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1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정철인 · 김남진 · 정성택 · 유장일 · 김유미
신작의 기대감에 못 미친 산실(産室)의 현장
김혜라_춤비평가

2021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하 창작산실)은 멜랑콜리댄스 컴퍼니의 〈모빌리티〉(1.7~8.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부터 댄스씨어터 창의 〈굿_사도〉(1.14~15.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초록소의 〈28조톤〉(1.14~15.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김성훈 댄스프로젝트의 〈조동〉(2.5~6.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유장일의 〈senseless violence:이해할 수 없는 폭력〉(2.5~6.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김유미의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2.25~26.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작품 순으로 선보였다. 신작 내용을 보면 포스트 휴먼에 대한 탐색부터 팬데믹 시기에 더욱 주목하게 된 기후문제, 한동안 뉴스에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한 아동학대와 무차별적인 폭력에 관한 최근 이슈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첨단 기계와 서커스에 사용되는 장치로 춤과 교접을 시도하려는 협업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여섯 편의 작품 중 필자가 관람한 작품을 짚어보려고 한다.






멜랑콜리댄스 컴퍼니 〈모빌리티〉 ⓒ2021 창작산실_임정은




먼저 도래하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변화하는 인간상을 되묻고자 한 정철인 안무 〈모빌리티〉는 오브제와 밀착형 움직임 변주에 능숙했던 전작(〈초인〉)의 연장선상에서 한 단계 나아간다. 안무가는 테크놀러지 환경에서 기계장치(device)와 인간의 유의미한 관계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장치와 인간이 상호공존 하였던 과거 사회에서 장치 의존적인 관계로 변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체 개념으로 숙고한 점이 이 작품의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모빌리티(mobility)의 의미는 스케이트보드, 드론, CCTV 카메라로 장치적인 이동수단에서 디지털 공간에서의 이동성까지 포괄된 영역으로 이해된다.






멜랑콜리댄스 컴퍼니 〈모빌리티〉 ⓒ2021 창작산실_임정은




작품 전반부에 보드와 댄서들의 춤은 바퀴와 공존해 온 세월을 속도감 있고 설득력 있게 구성한다. 바퀴 탄생의 전조현상으로 3명 댄서의 이동 욕구는 이내 보드 출현과 함께 어색함에서 자유자재로 노는 과정으로 발전한다. 이어지는 드론의 등장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문물에 신체가 적응하는 장면의 연속이다. 보드에 밀착된 댄서들의 몸은 안무자의 의도대로 연장된 신체의 의미로 생각하게 한다. 정철인이 드론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드론 카메라의 눈으로 댄서들(김윤현,류지수,문경재,이현섭,정민수,주영상)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장면에서 모빌리티가 물리적 영역에서 초영역적 세상으로 전환되었음을 예고한다. 이로써 무대는 전통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수월한 이동수단으로써의 모빌리티 개념을 넘어 네트워크 공간에서 연결되는 비선형적 움직임으로 생성되는 관계성으로 확장된다.

인간에게 유용한 장치로서 드론은 목적에 따라 다른 결과로 사용되는 양면성을 보인다. 총에 맞아 망가진 드론은 더 이상 장치가 인간과 상호공존이 아닌 인간의 욕망으로 대체하는 도구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장치가 단순한 이동 도구가 아닌 사회와의 관계에서 포착해야 하는 신체 개념으로 파악되며 사뭇 복잡해진다. 또 다른 주요 장치인 CCTV를 장착하고 외계인 같은 몸짓과 소리를 내는 퍼포머의 신체는 감시사회의 메타포로 미래의 인간과 장치의 관계가 한낱 통제 속에 살아갈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담아낸다. 라이브연주로 반복되는 구절인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라는 가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혼란스러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멜랑콜리댄스 컴퍼니 〈모빌리티〉 ⓒ2021 창작산실_임정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네 명의 댄서는 상대의 바지를 교차해서 입은 채로 “아무도 모른다네 흘러가면서도...”가사에 맞춰 다소 체념하듯 춤을 춘다. 푸른 조명 아래 몽롱하게 진행되는 군무는 포스트휴먼 시대 기계에 종속된 무기력한 신체를 연상시키며 몸 덩어리만 남루하게 배회하는 인상이다. 안무가의 초반 선명했던 장치와 연관된 신체개념은 희미해지고 디지털 시대 미래형 인간은 진화된 장치에 잠식당할 인간 군상으로만 제시하며 석연찮게 마무리된다. 사람과 사물의 물리적인 이동수단으로써 일상사의 축을 바꿔놓은 대표적인 모빌리티의 진화사로 보면 작품은 흥미롭다. 반면, 작품의 주요 쟁점인 포스트 휴먼시대 장치와 인간 상호간의 의미가 희미하게 짐작될 뿐 ‘어떤 연장된 신체 개념’인지 종잡을 수 없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댄스씨어터 창 〈굿_사도〉 ⓒ2021 창작산실_옥상훈




