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성훈댄스프로젝트 〈JODONG〉
스며든 메시지, 선명한 시각적 임팩트
장광열_춤비평가

영리했다.
 안무가는 60분 길이의 작품을 위해 춤 잘 추는 무용수들을 포진시키고, 몇 개의 프레임을 설정, 서로 다른 움직임 배열과 무대미술, 조명, 의상 등의 변화를 통해 시각적인 차별성을 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인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대로 선보인 김성훈댄스프로젝트 의 〈JODONG〉(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2월 5-6일, 평자 5일 관람)은 이즈음의 컨템포러리댄스 작업에서 보여지는 파격적인 구성, 작품을 풀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었지만, 댄서들의 조형미 구축을 통한 시각적 임팩트 만들기에 탁월한 안무가의 강점을 여러 군데서 드러내 보였다.
 지난해 서울시립무용단의 〈감괘〉에 조안무로 참가했던 김성훈이 20여명의 댄서들을 무대 앞쪽에 배치, 연속되는 빠르고 요란스러운 대형 장면이 가져온 지나친 현란함을 절제된 움직임으로 상쇄시켰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평자에게 〈조동〉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조율하는 시노그라퍼(scenographer)로서의 특별한 그의 감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 〈JODONG〉 ⓒ2021 창작산실_옥상훈




 극장의 천장까지 플라스틱 재질의 화이트 벽으로 덮은 무대미술로 인해 평소보다 다소 좁아 보인 아르코 대극장 무대는 댄서들의 움직임을 더욱 집중시키는 효과로 작용했다. 이 백색의 벽은 댄서들의 화이트 & 블랙 의상, 화이트 탁자, 영상으로 투사되는 사람의 검정 실루엣, 원형의 블랙 원과 그 원의 찌그러지는 형상까지 제작진들의 계산된 구도 속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안무가는 작심한 듯 초반부터 춤으로 밀어붙인다. 백색 의상으로 치장한 댄서들의 움직임은 많게는 9인무로, 적게는 2, 3인무 형태로 무대 좌우와 앞뒤, 거의 모든 공간을 사용하며 기어가기, 구르기, 뛰기, 걷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댄서들의 움직임과 맞물린 미니멀리즘 전자 음악은 1990년대에 현대무용 공연에서 사용했던 전형적인 무용음악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 프레임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두 명의 퍼포머가 주도한다. 댄서들의 현란한 춤에 이어 텅 빈 무대 위를 횡으로 가로지른 긴 테이블의 활용은 안무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홀로 테이블에 걸 터 앉은 남성 무용수의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 그가 테이블 위를 손과 팔로 터치시키는 느린 움직임은 이전 프레임에서 치열한 경쟁 속 반복되는 현대인들의 어두운 면면과 대비된다.
 남성 무용수가 테이블 위를 오르고 내려오는 동작 뒤에 안무가는 무대 앞쪽에 횡으로 배치됐던 테이블을 종으로 다시 사선으로 위치를 바꾼다. 이번에는 여성 무용수 한 명을 테이블 위를 천천히 걷도록 하고, 여성 무용수는 간간히 머리와 상체, 힙을 이용한 움직임을 보여 준다. 무 음악 속 남성 댄서의 움직임과 현악기를 통해 흐르는 느린 음악과 여성 무용수의 매칭, 테이블 아래와 위 공간을 이용한 두 댄서의 움직임 조합은 앞 장면에서의 현란했던 춤 위주의 구성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안무가의 이 절제된 구도는 10분 넘게 계속되나 오브제를 이용한 움직임 만들기, 넓고 높은 무대와 테이블을 중심으로 형성된 좁고 얕은 또 다른 공간에서의 조형미 구축과 함께 작품의 완급을 조율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 〈JODONG〉 ⓒ2021 창작산실_옥상훈




