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20
내가 입문했던 테크놀로지
남영호_재불무용가

테크놀로지와는 멀었던 내가 협업을 추진한 경험한 것들을 말하고 싶다. 2011년 처음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서 만든 작품 〈S.U.N〉 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남정호 〈S.U.N〉, 2011년 몽펠리에 AGORA 공연



파리 근교 〈엥갱 레뱅〉(Enghien les Bain) 도시에 디지털 작품을 전문으로 기획하는 극장이 있는데, 내가 수잔버지무용단에서 활동했을 때 그 극장에서 공연을 했었다. 극장장 도미니크 홀렁은 수잔 버지 작품 안에서의 나의 춤을 좋아했다. 수잔버지무용단의 모든 무용수들은 각기 본인의 무용단을 가진 안무가들이기도 했는데, 그 극장장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는 춤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자기를 찾아오라고 친절하게 제안해주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춤과 테크놀로지 작업들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때였다. 그 극장에서 기획하는 테크놀로지 페스티벌에 참석해서 여러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공연 전시물들을 보았다. 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업이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나의 무용작업에 테크놀로지를 결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에는 확실성이 없었다. 그저 유행이라는 이유와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만으로는 나에게는 동기가 부족하였다.

그러다 모로코의 도시 마라케쉬에서 하는 춤 페스티벌에 초대 되었다. 솔로춤이었는데, 아주 느린 움직임과 호흡 사이에 대한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이 솔로춤은 주로 소극장에서 공연되어서 관객들이 바로 앞에서 내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마라케쉬에서 공연할 극장은 아주 큰 극장이라 해서 미리 몽펠리에에서 HF무선마이크를 갖고 연습을 해야만 했었다. 처음으로 HF무선마이크를 내 몸에 부착해서 마이크를 통해서 직접 들리는 내 움직임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호흡소리는 심장 박동소리가 들릴 만큼 내 스스로를 흥분하게 하였다. 당연한 내 호흡소리인데, 마이크를 통해서 나오는 내 호흡은 거칠었고, 나를 당황하게도 했는데, 당황하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난 그 무엇이 무엇일까를 집중하면서 찾아보았다. 무엇이 나를 끌리게 하는가! 거칠면서도 내 안에서 용트림하는 호흡!

그러다 찾았다. 그것은 ‘예민함’이었다. 우리가 춤추면서 느끼는 몸의 움직임과 호흡의 예민함은 아주 연약하고 섬세해서 나 스스로도 아주 집중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인데, 마이크를 통해서 멀리서 까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앎 그 자체였다. 테크놀로지가 주는 소리의 파장성!

마이크를 가지고 호흡과 나란히 가는 움직임, 호흡과 대조적인 움직임 등 여러 가지를 실험하면서 점점 마이크와 하는 나의 움직임의 호흡소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때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무용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동기를 확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그 후, 난 엥갱 레뱅 극장장에게 가서 그동안 더 일찍 그분을 찾아가지 않았던 이유와 내가 마이크와의 작업에서 느낀 것들, 그래서 테크놀로지가 나의 춤작업에 어떤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대해 얘기했다. 도미니크 홀렁씨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극장장이 나에게 테크놀로지 결합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자기 극장에서 작업하라고 말 한지 5년 후였다.

도미니크 홀렁 극장장은 여러 가지 캡처에 대해서 나에게 알려주셨다, 움직임의 동선을 보여주는 모션캡처도 있었지만 난 그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근육의 강도를 측정하는 EMG 캡처에 관심이 있었다. 이 캡처는 의학용으로도 사용되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보이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 춤 공연의 발전이라 보았다.

EMG는 캡처 중에서도 가장 가격이 비싸고 빌리기도 쉽지가 않았는데, 도미니크 홀렁극장장으로부터 노르망디 껑(Caen)대학의 특수 테크놀로지 과학박사교수(프란시스)를 소개받았다. 그 대학에서 조그만 행사가 있었는데, 그 행사에 춤 제안을 받았고 난 춤을 추었고 그 교수는 나의 춤을 보았고 그 후 그분과의 대화에서 내가 하고 싶은 EMG 작업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교수는 여러 동기에 대해서 디테일한 질문들을 하였다. 만약 내가 테크놀로지와의 프로젝트를 그냥 유행이나 좋은 아이디어로만 생각하고 그분을 만났다면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작업을 하게 되면 종종 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춤보다 화려한 테크놀로지가 주는 이미지에 더 매료되고, 집중하기 때문에 무용인인 우리에게는 위험이 될 수 있다. 마치 춤이 부속이 된 것 같은 느낌! 내가 근육의 강도를 측정하는 EMG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근육의 강도를 측정 하는 EMG 캡처는 몸의 움직임의 강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음악과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 즉, 춤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춤 공연에는 춤이(몸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오래전부터 하는 고전적인 생각이다. 이제는 프랑스에서는 공연만 좋다면 어떤 게 우선이든 뭐가 문제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도 고지식하다는 말도 듣는다. (웃음)

프란시스 교수는 EMG캡처를 대학 실험실에서 할 수 있게 허락하셨다. 캡처는 총 6개인데 가격이 3만 유로, 한국 돈으로 거의 5천만원에 달했다. 캡처 중에서도 제일 특수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 드디어 2주간의 EMG 캡처 실험 레지던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EMG의 측정을 실시간으로 이미지화시키는 예술가(스테판)와 둘이서 시작했다.