댄스씨어터 창의 〈굿_사도〉는 사회적인 문제를 김남진 식으로 진단하는 성향을 다시 확인시킨 작품이다. 예술가의 책임 있는 사회적 실천을 표방하는 그의 여러 전작들은 안무가 나름의 직설화법과 연출로 주목된바 이번 신작도 비슷한 기조의 작업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컨템퍼러리 서커스와 현대춤의 조화로 색다른 공간무대를 구현하겠다는 의도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예술축제 감독으로 활동했던 안무자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녹아들지 기대가 되었다. 최근 현대무용과 서커스와의 협업이 국내 공연에서 늘어난 경향이 있다. 물론 서구와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누벨 당스’(nouvelle danse) 시기 서커스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적 장치와의 결합으로 이미 새로운 춤의 서막을 열었다. 내한했던 필립 드쿠플레부터 최근 요안 부르주아까지 트램플린, 턴테이블, 추시소 등의 세트를 활용하여 중력을 거스르는 균형감으로 아크로바틱한 기술을 넘어 공연예술의 새로운 미적 지표로 가능성을 확인시킨 바 있다.






댄스씨어터 창 〈굿_사도〉 ⓒ2021 창작산실_옥상훈




〈굿_사도〉 작품은 전체적으로 연기, 연출, 라이브 연주, 검무, 서커스장치 같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모여 총제적인 하나의 댄스씨어터다운 면모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조선왕조 시절부터 이어지는 가족 간 불화가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심각해진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다만 영조38년 1762년에 벌어진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가 아버지의 아동학대로 소환된 것이 역사 이해의 균형감 측면에서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진 해석 같지만 예술가의 발칙한 상상력으로 사료를 뛰어넘는 김남진 안무가만이 착상할 시나리오라 여겨진다.




댄스씨어터 창 〈굿_사도〉 ⓒ2021 창작산실_옥상훈




무대 중심부 뒤주를 상징하는 사각 프레임과 웅크리고 있는 현실의 아이가 오버랩되며 세월을 거슬러도 변치 않는 현실을 상기하게 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이해하기 쉬운 가족극 전개와 적절한 시점에서 투입된 여러 양태의 춤사위는 그만의 안무적 역량과 연출력을 확인하게 한다. 문제는 그가 새로운 장르로 내세웠던 서커스 요소가 이 작품에서 새로운 공간미 구현과 내용에 유용했는가 볼 때 그 역할은 미비했다. 물론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탈출하고 싶은 의지로 보이는 사각 프레임 위로 올라가거나 공중에서 회전하는 장면은 나름 이해될 순 있으나 디아볼과 구슬 저글링 활용은 특별하게 보기는 어렵다. 다소 협업의 협업을 위한 할애로 보일 만큼 기대보다 서커스적 요소의 확장적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뉴스에서 접하는 실제 사건이 무대 위에 날것 그대로 올라갔을 때 그것이 환기하는 바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극적 요소와 대사는 작품 내용의 맥을 짚기도 하지만 때론 현실의 참담함으로 인해 자칫 무대에 서사 그 자체만 주인공으로 남게 될 경우도 있다. 감각적 충격을 선호하는 관객은 환호할 수 있겠다 싶은 한편, 필자는 사실을 토대로 한 재현이 비극적 현실을 각성시키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아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상황은 성폭력과 학대의 경험이 있는 피해자가 느낄 환멸감을 상기시키지 않는 재현의 방식이 보다 적절했을 것이다.






