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LIG아트홀 합정 개관과 LIG문화재단
공연장과 무용예술, 특화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장광열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미국의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사는 다른 어떤 예술장르보다 무용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한다. 클래식음악과 뮤지컬 등을 후원하는 미국의 다른 기업과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지원방식이다. 필립모리스사는 대중적으로 취약한 기반을 가진 무용예술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차별화 된 전략을 통해 “어려운 예술장르를 지원하는 기업”이란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해지고 이는 결국 기업의 홍보효과를 배가시키는 결과로 되돌아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예술 지원은 오너의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작고한 금호그룹의 박성용 회장은 클래식 음악 부문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실내악 전용 공간인 금호아트홀과 유망한 젊은 연주자들에게 고가의 악기 대여를 통해 이를 실천했다.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과 일신방직의 김영호 회장 역시 클래식 음악 쪽의 마니아들이다.
 (주)LIG손해보험의 구자훈 회장은 무용예술 부문을 특별히 지원하고 있다. 그의 30년을 훨씬 넘은 무용 사랑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뉴욕에서 공부하던 가난한 예술인들에서부터 춤아카데미 같은 이론연구 모임, 그리고 안무가와 전문무용단체, 무용 페스티벌, 그리고 비평가들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층도 다양하다.
 구자훈 회장의 무용 사랑과 예술지원은 2006년 LIG아트홀의 개관에 이어 2009년 LIG 문화재단의 출범과 잇따른 극장 공간의 확충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지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LIG손해보험이 만든 LIG문화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구자훈 회장은 지난 4월 11일 마포구 합정동에 또 하나의 새로운 극장을 오픈했다. 강남의 중심인 역삼동에 위치한 LIG아트홀과 LIG아트홀 부산에 이은 3번째 전문 공연장의 설립이다. 190석의 객석을 갖춘 이 극장은 앞으로 현대무용과 재즈 공연을 중점적으로 배치하면서 다양한 기획공연들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나의 창작 스페이스가 무용인들에게 주어진 셈이다.

 

 

   LIG문화재단이 전문 공연장을 통해 예술계 현장과 소통하는 지원방식은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LIG아트홀 강남은 1년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영 아티스트 클럽(YAC=Young Artist Club)’, 한국-일본-캐나다를 잇는 현대무용 국제교류 프로젝트 ‘댄스-엑스’, 공연예술인 장기 지원 프로그램인 ‘레지던스-L’ 등 2006년부터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국내ㆍ외 현대무용가들의 연구 및 공연 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LIG아트홀 부산은 가뜩이나 부족한 공연장과 열악한 시설의 공연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제대로 된 시설과 스태프들을 갖춘 전문 공연장으로서 지역 무용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2012년에 이어 부산국제즉흥춤축제를 지원했다. 3일간에 걸친 공연장과 두 개의 연습실, 전문 스태프들의 지원을 통해 부산국제즉흥춤축제가 공연과 운영 모든 면에서 국제적인 축제로서의 틀을 갖추어가는데 커다란 동력을 제공했다.
 특히 LIG아트홀 부산의 서울과 연계한 프로그램 교류는 지역 무용인들과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특화된 공연의 수급이란 점에서, 질 좋은 콘텐츠의 서비스란 점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다.


 

200여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 LIG 합정 개관 기념공연 "댄스 엣지"

 LIG아트홀 합정은 4월 27일부터 5월 4일까지 개관기념 기획공연으로 “댄스 엣지”를 선보였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춤의 날(dance-edge)을 세우고 있는 개성 강한 현대무용가(단체)들을 소개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 LIG아트홀•합정에 이어 LIG아트홀•부산에서도 이어 공연을 가졌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효승과 이은경, LIG아트홀 레지던스 안무가 류장현과 밝넝쿨, 그리고 서울과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인 두 댄스 씨어터와 M-note 현대무용단, 그리고 젊은 무용가 이선아, 전혁진, 장정희의 작품으로 짜여졌다.
 예효승과 류장현(안무 및 출연), 그리고 금배섭(안무 및 연출)이 만든 첫 작품 <나는 사람입니다>는 LIG아트홀 합정의 앞으로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에효승과 류장현 두명 무용수가 20여분 동안 끌어가는 이 작품은 드물게 법정 안이 배경이다. 남편 살해 후 자살을 선택한 한 여자의 사건을 소재로 삼아, 그녀의 사후(死後)재판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의 죄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파헤쳐보고자 했다.
 수십개의 작은 의자를 활용한 독특한 오브제의 사용과 춤 공연의 틀을 벗어난 발상, 예효승과 류장현의 때론 도발적이고 때론 한없이 지유로운 움직임의 조합(때론 놀이적인 요소까지)이 주는 묘미가 맛깔스럽다.

