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암울한 시대 상황을 돌파하는 자기 극복의 춤
최찬열_춤비평가

공연예술창작산실 2022 올해의 신작 무대에 오른 〈On the Rock〉(2월 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춤 단체 모든컴퍼니의 스포츠를 소재로 한 3부작 시리즈 공연 중 하나이다. 202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선보였던 전작 〈피스트〉(PISTE)가 줄기차게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에 주안점을 둔 공연이라면, 이번 공연에서 안무자 김모든은 정면으로 맞닥뜨린 한계에 굴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테면 공연에 출연한 춤꾼들은 ‘넘어서 가는 자’이고, 〈On the Rock〉은 이들의 ‘넘어섬’ 혹은 초월 의지를 상승 운동이나 도약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무대 앞 바닥에 길 조명이 길고 선명하게 들어와 있다. 우리네 삶의 행로 같은 그 길을 따라 춤꾼들이 무덤덤하게 오간다. 그들은 이따금 슬며시 서로 쳐다보지만, 다른 이에게는 무관심하다. 간혹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각자 물끄러미 객석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단조로운 우리의 일상사가 그렇듯, 무미건조한 상황은 반복된다. 하루하루 생활이 판에 박은 듯한 삶만 관행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다 오가던 그들이 퍼져오는 연기 속에서 문득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마치 산사태나 눈사태가 난 것 같이 멀리서 묵직한 굉음이 들려온다. 어떤 위험이 닥쳐오는 듯 위기감이 조성되고, 그제야 춤꾼들은 모두 무대로 나와 선 채 함께 같은 곳을 응시한다. 불시에 우리의 삶과 일상을 엄습한 팬데믹이라는 공동의 위기 상황을 간결하고 단순한 퍼포먼스로 넌지시 드러내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잠시 조명이 꺼진 후 무대 중앙 바닥에 동그란 조명이 들어와 있고, 한 명의 춤꾼이 그 원의 가장자리를 돌고 있다. 잇달아 무대 여기저기에 같은 크기의 원이 만들어지고 춤꾼들은 각각 하나의 원 주변을 돈다. 협소한 지점들에 한정된 근시안적인 삶을 사는 세상 사람들 같다. 그런 그들이 서로 관계 맺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오가며 서로 어깨를 기대고, 다른 이를 들어 올리고, 뛰어서 몸을 던져 안기기도 한다. 또 다른 이의 어깨에 솟구쳐 올라서고, 지친 듯 드러눕기도 한다. 그러다가 춤꾼들이 모두 모여 허리를 숙인 채, 서로 등을 가깝게 붙여 완만하게 경사진 바위 형상을 만들면 한 춤꾼이 그곳에 오른다. 덧없이 가고 오고, 똑같이 돌고 도는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작심한 사람처럼 바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기세 있게 암벽을 타고 올라가듯, 삶의 고난을 이겨내고 우뚝 서는 형상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클라이밍(climbing)에 비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암벽을 타고 오르는 클라이밍을 춤으로 엮어 보여준다. 한 명의 춤꾼은 클라이머(climber)가 되고, 그 외 나머지 춤꾼들은 마치 홀드(hold, 암벽이나 빙벽 면의 돌기)나 침니(chimney, 등반자가 들어가 오를 수 있는 암벽의 틈), 크랙(crack, 바위의 갈라진 곳)이나 스텐스(stance, 손을 놓고 설 수 있는 제법 큰 홀드)처럼, 무대 바닥에 고정된 자세를 취한다. 곧 무대 바닥이 암벽이 되고, 한 춤꾼은 클라이머가 된다. 그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침니나 크랙을 통과해 홀드를 잡거나 딛고 오르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넉넉하게 넓은 스탠스를 딛고 선다. 보철물이나 지지대 역할을 하는 춤꾼들을 이용해 그들 사이를 가볍게 오가며 능수능란하게 등반하는 모습이다. 매끄럽고 부드럽게 짜진 움직임과 깔끔한 구성으로 안무 콘셉을 적절하게 구현한다. 클라이밍 현장을 꼼꼼하고 주의 깊게 살펴 얻은 움직임을 요리조리 알맞게 짜서 무대화한 점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군무 속에서 두 명의 춤꾼이 빠져나와 무대 뒤로 이동한다. 상대의 어깨와 등 언저리에 얼굴을 묻고 거꾸로 올라탄 춤꾼이 발을 벽면에 대고 걷기 시작한다. 무대 뒤를 암벽처럼 꽉 막고 있는 거대한 집 벽이 도드라져 보인다. 계단과 의자, 테이블과 시계 등 낯익은 사물들을 비논리적으로 재배치해 걸어 놓은 벽면은 한편으로는 초현실주의 그림보다 더 뒤틀리고 왜곡된 우리의 실제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이스(face) 곧 80~90도 정도로 급경사진 큰 바위(직벽)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무대 공간을 압도하는 큰 조형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바로잡거나 극복해야 할 한계 상황을 나타내는 장애물이자 상징물인 셈이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춤꾼 한 명이 뭔가 다짐을 하듯 신발을 갈아신는다. 등반화로 보인다. 그가 등반해야 할 목표 지점 혹은 정상을 살피듯 객석을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무대 바닥에는 길고 가는 선 조명이 연이어 새겨지기 시작한다. 아마 암벽을 타고 오르는 데 필요한 로프를 뜻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춤꾼의 움직임은 마치 로프를 잡고 가파른 정상을 오르는 크라이머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그러다 로프에 휘감기는 듯, 춤꾼이 얼키설키 꼬여 있는 조명 선에 갇히는 형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곳에서 빠져나온 듯 일어나 손을 위로 쭉쭉 뻗고, 폴짝폴짝 뛰던 그는 벽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하지만 그는 재차 오른다. 자신을 고양하며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초월 의지와 상승 욕구가 잘 표출되는 장면이다. 나와 내가 처한 삶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는 ‘거리의 열정’(pathos of distance)에 사로잡힌 인간을 보는 듯하다. 