난, 수잔의 예술(무용) 정신에 매료되었고, 그녀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수잔 버지와 함께




난 수잔이 진행하는 즉흥안무 워크숍에도 참가했다. 이 즉흥 워크숍 후 수잔에게서 무용단에서 같이 작업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 당시 수잔은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고, 다시 프랑스에서 작품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잔이 프랑스로 돌아와서 만드는 첫 작품에 참여하기로 했다. 수잔의 무용단의 무용수들은 모두 각자의 무용단을 두고 있는 안무가들이기도 했었다. 다들 프랑스 국립현대무용단 외 유명 무용단에서 활동한 무용수들이었다. 무용수들은 계약서에 사인할 때도 엄청 까다로웠다. 하나하나 다 따지는 것, 난 습관이 안 되어 있어 퍽 불편했다.

그렇게 수잔버지무용단과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6편의 작품을 했었다. 수잔버지무용단은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나는 몽펠리에에 살기 때문에 작품을 하러 파리에 갔어야 했고, 보통 작품 준비 과정은 3개월 정도 걸렸는데, 그때마다 내 개인 아파트가 제공되었다. 연습 외 공연수당도 최고 수준이었고, 초연 공연일에는 프랑스 무용계의 많은 사람들, 비평가들이 왔었다.

난, 수잔 버지와 자키 타파넬을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었는데, 두 분은 운영체제가 달랐다. 자키는 ‘살아있는 공연예술은 계속 공연하면서 작품 완성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서 무용단에 피해를 보이지 않는 선에서 큰 극장, 작은 극장 어디서건 공연했었다. 그 결과로서 일년에 50~60회 공연이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수잔의 운영 방침은 아무 곳에서나 공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고급 무용수들을 기용해서 만든 작품인데 최고급의 장소에서 공연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공연 장소는 국립극장, 아니면 오페라극장들뿐이고, 호텔도 별 3개급 이상이었다. 그래서, 작품은 3개월 넘게 걸려서 만들지만 공연은 일년에 10~15회 정도였다. 공연을 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연구하면서 만드는 작품 방식 그 자체를 중시하는 원리이다.

난, 이 두 분의 논리를 모두 존중하고 후에 내가 무용단을 만들었을 때 많이 반영했다. 내 춤 인생에 여러 영향을 주신 두 안무가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1. 11.
사진제공_남영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