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NEXT STEP’ 박소영, 정보경
젊은 감각과 안정감이 조화를 이룬 국립무용단의 ‘NEXT STEP’ 무대 (2)
최찬열_춤비평가

치유와 해방의 춤

두 번째 무대에 오른 박소영의 〈라스트 댄스〉는 안무가 자신이 직접 겪는 공황장애나 우울증 경험을 무대화한 공연이다. 춤 만든 이는 첫 장면에서 이를 평범한 여성에게 투영해 일반화해 보여준다. 관객이 보기에 무대 왼쪽 앞으로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 의상을 입은 여성 춤꾼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나이가 제법 지긋이 든 중년 여성으로 보인다. 그가 거기에 잠시 서 있는 동안 쿵쿵거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 아마 공황 발작의 전조증상일 것이다. 특정 대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공포와 달리, 아무런 대상이 없음에도, 또 어떠한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습하는 막연한 불안이 불러일으키는 현상이다. 박소영의 이번 공연 〈라스트 댄스〉는 한 실존이 겪는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을 일상적인 몸짓에 가까운 춤과 퍼포먼스로 꾸밈없이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그가 회상에 잠기듯 뒤로 시선을 옮기면, 그와 동시에 무대가 열린다. 무대 오른쪽 뒤편에 모여 두 팔을 든 채 상체를 흐느적거리고 있는 5명의 춤꾼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빠른 비트의 타악기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짝을 이루어 손을 잡고 돌면서 춤추기 시작한다. 각자 제자리에서 빠르게 빙글빙글 돌다가 일제히 멈출 때는 잠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곧바로 경쾌한 음악이 재차 울려 퍼지고 무대는 점점 밝은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춤꾼들은 곱게 머릿결을 매만지고, 과시하고 뽐내는 듯한 몸짓과 걸음걸이로 으스대며 무대 여기저기를 오간다. 공황 발작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보통의 중년 여성들이 어울려 유쾌한 시간을 보내며 명랑하게 노는 흔한 일상 풍경이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그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사이에 한 춤꾼이 무대 밖으로 나가 의자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그는 그것을 무대 중앙에 놓는다. 그러자 춤꾼들은 앞다투어 그 위에 올라서 자신을 자랑하고 남에게 보란 듯이 우쭐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춤꾼들이 하나둘 무대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무대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와 한 명의 춤꾼만이 무대에 남겨진다. 혼자여도 개의치 않고 잠시 쾌활하게 놀던 그에게, 불현듯 외로움이 엄습한 것일까, 그는 점차 활기를 잃어가고, 우울감에 사로잡힌 듯 갑자기 망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제자리에서 쉼 없이 빠르게 뱅뱅 맴도는 동작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다 의자에 멍하니 앉았던 그가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선다. 급기야 헤어날 수 없는 망상에 휘말린 듯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참이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그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 오른쪽 앞으로 긴 테이블이 쑥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앞에 춤꾼 한 명이 쓰러진다. 테이블이 더 밀려 들어오면서 쓰러진 춤꾼은 그 밑 공간에 갇힌다. 흡사 비좁은 관 속에 누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자기만의 폐쇄 공간에 틀어 박혀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다른 춤꾼이 테이블 위를 연신 문지르며 닦고 있을 때, 그 밑에 갇힌 춤꾼은 테이블 위 벽면을 ‘똑똑’ 두드린다. 폐쇄 공간에 갇혀 있을지라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것일까, 혹은 그곳에서 꺼내달라고 호소하는 것일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거기에서 빠져나와 두 손으로 머리와 몸을 발작적으로 털어 댄다. 그리고 또 다른 춤꾼 한 명은 무대 중앙 놓인 의자로 살며시 다가가 그 위에 맥없이 쪼그려 앉는다. 강박적인 테이블 닦기, 폐쇄 공간이나 관에 갇히기, 의자에 멍하니 앉아 망상에 빠지기 등, 세 명의 춤꾼은 긴 테이블을 무대 왼쪽으로 조금씩 옮겨가며 이러한 행위를 번갈아 가면서 반복적으로 행한다. 이런 세 명의 춤꾼은 수시로 돌변하며 나날이 다른 그날그날의 삶을 어렵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분열증적 주체 내면의 다른 자아들처럼 보인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무대 왼쪽 앞까지 이동한 그들은 수평으로 놓여있던 긴 테이블을 수직으로 세운다. 그 순간 테이블은 문이 된다. 이 문은 해방된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이자 그를 가두는 감금 장치이기도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무대 오른쪽 뒤로 또 다른 긴 테이블이 쑥 밀려 들어온다. 찢어지고 갈라진 한 실존의 내면처럼, 일순간 세 개의 오브제가 무대를 구획하는 형국이다. 곧 무대 중앙에 놓인 의자와 왼쪽 앞에 세워진 문, 그리고 오른쪽 뒤의 긴 테이블이 무대를 나누어 점유하고 있다. 이제 공연은 이 세 곳에서 행해지는 춤과 퍼포먼스를 병치하거나 중첩해 보여주는 다소 어수선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구 뒤섞여 갈피 잡기가 어려운 한 주체의 분열증적 심리가 무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로 표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문을 열고 나온 한 자아는 쓰러진 다른 자아를 일으켜 보듬어서 다독이지만, 긴 테이블 위 가장자리에 아슬아슬 서 있는 다른 자아는 자살 충동으로 내몰리는 듯하다. 서로를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문 주위의 자아들과 달리 테이블 위 가장자리를 비틀비틀 서성이는 다른 자아는 생사를 가르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들은 불안한 사람처럼 종종걸음으로 무대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오가고, 멍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제자리에서 빠르게 맴돌며 망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또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의자와 테이블 위에 올라서기도 한다. 하지만 또 이와 상반되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머리채를 격렬하게 털고, 서로서로 짝을 지어 위로하고 달래다가, 마침내 함께 손을 잡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원을 그리며 해방의 군무를 펼친다. 화려하거나 강렬하기보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는 춤이다. 문을 박차고 나와 평범한 일상에 복귀하고 싶은 솔직함이 전해지는 차분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라스트 댄스〉이다



