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은지댄스프로젝트 ‘5월의 은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은유와 오브제를 통한 춤의 확장
장광열_춤비평가

만만치 않았다. 메시지의 강도, 오브제의 활용, 소극장 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댄서들의 움직임 조합과 조형미 구축까지, 작품의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안무가의 감각은 범상치 않았다.

안무가들의 새로운, 이미 공연된 작품 중 수작(秀作)이라고 평가받은 작품을 만나는 데 대한 설렘은 춤 비평가들이 먼 거리를 마다않고 공연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오래 전부터 ‘안무 최은지’라고 쓰여 진 홍보물을 여러 군데서 읽었던 터라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눈 먼 선택〉은 2016년 M극장 베스트 춤 레퍼토리 수상작이었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눈 먼 선택 2.0> ⓒ한필름



최은지댄스프로젝트의 기획공연(5월 7일, M극장)에서 만난 〈눈 먼 선택 2.0〉은 마치 공동표지의 묘비처럼 무대 공간을 장식한 오브제의 활용이 빼어났다. 이 전 순서에 공연된 〈겸손한 취향 2.0〉을 통해 관객들에게 익숙해진 무대 공간은 〈눈 먼 선택 2.0〉에서는 60여 개의 종이봉투가 가지런히 세워지면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공연은 묘비처럼 세워진 수십 개 봉투 사이로 남성 무용수의 느린 움직임이 스며들면서 시작된다. 흰 신사복 차림 댄서의 솔로 춤은 어느새 다섯 명 댄서의 움직임으로 확장되고 이후에는 종이봉투와 다양한 방향에서 접점을 찾으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한 무용수가 세워진 종이봉투를 하나씩 주워 담을 때 들려오는 ‘바스락’ 하는 소리는 무음악에 길들여져 가던 관객들의 청각을 여지없이 자극한다.

공연은 묘비처럼 세워진 수십 개 봉투 사이로 남성 무용수의 느린 움직임이 스며들면서 시작된다. 흰 신사복 차림 댄서의 솔로 춤은 어느새 다섯 명 댄서의 움직임으로 확장되고 이후에는 종이봉투와 다양한 방향에서 접점을 찾으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한 무용수가 세워진 종이봉투를 하나씩 주워 담을 때 들려오는 ‘바스락’ 하는 소리는 무음악에 길들여져 가던 관객들의 청각을 여지없이 자극한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눈 먼 선택 2.0> ⓒ한필름



안무가는 종이봉투를 기막히게 활용한다. 댄서들은 봉투 사이로 이동하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뒤집어쓰거나 놓여진 사이로 몸을 밀착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곧 자연스럽게 여러 형태의 형상으로 구현되고, 조명과 음악과 맞물려 시청각적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눈 먼 선택 2.0> ⓒ한필름



무용수들이 좌우로 몸 전체를 이동하면서 각기 다른 패시지의 5인무로 변주해 가는 과정은 스타카토로 분절되는 음악의 일정한 리듬과 맞물리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화이트 위주로 비쳐지던 조명이 오렌지 빛깔로 바뀌어 지면서 선채로 또는 반 쯤 선채로 몸 전체를 바닥에 밀착시키면서 만들어내는 댄서들의 조형미는, 고저를 확실하게 구분시킨 음악과 맞물려 이 역시 강한 비주얼로 무대를 채색한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두 손으로 머리를 맞잡고 함께 느린 움직임으로 천천히 공간을 이동하는 장면은 그 시각적 비주얼과 은유적 메시지 전달이 압권이었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겸손한 취향 2.0> ⓒ한필름



이 보다 앞서 1부에 선보인 〈겸손한 취향 2.0〉은 여성 무용수 두 명이 작품을 풀어간다. 투명 거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명의 무용수가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이동하는, 정지된 순간 투명 거울 사이를 서로 입으로 접촉하고 두 팔로 상대방의 몸을 보듬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두 명 무용수의 움직임은 컨택에 의해 변주되어 지면서 즉흥을 통한 자유로운, 얘기치 않은 우연성의 음미 단계까지 연결된다. 무대 바닥에 댄서들의 몸 전체가 접해지는 순간, 미니멀 전자음악의 리듬에 그저 몸을 맞추게 되는, 단순 반복되는 움직임 구성의 위험성으로부터도 벗어난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겸손한 취향 2.0> ⓒ한필름



안무가는 두 번째 프레임에서는 전자음악 대신 다른 음색의 음악을 선택하고 움직임 구성에서도 컨택에 의한 변주대신 솔로 춤 위주로 변화를 꾀한다. 〈눈 먼 선택 2.0〉에서 음악과 오브제를 적절하게 혼용, 5명 댄서의 10개의 눈으로 무대와 관객을 소통시킨 안무가의 치밀한 구성력은 〈겸손한 취향 2.0〉에서는 거울을 활용한 오브제와 두 명 무용수의 농밀한 앙상블 구축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눈 먼 선택 2.0〉에서는 5명 댄서들의 움직임을 더 다채롭게 변용시키는 작업이, 〈겸손한 취향 2.0〉에서는 음악적인 구성에서 보완이 더해진다면, 예술적 완성도 역시 배가될 것이다.



최은지댄스프로젝트 <겸손한 취향 2.0> ⓒ한필름



이번 공연의 전체 타이틀은 ‘5월의 은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였다. ‘은유’는 안무가의 작품을 풀어나가는 방법이었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두 개 작품을 통해 안무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안무가가 시종 작품의 중심에 두고 활용한 오브제는 〈겸손한 취향 2.0〉에서는 거울, 〈눈 먼 선택 2.0〉에서는 종이봉투였다. 두 개 모두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다. 늘 우리 곁에 있음에도 우리가 무심코 잊고 있는 것들, 안무가는 이것들을 활용한 움직임을 적절한 톤으로 매칭 시켜, 공감 능력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의 ’무주의‘를 질타하고 있다.

창작의 산물(産物)과 맞닥뜨린 관객들에게 은유적으로 풀어낸 안무가의 메시지는 그 울림이 결코 작지 않았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3. 6.
사진제공_한필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