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뒤셀도르프 현지취재_ 플라멩코 페스티벌
전통예술이 살아가는 법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독일 노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탄츠하우스 NRW’는 4000㎡의 대지에 자리한 전차 보관소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연간 200여개의 공연이 올려지고, 8개의 스튜디오에서는 한 주에 300여개에 이르는 각종 강의와 워크샵이 이어지고 있다.
 ‘탄츠하우스 NRW’는 1970년대에 시작된 예술 프로젝트 ‘베아크슈타트’(Werkstatt)를 모태로 발전해 1998년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미 70년대부터 현대 무용의 다양성과 그 가치를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양식의 공연들을 소개하며 관객층을 넓혀나갔고, 오늘날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구축하게 되었다고 한다.
 탄츠하우스의 프로그램에는 발레, 현대무용, 탱고, 힙합 등의 워크샵과 현대무용 공연은 물론 신진 안무가 육성을 위한 레지던시와 생활로서의 무용이 사회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여하는 프로그램들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탄츠하우스는 세계적인 현대무용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고, 세계적으로도 롤모델이 되고 있는 중요 종합 무용 센터이다. 과거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던 전차들이 결국은 이곳 전차 보관소로 모였던 것처럼 지금 탄츠하우스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현대무용의 집합장소가 되었다.

 




플라멩코 페스티벌

 탄츠하우스에서는 매년 세계 각국의 춤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아프리카 댄스 페스티벌과 플라멩코 페스티벌이 대표적이고 2010년, 2013년에는 Kore-A-Moves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유럽에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를 알리는 장이 되기도 하였다.
 매해 봄 개최되는 플라멩코 페스티벌은 스페인이 아닌 외부에서 열리는 가장 큰 플라멩코 축제로 올해는 4월 11일부터 21일까지 11일간 진행되었고, 2천여명에 이르는 플라멩코 전문가들과 팬들이 모여들어 공연과 워크샵에 참여하였다.
 본래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예술로 칸테(노래), 토케(기타연주), 바일레(춤), 팔마스(박수)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빠르면서도 무게감 있는 리듬으로 기교를 부리는 기타 연주, 화려한 붉은 색의 드레스를 흔드는 무용수의 강렬한 춤, 깊고 울림 있는 노래와 박수가 한데 어우러지고 거기에 집시들의 감성까지 뒤엉켜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는 예술이다.
 이러한 플라멩코가 탄츠하우스의 페스티벌에서는 조금 색다르게 소개된다. 탄츠하우스 자체가 현대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현대적인 플라멩코를 소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올해 페스티벌은 플라멩코의 긴 역사만큼 시간에 따라 변화된 전통 예술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플라멩코 작품들과 워크샵으로 채워졌다.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Lérida)는 플라멩코 전위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3세 때부터 플라멩코를 시작한 그는 이후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연극과 현대무용을 공부했다고 한다. 안무가의 이러한 경험과 배경은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다.
 후안 카를로스는 <Al Cante>에서 플라멩코 노래로 우주로의 여행과 달 착륙이라는 주제를 풀어냈다. 플라멩코와 우주, 그리고 달이라는 소재는 언뜻 연계성을 찾기 힘들지만 그는 플라멩코 노래만이 품고 있는 어둡고 미묘한 음들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의 아득함을 표현해 내었다. 또한 플라멩코의 특징적인 스텝이나 손목 등의 움직임을 걷어내고 단순화 된 현대무용으로의 방향을 잡고 있으며, 연극적인 의상과 소품 등으로 우주와 달의 상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플라멩코와 현대무용에서 노래와 춤이라는 요소를 끄집어내고 분해하여 이제까지의 관행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재조합을 만들어냈다. 그의 안무는 통념에서 벗어난 채 두 가지 요소를 급진적으로 연결하였고, 그 두 요소가 적절히 버무려진 담백한 무대를 완성했다.

