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국립현대무용단 무용학교를 가다
무엇이 인간을 춤추게 만드는가

 

 

 

중앙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국립예술 단체들에게는 공공성이란 책임이 뒤따른다. 질 높은 예술작품의 공연 못지않게 교육을 통한 예술나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춤 교육 현장(무용학교)을 취재했다. 교육프로 그램을 진행하는 제환정의 글 “무엇이 인간을 춤추게 만드는가”도 함께 게재한다. 왜 인간에게 춤이 필요한지 명쾌한 답이 담겨 있다. (편집자 주)



(1) 무용학교 현장 취재

일상에서의 행위도 춤이 될 수 있다

 

이보휘_<춤웹진> 기자


 2014년 10월, 조금은 특별한 수업에 다녀왔다. 수업 전 연습실의 풍경은 일반 무용 연습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안한 옷차림에 몸을 풀고 있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위의 사진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용학교 <오설영의 워크샵> 수업 중 수강생들이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2013년 10월 "인간은 모두 무용수"라는 철학 아래, 테크닉 중심의 춤추기 수업이 아닌, 인간이 왜, 어떻게, 무엇을 춤추는가를 탐험하는 과정중심의 무용학교를 개강했다. 여타의 무용단이나 예술단체의 부설 교육기간이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갖는 반면, 국립현대무용단이 내건 '무용학교'라는 이름은 테크닉 중심의 무용 강습이나 아동 중심의 체험학습에서 벗어나 단순한 춤추기가 아닌 춤을 추고, 토론하고,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하고 만드는 통합적 무용교육을 지향하는 예술교육기관임을 상징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학교를 기획한 제환정은 “기술적인 측면에만 치중되어있는 현 무용교육에 아쉬움을 느끼고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함을 회복하고 싶었다”는 제환정씨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만으로 만들어내는 춤이 매력적이라고 이야기 한다.
 무용학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와 전문무용수를 위한 오픈 클래스로 나뉘어져 있으며, <춤웹진>에서는 이중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집중 취재했다.
 일반인을 위한 강좌로는 서울예대 초빙교수인 장은정의 <춤으로 말걸기>, LDP무용단 단원 김동규의 <움직임 실험실>,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설영의 <움직임 워크샵>이 지난 8월부터 진행되고 있다. 기자는 그 중 김동규의 <움직임 실험실>과 오설영의 <움직임 워크샵> 수업 현장을 다녀왔다.
 “걷기, 숨쉬기, 달리기…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행동들도 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수업은 현대무용의 방법론을 통해 움직임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배우며,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김동규의 <움직임 실험실> 수업에 대한 설명이다. 10월 15일 참석했던 본 수업은 가볍게 몸을 푸는 움직임으로 시작됐고, “의지”라는 주제로 이루어졌다. 수업은 수강생 각자 의지하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어떤 면에 의지하고 있는지 적은 후 그것을 토대로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은 네 단계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서로 둘러 앉아 각자 적은 내용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처음엔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 다음엔 말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집중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번째 단계는 벽을 이용해서 의지한다는 느낌이 나는 동작을 만드는 것이었다. 김동규는 “좋은 동작을 만들기보다 본인이 적은 내용을 사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요구했다. 세 번째 단계는 두 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아무 동작도 하지 않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다른 한 사람은 벽을 이용하여 만들었던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단계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의지하려하는 사람의 동작을 받아줌으로써 좀 더 넓은 범위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수강생들이 적었던 텍스트는 움직임이 되어갔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움직임! 사실 화려하고, 테크닉적인 움직임을 배우고 싶어서 온 수강생들에겐 만족스럽지 못한 수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움직임 속에서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10월 1일 참석했던 수업은 오설영의 <움직임 워크샵> 이었다. 이날은 특별히 5명의 뮤지션과 함께하는 ‘즉흥잼’이 진행됐다. 색스폰, 베이스, 드럼, 피아노로 구성된 밴드의 즉흥연주에 맞춰 즉흥으로 움직이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2명씩 짝을 지어 몸을 푸는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오설영은 몸을 푸는 중간 중간 몸의 흐름과 에너지의 흐름을 느껴보라고 강조했고, 그녀의 이러한 가르침은 즉흥잼을 시작하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이 깔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은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분명 사전에 상의하고 맞추는 과정이 없었음에도 수강생들은 자연스럽게 둘씩 혹은 셋씩 동작을 맞추기도 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가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오늘로 5주차 수업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강생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잠깐의 쉬는 시간, 수업이 어떠냐는 강사의 질문에 “혼자보다는 같이 하는 것이 재미있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같이 할래 라는 물음을 던지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수업 초반에 조금은 딱딱했던 분위기가 몸의 대화 후에는 너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어있었다.
 두 번째 즉흥잼에선 더욱 신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음악에 수강생들의 어깨는 들썩이기 시작했고, 어깨를 넘어 엉덩이를 들썩이던 한 수강생은 더욱 신명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수강생들의 움직임에 맞춰 연주해주겠다던 뮤지션들은 더욱 신나는 리듬을 만들어 냈고, 이에 질세라 수강생들은 더욱 신명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수업은 어느새 클럽 분위기로 바뀌어있었다.