 다음 프레임에서도 안무가는 군무를 전면에 배치한다. 이번에는 블랙 톤이다. 검정 의상에 피가 묻은 듯한 사각형의 흰색 천을 입에 문 10여 명 댄서들의 군무는 앞 장면에서의 완만함을 일순간 변화시킨다. 댄서들은 팔을 활용한 상체 위주의 움직임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 반복되는 움직임을 이어간다.
 첫 장면의 화이트 톤과는 사뭇 다른 시각적 대비와 함께 군무는 더욱 빨라졌고 앙상블의 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일정한 타악 리듬에 맞춘 단순한 동작의 반복은 규격화된 현대인의 삶을 연상시킨다.
 무대 후면 공간에 아홉 명을, 전면 공간에 두 명의 댄서들을 배치한 후 일으켜 세우고 앉은 채로 움직이도록 한 대비적인 구성은 첫 프레임에서 사용한 구도와 차별화되었고 이는 시각적으로는 같은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댄서들이 중앙에 밀집되었다 흩어지는 군집 대형의 짧은 반복은 그 시각적 임팩트가 주는 잔향이 꽤 오래 남는다.
 첫 번째 프레임에서의 군무가 좌우 공간을 활용한 다소 자유로운 형태였다면, 세 번째 프레임에서의 군무는 3-4인의 8-9인의 댄서들이 군집 형태로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면서 전 후면 공간을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차별화된다.
 네 번째 프레임에서 안무가는 보다 세밀하고 직설적인 구도를 배치한다. 남녀 무용수 한 명으로 시작된 춤은 천천히 한 명씩 댄서들이 가세하면서 다시 군무로 전환되나 두 다리를 흔들거나 상체를 뒤로 굽히는 움직임은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인성(人聲)이 가미된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는 음악과 피 묻은 천 대신에 검정색 뿔테 안경을 착용한 댄서들 역시 또 반복되는 삶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획일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군무에 이어 검정 바지에 상체를 드러낸 남성 무용수의 솔로 춤은 사각 조명으로 인해 더욱 집중감이 높아진다. 쇠가 부딪치는 불규칙적인 음악은 불안한 인간의 심리를 대변한다.
 이어진 아홉 명 댄서들이 전신을 바닥에 밀착시킨 채 온 몸을 회전시키는 움직임 구성은 잘 훈련된 댄서들의 춤이 안무를 더욱 빛내고 있다. 이 장면은 잘 조합된 움직임 구성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경쟁력임을 확연하게 입증해 보인다. 그만큼 춤 그 자체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 〈JODONG〉 ⓒ2021 창작산실_옥상훈




 안무가는 작품의 마무리를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 한 무용수가 ‘PROBLEM“ 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LED 판넬을 들고 나오는 장면, 시종 백색으로 유지되던 무대에 투사된 블랙 원과 그 속에 서 있는 한 명의 무용수, 화이트 무대를 점점 검정으로 물들여갈 때 접목된 다소 공포스러운 느낌의 음악, 전면의 백색 샤막 위로 남성의 상체가 실루엣으로 투영되는 장면, 이어지는 테이블 위에 우뚝 선 남성의 모습에 여성 창자의 감미로운 노래가 매칭되는 장면은 시각적 임팩트를 통한 안무가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의도된 장치로 보여진다.
 무대 전체를 백색으로 치장하고 이를 마지막에 블랙 실루엣으로 활용하면서 시각적 임팩트에 메시지까지 담아낸 안무가와 제작진들의 감각은 마지막까지 빛났다.
 반복되는 삶 속에 지친 현대인들의 공허함과 허무함, 안무가가 내세운 소재는 어찌 보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안무가들이 유사한 주제를 이미 다루었다.
 안무가의 영리함은 시종 댄서들의 몸을 기저로 한 군무 위주의 춤, 무대 전체를 뒤덮은 화이트 벽과 이를 이용한 시각적 매칭, 그리고 단 한번 등장하는 백색 테이블을 이용한 움직임 변화 등으로 안무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무용수들의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김성훈의 〈JODONG〉은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안무가의 과욕과 군더더기가 많이 줄어들었고 군데군데서 편집의 묘미 또한 음미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댄서들의 솔로춤이나 2인무 움직임 조합에서 다소 호흡이 길어지더라도 춤 그 자체로 빼어남과 예술적인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더라면, 세 번째 프레임 음악 구성에서 첫 번째 장과의 차별성을 더 살려냈더라면, 60분 길이의 짧지 않은 작업에서, 
평균점을 상회한 작품임에도 예술적인 완성도에서, 예술적인 감동의 수위에서 다소 아쉬웠던 점을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가.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 추진을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 ​​​

2022. 3.
사진제공_2021 창작산실_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