 



 후안 카를로스는 페스티벌 기간 동안 플라멩코 무용수들 및 가수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4일 간의 워크샵 결과물은 <노래하는 몸>(Cuerpos del cante)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14명의 플라멩코 예술가들은 워크샵 기간 동안 발전시킨 즉흥 주제에 약간의 형식만을 더한 즉흥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노래하는 몸, 몸이 하는 노래라는 주제로 플라멩코가 가지고 있는 그 만의 소리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10여명의 공연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들은 낮고 가늘게 시작되어 점점 동물의 아우성처럼 번져나갔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는 ‘소리’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움직임 파트에서는 공연자들이 각자 준비한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에 찍힌 일상적 움직임을 플라멩코 움직임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 역시 소리 파트와 마찬가지로 느리고 단조로운 움직임부터 시작되어 그 마지막은 극도로 동물적이고 본능적임 움직임으로 변화되며 감정이 고도로 치닫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플라멩코 무용수와 가수 그리고 안무가가 함께 몸이 내는 소리, 소리가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라는 평범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샤 발츠 무용단의 무용수인 후안 크루즈(Juan Kruz Diaz de Garaio Esnaola)는 그의 신작 <Romance>를 무대에 올렸다. 스페인의 중세 문학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그는 중세 발라드 음악을 통해 추방과 분리에 대한 시대상을 이야기를 했다.
 플라멩코의 춤과 현대무용이 적절히 배합된 작품에서는 독일 무용극의 표현법들이 강하게 드러났다. 연극처럼 직접적인 제스쳐들과 거기에 묻어있는 유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의자를 한 발짝 앞으로 끌어당기게 하였다. 일반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현대무용보다는 일상과 조금 더 맞닿아 있는 무용극의 보통의 표현법이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걸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12년간 부토를 추었다는 소니아 산체스(Sònia Sánchez)는 부토와 클래식 플라멩코를 결합한 작품 <Le ça. El Ello>를 선보였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에 남아있는 소리, 포지션, 제스쳐 등을 무대 위로 불러내었다. 그녀는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표현적인 움직임 언어들을 즉흥 형식으로 꾸몄다.
 무대에는 전자기타 연주자와 플라멩코 가수, 사운드 디자이너가 함께 올랐는데 실제 공간적으로나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각 예술가가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제한적이며 독립적인 연출이 눈에 띄었다. 기타는 가수의 노래를 돋보이게 하고 노래와 사운드 디자이너는 춤을 돋보이게 했다.
 
 

 특히 소니아 산체스의 춤에 맞추어 사운드 디자이너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그녀가 춤을 추며 내는 구두 소리인 듯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무대 끝에 서서 강렬한 마지막 스텝을 두드렸을 때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와도 같은 울림은 마치 그녀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것과 같은 인상을 남겼다. 4명의 예술가가 공연 내내 각자의 자리 지키면서도 함께 뿜어내는 즉흥적 이미지와 소리는 플랑멩코를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했다고 느껴진다.
 소니아 산체스의 춤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된 힘과 충동이 강하게 표출되었는데 이것은 부토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그녀의 움직임에서 플라멩코의 격렬한 춤 뒤에 내재된 집시들의 슬픈 역사와 암흑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토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멩코 고유의 춤을 보지 않아도 귀에 들리는 발소리와 음악, 감정의 표현만으로도 그들만의 짙은 정서와 음악적 감흥을 관객에게 전하기에 충분했다.
 탄츠하우스의 플라멩코 페스티벌에는 경쾌한 소리를 내는 스텝, 손목에 의한 감정 표현, 우아한 어깨와 허리 놀림, 손가락으로 음을 내는 피트와 캐스터네츠 등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플라멩코는 없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새로운 형식으로 구성된 플라멩코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 서있는 집시들과 그들이 남긴 발자취의 무게와 한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각, 청각적 전달이 아닌 그 전통 예술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정서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오래된 건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무조건 때리고 부수고 새 건물을 찍어내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한국이 새 것을 반기는 것은 문화와 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가끔 모두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것이 똑같은 아파트를 찍어내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복과 버선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전통 예술의 획기적인 변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전통 예술에 담겨있는 우리만의 미와 한의 정서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때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전통무용, ‘우리의’ 현대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바라볼 때 이번 플라멩코 페스티벌은 전통예술이 현 시대를 살아나가는 방법을 적절히 담아낸 축제였다. 

2014.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