박소영 〈라스트 댄스〉 ⓒ국립무용단



마지막 장면은 중의적이다. 수미상응하게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오고, 문 앞에서 서성이던 한 춤꾼이 열린 문을 ‘쾅’ 닫는다. 억압의 공간을 내쳐 물리치고 문밖으로 나온 그가 다시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듯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긴 테이블 위에 선 춤꾼은 그곳에서 떨어진다. 비록 그 밑에 선 4명의 춤꾼이 떨어지는 그를 받아 안기는 하지만, 그는 끝끝내 자살을 실행하는 것이다. 무대 왼쪽 앞과 오른쪽 뒤, 대각선 방향의 두 공간에 마주 선 한 주체의 다른 두 자아는 각기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아마 하나는 현실이나 의식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꿈이나 무의식의 공간일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박소영은 의자와 테이블 같은 단순한 생활용품을 다양한 용도로 변형하며 재치 있게 활용한다. 무대 중앙에 달랑 놓인 의자 하나는 처음에는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가, 그다음에는 춤꾼들이 자신을 뽐내는 과시의 장으로, 그러다가 다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타포가 된다. 또 긴 테이블은 어떤 때는 식탁으로 보이고 또 다른 때는 죽음을 나타내는 관으로 보이다가, 급기야는 고립된 자아가 박차고 나오는 문으로 활용된다. 오브제 사용이 돋보인 박소영의 〈라스트 댄스〉는 극한적 상황을 돌파하는 한 실존의 처절함에 배어 있는 치유와 해방의 춤이다.


소멸과 공존의 춤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 정보경의 〈메아리〉는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이다. 곧 하나인 ‘온생명’ 안에서 개별적 생명의 삶과 죽음은 마치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순환 관계를 형성한다. 말하자면 이번 공연 〈메아리〉는 생명의 순환과 회귀를 주제화한 공연이고, 공연의 제목 ‘메아리’는 돌아옴과 재생의 은유인 셈이다. 어딘가에 도달한 소리가 반드시 돌아와야 메아리이듯이, 죽음은 필연코 재생한다는 생명의 순환을 뜻하는 이 상징은 또, 끝이 곧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닌 윤회사상이나 영원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정보경은 공연 전반부에서 둥글게 돌아가며 이동하는 동선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신중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정보경 〈메아리〉 ⓒ국립무용단



구슬픈 구음이 흘러나오면서 막이 열리면, 무대 오른쪽 뒤에 흰색 옷을 입은 한 춤꾼이 엎어져 쓰러져 있다. 죽은 이로 보인다. 검은 의상을 입은 한 춤꾼이 그와 대각선 방향에서 살며시 등장해 잠시 누었다가 일어날 즈음 다른 춤꾼들이 일제히 시차를 두고 무대로 등장한다. 그들은 죽은 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천천히 걷다가 엎드리고, 엉금엉금 기다가 일어나고, 비행하듯 두 팔을 벌린 채 한 발을 앞으로 쑥 내밀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그곳에 모인다. 한 생명의 죽음을 예감한 그들의 표정과 움직임은 사뭇 묵직하고 진지하다. 춤꾼들은 멍하니 하늘을 보고, 하나둘 손을 잡고 죽은 이 주위를 빙빙 돌기를 반복하다가, 그 춤꾼 주위로 둘러선다. ‘훠이, 훠이 넘어가다가’ ‘훠이, 훠이 날아가다가’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에 맞추어 춤꾼들은 다시 원무를 추듯 둥근 동선을 그리며 무대 뒤로 크게 돌아 재차 누운 춤꾼 주위로 모인다. 그리고 그들은 다 같이 그를 높이 들고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열을 지어 장엄하게 움직이는 무리는 죽은 이를 위로하고 어루만지어서 달래어 저세상으로 보내는 장례 행렬일 것이다.



