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 춤기행_ 부다페스트에서의 협업 작업
여자에게, 무용가에게 몸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윤정_재독 안무가. YJK댄스컴퍼니

 5월 내내 나는 헝가리에서 4명의 안무가들과 함께 협업 작업을 가졌다. 이번 헝가리 부다페스트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4개국의 여자 안무가들이 모여 3주간 작업을 하고 1부는 네 개의 각자 솔로, 2부는 함께 만든 4인무 작품을 부다페스트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었다.
 멕시코에서 온 가비(Gabriela Cuevasabtia), 태국에서 온 일본계 소노코(Sonoko Prow), 그리고 헝가리의 리타(Bata Rita)가 함께 작업한 안무가들이다. 가비는 발레로 시작해 부토, 컨템포러리 춤을 추며 멕시코 과달라할라(Guadalajara)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또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소노코는 치앙마이(Chiangmai)에서 연기지도와 드라마테라피 워크숍을 지도하며, 피지컬테아터 컴퍼니 예술감독이자 본인도 꾸준히 부토 컨템포러리 댄서로서 활동하고 있다. 리타는 부다페스트에서 본인의 솔로 작업과 안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요코야마 댄스 컬렉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2년 SIDance에 6개월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부다페스트 댄스 페스티벌의 프로그래머, 디렉터를 겸하고 있는 안무가다.

 



  



 숙소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깝고, 우리들이 작업할 스튜디오도 가까운 시내 중심가 리타의 집에서 네 여자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리타의 정확한 성격답게 몇 가지 규칙들이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더 오랜만에 학생시절 기숙사 생활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3주간 연습할 스튜디오의 주인은 내가 네덜란드 EDDC에서 강사로 있을 때 함께 강사로 있던 에스테여서 무척 반가웠다.
 그 옛날 그녀의 작업을 보며 헝가리 현대무용이 매우 독특하게 느껴졌던 기억과 평소 차분하게 말하고 조용하던 성격의 그녀가 안무한 작업들이 엄청 도발적이고 반사회적인, 운동권적인 공연들이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여전히 아주 특별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리타가 들려줬다.
 우리에게 배당된 3주라는 기간 중 2주는 한 사람당 하루 4시간씩 이틀 동안 10분에서 15분 사이 길이의 안무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안무의 기본 컨셉트는 이미 정해진 <우먼, 바디>였다. 돌아가며 하루에 네 시간씩 함께 작업하고 2시간은 자신의 솔로 작업, 그리고 첫 주말 이틀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례로 3시간씩 워크숍을 진행하도록 했다.
 무용을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시작해서 한때 여승의 길을 걷다가 연기와 부토를 하게 된 소노코의 워크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불교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명상으로 시작해서 움직임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그야말로 테라피적인 워크샵이었다.
 마지막 주는 4개의 안무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재구성하여 뮤지션과 맞춰가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컴퓨터 음악을 하는 발라쥐(XRC Kovács Balázs Jelmez)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스트반코(KEREC István)가 스튜디오로 와서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고 공연 때에는 라이브 연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상반되는 노이즈 컴퓨터 음악과 바이올린의 조합이 환상으로 결합되어 작품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큰 역할을 해주었다.

 

 



