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남정호의 춤 산책 2
Aging Body, 나이든 몸으로 춤추기
남정호_안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의 몸도 아니고 자신의 몸인데 나의 마음과는 달리 행동이 느려지고 둔해지고 가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나이 든 무용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 했던 빠른 동작이나 정교한 동작을 마음먹은 대로 잘할 수가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럴 때 대부분의 무용가는 은퇴를 선언한다. 그런데 은퇴공연이라고 해서 가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춤이 무르익고 잘 준비된 무대를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이 무용가가 추는 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동안 못해본 것 용감하게 시도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체력 관리며 연습도 부지런히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최후의 만찬 같은 무대를 만들었으니 어찌 감동스럽지 않으리오.

진작 이런 마음으로 매번 무대를 준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만사 제쳐놓고 연습하는데 더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어디로 갔나. 보이지 않는 검열을 의식하며 과대망상에 불과 한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민감했었나. 실천에 인색하고 게을렀던 지난날이 후회막심이다.

그동안 매번 연습 부족으로 올린 무대가 부끄럽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연습이란 어떤 것을 반복해서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exercise보다는 practice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영문학자가 어떤 언어적 출처를 밝히든 간에 전자는 같은 것의 반복이고 후자는 반복을 통하여 매번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느낌이 있다.

하루가 매번 같은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것 같지만 사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매번 새로운 하루가 살아진다. 그래서 연습을 공연같이 하면 공연은 연습처럼 할 수 있다!



남정호 〈달에게 물어봐〉 ⓒ남정호



무용가가 무대에서 은퇴하는 것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사정에 의해서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부상이다. 젊은 무용가는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열심히 재활하는 데 비하여 나이든 무용가가 부상을 당하면 이제 그만 둘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지레 겁먹고 순응하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타의적인 핑계를 댈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이다.

작년 3월에 길거리서 넘어져서 하게 된 발목 수술은 나에게 이런 상황에서 선택하는 기회가 되었다. 출산 이후 처음 하는 수술. 5월에 서울과 제주서 한 즉흥춤축제 공연, 6월에 동경 시어터카이서 한 Dancing Fairy[춤추는 요정들] 프로젝트 그리고 혼자서 다 하겠다고 호언장담한 12월의 겨울 나그네. 이 모든 공연은 사고로 발목 수술을 한 명백한 이유로 조금이라도 물러나기만 하면 다르게 세팅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익숙하고도 낯선 쾌감을 가졌지.

춤은 오랫동안 젊은 신체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세상사의 어두운 면을 알지 못하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천진난만한 소녀들과 소년들의 유연하고 탄력있는 신체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동작들이 무용이라는 장르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지배하였다. 이 동화의 주인공들이 더 이상 유인력이 없어질 때 현대무용이 나왔다. 그리고 이 무용계의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무서운 아이)들, 현대무용가들은 연극이나 음악같은 타 장르의 공연예술가들만큼이나 무대에서 오랫동안 버티면서 존재해 왔다.

Loie Fuller는 죽기 한 해전 65세까지. Isadora Duncan은 50세인 사망년도 까지, Ruth saint Denis는 60세, Mary Wigman은 63세까지-마녀의 춤을 젊은 시절에 추었다면 같은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Martha Graham은 75세까지 비틀거리며 무대에 섰다. ’춤추는 것과 춤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론 춤추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Pina Bausch는 38세때 안무한 자전적 작품, 〈카페 뮐러〉에 무용수로 참여하면서 이 작품을 공연할 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직접 출연하였다, 동경 국립극장서 그 춤을 보면서 겨드랑이 아래서 기모노 소매처럼 출렁이는 슬프고도 정직한 팔뚝 살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장 과격한 예는 Anna Halprin, 도시의 이단자들인 포스트 모던 댄스의 동지들과는 달리 샌프란치스코의 자연으로 들어가 암환자를 위한 무용치료를 하면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신체를 만끽하며 100세를 한해 넘기면서 춤을 추었다.

그런데 여자무용가들만 나온 것 같다. 사실이다. 골반에 플라스틱을 끼우고도 63세까지 춤을 춘 Merce Cunningham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자 무용가들은 약삭빠르게 행정가로 처신하면서 두툼한 배살을 숨기고 다녔다.

프랑스 유학시절 여자무용수들을 걸스(girls), 남자무용수들을 보이스(boys)라 부르는 발레 선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수업 후에 선생을 찾아가 서투른 불어로 따졌다. ‘우리는 더 이상 소녀도 소년도 아니에요, 숙녀와 신사로 불러주세요. 아마 당신은 이 무용수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나 보죠’. 멋진 앙셰느망(enchainement) 있었는데 더 이상 그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 나이에는 관대함이나 협상같은 것은 안중에 없었으니.

현대무용을 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적어도 이런 수모를 겪지는 않으니까. 이후 Pina Bausch의 저서 〈Kontakthof: with Ladies and Gentleman〉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동병상련의 웃음이 나왔다.

나는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다.

어린 여자아이, 젊은 여자라고 불리우면서 가볍게 하찮게 취급당하는 것이 싫었다.

마흔이 되면 무대에서 춤을 추지 않을거라는 말을 했다는 기억과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의 미심쩍은 미소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거짓말쟁이를 감수하고 지금까지 춤을 추면서 적당한 모욕과 함께 과분한 갈채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더 연장될 것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내일의 나도 다를 것, 나도 여전히 변화할 수 있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쉬지 않고 한걸음 마다 의미를 곱씹으며 정성을 들여 춤을 추다 보면 불가사의하게도 점차 광기어린 마음이 가지는 지고의 순수함이나 천진난만함을 동반하게 된다.



남정호 〈달에게 물어봐〉 ⓒ남정호



박수칠 때 떠나라고?

그럴 순 없다.
이제야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한 줌의 덕과
폼 안나도 좋으니까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있는 배짱과
연습 때와 다른 공연환경에 본능적으로 적응하는 지혜를 겨우 감지한 것 같은데.
이제야 간신히 공기에 몸을 맡기고 관객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을 타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데.
이 멋진 여유를 자유를 어이 포기하란 말인가.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2024. 1.
사진제공_남정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