정보경 〈메아리〉 ⓒ국립무용단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죽음은 아무런 의미 없이 늘 그런 죽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춤꾼들은 이 죽음을 거룩한 죽음으로 승화시키는 의식을 거행하고, 죽은 이는 무대 중앙에 둥글게 모인 춤꾼들 한가운데서 성스럽고 고결한 죽음의 춤을 춘다. 두 팔을 하늘로 올린 채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그의 춤에 조응하여 하늘-막 중앙에 걸려 있던 으슴푸레한 석양빛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시나브로 사그라드는 몸놀림과 조명 빛은 삶과 죽음이 맞물렸다가 멀어지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을 애틋하면서도 비장하게 그리고 있다. 소멸과 사라짐의 미학이 잘 구현된 아름다운 장면이다. 디테일을 잘 살린 정보경의 섬세한 감성적 터치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죽은 이는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로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남은 이들은 함께 모여 상체를 흔들고, 망연자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고, 무대를 빙빙 돌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슬퍼하다가, 심기일전한 모습으로 빠르고 강한 템포의 음악에 맞춰 활달한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재생의 기운을 모으는 듯한 움직임이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위무하며 고상하게 보낼 뿐만 아니라,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생명의 약동을 추동하고 고무하는 춤으로 보인다.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한참을 역동적인 춤을 추던 춤꾼들이 무대 오른쪽 앞으로 모여들어 다 같이 두 팔을 앞뒤로 저으며 머금은 숨을 토해내듯 허리와 고개를 앞으로 숙이기를 몇 번 반복한다. 메시지나 의미보다 춤의 힘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삶과 죽음의 창조적 순환 운동을 부추기고 북돋우어 주는 춤이리라.





정보경 〈메아리〉 ⓒ국립무용단



이윽고 무대 오른쪽 앞에 모인 그들이 일제히 한 팔을 하늘을 향해 올릴 때 웅장한 수제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춤꾼들은 두 팔을 비스듬히 든 채 굴신하며 서서히 돌고, 몸통을 가볍게 뒤틀고, 두 손을 모은 채 하늘을 향해 뻗었다가 모아들이기를 반복하는 장중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음악과 춤추는 몸, 둘이 서로 비추어 꼭 맞게 대응하며 삶과 죽음도 다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든다. 무대 왼쪽 뒤에서 뒷걸음질로 서서히 살아 돌아오는 춤꾼의 모습이 보이고, 이들은 곧 군무와 회귀한 생명은 대각선 방향에서 마주한 채 아주 느리게 각각 무대 중앙 쪽으로 이동한다. 멀어졌던 삶과 죽음, 그 둘이 다시 가까워지는 재생과 공존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리고 이렇게 삶과 죽음이 포개져 나타나는 무대는 안과 바깥, 이 세상과 저세상의 구별이 없는 비-경계나 무-경계 지대로 변한다. 생명의 창조적 생성은 아마 이 사이-공간에서 발원할 것이다.

천지 사방에 흘러 다니는 기운을 내면으로 끌어모아 응축하는 듯한 움직임을 반복하던 춤꾼들이 마침내 무대 중앙에 모인다. 이들은 일제히 등을 보인 채 모여 서서 허리를 숙였다가 두 팔을 쳐올리며 응축한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이때 재생한 이가 와이어에 달려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둥둥 떠 허공에 매달린다. 재생의 모티브가 엄숙한 수제천 음악에 실려 구체적인 모습으로 뚜렷이 나타나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사이-공간의 풍경이 그려진다.

느림과 빠름, 섬세함과 웅장함, 부드러움과 역동성, 비움과 채움이 조화를 이루며 생명의 소멸과 재생의 이미지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메아리〉에서 정보경이 말하는 생명은 아마도 개별적 생명이 아닌 생명, 곧 ‘온생명’일 것이다. 이것은 생명인 동시에 죽음인데, 여기서 개별적 생명의 죽음은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별 생명체의 죽음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온생명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고, 이런 죽음을 통해서만 변화도, 진화도, 생명의 창조적 순환 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동양적 자연관을 담은 〈메아리〉는 내면과 외면, 구심력과 원심력을 넘나드는 에너지의 흐름과 완급을 능란하게 조절할 줄 아는 출중한 춤꾼들과 세심하게 디자인된 무대 메커니즘이 알맞게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낸 섬세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안정감 있는 공연이다.

요즈음 비슷비슷한 성격을 지닌 한국춤 기반 공공무용단들은 구태의연한 창작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암중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 부산시립무용단과 경기도무용단 등 어림잡아도 10개 남짓인 이들 무용단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별반 차별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춤 흐름에 뒤처져 동시대 감성에 어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데에는 회전문 인사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요컨대 한정된 몇몇 안무가들이 전국의 공공무용단 예술감독 직을 번갈아 가며 도맡는 실정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요긴한 시점으로 여겨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감각과 안정감이 조화를 이룬 국립무용단의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근래 여러 다른 공연을 접하면서 동시대성과 현대적 감성을 갖춘 젊은 한국춤 안무가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최찬열

한국춤과 현대춤, 전통춤과 탈춤을 추었고,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다.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하다가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3. 6.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