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소영 〈새끼〉, 백진주 〈읊〉, 이이슬 〈오라〉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는 젊은 춤꾼들
최찬열_춤비평가

요즈음 한국춤을 기반으로 해 창작 활동을 펼치는 여러 단체나 안무가들은 어떤 갈증 혹은 갑갑함을 느끼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 같은 심정은 한국춤이 오늘의 감성에 어필하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평자가 최근 본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부문 경연에 참여한 대부분의 중견 안무가들은 구태의연한 창작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춤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공공무용단도 쉽고 단순한 스토리텔링이나 화려한 의상, 소품 등을 전면에 내세운 스펙터클에 의존해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작품을 생산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국춤은 동시대의 춤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낼 만한 여러 난맥상을 노정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한 현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 탓일까, 근래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 그리고 경기도무용단 등에서는 젊고 핫한 현대춤 안무가들과의 협력 작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한국춤에 동시대성을 입히는 작업을 젊은 현대춤 안무가들에게 맡긴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조차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처방만으로는 한국춤에 춤의 동시대성을 장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태를 벗어나기 위한 여러 시도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근본적 처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다소 암울해 보이는 한국춤 씬에 그래도 어떤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거나 진보하고 있는 젊은 창작자들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세 가지 장르로 나뉜 해묵은 분류 체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통춤뿐만 아니라 현대춤과 발레, 그리고 하위문화 춤까지, 다양한 춤을 폭넓게 흡수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춤과 춤 이론을 익히며 자신의 안무 작업에 활용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기실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부문 경연에 참여한 중견 안무가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소극장 부문 경연에 참여한 젊은 안무자들 곧, 김원영, 안지현, 백진주, 이성희, 이지현, 이이슬과 2022년 ‘젊은안무자창작공연’에 참여한 박소영 등은 개성 있는 작품을 내놓아 보여주며 차별화된 춤 지형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고, 이들의 이러한 춤 실천은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중에서도 박소영, 백진주, 이이슬은 새끼(댕기 머리와 줄)와 갈대발 등 일상의 오브제와 꽹과리 등 전통악기를 이용해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야무지고 완성도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


은유의 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삶의 애환과 연륜이 짙게 배어있는 구슬픈 목소리의 아리랑 노래가 들려오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다섯 명의 여성 춤꾼이 무대 중앙에 둥글게 앉아 각자 자기 앞 사람의 긴 댕기 머리를 마치 새끼를 꼬듯 만지고 있다. 이들은 한 손으로 댕기를 잡고 다른 손은 위, 아래로 움직이며 앙증맞게 어울려 보기가 좋은 여러 동작을 구사한다.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다 같이 손을 들어 허리를 일제히 뒤로 젖히기도 하면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데, 물론 이는 새끼 꼬는 행위를 재연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는 또한 한밤 농가의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일하고, 재잘거리며 노는 천진난만한 여인네들을 떠올리게 한다. 2022년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에서 우수안무자 상을 받은 박소영의 〈새끼〉(4월 13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단정하고 아담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입부가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박소영 〈새끼〉 ⓒ박소영




춤꾼들은 서서히 일어나면서 원무를 추듯 돌고, 손을 이마에 얹은 채 먼 곳을 응시한다. 다 같이 아기자기한 발놀림을 구사하면서 각자 앞 사람의 댕기 머리를 잡은 채 빙빙 도는데, 발과 팔 동작이 잘 조응하는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춤사위가 참신하다. 그러다 춤꾼들은 잡은 댕기 머리를 일제히 놓고 흩어져 춤을 춘다. 이런 일련의 춤은 한과 슬픔의 정서를 머금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쾌함도 있다.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이 마냥 한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는 듯이 춤은 유쾌하고 활발하다. 5명의 춤꾼은 원을 그리고 나아가며 공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전하며, 양손을 높이 들어 즐겁고 쾌활하게 손뼉을 마주친다. 이 장면의 안무에서는 특히 한국춤의 연풍대와 강강술래의 구성법을 응용한 점이 눈에 띈다.