낡은 정신과 거리를 두며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는 정신을 이루려는 열망, 드높고 보다 고귀한 정신으로 향한 열정을 오르고 또 오르는 몸적 인간들의 상승 운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한 춤꾼이 바위 같은 오브제를 밀고 들어온다. 여기저기 홈이 팬 작은 바위는 거대한 벽 앞에 덩그러니 놓인다. 작은 바위 주위에서 한동안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이어가던 춤꾼은 이윽고 작은 바위를 타기 시작한다. 뛰어오르고 미끄러져 내리고, 위태롭게 손과 발로 간신히 매달리기도 한다. 바위 오브제의 약간 넓은 둘레를 에워싸듯이 돌며 오르기를 지속하던 그는 마침내 그 바위를 세로로 세워놓고 그것의 첨예한 꼭대기에 올라가 앉는다. 이런 그의 모습은 볼더링(bouldering), 곧 작은 바위를 로프나 장비 사용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 노련한 크라이머 같기도 하고, 또 동시에 시시각각 닥쳐오는 매 계기마다의 제약을 계속 넘어서 나아가며, 쉼 없이 한계를 헤치고 나아가는 몸적 주체의 전형으로도 보인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그 후 이어지는 세 번의 듀엣 춤은 사뭇 진중하고 진지하다. 높은 암벽을 오르다 지친 사람처럼 무대 벽면의 문을 열고 나온 남성 춤꾼 한 명이 무대에 쓰러지면, 다른 춤꾼 한 명이 등장해 손을 내밀어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운다. 둘의 춤은 서로 기대고, 상대를 들어 올리고, 맨 채 천천히 걸어가기도 한다. 또 한 명이 쓰러지면 다른 이가 다독여 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서로 몸을 지탱하고 의지한 채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체념하고 포기한 듯, 한 명이 뒤돌아서 가면, 다른 이가 그의 발목을 붙잡아 만류하지만, 끝내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이어지는 여성 듀엣 춤도 비슷한 결을 가진 춤이다. 작은 바위 오브제와 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허들을 각각 들고나와 설치한 두 춤꾼은 허들을 뛰어넘고, 그 밑을 통과해 지나가기도 한다. 상대를 어깨에 메고, 들어 올리다가, 한 춤꾼이 다른 이의 종아리를 밟고 올라서 어깨에 탄 채 이동하기도 한다. 그들은 침착하게 탈출구를 찾는 듯, 또는 함께 협력하며 고난을 극복하는 듯 신중하게 움직인다. 굴곡진 인생길이든 험난한 등반길이든, 그 길을 가는 긴 여정에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고비마다, ‘오르거나 버티거나’, 가거나 멈추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뒤로 가거나, 그들은 가볍지 않고 조심스럽게 암중모색 중인 것이다. 그러다 한 춤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지금, 과거, 새로운 시간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 그것이 지금인가. 지금은 우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등 띄엄띄엄 들려오는 대사에는 변화에 대한 의지가 묻어난다. 아무런 변화 없이 흘러가는 연대기적 시간에 파열을 내며 지금-여기에서 당장 변혁을 도모하자고 소리 내어 말하고 있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ChadPark



무대 뒤 큰문을 비롯하여 모든 문이 닫히면 벽 위로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오른다. 직각으로 우뚝 선 벽면 전체에 암갈색 줄이 생기면 무대 공간은 절벽에 가로막혀 있는 듯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출구를 더듬어 찾는 듯, 고민과 모색의 듀엣 춤이 이어진다. 결단의 시간이 임박한 것일까. 드라마틱한 음향이 극장을 가득 채우고, 두 춤꾼은 서로 이마를 맞댄 채 무대를 빙빙 돈다. 한 춤꾼이 앞만 보며 무작정 달려나가듯 돌진하면 다른 이가 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막아 저지한다. 또 상대의 머리를 잡고 상체를 위아래로 흔들기도 한다. 여러 개의 작은 탐사 조명 빛이 무대 여기저기를 훑으면서 긴박감이 고조되고, 절박한 듀엣 춤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사그라들 때쯤, 춤꾼들이 하나둘 높은 벽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밤의 시간에 도래한 비상 상황을 지금-여기에서 곧바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음향이 가세하며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연출된다. 모두 다 높고 험한 벽을 기어이 오르고 올라 그 너머로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넘어서 감’은 단순한 공간적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양식에서의 차이의 이미지로 읽힌다. 곧 춤꾼들은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오르내리며 초월 의지를 부추기는 군무의 향연을 펼치고, 불현듯 닥친 암울한 시대 상황을 돌파하는 자기 극복의 춤을 춘다. 그들은 시종일관 계속해서 위로 오른다. 그렇지만 그들이 최상만을 추구하는 맹목적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실 최상의 인간일지라도 여전히 극복되어야 할 존재일 것이다. 외려 그들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 곧 나와 내가 속한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새로운 삶의 방식과 지금의 나와 다른 나를 창안하기 위해 분투하는 창조자이자 예술가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모든은 춤추는 몸의 창조적 힘을 긍정하는 안무가이리라, 또 춤꾼들은 이런 춤 만든 이의 분신들 혹은 페르소나일 것이다. 초월 의지로 가득 찬 인간의 형상을 춤추는 몸들의 상승 운동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On the Rock〉은 무대장치와 각종 오브제, 음향과 조명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클라이밍에서 착안해 알맞게 형상화한 상징적이면서도 표현적인 춤으로 메시지를 비교적 명징하게 드러내는 공연이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3. 3.
사진제공_ChadPark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