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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워터밀센터 연수기
협동의 삶에서 터득한 공연의 진실
최준우_무용학도

미국 뉴욕주 South Hampton에 위치한 Watermill Center는 미국 예술가 Robert Wilson이 1992년에 설립한 기관으로, 매해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써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나는 두개의 프로그램 중 2018 International Summer Program(2018년 7월 15일 ~ 8월 19일)에 체류하며 공연과 워크숍을 수행하였다.
 써머 프로그램은, Benefit과 워크숍 그리고 Discovery Watermill Day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의 신규 참가자의 규모는 약 40명으로, 다양한 국적과 예술세계를 가진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참가한다. 센터는 참가자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며, 숙식과 워크숍 비용을 포함한 참가비는 U$8500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한국인 참가자 한 명에 한해 왕복 항공료와 참가비를 지원한다.

 



 심사는 워터밀센터 측에서 수행하므로 제출서류는 다른 지원자와 동일하게 모두 영문이다. 제출 서류는 크게 영문 이력서, 포트폴리오, 자기소개 영상, 그리고 몇 가지 질의형 자기소개서로 이루어진다. 질의형 자기 소개의 문제는, 특이하게도, 대부분 ‘공동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써머 프로그램에서 협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하게 한다.
 프로그램 진행 중의 생활 역시 모두가 굉장한 협동을 요구한다. 센터 측에서 나이, 성별, 국적 등에 근거해 하우스메이트와 숙소를 지정해주며, 한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한다. 따라서 당일 일정이 끝나 숙소로 돌아와도 공동생활이 여전히 진행된다. 개인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굉장히 힘들었다. 식사는 세끼 모두 센터 안에서 이루어진다. 센터에서 고용한 셰프 한 명이 참가자 중 당일 지원자를 선정해 함께 식사를 준비한다. 식사 역시 참가자들의 노동이 요구된다. 백여 명을 위한 식사 준비와 테이블 셋업 그리고 식사 후 설거지 역시 참가자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다. 식사는 아주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을 고려해 셰프는 매끼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식탁에 올리려 노력하였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참가자는 직접 주방을 주도해 제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함께 만든 음식을 함께 먹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 사이의 유대감은 점점 짙어진다.
 식사를 포함해 센터 안의 모든 일은 참가자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센터를 청소하는 일부터, 센터 주변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 대표적이다. 센터는 온갖 식물의 숲으로 에워싸여 있다. 윌슨은 본인이 가꿔온 아름다운 센터를 참가자들도 자신들의 손으로 가꾸기를 원한다. 매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존 참가자들 역시 그 행위를 통해 얻어가는 점이 많다고 한다. 매일 모든 참가자들이 입구의 나무를 손질하고, 잡초를 뽑고, 돌을 정리하고, 블루베리를 심는 등의 강도 높은 정원 일을 한다. 공연 전의 일정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정원 일 밖에 없을 정도로, 센터 가꾸는 일을 중히 여긴다.