 



 배우를 꿈꾸고 있는 김슬비(21세, 학생)는 “몸을 제대로 못쓰는 것이 콤플렉스라서 내 몸을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하다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다음날 자고 있어나면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지만, 나 자신과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라고 하였고, 어린 시절 부상으로 무용수의 꿈을 접고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임소연(26세, 직장인)는 “대학생 때부터 무용을 취미로 해왔는데 그 동안 주로 바와 기본기 위주로 수업을 했었는데, 여기는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나 자신을 느끼게 해줘서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이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느 누구도 움직임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사는 조금은 어색해서, 혹은 부끄러워서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더 많이 움직이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봤고, 기다려 줬다. 그에 답하듯 조금은 쭈뼛대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참여자들은 온전히 자발적으로 본인의 움직임에 집중하여 춤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늘 짜여진 프로그램에 맞춰 교육받고, 계획대로 살아가라고 강요받는 요즘 사회 속에서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수업이었다.
 매년 봄·가을 개강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학교는 총 12주차 강의로 되어있으며, 2014년 가을 학기는 3번의 강의를 남겨두고 있다. (문의: 국립현대무용단 02-3472-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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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획 진행자의 글

모든 사람은 무용수- 인간과 행복을 연결하는 춤


제환정_무용학. 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 강사


 해석 그리고 무용수

 

