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원시적 노스탤지어를 위한 ‘해오름 프로젝트’
김혜라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이 제작하고 황수현이 안무한 〈카베에caveae〉가 국립 해오름극장(4.7~9)에서 발표되었다. 국현의 2023년 첫 작품이라 단체의 신작 방향성과 기획력을 재확인하는 측면이 있고,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에 정식으로 참여한 작업으로 해오름 대극장에서 컨템퍼러리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기존의 원형극장인 하늘극장과는 별개로 해오름극장을 원형공간으로 재설치하며 어떤 방식으로 동시대성을 견인할지 여러 질문이 드는 작업이었다. 무대 벽을 열어 객석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공연 방식은 아니나, 리뉴얼을 마친 대극장에 수용될 많은 관객을 포기하고 소수의 관객과 안무 메소드를 나누려는 호기로움이 설득적일지 개인적으로 궁금하였다. 대체로 소극장과 전시 공간처럼 관객과 근접한 거리에서 작업을 해 온 황수현 안무가의 대극장 작업에 대한 우려와 호기심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마치 희귀한 동굴체험 장소에 온 듯 관객들은 관광객 모드로 줄을 서서 이색적인 경로로 무대이자 객석에 들어선다. 전면을 동굴처럼 검정 시트로 감싼 장소에서 관객은 자발적인 선택을 할 경황도 없이 작품의 공동참여자가 된다.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다르게 39명 댄서들이 펼칠 공동의 감각에 동화되길 의도하며, 프로시니엄 무대의 분할된 시각적 감각만이 아니라 청각, 촉각 같은 다채로운 감각을 친밀하게 공유하고자 하였다.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KNCDC/박수환



동굴(‘카베에’caveae는 구멍, 동굴, 객석과 같이 어둡고 움푹 패인 다수의 공동(cavity)을 의미하는 단어, 팸플릿) 이라는 원시적이면서도 원형적인 공간감을 의도한 무대는 공동의 리듬과 군무로 감각의 잠재성을 실험하겠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반영된 공간이다. 실제로 무대에서 처음 보는 수십 미터가 되는 높은 천장은 폐쇄적이나 압도적인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조성하고, 동시에 39명의 음성이 공진하는 장으로 제 역할을 한다. 기존의 해오름극장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암흑의 공간이란 맥락이 잘 구현된 설치이다. 꽤나 넓은 바닥에 다수의 댄서들은 자연스럽게 편안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강을 타고 올라오는 ‘히’라고 발화되는 소리가 바닥에 있던 각각의 몸들을 일으킨다. 감각을 깨우는 소리는 서서히 번지며 댄서들의 몸과 공명하는 과정이 한참 동안 일어난다. 살과 살이 맞닿으며 서로의 몸을 인지하고 그 에너지를 전이시키며 몸의 자각이 수행된다.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KNCDC/박수환



전자기장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고 접촉된 몸들은 파동을 타듯 반응한다.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무작위로 상대와 겹친 몸의 지층은 그룹을 이루어 일종의 감정 덩어리가 된다. 댄서가 내는 목소리에 서로 공명하며 댄서들끼리 연합되어 가는 점진적인 흐름은 몰입감과 흡인력이 확실히 있다. 따라서 관객마다의 상상력으로 다양한 해석을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 39명의 댄서들의 형체는 마치 수천 년 전 지구 생명체의 근원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모래알들이 휩쓸리고 미끄러져 와해되는 자연의 순리로도 연상할 수 있겠다. 장구한 시간 앞에 놓인 현상을 떠오르게 하는 장엄하고 감각적인 풍경이다. 특히 중간 즈음에 객석과 원형 공간 사이로 댄서들이 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은 참 생소한 경험이었다. 마치 동굴에 물이 차고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석순이 녹아내려 관객의 곁으로 번지는 촉각적인 교감으로 느껴졌다. 물질로서의 몸을 춤으로 재고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KNCDC/박수환