 써머 프로그램은 Benefit이라는 센터 후원 공연을 기점으로 일정이 바뀌게 된다. 참가자들은 공연 전 일정 대부분을 센터를 가꾸는 데 할애한다. 센터가 울창한 나무와 넓은 정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참가자들 그리고 직원들의 일손을 모두 합해도 언제나 할 일은 남아있다. 정원 일을 모두 소화하며 틈틈이 참가자들은 Benefit을 위한 작품을 준비한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전부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담당자에게 미리 공연계획서를 전달해서 승인받은 작품만이 공연에 오를 수 있다. 공연계획서의 형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하지만 이메일로 제출하는 것보다는 담당자를 만나 작품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윌슨은 이미지로부터 작품을 시작한다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별 작품들이 강렬한 이미지를 포함한다. 읽는 계획서가 아닌 보는 계획서를 만들기를 충고한다. 시각적 효과를 최우선시하며, 이는 공연 관람객을 고려한 듯 보인다. 관람객은 센터의 후원자들로, 예술가들이 아니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전시와 공연 관람 중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정도로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많다. 따라서 본인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시각적 요소를 우선해서 작품을 구성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공연의 성격은 매우 대중적이다. 센터에서는 설치형 작품을 선호하며, 관객 참여형 혹은 객석이 필요한 작품을 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공연의 구조와 연관이 깊은데, 센터 입구로부터 저녁 식사를 하게 될 테이블까지의 길 모두가 무대가 된다. 식사를 하러 가는 길 곳곳에 다양한 설치형 작품들과 장소 특정형 춤이 있다. 관객들은 입구에서부터 식사 테이블까지 이동하며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의 성격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 중 어떤 곳을 놓쳐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어야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형화된 무용 작품을 공연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참가자들 역시 댄서보다는 본인을 퍼포머라 부르는 사람이 압도적이었고, 공연의 성격 역시 춤 공연이 아닌, 퍼포밍 아트에 가까웠다.
 나는 Benefit에서 독일 출신의 아트 프로그래머 Jörg Brinkmann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는데, 오랜 현장경험이 있는 디렉터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전 국립무용단의 〈맨메이드〉를 관람하고, 예술과 프로그래밍의 교집합이 아직 어색하다고만 느꼈지만, Jörg와 함께한 작업을 통해 두 가지 다른 분야가 어떻게 융화되어야 서로에게 보완적일지를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더는 아트 앤 테크놀로지가 단순히 신선한 예술 형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작품을 해석하기에 필연적인 형식으로 발전한 것을 지켜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와 같은 센터 내의 예술 작업을 비롯해, 센터에서 배운 대부분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었고, 아직 학부에 재학 중인 나에게는 새롭기만 했다. 학교를 재학하는 내내 가졌던 배움에 대한 안일함을 후회하며, 찾아 배우는 태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나의 예로, 나는 Benefit을 위한 프로포즐을 제출했지만, 센터에서 무대형 작품을 원하지 않아 개인 작품을 공연에서 선보일 수 없었다. 당시 장소춤(site dance)에 대한 간단한 정의 정도만 이해하고 있던 나는, 기존의 작품을 어떻게 장소춤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다고 교육받고 그 춤을 펼치는 곳은 당연히 무대밖에 없다는 듯이 학습해왔던 나는 새로운 상황에서 매우 당황하였다. 내가 속했던 교육제도와 그에 안주하며 사고의 폭을 더 넓히지 못한 제 자신에게 모두 아쉬움을 느꼈고, 더 넓은 춤 세계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다. 학교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찾아가는 것은 일단 개인의 책임이다. 개인이 각자 사고의 폭을 꾸준히 확장하고, 준비의 중요성을 자각해 낯선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해가야 할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워크숍 주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약 6개의 워크숍 프로그램이 있으며, 시간대와 흥미에 맞는 수업을 신청하면 된다. 워크숍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무대에서 공연을 연습하는 스테이징 워크숍과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전체적인 과정을 학습하는 테이블 워크숍이다. 특히, 스테이징 워크숍의 경우 국내외 다양한 공연 기회가 추가로 주어질 수 있다.
 워크숍의 스케줄은 굉장히 유동적인 편이다. 매일 아침 미팅에서 당일의 일정을 공지해주긴 하지만, 그것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윌슨이 디렉팅을 하는 스테이징 워크숍의 경우, 윌슨이 진행하는 날에 순서를 나가고, 윌슨이 부재중인 날엔 연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워크숍을 통해 윌슨의 작품 세계를 가까이서 학습할 수 있었는데, 역시 그의 모든 작품의 시작은 시각화 작업이며, 역동적이고 힘 있는 움직임을 선호한다.



 써머 프로그램을 수학하는 내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센터에 필요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공연과 워크숍 그리고 정원 일에서도 오로지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은 그 누군가가 나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정원 일이나 식사 준비 역시 그랬다. 센터가 낙오자 없는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기 때문에 모두를 같은 색으로 칠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며 사실은 모두 같은 색이 아니었다는 것을 배웠으며, 프로그램이 끝난 후 윌슨으로부터 직접 쓴 손 편지를 받았을 땐 센터는 모두를 동일하게 필요로 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예술가들을 만나 5주 동안 그들의 삶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으며, 나는 다른 동료 참가자들의 삶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편집자주: 로버트 윌슨(1941~ )은 1976년 미니멀 음악가 필립 글래스의 곡으로 5시간의 대작 오페라 〈해변가의 아인슈타인〉을 아비뇽축제에서 연출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전위적 무대 예술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특히 〈해변가의 아인슈타인〉은 무용가 루신다 차일즈가 참여하여 춤 측면에서도 널리 회자되어온 작품이다. 로버트 윌슨은 공연예술에 관한 자신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1991년 ‘공연예술의 실험실’ 겸 연구소로서 월터밀센터를 설립하였다. 이 센터의 주요 프로그램은 써머 프로그램 그리고 1년 기간의 예술가 레지던시-전시, 하계 강좌이다.

최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재학생
2018.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