 쑥스럽지만, 수 년전 나는 몇 권의 책들과 기고를 통해, “춤이라는게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니, 이 책을 플래시보(위약)삼아, 일대일로 정면승부 해보라”며 문외한씨들의 등을 떠밀어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문외한씨들과 나의 학생들의 현대춤에 대한 최초 등정의 기록물인 "감상문"이라는 과제를 통해 비춰보건대, 그들이 대면하는 현대춤이란 지극히 불친절하고, 무자비하도록 어렵다.
 현대예술은 ‘내가 왜 예술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설명하는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지닌다는데, 작품에서 한 눈에 알아차리기 힘든 철학적 의미는 거대한 담론과 해석의 프레임을 요구한다. 길 잃은 어린양들의 손에 꼭 쥐어진 프로그램북은, 종종 미로를 안내하는 친절한 지도가 아니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미학서에 가깝다.
 “작품과 일대일로 정면승부해 작가의 고유성을 나의 눈으로 발견하라”는 나의 주문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생들의 한숨과 아우성에 공허하게 묻혀진다.
 정작 무용박사라는 타이틀의 나 자신조차, 이 현대예술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 언제였을까. 20대의 제롬 벨이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되어야겠습니다"라고 무용사와 철학을 공부했다는데, 춤을 감상하는 이 시대의 온전한 관객이 되기 위해서는 현대미학과 인문학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해석의 막중함과는 반대로, 제작자이자 실행자인 무용가의 무게에도 변화가 있다. 최근 두각을 보이는 서구의 안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춤으로 잔뼈가 굵은 무용수가 진화한 경우보다는, 무용수로서의 백그라운드가 적은 (종종 전무한) 안무가들이 단연 압도적하다. 이유가 뭘까. 무용수로서의 경력의 부재가, 혹은 그 고된 훈련의 시간대신 채워진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고유한 내러티브를 정면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저력이 되는걸까. 또 하나,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참여와 과정이 중시되는 “커뮤니티 댄스” 가, 예술가들의 열정적 리드로 혈기왕성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무용수, 정말?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화두로 시작한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학교” 프로그램이 벌써 세번 째 시즌이다. “현대무용이 배우고 싶어서" "TV에서 보니 멋져 보여서" “자기 표현을 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남 앞에서 춤을 추어보고 싶어서” “좋아하는 무용수가 가르친다기에 만나보고 싶어서”....
 20대 대학생에서 50대 아저씨까지, 무용학교의 참가자들은 이유도, 사람도, 몸도, 원하는 것도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춤을 이해하기 위해 춤을 “보는” 대신, 직접 “만들고 춰보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무용학교”는—여느 국공립 기관들의 "아카데미"라 부르는—커뮤니티 대상의 열린 프로그램이다. 굳이 "아카데미"라는 멋진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권위와 규칙, 절차와 중심지”라는 단어의 상징성과는 별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무용수”라는 철학대로 오늘날의 춤을, 오늘날의 사람들과 추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스텝을 반복하고 학습하는 “춤추기(dancing)”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춤을 만들고 추고, 감상하고 토론하는 복합적이고 정교한 춤의 “과정”을 공유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움직임의 자발성, 과정중심,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방향성아래, 기획자이자 진행자인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의욕적인 아티스트(일반적인 환타지와는 달리, 좋은 아티스트가 늘 좋은 리더나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들과 방향성을 공유하고, 10-15명 미만의 낮은 “강사 대 학생비율”을 유지하며, 드럼, 건반 등 뮤지션 (혹은 필요에 따라 전문댄서)들을 초대하고, 그들이 행복한지 종종 확인하는, 경비원 역할이다.
 12주 동안 이 “새로운” 무용수들은 스튜디오 플로워에 눕는 순간부터 반주자의 연주를 느끼며, 비를 맞으며 야외수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 시간을 꼬박 글쓰기와 토론에 보내기도 하고, 재즈 연주자들과 (예산이 허락하는 만큼) 즉흥 잼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온 영상을 벽에다 올리며 즉흥에 뛰어들기도 한다.
 기획자인 내가 프로그램 기획서에 적어 내려간 의도는 장황하였으나, 무용학교가 내게 가르치는 것은 선명하다. 마지막 수업에 참여자들에게 기어코 받아내는 <프로그램 평가지>의 마지막 문항에는 "그 동안 행복했다"는 말이 가장 자주 눈에 띈다 (두 번째로 자주 띄는 것은 “탈의공간이 부족해요”다).
 “인간”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이 춤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가끔은 낯설고도 신선하다. 경기도의 한 시(市)에서 두 시간 걸려 예술의 전당으로 나오고, 주 3회의 신장투석을 하면서 한 번의 결석이 없는,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한 무용수가 고백했던 말도 바로 그 단어였다. 춤추는 순간이 "행복"하고, 그래서 수요일을 기다리게 된다고.




 춤. 다시, 인간에게로

 

 물론, 무용학교를 통해 발견하는 행복한 사람들의 날 것의 움직임이, 항상 아름답고, 지루하지 않으며,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를 어여삐 보이고 싶어한다거나, 관람자의 호의, 취향, 혹은 쉬운 동의를 얻기 위해 애를 쓴다거나, 움직임의 주체로써 자신의 의도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진솔함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다.
 좀 더 애정을 발휘하여 춤을 들여다보자면, 이들의 춤은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만큼 제각각이나, 덕분에 삶의 양면성만큼은 그대로 드러낸다. 움직임은 심심하지만 시시하지 않고, 조심스러우나 그 조심과 배려가 타인에게도 적용되며, 꾸미지 않았으나 거침이 없고, 겁먹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양면성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각각의 고유성이 아름답고, 무척이나 존엄하다는 거다. 다양성의 발견, 다름의 찬미. 춤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존엄성. 춤이 지닌 건전성의 회복이, 춤이 지닌 가장 소중한 의미의 발견이 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맞다. 춤을 통해 확인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니. 2014년을 고통스럽게 버텨온 어른들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와 확신 아니던가.

 ● 필자 소개
 템플대학교 무용박사 (Ph.D in Dance), 무용교사이자 무용학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민대학교 등에 출강하며,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학교><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하는 무용도전>(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4.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