박소영 〈새끼〉 ⓒ박소영




이번 공연에서 박소영은 무대 공간을 적절하게 분할하며 세련되게 활용한다. 1대 4로 나뉜 채 진행되는 춤에서 4명의 춤꾼은 무대 곳곳에서 일렬로 앉거나 선 채 라인을 강조하는 춤을 펼치고, 그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 박소영은 혼자 춤을 추는데, 이 춤은 여성의 한 맺힌 삶을 표현하는 듯하다. 곧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하면서 생동감을 더하는 4인무와 솔로 춤이 묘하게 어우러져 일상의 약동과 한(恨)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었다는 말이다.






박소영 〈새끼〉 ⓒ박소영




무대 뒤 벽면에서 한 가닥 줄이 떨어진다. 5명의 춤꾼은 먼저 그것을 잡고 올라가려고 한다. 다른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곧 그러한 시도를 그친다. 다른 삶보다는 지금-여기의 삶을 긍정하듯. 한 명의 춤꾼이 줄을 잡고 일어나 그 줄을 어깨에 얹은 채 상수 쪽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의 춤꾼도 선과 네모, 원 등의 도형을 만드는 군무를 추다가 무대 양옆으로 들어가 줄을 하나둘 가지고 나온다. 아마 그들이 일상의 노동을 통해 만든 새끼줄일 것이다. 춤꾼들은 어느덧 무대의 상수와 하수를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줄을 설치한다. 그렇게 새끼 꼬는 평범한 삶은 계속되고, 그들은 그러한 소소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소영 〈새끼〉 ⓒ박소영




박소영은 이번 공연에서 은유법을 이리저리 잘 이용한다. 이를테면 새끼 꼬는 행위를 댕기 머리를 꼬는 행위로 치환해 보여주고, 그리고 이는 곧바로 여성의 삶을 환기한다. 그래서 새끼는 고단한 여성의 삶을 은유하는 매개물이 되고, 새끼를 꼬는 행위에는 여성들의 삶의 정서가 녹아 있다. 춤 동작과 구성에서도 이러한 은유법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다섯 명의 여성이 일렬로 선 채 각자 앞 사람의 댕기 머리를 잡고 무대 여기저기에서 여러 가지 선과 도형을 만드는데, 이들이 나란히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춤 선, 동작 선 등은 긴 새끼 줄과 굽이굽이 굴곡진 여성의 삶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춤 만든 이의 세밀한 솜씨와 재간이 녹아 있는 〈새끼〉는 모티브를 탁월하게 포착해 이를 독특한 춤 언어로 재치 있게 풀어낸 공연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춤

무대 뒤 벽면 위에서 무대 중앙 쪽으로 한줄기 강한 조명이 투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빛은 무대 중심부에 온전한 밝기로 가닿지 못하고 무대 전체는 어두침침하다. 무대 천장에서 축 처진 채 걸려있는 긴 직사각형의 갈대발이 이 빛 대부분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은 갈대 또는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 만드는데 일상에서는 주로 햇볕을 가리는 데 쓰인다. 곧 발은 빛과 어둠 사이에 걸려 둘을 가른다. 2022년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부분 경연에 참여한 백진주의 〈읊〉(4월 21일,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은 발을 주요 오브제로 사용해 색다른 몸짓 감각을 선보인 공연이었다.




백진주 〈읊〉 ⓒ백진주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발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지대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빛이 약해 어둡고 희미한 무대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어디쯤일 것이다. 걸려있는 발 앞에 한 명의 춤꾼이 앉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춤꾼 한 명이 몸의 뒤쪽을 겨드랑이 정도의 높이에서, 큰 직사각형 형태의 발로 두른 채 무대 뒤쪽으로부터 서서히 에둘러서 나온다. 이때 분명하지 않게 자꾸 웅얼웅얼 읊조리는 말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는 이승의 말이 아닌 듯 의미화되지 않고 바로 휘발되어 흩어져 버린다. 두 춤꾼은 큰 직사각형 형태의 발을 펴놓고 그 위에 앉았다가, 어딘가에 묻히는 듯 발을 덮어쓰기도 한다. 춤꾼들은 삶과 죽음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서성이는 사이-존재자처럼 보인다.