초록소 〈28조톤〉 ⓒ2021 창작산실_박김형준




초록소의 〈28조톤〉은 지구 온난화로 사라져 가는 얼음의 양인 ‘28조톤’에 대한 이야기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각성시키고자 한 의도이다. 초록소는 서커스, 거리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한 단체로 이들의 작업을 처음 접하는 필자로서는 시의적 주제와 뉴페이스 등장에 사뭇 기대를 하게 되었다. 무대에 등장한 거대한 냉장고 장치의 상징성이 꽤나 설득력이 있는 오브제로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하루에 가장 많이 열고 닫는 문이 아마도 냉장고일진데 이를 아이디어 삼아 일상적인 에너지 소비가 기후변화의 요인임을 시사한다. 더불어 냉장고는 전기 사용으로 매일 녹고 있는 빙하를 상징하며 기후 변화에 불감한 일상적 습관을 환기시킨다.








초록소 〈28조톤〉 ⓒ2021 창작산실_박김형준




장치와 적절한 주제적 연관성을 갖춘 무대에서 댄서들은 미끄러지고 냉장고에 숨고 찾는 일련의 반복적인 동작을 구사한다. 후반부에 이르면 냉장고는 해수면에 잠긴 빙하이자 집 지붕의 형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해수면에 잠기게 될 지구의 최후를 예측한 설정이다. 허나 깜찍한 연출과 냉장고의 상징적 효과는 작품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가 약화된다. 그저 오브제에 기댄 움직임들의 파편들로만 시공간을 채워간다는 인상이다. 끊임없이 반복적인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루해지듯 작품 전개는 단조로웠고 단체의 기반인 서커스와 거리예술적인 요소가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 물론 기다란 폴에 앉은 퍼포머가 어쩌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지구에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 상정한 것은 인상적이었으나, 변주가 없이 반복되는 구성미로 연출과 아이디어 설정만이 두드러진 무대였다.






유장일 〈senseless violence: 이해할 수 없는 폭력〉 ⓒ2021 창작산실_B.H SON




유장일의 〈senseless violence: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은 현대사회에서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살아가는 군상을 이미지화 한 작품이다. 안무자는 senseless violence가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의 의미와 나와는 상관없는 폭력으로 치부하는 비겁한 단어의 뜻이라 한다. 사회에 만연된 폭력을 조망하고자 한 의도지만 폭력의 주체가 불명확한 채로 피해자로 보이는 여성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중심으로 한 시간을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대 오브제로 등장하는 거대한 가면의 실체가 막연히 폭력의 주체자이면서도 피해자를 외면하는 우리의 시선일 것이다. 성창용의 춤은 피의자의 궤변적인 이미지로 비춰진다. 이 두 장면 이외에는 전체 작품이 어떤 맥락으로 진행되는지 연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조밀하지 못한 안무의 부재로 해외와 국내에서 기량을 갖춘 댄서들(엄진솔,이재우,성창용,원진호,김민정,용기,이승현)의 테크닉만 감상하며 내용 없이 관습적인 2인무, 3인무 같은 발레 시퀀스에 소비되는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인 이재우의 연기나 춤은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엄진솔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무대를 활보하며 심폐소생술 역할을 했을 뿐이다.




  

유장일 〈senseless violence: 이해할 수 없는 폭력〉 ⓒ2021 창작산실_박상윤




도처에서 벌어지는 senseless한 작금의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키려는 유장일 안무가의 거시적인 그림이 대본 없이 전개된 것이 아쉬운 지점이다. 대본 없는 춤이 추상발레가 아니고 현실적인 내용을 담는다고 컨템퍼러리 발레가 아니듯 막연히 피해자의 정서에만 기댄 작품은 무대에서 기량 있는 댄서들의 에너지를 다소 허망하게 소진시킨 결과를 불렀다.