 스튜디오 안에서 실제로 안무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에, 시도 때도 없이 우리들은 <우먼, 바디>에 관한 토론을 주고받았다. 각자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여자와 몸에 관한 고찰로서, 여자에게 또는 무용가에게 몸이란 어떤 의미이고, 몸과 연결된 기억을 찾아 어떻게 작업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관한 토론이었다. 물론 우리 4명이 10분에서 15분 길이의 안무를 하는 과정은 너무 달랐고 접근하는 방식도 다 달랐다.
 우리들이 작업하는 과정이 다른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우리 네사람이 지내는 시간들을 관찰하며 같은 동시대에 살고 있어도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것과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관점이 다르면 그 관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너무나 다르게 보여진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다시 느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도 우리들이 느끼는 부다페스트는 아주 달랐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물탱크 차를 세워놓고 길을 닦는 모습을 본 가비는 가히 충격적이라는 듯, 어떻게 거리를 물로 닦을 수가 있냐고 기겁을 한다.
 멕시코는 아마도 물이 귀할 것이다. 반대로 헝가리는 넘쳐나는 온천수와 아직도 미네랄이 풍성한 수질 좋은 물로 유명해서 모든 가정집에 수돗물을 마음 놓고 마신다고 했다. 실제로 하루 연습이 끝나고 세체니라는 로마시대부터 유명하다는 제일 큰 온천장을 갔었는데 네오 바로크식 양식의 고풍스런 건물 안이 다양한 종류의 온천장들로 쭉 이어져 있었다. 실외 노천 온천장은 거의 수영장에 가깝게 규모가 큰데 물 온도도 뜨끈뜨끈하여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정도로 최고의 질과 시설의 온천장이었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다페스트의 오래된 건물들이 비교적 파괴되지 않은 채로 보존되어 바로크 건축 양식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반면 거리가 좀 더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비와 소노코는 어쩌면 이리도 거리가 깨끗할 수가 있지? 그런다. 독일의 너무나 깨끗한 거리들에 익숙한 나로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주말은 이틀간 워크숍까지 하느라 쉬는 날 없이 지나고 두 번째 주말은 고속버스를 타고 에거(Eger)라는 헝가리에서 부다페스트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 와인 명산지이자 문화 유산지인 리타의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헝가리는 1989년까지 사회주의 통치하에 있었기에 리타는 두개의 다른 정치적 상황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비교하며 자신의 체험담을 신랄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기 부모님은 괜찮지만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선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귀띔까지 해준다. 오랜 사회주의 영향으로 주택가의 집들은 모두 같은 형태의 집 모양을 하고 있었고 주변은 평화롭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집의 실내는 그림을 그리신다는 리타 어머니의 인테리어 센스가 범상치 않음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실내 집 구조도 아주 독특했다. 사회주의 시절 집을 다 똑같이 지어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실내 구조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은 어딜 가나 최고인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너무나 맛난 음식들과 디저트까지 과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리타가 중간에 통역을 하고 리타 아버님이 우리들에게 궁금하신 것들을 물어 오셨다. 세계 어디서나 세월호 사건은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슈였던 것 같다. 남북문제와 세월호 사건에 관해, 또 독일에서 살기는 어떤지를 물으셨다.


 

 



 난 제3국에 가면 독일에 관한 질문을 꼭 받게 되는데 살면 살수록 좋은 나라라고 감히 대답했다. 정치, 경제, 교육, 사회제도의 시스템들이 배울게 많은 나라라고 리타 아버님도 말씀하셨다. 동유럽 쪽엔 너무 무지한 나로선 헝가리 역사와 정치 상황을 듣고 놀랐다.
 리타 아버님은 헝가리의 수많은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다른 나라로 나가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볼펜, 큐브, 라디오, 컴퓨터, 아톰범브, 비타민 C, 자동차에 디젤을 넣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을 최초로 만든 인벤터들이 헝가리인들 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우린 모두 놀랐다.
 난 보통 국민들이 자기나라를 통치하는 정권을 존경하거나 대통령이나 수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예를 들면 독일이란 나라가 그런 분위기다. 불행히도 우리 네 나라 여자들은 대부분 자국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 회의적이었다. 비록 그들이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대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히나 세월호 사건으로 끓어오르는 분노에 차 있었기에 선뜻 자랑스럽게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에거 시내에 앤틱 장이 열려 구경을 갔다. 아주 싼 가격에 가비는 일차대전 시절에 나온 골동품 타자기를 시인인 파트너를 위해 구입하고, 소노코는 예쁜 접시를, 리타는 멋진 스카프를 사는 즐거운 쇼핑시간도 가졌다. 시내 중심에 있는 교회에 가서 웅장하고 성스러운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듣고, 터키식 온천에 가서 피곤한 몸을 릴렉스하는 시간도 갖고 부다페스트로 돌아왔다.
 연습이 끝나면 틈틈이 콘서트와 무용 공연들도 관람했다. 그중 헝가리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현대음악의 거장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er)의 <레퀴엠>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리게티는 독일에서 활동할 당시 독일 현대음악의 거장 스톡하우젠과 전자음악을 쓰기도 했었고 리게티의 <레퀴엠>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삽입되기도 했었다.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레퀴엠 답게 120명이나 되는 합창단과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과히 실험적이기까지 한 현대음악의 특별한 힘이 있었다. 더구나 헝가리 최고의 예술궁전이라 이름 붙인 무파극장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완벽한 음향시스템, 다뉴브강변이 바라보이는 풍경, 그 자체로 최고였다.
 원래 이곳은 화물선의 창고와 정유 공장이 있던 곳인데 슬럼화 위기에 놓이자 헝가리 사상 최대 규모의 부동산개발 사업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6,800억원을 쏟아 부어 컨퍼런스 센터, 온천, 특급호텔, 오피스빌딩, 고급주택이 들어서는 뉴타운을 만드는 가운데 헝가리 정부가 부동산 개발 허가를 내주며 내건 개발조건 중 하나가 부지의 20프로를 문화예술 시설에 할애하라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1,500억원 예산으로 2002년 착공해 2005년 "부다페스트의 봄" 축제 개막에 맞춰 공식 개관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3년 만에 민간 자본으로 이 예술궁전이 탄생했고 완공 후 정부가 사들여 30년간 무이자로 건축비만 상환하는 조건으로 예산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헝가리 무명 건축가 가보르 조보키를 지명해 설계비를 절감하는 대신 세계최고의 음향 컨설턴트를 초빙해 외양보다 내실을 기하고 내부 마감재에 돈을 아끼지 않는, 콘서트홀로서는 최고의 극장이 탄생한 것이다. 실로 그 내부는 자연 나무로 만든 거대한 기둥들이 스케일에 비해 인간 친화적인 느낌이 확 와닿았다. 무대 위의 300억 짜리라는 파이프 오르간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가본 극장 중 외부의 화려함보다 극장 그 자체로 최고의 감동을 주는 곳이었다.