 



 두 번째 프로그램. 안무가 밝넝쿨과 이은경의 작업은 <Hard Duo>란 작품의 제목부터기 범상치 않다. 전체적인 컨셉트의 설정에서부터 움직임의 배열까지 모두가 파격적이다. 관객과 소통하고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연희 공간으로 오픈한 구도 자체가 그렇다. 정형화된 공연의 틀을 부수긴 했지만, 이미지의 완급조절과 거친 2인무를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소프트한 쏘스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세 번째 프로그램. 안무가 이선아와 사운드 디자이너 지미 세르의 춤과 연주가 어우러진 <Touch!>는 주목할 만했다. 이선아는 이 작품을 통해 “나이가 들어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차가운 인간 관계 속에서, 배가 아플 때면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아프던 배를 사르르 녹여주던 그 어린 시절, 어느 따스했던 햇살 같은 추억의 시간”을 담아내고자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과 외부로 드러나는 근육의 떨림까지도 춤으로 확장하는 독특한 컨셉트의 작업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선아의 작품 스타일은 작곡가 지미 세르의, 단조로운 듯 하면서 안으로는 무한히 확장되는 음악과 만나면서 더욱 컨템포러리 댄스로서의 크로스오버를 실현한다. 


  




3개의 극장과 새로운 레지던시 공간을 통한 예술 지원

 LIG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세 개의 공연장은 때론 서로의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도 공간의 특성을 살린 단독 공연을 기획, 작품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
 LIG아트홀•강남은 지난 3월 <노드: 사막의 노인>이란 제목의 일본 공연제작사 하이우드의 디지털 미디어 워크숍 + 쇼케이스 공연을 가졌다. 그런가하면 5월에는 레지던시 작업으로 연출가 김철승의 <신발장을 열었다. 엄마 신발이 하나도 없다>라는 이색 제목의 작품 공연, 고흐의 초상화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떠나는 <명화 속 클래식 음악여행>도 인기리에 마쳤다.
 6월에는 재즈팬들이 직접 선정한 국내 최정상의 재즈 연주자들이 펼치는 특별한 무대 <리더스폴 콘서트>도 준비중이다.
 LIG아트홀•합정은 개관 기념공연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재즈 타임스>와 글로벌 무대를 넘나들며 맹활약을 펼치는 젊은 무용가와 LIG아트홀 레지던스 무용가들이 함께 펼치는 특별한 무대인 <댄스 엣지>를 무대에 올렸다.
 LIG아트홀•부산은 6월 7일부터 8일까지 <댄스 엑스: 몬트리올-동경-부산>을 무대에 올린다. 한국-일본-캐나다를 잇는 현대무용 국제교류 프로젝트로 안무 김수현(한국), 테이타 이와부치 & 카오리 세키(일본), 헬렌 시모노(캐나다)가 참가한다. 다도해의 풍광을 끌어안은 사천의 자연 속에서 세계 최정상의 음악인들과 함께 그려보는 재즈의 미래, 2주간의 국제 재즈 워크숍인 사천국제재즈워크숍2013은 새로 개관한 레지던시 공간을 겸한 사천의 연수원에서 열린다.

 LIG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 공연장들은 단순히 대관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제작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장을 통한 아티스트들의 국제교류를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지던시 등을 통한 아티스트들을 향한 지원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장기적인 기획과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 분명한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 기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본 협회 공동대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춤비평
2013.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