굵고 거칠며 깊은 소리를 내는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두 춤꾼은 마주 보고 선다. 서로 어깨를 맞대어 기대고 다시 물러나 갈대발을 이용한 2인무를 펼친다. 발을 어깨에 두르기도 하고, 발로 몸통을 돌돌 감싼 채 마주 서서 온몸을 떨기도 하다가 잔걸음으로 무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채 발을 날개처럼 쫙 펴 보이기도 한다. 두 개의 발을 나란히 펴 놓고 각자 그 위에서 춤을 추고, 발에서 내려와 무대 중앙에서 2인무를 춘 후 자리를 바꿔 앉기도 한다. 이를테면 춤 만든 이는 일상의 오브제를 활용해 오밀조밀하고 짜임새 있는 2인무를 구성해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춤을 출 때 갈대발이 찌그러지거나 짓눌리면서 내는 소리가 낯선 청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읊조리는 말과 공명하며 이승의 말을 대신하는 듯하다.






백진주 〈읊〉 ⓒ백진주




그러다 두 춤꾼은 발을 돌돌 감아 들고 이런저런 몇 가지 행위를 하는데, 이 장면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보인다. 두 춤꾼은 발을 말아 상대의 등에 올려놓는데, 이는 마치 큰 관을 진 듯한 모습이다. 또 돌돌 말린 발을 세웠다가 누이기도 하는데, 이는 진도 다시래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 같다. 곧 출상 전 밤에 빈 상여를 이용한 놀이인 진도 다시래기는 상을 당한 유족들의 슬픔을 누그러뜨리고 죽은 자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극락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비는 상여 놀이인데, 춤꾼들은 이를 축약해 보여준 것이다. 또한 길게 말린 발로 뭔가를 재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이때 발은 길이를 재는 자로 변용되어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다른 두 차원 사이의 거리를 측량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발의 다채로운 변용이 도드라져 보이는 장면이다.






백진주 〈읊〉 ⓒ백진주




결단의 순간이 임박한 듯, 두 춤꾼은 빠르게 연주되는 거문고 음악에 맞춰 역동적인 2인무를 펼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이 존재자들의 의미화되지 않는 몸부림을 보는 듯하다. 그러다 두 춤꾼은 발을 다시 펴 두른 채 무대 상수 방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나아간다. 앞서가든 춤꾼이 엎드리면 뒤의 춤꾼은 그의 등을 타고 넘어간다. 그렇게 상수 가까이 이르면 희미한 조명이 들어와 그곳을 비춘다. 제법 큰 목각상 4개가 설치되어 있다. 시베리아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무덤 같기도 하고, 어떤 경계 지대를 표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춤꾼들은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섬세한 연출력으로 갈무리된 깔끔한 마무리 장면이다. 백진주의 〈읊〉은 발이라는 오브제를 끈기 있게 활용해 삶‘과’ 죽음이라는 꽤 까다로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콘셉트와 춤성을 동시에 살린 울림이 큰 공연이었다.






백진주 〈읊〉 ⓒ백진주




그런데 이번 공연 〈읊〉에서 2명의 춤꾼은 주로 빛이 약해 어둡고 침침한 공간에서 움직인다. 그렇지만 그들의 춤은 생생하고 강렬하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반면에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는 불분명하다. 춤은 알아들을 수 없게 읊조리는 말처럼 의미화와 정동 사이에서 진동한다. 춤은 감각적으로 명증하나 그것이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곧 사이-공간 혹은 중립 지대에서의 춤은 지시 대상이 애매한 몸짓-기호로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함 속의 불분명함이라는 역설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춤이 사유를 더 강하게 자극한다. 곧 이번 공연 〈읊〉은 사유와 감성을 동시에 촉발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그런 점에서 ‘춤, 사유의 발견’이라는 올해 ‘한국무용제전’의 전체 주제에 제일 부합하는 공연이었다.


씻김과 신명의 춤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부분 경연에 참여한 이이슬의 〈오라〉(4월 23일,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는 흡인력 있는 춤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공연이었다. 이이슬은 마치 엑스터시 상태에 든 무당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살풀이 춤판을 한판 벌였다. 한 줄기 강한 조명 빛이 무대 중앙에 선 춤꾼을 가늘게 비추고 있다. 흰 망사 드레스를 입고 하반신에 큰 페티코트를 걸친 춤꾼은 팔꿈치까지 오는 길고 파란 장갑을 끼고 있다. 또 춤꾼은 반짝반짝 광이 나는 꽹과리를 가면처럼 얼굴에 쓰고 있다. 춤꾼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익명의 아무개이다.