 

 



 드디어 3주라는 시간이 가고 공연이 임박하니 리타는 인터뷰에 손님들 관리에 정신없어지고 모두들 조금은 예민해지는 분위기였다. 나는 사실 협업작업 형태의 공연을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았었다. 중요한 순간 한사람이 전체 그림을 보고 결정을 해야 할 때 동시에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로선 힘든 일이란 걸 알기에… 우려한 것처럼 중간중간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문제점을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극장 리허설 때 조명 부분에서 예민한 내 성격이 시간을 좀 지연시킨 점이 있었지만 제 시간에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쇼는 어떤 상황이라도 제 시간에 막은 올라가고 공연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무사히 우리들의 1부, 2부 공연이 끝나고 이어지는 커튼콜 속에서 우린 안도의 숨을 쉬며 서로 끌어안았다.
 신기하게도 일부에서 우리들은 너무나 확연하게 다른 네 개의 솔로를 보여줄 수 있어서 관객 입장에선 다양한 솔로들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실제 그랬다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헝가리 관객 또는 리타 주변 친구들의 구체적인 피드백은 인상적이었다. 단지 좋았다 나빴다가 아니라 어느 부분이 왜 좋았는지와 어느 부분이 왜 무엇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는지, 아주 구체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래서 더 신뢰와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뒷풀이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예정돼있던 관객과의 대화는 조금 부담스러웠었는데 의외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시간이라는 공연시간 뒤에도 꽤 많은 관객들이 남아 40분 동안의 대화가 이어졌다. 사회자와 관객들의 질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답을 할 수 있었는데 나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인생은 만남이 전부이고 또 과정이 더 중요한 것처럼 “내게 이번 협업작업의 의미는 서로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네 여자가 모여 소통하고, 배우고, 다름을 인정하며 충돌과 화합으로 가는 여정이었다“라고.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고 이틀이란 사간이 더 있었는데 마지막 날 저녁은 무용 전용극장 트라포(Trafó)에서 열린 벨기에 울티마 베즈 무용단의 공연을 다같이 보러갔다. 온갖 컨템포러리 작품에서 유행처럼 볼 수 있는 화려한 매개체들이 다 동원되어 보는 내내 역동적이고도 다양한 장면들이 이어졌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같은 극장에서 다른 날 보았던 헝가리 젊은 안무가의 작품이 훨씬 더 호소력 있게 다가 왔었다. 그동안 너무 서유럽들 작품에 익숙해 있었던 가운데 헝가리의 젊은 안무가들의 톡톡 튀지만 진지함과 독특한 색깔이 보이는 공연들에 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음 우리들의 콜라보레이션 여정은 오는 11월 멕시코에서 한 달 간의 일정으로 4개의 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아직 나만의 생각이지만 멕시코에서는 각자 안무한 부분을 서로 바꿔서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 우리는 멕시코 콜라보레이션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 많은 토론을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아무튼 작별의 시간이 왔고, 가비는 멕시코에서 마지막에 공연 보러 와준 시인 파트너와 함께 프라하로 또 파리로, 소노코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주신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러 이스라엘로, 리타는 8월 독일에 있을 탄츠 메세 솔로공연 준비로, 나는 그동안 서울국제즉흥춤축제와 베니스로, 부다페스트로 다니며 두 달간 비웠던 독일집으로, 다들 각자의 다음 여정으로 떠났다.

 

 



 이번 네 여자들의 협업 과정에서 한집에서 3주를 지내며 같이 여행하고 공연을 보고 종일 작업실에서 지내는 일정 말고도 우린 아주 무수한 주제로 토론 또는 수다를 떨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내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 그리고 여자로서 처해진 엄마로서의 상황, 그리고 중년으로 들어서거나 이미 중년으로 들어선 시기에 안무가로서 예술가로서의 앞으로의 비전들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 하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들의 드라마틱한 인생 자체가 네 개의 옴니버스식 파노라마 같았다. 멕시코 여정이 끝나면 내년 한국으로 이 공연이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14. 06.
사진제공_김윤정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