첫날, 껑 대학의 실험실 조교가 나에게 어떻게 캡처를 붙이는지부터 알려주었다. 처음으로 기계를 내 몸에 붙인다는 것, 전선에 감염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고, 무서웠다. 붙이는 것도 복잡했다. 차근차근 배워야 했고, 난 그때 테크놀로지가 아주 복잡하고 예민하고 디테일 하고 섬세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6개의 캡처를 양다리 종아리 앞부분에 하나씩, 두 팔 앞부분, 양 어깨 이렇게 붙였다.

눈으로 보이는 내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할 때 측정되는 근육의 강도의 관계에서 나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양다리에 부착한 캡처를 보니 양다리 근육의 강도가 달랐다, 난 캡처를 붙이고 양다리를 바닥에 두고 균형적인 차렷 자세로 있는데, 캡처에서는 나의 오른 다리와 왼 다리의 측정이 비대칭인 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내 오른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캡처로는 얼마나 다른가를 아주 디테일하게 알도록 해주었다. 그 덕분에 오른 다리를 더 훈련해서 많이 좋아지게 되는 기회도 되었다, 그래서 이 캡처를 의학용으로도 쓰는 거구나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스테판은 EMG 측정기를 실시간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그 실험실 기술 조교에게서 전달받아 자기 컴퓨터에 저장하였다. 워낙 시스템이 고가이다보니 시스템 자체의 보호처리가 아주 복잡하게 되어 있어 전달받는 데 엄청 시간이 걸렸다.

스테판이 자기 컴퓨터에 시스템을 전달받은 후 캡처에서 나오는 근육의 강도를 소리와 이미지화할 수 있었는데, 난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큰 움직임을 하면 물론 소리도 크게 나는 게 당연하지만, 아무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서 몸에 긴장을 하고 내 팔다리에 힘을 주니 움직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큰 소리가 났다. 아주 격렬한 움직임을 하고 바로 멈추었지만 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겉에 보이는 움직임은 멈췄지만 내 안에 있는 에너지와 근육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소리화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아주 매력적이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주제가 이 EMG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격했다.

나의 움직임의 디테일은 이때의 작업에서부터 더 강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육의 강도를 생각하면서 호흡과 같이 움직임을 하다 보니 내 움직임이 더 섬세하고, 디테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실험은 후에 몽펠리에의 디지털센터(KAWANGA)와 파트너로 일하면서, 한국에서 컴퓨터 실시간 음악하는 ‘테싯 그룹’ 3명의 음악가와 조인트하면서 두 번째 레지던트가 몽펠리에에서 시작되었다. ‘테싯 그룹’과의 작업은 아주 순조로웠다. 워낙 그 분야에서는 최고이신 분 들이라 나의 움직임을 갖고 여러 가능한 음악들을 들려주었고, 난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선택된 음조 들을 갖고 실시간으로 나오는 근육의 강도에 따라 음악들을 만들어갔다.

다음은 무대 장치였다. 프랑스 예술가이면서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활동하던 제랄딘과 작업하면서 그녀에게 나는 무대가 처음과 마지막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했고, 호흡과 근육의 강도가 무대장치를 어떻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풍선처럼 부풀리자는 의견을 주었다. 멋진 생각이었다.

마지막 실시간 이미지와 조명이 어우러져야 했다. 스테판은 처음 껑대학 레지던트에서부터 내 움직임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우리는 매일 같이 작업하면서 점심식사 때, 저녁식사 때에도 작업 얘기를 계속했다. 이 친구는 내 움직임에서 무엇을 표현하기를 원하냐고 아주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했는데, 난 춤이 주는 시적인 이미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스테판의 실시간 이미지는 훌륭했다. 너무 멋지고 시적이며 섬세했다.

이미지와 작업을 하게 되면 조명과의 조율이 아주 중요하다. 이미지가 살려면 조명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조명을 안 하면 분위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지를 이해하는 조명가가 필요하다. 스태판이 그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와 자주 같이 작업하는 조명 예술가 합류했다, 이름은 셀린! 여자 조명예술가이다. 이렇게 모든 참여예술가들이 모였다.

2011년 2월에 몽펠리에 디지털센터에서 연구결과발표회 퍼포먼스를 했고, 관객들과의 대화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것은 연구발표회이고 공연에는 무용수 3명이 합류한다고 했다. 우리의 연구발표회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특히 그날 몽펠리에 무용페스티벌에서는 5명의 직원이 우리 발표회를 보러 왔었다. 난 연구발표회 후에 바로 한국에 갔었는데, 일주일 후에 몽펠리에 페스티벌 측으로 부터 내 무용작품 〈S.U.N〉 제작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한국에서 전화로 받았다.





남정호 〈S.U.N〉, 2011년 몽펠리에 AGORA 공연



〈S.U.N〉 작품은 몽펠리에 agora외에도 몽펠리에 국립무용단의 연습실 협력과, 엥갱레뱅 극장 레지던트, 프랑스 디지털문화부, 한국 과학창의재단 등 많은 파트너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SPAF에서 공연했었다.

지금도 나의 무용단 사이트 www.compagnie-coreegraphie.com répertoires의 〈S.U.N〉에서 여러 가지 간단한 비디오를 볼 수 있다.

난 이 캡처와의 작업을 더 길게 하고 싶어서 프랑스 곳곳에 EMG 제작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았었다. 여러 명의 아는 사람들을 거쳐 3만유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하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좋은 기회가 다시 오기를!!! 그때 같이 작업 했던 많은 예술가들이 보고 싶다. 나는 다시 이 멤버들과 한국무용수들과의 작업을 꿈꾼다.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3. 11.
사진제공_남영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