이이슬 〈오라〉 ⓒ이이슬




춤꾼은 허리를 조금 숙인 채, 두 팔을 함께 좌우로 천천히 젖기도 하고 벌렸다가 모으기도 한다. 팔 동작 위주로 진중하게 수행되는 도입부 춤은 고도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춤꾼은 마치 외부 세계의 기(氣)를 자기 내면으로 빨아들이듯이 온몸을 수축하는데, 그 순간 얼굴에 쓴 꽹과리가 조명 빛을 반사하며 강렬한 빛을 객석 쪽으로 쏘아댄다. 춤꾼 내부에 응축된 기가 분출하며 온 극장으로 퍼져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춤꾼은 허물을 벗듯 천천히 페티코트를 벗기 시작한다. 그러다 온몸을 떨다가 양손을 위로 쭉 뻗어 올리고, 얼굴을 들어 천장을 보고 난 후, 페티코트를 완전히 벗어난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오는 듯한 이 장면은 변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춤꾼은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제 그의 몸은 익명의 아무개들을 대표하는 몸일 것이다. 그런 그가 천천히 얼굴을 가린 꽹과리를 벗어 손에 든다.




이이슬 〈오라〉 ⓒ이이슬




기타와 해금 소리가 주조를 이룬 생음악 반주와 함께 얼굴을 드러낸 이이슬은 꽹과리 춤을 추기 시작한다. 춤이 진행될수록 생음악 장단은 점점 빨라지고, 반주 음악에 조응하며 춤의 기세도 고조된다. 꽹과리를 든 채 돌고, 높여 들어 휘젓고, 어깨에 올리고 엉덩이를 무대 바닥에 붙인 채 기어 다니고, 발로 밟고 질질 끌다가 휙 밀어버린다. 그러다 양팔을 벌린 채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데, 춤은 엑스터시 상태에 들기 위한 무당의 회전무를 연상시킨다. 무대 뒤쪽에서 춤추는 이에게 투사되는 강렬한 조명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빠르게 몰아가는 생음악 장단과 춤은 서로를 부추기며 점점 신명을 더해간다. 급기야 이이슬은 무대 중앙에서 하수 앞쪽 대각선 방향을 응시하며 꽹과리를 힘차게 두드리는데, 그 순간 하수 앞쪽에서 누군가가 엉덩이를 무대 바닥에 붙인 채 엉금엉금 기어서 이이슬에게로 다가온다. 이이슬은 뒷걸음질 치면서 그 사람을 인도해 상수 뒤쪽에 세워진 사다리까지 데려간다. 사다리는 우주목처럼 놓여 있다. 아무개는 사다리 상단부에 걸터앉아 애절한 노랫가락을 뽑아낸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속이로다.” 체념과 허무함이 잔뜩 배어있다.






이이슬 〈오라〉 ⓒ이이슬




노래에 맞춰 이이슬은 천천히 춤을 춘다. 그와 동시에 무대 천장에서는 수많은 꽹과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바텐이 내려오고, 이이슬은 여기에 자신이 들고 있던 꽹과리도 매단다. 수많은 꽹과리는 아무개들의 영혼인 듯하다. 이이슬은 엑스터시 상태에서 이들을 무대로 불러들인 것이고, 그들을 위한 해원 상생의 춤판을 펼친 것이다. 이이슬의 이번 공연 〈오라〉는 한판 굿이었다. 그는 무당이 되어 억울한 원혼들을 달랬고, 절정의 순간 춤꾼의 기는 극장 전체를 압도했다. 이이슬은 총체 연행인 굿을 주관하는 무당처럼 혼자의 힘으로 공연을 시종일관 몰입감 있게 끌고 가는 신명이 넘치는 춤꾼이었다. 2022년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부분 경연에서 최우수안무자 상을 받은 〈오라〉는 신명과 한의 정서를 오가며 황홀경 체험과 씻김의 의식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이이슬의 춤과 퍼포먼스가 빼어나게 발휘된 공연이었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2. 6.
사진제공_박소영, 백진주, 이이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