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세르반티노 축제 한국특집
“한국이라는 나라, 그들의 문화가 뭔지 궁금해졌다”
김신아_아트 프로듀서

 LA공항, 수속을 다 끝내고도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 공항에 사람은 많은데 편의시설은 왜 이렇게 부실할까? 앉을 곳을 찾아 휘휘 둘러보다 드디어 벽에 다닥다닥 붙은 의자 한 켠에 자리 하나 찾아 지친 몸을 의지하고 여러 개 메시지 창을 열어본다.
 불과 2주간 실라오, 과나후아토, 마사틀란, 메리다, 쿨리아칸을 돌았고 초겨울에서 열대로, 해발 고도 2,200에서 30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격해진 감정을 주체 못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붉어진 눈을 감추기도 했다. 연이은 밤샘과 도저히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무대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주는 든든한 스태프들이 있어 간신히 버텼지만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들은 잠시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3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오늘을 위해 달렸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환호와 박수를 객석 뒤에서 보고 들으며 내 손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오게 만든 무용단들의 미래에 이런 저런 색을 입혀본다. “너무 좋았던 어제 공연 때문에 한국 작품에 믿음이 생겨 오늘 또 왔는데 세상에 난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문화가 대체 뭔지 궁금해졌다.” 축제 관객 500,000명 중 약 5,000여 명이 그렇게 한국 공연을 봤고 무대는 객석 어딘가에서 건네 온 태극기를 흔들며 바닥을 적시는 땀도, 산소호흡기를 찾던 가쁜 숨도 잠시 잊은 듯한 얼굴을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식민지 풍 작은 대학도시가 한때는 은 생산으로 멕시코 최고의 부를 자랑했으며 산화한 인디오 광부 피필라, 참혹하게 처형당한 이달고 신부 등 혁명전사들이 독립의 첫 종을 울린 도시이기도 하다. 과나후아토의 주도 과나후아토, 한때 영화를 누렸으나 쇠퇴하던 이 도시는 1953년 세르반테스의 막간극을 광장으로 들고 나온 과나후아토 대학의 엔리케 루엘라스(Enrique Ruelas)와 학생들의 거리공연으로 시작해 이제 아비뇽 페스티벌, 에든버러 페스티벌, 퀘벡 여름축제와 함께 세계 4대 주요문화행사에 꼽히는 세르반티노 축제(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엘 세르반티노라는 애칭으로도 불림)로 세계인을 유혹하는 도시가 되었다.




 정 많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건넌 혼돈의 강

 

 토마토 속에 온 몸을 던지며 미친 듯 웃고, 원도 한도 없이 맥주에 취해 고성을 바라보다 시 한 수 툭 던져 낭만을 자랑해보고 싶나? 반라의 미인들이 삼바리듬에 몸을 흔들며 바로 옆을 지난다면 그 자리에 혼을 내놓고 싶을 남자들 참 많을 게다. 부뇰 토마토 축제, 뮌헨 옥토버 페스트, 리우 쌈바 카니발, 베니스 카니발, 몽고 나담 축제 등과 함께 세계인들이 죽기 전에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세계 10대 축제 중 유일한 공연예술축제가 바로 엘 세르반티노다. 대체 그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축제 예술감독 마르셀라 디에즈 마르티네즈 (Marcela Diez Martinez, 60세)는 “과나후아토에 들어서는 순간 축제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답한다.
 꼭 10년 전, 서울세계무용축제에 몸담고 있을 때 세르반티노 축제와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특집 혹은 주빈국 행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후 성사될 뻔 한 주빈국 행사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말만 무성하게 오가던 중 나도 축제를 떠났는데 2013년 3월 외국인 친구로부터 “한국특집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하자”고 답해놓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잖은 재원이 필요한 특집행사에 선뜻 나서는 기관이 없었고 해를 넘겼다. 결국 선택과 집중으로 거리를 좁혀갈 수밖에 없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내민 손을 잡아준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3시간 반여, 땀이 차도록 핸들을 부여잡고 달렸다. 이후 일사천리로 실타래를 풀었냐고? 행여나! 한 해를 또 넘기며 예술감독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로 날아갔고, 그제서야 단체선정 등 대략적 협의를 이뤄낼 수 있었다.





 중남미를 꽤나 경험했다고 자부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잠시 잊고 말이다. 공항만 전담하는 담당자가 입국심사데스크에 나와 통관을 도와줄 때 축제의 운영시스템에 감동받았다. 도착한 호텔에서 역시 전담스태프 배치 등 철저한 준비로 다시 감동받았다. 그러나 멕시코시티에서 과나후아토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5시간이 논스톱이라는 말에 우려는 현실로 바뀌고, 사전에 협의했던 도시이동 시간은 주최 측의 운영상황에 맞춰 바뀌어 있었다. 호텔 역시 공연단의 편의를 위해서라고는 하는데 이동 당일에서야 바꿔놓은 것을 알았다. 역시 중남미로구나. 게다가 34개국, 예술가만 3,000명이 매일 들고 나니 오죽할까.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정 넘치는 그들이지만 확신에 차 “동쪽으로 가라”해도 골백번 확인해야 하는 곳이 남미다. 그러니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번에 가장 잘한 일은 사업가로 현지 주류사회에 뿌리내린 오랜 지인들에게 보호자, 매니저에 통역까지 맡아달라 부탁해놓은 것이었다. 덕분에 그 유명한 축제에서 기립박수 받은 우리 아티스트들, “멕시코 하면 그분들만 생각”난단다.




 한국현대무용, 공연예술축제 엘 세르반티노를 일으켜 세우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주최 ‘세르반티노 축제 한국특집’이 내놓은 것은 50대, 40대, 30대를 대표하며 각기 다른 개성을 보여준 3개 현대무용단. 최상철현대무용단(중앙대학교)은 언론의 집중적 관심대상이었다. 브레시트무용단(대표 박순호)은 모든 공연 전석 기립박수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아트 프로젝트 보라(대표 김보라)는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시작할 때 마음은 유명 축제에 한국 공연예술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었고, 출연자들에게 좋은 이력을 붙여 좀 더 멀리 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최상철현대무용단의 유럽무대 진출 협의가 시작됐다. 브레시트무용단은 내년 제이콥스 필로우 무용축제 초청이 확정되었다. 아트 프로젝트 보라의 유럽무대 활동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숨도 쉬지 못하며 마지막 공연을 지켜본 동지 마리아. 관객의 박수소리에 제정신이 돌아온 그녀와 난 서로를 끌어안으며 동시에 외쳤다. “끝났다.” 이제 며칠이 지났다. 익숙한 침대로 돌아온 지금 서로가 없는 아침 식탁이 아직은 낯선데 “마지막에 웃자”던 다짐을 되새기고, 함께 가볼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한 줄 메시지를 보낸다. “I miss you so much”.

2015.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