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8
자연스런 작업을 다시 찾으며
남영호_재불무용가

올해 다시 춤 작품 작업을 시작했다. 제목은 〈침묵의 외침〉. 춤과 철학을 주제로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몽펠리에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철학자와 협업하기로 했다. 그와 만나면 여러 가지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오래전 한국에도 몇 번 갔다 와서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는 분, 그와 그동안 가졌던 인생에 관한 대화가 나로 하여금 올해부터 시작하는 작품 〈침묵의 외침〉이라는 제목이 나오도록 했다.

오래 작품을 만들지 않았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상처, 마음이 아파서였다. 그간 작품을 만들고 제작하여 공연한 후, 좋은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 작품이 제대로 투어하며 성장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낳은 소중한 아기가 크기도 전에 죽어 버린 것 같은, 그래서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작품을 안 만들고 싶어졌다. 작품 만드는 것이 오히려 죄인이 되는 것 같이 두려웠다. 아예, 춤 자체가 미워졌다는 표현이 맞을 수 있겠다.

누가 그랬던가? 미움은 곧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 다시 내 마음 안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작업,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과 그것을 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의 가능성, 여유들이 생겨나기를….

그러다, 코레디시 페스티벌을 하게 되었다. 여러 다양한 분야들을 맞으면서 난 나에 대해서 커다란 깨달음을 가졌다. 그동안 내가 너무 춤 작품에만 집착했었다는 것을…. 춤 작품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썼었다. 몸의 본질을 찾기 위해 밤을 새웠다. 춤 작업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엉엉 울기도 했다. 안 좋은 춤 공연을 보고 와서 엄청 분노도 했었다. 춤이라는 그 안에 갇혀서 난 인생을 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코 춤에 대해, 작품에 대해, 자연스럽지도 순수하지도 못했다. 진정 자연스러웠다면, 순수했다면 작업에 충실하면서도 그 순간들을 즐기고, 옆으로 나와서 볼 수 있는 여유로움도 있어야 했었다. 난 그러질 못했었다.

지금에라도 깨우친 것에 감사한다.

그래서 이번 새 작품 〈침묵의 외침〉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3년 계획(탐구, 연구, 결과)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프로세스의 첫 단계로 올해 침묵의 외침 ‘탐구’ 편으로 한국 투어가 있었다.

무용단 팀들과 한국을 다시 다 같이 느끼고 싶었다. 프랑스와는 다른 문화, 배경, 생활들…. 그들의 모든 경험들이 우리가 계속할 작품에도 많은 영감을 불러오기를 기대도 해 본다. 오랜만에 다시 무용단과 함께 온 한국 투어는 설렜고, 신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스케줄과 무용수들과의 짧은 회의, 그리고 각자 일들을 보고, 제시간에 맞춰 일정을 소화해내는… 역시 프로들이다.





제주국제즉흥춤페스티벌에서 〈침묵의 외침〉



어떻게 한국 투어가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꿈 같이 지나갔다. 한국 투어 계획은 부산국제무용제에 초청받으면서 시작되었고, 그 기회에 또 다른 한국 일정을 추가하고 싶었다. 부산국제무용제 전에 제주, 서울 국제즉흥춤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몇 해 전 이미 참가했던 그 축제에 계획을 소개하고 초청이 이루어졌다.

작품을 구상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용수들이다. 그리고, 음악 작곡. 그동안 나하고 작업했던 무용수들에게 연락했다. 모두들 좋아했다. 이제는 무용수들이라기보다는 가족, 친구 들이다. 함께 작업한 지 20년이 넘는 무용수들도 있으니까. 이제 그들도 제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시 모일 기회가 되었다. 나는 큰 문제가 없다면 같은 무용수들과 오랫동안 같이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모든 무용수들과 그런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작품을 보다 보면, 그 작업들이 시간을 들여서 한 건지, 안무가와 어떤 긴밀한 소통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빨리 빨리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무용작품 무대막이 올라간 이후, 안무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난, 무용수들이 가진 각자의 기질들을 갖고 작업하기 때문에 더욱 그들과의 작업에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해를 거듭하면서 만들어지는 무용수들과의 작업은 더욱 밀도 있어지고, 진국이 되어 간다. 아예, 몇 무용수들은 이제 나의 색깔을 알고 있어서 내가 한 마디만 해도 척척 이해해서 더 많은 것을 창출해낸다. 그럴 땐 마치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아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마냥 신기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작업해 온 그 시간들이 그냥 기계적인 시간이 아니었고, 진진하게 보냈던 하나의 추억들, 경험들, 인생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프랑스에서 30년 프로 무용수로 있으면서 두 안무가(자키 타파넬, 수잔 버지)와 7년씩 작업 했었다.



서울국제즉흥춤페스티벌에서 〈침묵의 외침〉



무용수들에게 새 작품 얘기를 하고 한국투어 계획을 얘기했다. 3주간의 세 도시 투어(제주, 서울, 부산)로 그들도 자기들 일정을 조절해야 했었다. 무용수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자기들 일정을 조절해주고, 적은 개런티에도 흔쾌히 응해 주었다. 무용수들은 그냥 한번, 두번 하는 공연이 아니고 레지던시라서 더 좋았다고 했다. 제주국제즉흥춤페스티벌은 제주에서 며칠 간 체류하며 여러 장소들을 다니면서 그 장소들이 주는 영감, 느낌 들을 즉흥으로 풀어내고, 다른 무용수들과의 섬세한 나눔의 협업들, 그리고 그 협업 프로젝트가 서울국제즉흥춤페스티벌로 연결되는 포용적이며, 관용적인 시도, 연출들, 거기에 여러 다양한 팀들의 즉흥들도 볼 수 있어서 프랑스 무용수들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몽펠리에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얘기들을 오랫동안 했었다. 특히 제주도의 돌문화공원은 자기들이 가 본 곳 중 제일 좋았던 곳의 한 장소였고, 땅의 특별한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다.



  

부산국제무용제에서 〈침묵의 외침〉



제주, 서울에서의 공연이 즉흥이었다면, 부산국제무용제에서는 〈침묵의 외침〉 작품 공연이었다, 페스티벌 규정상 15분으로 되어 있어, 올해 〈침묵의 외침〉 예고편을 하게 되었다. 해운대 바닷가 상설무대에서 이뤄지는 공연이라 집중도 면에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공연하는 동안 무용수들과 관객들의 에너지가 교감 되었다고 할까? 무용수들의 집중된 내면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의 몸짓과 관객들의 시선은 야외이지만 서로 연결되었고, 즐겁거나 화려한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우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난 작품의 진실성을 믿는다.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기계적인 아닌 진정 가슴으로 몸으로 전하는 말을 하는 것을 관객이든, 프로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음 편에는 작품의 진실성은 통한다는 것을 실제 경험했던 얘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 난 고향인 부산에서 공연이 설레였다. 2006년 이후 오랜만에 하게 되는 부산공연, 처음 으로 초대받아서 하는 부산 국제무용제에서의 공연.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공연 등, 무용수 들은 제주도도 그랬지만 부산도 아주 좋아했다. 아마도 같은 남쪽이라 바다도 있고 해서가 아닐까? 그동안 부산은 좋은 쪽으로나 아쉬운 쪽으로나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고향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사투리를 실컷해도 전혀 소통에 문제가 없는, 바다음식들,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자극적인 음식, 매운 음식들을 프랑스 무용수들은 아주 잘 먹었다.

나는 또 꿈꾼다, 상상을 한다. 무용수들과의 다음 작업들을!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3. 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