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화숙 & 현대무용단 사포 전주 한옥마을 공연
공간과 움직임의 새로운 조합을 통한 영역 확장
장광열_춤비평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공연은 때론 평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극장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감흥은 배가될 수 있다. 무용은 다른 어떤 공연예술 장르보다 공간을 중요시 한다. 그 때문에 새로운 스페이스에서 만나는 안무가와 댄서들의 작업은 비평가들에게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중견 무용가 김화숙과 현대무용단 사포의 <말 을 걸 다>는 전주 한옥마을에 소재한 ‘공간 봄’에서 다섯 차례 연속되는, 서로 다른 공연의 전체 제목이다. ‘공간 봄’은 아름다운 작은 정원을 갖춘, 아늑한 까페이다. <말 을 걸 다>는 문화예술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전주의 명소인 이곳에서 5월부터 9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공연되고 있다.

 

 

 


 7월 21일 밤 공연의 제목은 <아! 거기 당신>. 8명의 무용수들이 정원에서 야외 테라스에서, 그리고 테이블이 놓여있는 두 군데의 실내 공간에서, 손님(관객)들 사이를 누비면서 한 시간 남짓 공연을 펼쳤다.
 70여명의 손님들로 테이블이 가득 찼고, 이들은 대부분 미리 예약을 한 사람들이었다. 5월과 6월에 공연된 <오월, 어느 날>, <누구신가요?>의 입소문 탓인지 공연 시작 시간이 임박해 오면서 빈 자리는 빠르게 채워졌다.
 공연은 짧은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댄서들의 경쾌한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 안무가는 두 면이 통유리로 연결된 자그마한 정원, 야외 테라스, 그리고 두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실내 공간을 공연의 주 무대로 활용했다. 무용수들의 동선이 맞닿는 이 4개의 공간들은 손님들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조형미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것이야말로 극장 공간을 탈피하고 까페 공간을 선택한 이날 춤 공연이, 선사해준 가장 큰 매력이었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서 보는 정원에서의 솔로춤, 확 트인 테라스에서의 2인무와 군무,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관객들 머리 사이로만 보여지는 작은 공간에서의 춤, 그리고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거리에 따라, 시선에 따라, 그리고 종업원들의 동선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통유리 건너 댄서들의 머리 위로 보여지는 푸른 나무들, 테이블에 놓여진 커피, 주스, 맥주, 물이 담긴 각기 다른 사이즈와 색깔의 컵들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이들과 어울린 댄서들의 몸은 마치 움직이는 캔버스를 보는 듯 했고 이같은 체험은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이 갖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안무자는 테이블과 문틀, 때론 ㄱ자, 때론 L자, 때론 ㄷ자 형태로 공간의 곳곳을 댄서들이 자유자재로 활용하도록 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음악 선곡은 미리 계획된 조명 등이 받쳐주지 못한 상태에서 갖는 1시간 길이의 공연이 갖는 한계를 타파하는데 일조했다.
   샹송에서부터 칸소네, 그리고 귀에 익은 팝송까지 관객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청각의 자극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했다. 여기에 3인무 7인무 남녀 솔로 그리고 4인무 등으로 변화하는 춤의 파동은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더했다. 청일점 무용수 강정현이 남성 테너의 고음에 맞추어 2개의 기둥을 활용해 추는 느린 움직임, 야외 테라스와 실내 공간을 넘나들며 추는 분홍 스카프를 두른 김자영의 솔로춤. 박진경과의 2인무 등은 4개의 서로 다른 공간의 차별성을 염두에 둔 안무자의 세심한 배려와 감각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들까지도 작품 속의 오브제가 되도록 열려있는 무대를 지향한 공연은 무용수들이 장미꽃을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김화숙과 현대무용단 사포의 이번 시도는 대부분 한두 차례에 그치는 이벤트성의 무대가 아니라 매월 한차례씩 5개월에 걸쳐 시리즈로 이어진 공연이란 점에서 우선 기획력이 돋보였다. 또한 이 같은 공연을 통해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극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환경과 춤의 접합을 통해 무용예술 공연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객들에게는 1만원에 차와 공연까지 볼 수 있다는 점, 전통 한옥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현대무용 공연이란 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전문 무용수들에게도 이 같은 공연은 춤 공연 영역의 확대란 점에서도 의미있는 작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2.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