김유미 〈윤회매십전(輪回梅十纏)〉 ⓒ2021 창작산실_옥상훈




올해의 신작 마지막은 〈윤회매십전(輪回梅十纏)〉으로 안무자 김유미는 정조시기 학자인 이덕무(1741~1793)의 동명 소설과 윤회사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탐매도’(探梅圖)에서 영감을 받아 매화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매서운 한겨울 도원으로 보이는 무대는 하얀 천(?)으로 감싸인 나뭇가지 장치가 탐매도를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매체이다. 나뭇가지 장치에 비친 조명과 홀로그램의 이미지가 작품의 의미망을 풍성하게 이끈다. 눈인지 꽃잎인지 죽 늘어진 장치에 구불구불 앙상한 나뭇가지 형상은 매화 봉우리를 잉태한 강인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공력을 들인 장치가 가지를 치고 싹이 자라나는 듯한 설정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입혀지며 무대에서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전 혹한을 견뎌내는 과정과 매화를 찾는 여정에서 품은 여러 정서가 춤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더불어 매화가 피고 지는 자연의 원리를 윤회로 설정한 안무자는 장치의 위치 설정으로 사상적 의미를 조율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무와 물아일체된 인간 군상의 춤형상이란 발상이 다소 예스러운(old) 면이 없진 않지만 소재에 충실한 초입부 전개로서는 이해가 된다.






김유미 〈윤회매십전(輪回梅十纏)〉 ⓒ2021 창작산실_옥상훈




하지만 이후 전개는 안무자가 말하는 탐매도가 상징하는 현실과 이상세계를 오가며 얻게 되는 ‘윤회매’의 깨달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대에서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먼저 설중매를 찾아 나선 김시습(정명훈)의 등장이 그네를 타고 선녀가 내려오듯 동화적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 춥고 쓸쓸함이 묻어 있는 여정과는 결이 다르게 사뿐히(자동 와이어 장치) 등장한 김시습과 이내 결기에 찬 춤결이 어떤 심경인지 감지되기보단 다소 정명훈의 기량만이 돋보인 춤으로만 전해진다. 나무의 정령인지 김유미와의 관계 설정도 애매하고 파편적인 소재에 기인한 내용의 불균형으로 지고지순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무용수들 군무의 의미까지 약화시킨다. 빙매(氷梅)가 깨어나는 과정을 표현한 무용수들의 땀방울이 무용(無用)해 보일정도로 긴장된 동작 형태의 답습을 보는 일은 피로감을 준다.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는 내용과 무관해 보이는 부채를 들고 추는 군무로 신무용을 보는 듯한 작위적인 설정이다. 또한 후반부 꽃이 핀 모습을 상징한 여성의 독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매화를 찾은 후의 상황으로 이해되는 장면에 상응하는 춤은 탐매(探梅)가 아니라 팔등신의 몸 윤곽을 강조한 탐미(眈美)의 춤으로 전체 맥락을 이탈해 버리며 고고한 작품의 의도와 멀어진다. 혹한을 견뎌내고 핀 매화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팬데믹을 견디자는 안무자의 선한 의도는 동작들의 변주만 범람한 무대에서 ‘윤회매십전’이란 제목에서 풍기는 그윽한 정서와 인고의 탐매 여정까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선조 학자들의 정취(情趣)는 표면적인 의미로만 소비되었으나 아름다운 무대장치로 상상력의 빈곤함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김유미 〈윤회매십전(輪回梅十纏)〉 ⓒ2021 창작산실_옥상훈




창작산실은 기획부터 쇼케이스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1년여의 확보된 시간과 예산측면에서 예술위 지원 사업 중 가장 안정적이다. 따라서 신작에 거는 기대와 함께 다소 엄격하게 작품의 수준을 따져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신작들은 각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제의 선명함과 형식의 확장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팸플릿에 기재된 패기에 찬 도전과 실험은 현혹할 만한 글로서나 존재할 뿐 현장에서는 창작자의 고민에 적극 동참하기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스스로도 아직 영글어지지 못한 사회적 주제의 고민으로, 전통과 한국철학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관행적인 몸쓰임새에 취한 모습으로 그리고 조밀하지 못한 단조로운 안무구성과 무절제한 협업의 그물에 갇힌 춤들로 귀결되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2. 3.
사진제공_2021 창작산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