비교적 일관성을 갖고 상징적인 동굴의 원시성과 극장의 원형적 역사성을 소환해 입체적인 감각을 일깨우려는 발로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면 댄서들의 에너지가 격양되며 다층적인 몸들의 지형과 음성들은 동굴을 뚫고 나올 기세로 가속화 된다. 흩어지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하나의 군집을 형성한 집단은 원심력의 소용돌이에 쏠리고 밀리며 39명의 댄서들이 무언가에 휩쓸리는 역동적인 유기체로만 보인다. 댄서 개인의 고유한 모습은 지워지고 스펙터클한 서사에 제물이 된 인상이다. 이 부분에서 작품이 지향하는 감각의 실현 방식이 묘사적이란 인상을 저버릴 수 없다. 마치 본능적으로 철새 때가 이동하듯 대자연의 서사를 담아낸 영상다큐를 묘사하듯 말이다.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KNCDC/박수환



39명 댄서들의 불협화음의 목소리와 동작들도 어느 순간 균형감을 찾아 장송곡 같은 소리와 제의의 몸짓으로 느껴진다. 이는 집단 최면에 걸린 도취적인 행위처럼 원초적인 몸의 감각을 일깨워 삶을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로도 보이나, 반면 맹목적인 정치적 행위와 종교적 몰입 같은 인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집단 군무는 역동적인 물결로 동시에 차이와 다양성이 매몰된 군무로 양립한다. 포스트 팬데믹을 상상하고 디지털 사이버 세상을 꿰뚫어 원시적이고 제의적인 태고적 춤이 미래 시대에 부활돼야 함을 주장한다면 그럴 듯하다.



국립현대무용단 황수현 〈카베에〉 ⓒKNCDC/박수환



안무가의 전작인 〈검정 감각〉이 눈을 감은 채로 소극장에서 청각과 촉각이란 감각을 재발견하며 주목을 받았다. 본 작품도 전작의 방향성과 유사하나 다른 점은 집단적인 행위에 동요하며 정서적인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추가된 부분이다. 또한 전작에서 낯선 신체 표현으로 몸의 표현적 가능성을 인식하게 했던 측면이 오히려 발견하기 어려웠다. 작품에 참여한 댄서들의 주체적인 몸, 오늘을 살고 있는 몸의 가능성을 볼 수 없었던 점이 그것이다. 심지어 130여명이 참여한 오디션에서 뽑힌 댄서들은 발랄하고 춤 잘 추는 젊은 댄서들이나 실제 작품에서 그들은 거의 몰개성에 가까웠다. 각기 댄서의 고유한 존재성을 물질화시켜 공동감각의 재료로 작동시킨다 해도 질식당할 것 같은 획일화로 ‘미래의 감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감각하는 자와 감각되는 것의 유기적인 접속에서 댄서의 몸들이 교란되고 저항하며 변증법적 반란을 일으키는 주체적인 생명성으로 뚫고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 다수의 몸으로 공감의 시대를 살아갈 힘의 동체는 생각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그저 39명의 몸이 함께한 원시적인 노스텔지어에 머무른다.

이 작업은 국현이 2021년부터 횟수로 3년간 리서치와 워크숍을 지원하고, 국립극장과 손잡고 스태프를 포함하여 100명이 관여한 대규모의 프로덕션이란 이례적인 수순을 밟았다. 프로시니엄 극장만의 분할된 감각을 통합하려 극장을 해체하여 공감각적인 감각 탐색을 위한 실험자체는 흥미롭다. 어쩌면 상징적인 국립 해오름이란 프로시니엄 극장의 공연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실험을 통한 집단적 감흥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획득 했는지는 자문해 보자. 또한 국립이기에 안무자 개인이 할 수 없는 작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으나, 국세이기에 책임을 갖고 그 취지와 과정 그리고 결과에서 공적 파급력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팸플릿에 나열된 워크숍 과정과 동굴 탐험기 사진으로 리서치 과정을 설명하나 구체적인 리서치 내용이 부실하다. 기획자와 프로듀서의 글만 가득하다. <카베에>가 대규모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을 것 같으나, 국현의 레퍼토리로서의 실효성 문제와 향후 재공연 여부 등 여러 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거액의 예산과 1년여의 리서치가 동반되어 투자된 작품이라기엔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설득적이지 않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3. 5.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 박수환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